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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사랑 여행 스크랩 그 옛날의 안경, 眼鏡의 역사를 찾아서
天風道人 추천 1 조회 177 14.08.04 19:13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아침에 눈 뜨자마자 찾고, 뜨거운 음식을 먹을라치면 하얗게 변해버리는 이것. 바로 ‘안경’입니다. 여름에 맘 놓고 물놀이를 할 수 없게 만드는 안경, 겨울에 실내로 들어가면 뿌옇게 변해버리는 안경 때문에 눈 나쁜 사람들은 여간 불편한 게 아니지요. 그러나 안경이 없다면…?


우리나라 인구의 30퍼센트 이상이 안경을 착용하고 있다고 합니다. 요즘 어린아이들을 보면 어릴 때부터 안경을 쓴 아이들이 더 많아진 듯하죠. 우리에게 안경이 없다면, 이 땅에 심청이의 아버지, 심 봉사 뺨치는 분들이 여럿 될지도 모릅니다.


눈이 나쁜 이들에게 안경은 필수품입니다. 현대사회는 밝은 조명과 텔레비전, 컴퓨터 등등 수많은 볼거리들로 인해 눈 나쁜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렇다면 현대인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안경’의 역사를 살펴보겠습니다.


안경=눈거울(?)


안경(眼鏡)이란 한자의 뜻을 살펴보면, 눈 안(眼)자에 거울 경(鏡). 즉 ‘눈거울’이란 뜻입니다. 안경이 눈거울이란 뜻을 가지고 있다니… 조금은 의아합니다. 거울은 반사된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이지 지금의 안경처럼 렌즈를 통해서 보는 성질과는 차이가 있으니 말이죠.


물을 담은 대야에 반듯한 막대기를 반쯤 담그고 보면 각도에 따라 다르게 보입니다. 초등학교 과학 실험시간에 다들 해보셨죠? 이러한 굴절 현상과 확대 현상을 이용해서 오목거울과 볼록거울이 발명되었습니다. 2천여 년 전 가야시대 청동 거울에서 오목거울과 볼록거울이 발명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지요.


여기서 더 발전하여 볼록렌즈와 오목렌즈가 발명되었습니다. 이렇게 거울-렌즈-안경 순으로 변해 왔기 때문에 안경에 안경(眼鏡)이란 명칭이 붙었던 것입니다. 다시 말해, 안경이 눈거울이란 뜻의 용어가 지금까지 사용된 것은 거울의 원리에서 안경이 탄생됐기 때문이지요.


우리나라 안경의 기원


우리나라 안경의 기원은 확실치 않습니다. 그러나 문헌과 유물들을 살펴봤을 때 우리나라 안경의 기원은 대략 임진왜란 전후시기로 추정할 수 있다고 합니다.


◎ 우리나라 안경의 전래설


13세기 말엽 베니스에서 최초로 대못 안경(Riveted spectacles)이 제작 되었다는 기록에 근거할 때, 우리나라에 안경이 외부에서 전래된 것으로 추측할 수 있습니다. 외부에서의 전래 가능성은 신라 고분에서 발견된 페르시아 유리 그릇, 중앙아시아의 보검 장식에서도 추측할 수 있습니다. 또 미추왕릉 지구에서 출토된 서역제 구슬 등을 보아 조선시대에 안경 수입이 가능했다는 것을 알 수 있지요.


우리나라의 안경이 외부로부터 전래됐을 때의 그 경로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우리나라와 밀접한 관계를 가져온 중국을 통해서 전래된 경우, 또 하나는 일본을 거쳐 전래되었을 경우입니다. 그러나 일본 전래설은 가능성이 매우 적습니다. 우리 선조들은 일본에 문화를 전해 준 문화종주국으로서의 자부심이 커 일본의 물건을 잘 가져오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이를 입증할 만한 문헌과 유물이 거의 없기 때문이죠.


조선 후기의 언어학자 황윤석(1729~1791년)의 문집 『이재전서』 ‘동경수정안경명’에는 안경 역사의 귀중한 근거 자료가 있습니다.


을유(乙酉)년 무성 고을의 원인 김이신이 내가 눈병을 앓고 있는 것을 알고 이 안경을 내놓으며 이렇게 말했다.

 “이것은 경주 수정이다. 옛날 민기(1568~1641년) 공이 경주에 있을 때 구한 것인데 근래에 작고한 정승을 지낸 정헌 공에게로 전해 오던 것이다. 지금 내가 갖고 있게 되었지만 나 또한 공물을 가지고 있으니 그대에게 준들 무슨 거리낄 게 있겠는가? 그 재질이 두꺼워 떨어뜨린다 해도 부서지지 않으며 그 쓰임새가 넓어 노소를 가릴 필요가 없으니 그대는 이것을 귀중히 여기라”


위 글을 보면, 민기는 인조 14년(1636) 경주 부윤을 지낼 때인 1636년에서 1637년 사이에 안경을 얻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1636년은 임진왜란을 거쳐 광해군의 폭정을 지나 인조반정을 겪을 때이지요. 이 시기에 민기가 경주 남석 안경을 구입한 것으로 보아 실제 안경은 그보다 앞서 제작되었을 것입니다. 당시는 교통이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에 안경 만드는 기술은 더 오래전에 진행되었을 것입니다.


◎ 우리나라 안경의 자생설


신라의 것을 다른 나라에서 모방했다는 설도 있습니다. 1981년 월성군 성부산 기슭에서 발견된 용광로를 통해 그 설을 뒷받침하지요. 또 지난 1985년 1월 경주에서 출토된 유물 가운데 유리를 녹인 그릇, 제작 도구 및 규석 등은 우리나라에서 유리를 직접 생각했다는 설을 입증합니다. 경주 고분에서 출토된 많은 유리제품과 곡옥(曲玉)들 그리고 수정 가공품들을 보면 당시에도 발달된 연마 기술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지요.


이 밖에도 사리병, 목걸이용 유리구슬들이 신라, 백제, 고려, 조선시대로 전해져 계속 만들어졌습니다. 조선조 중기에는 경주 남산의 수정이 유명했고, 동경(구리거울)의 원리를 이용한 확대경이 만들어졌습니다. 또 안경에 대한 소문을 들은 우리의 선조 중 솜씨 있는 장인이 안경을 만들어 내기도 했다고 합니다.


안경이 한반도에서 자생적으로 만들어졌다는 가능성이 있지만, 증명할 만한 결정적 문헌이나 물증은 없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나라 안경의 자생설은 아직 가정으로만 머물러 있답니다.


그 옛날의 안경


사극 드라마나 역사를 소재로 한 영화에서 종종 안경을 쓰고 있는 선조들의 모습이 연출되기도 합니다. 그 옛날의 안경의 모습은 어땠을까요?

 

 책가도 병풍

 

책가도 병풍은 18세기 초 만들어진 것으로 가운데쯤 책 위에 놓인 안경을 보실 수 있습니다. 당시에 성행했던 민화, 초상화, 풍속화, 심지어 불화에서도 안경의 모습을 볼 수 있답니다. 이 그림은 에밀레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고 합니다.  

 

 우각테 경주 남석 안경(남자용)과

대모 타원형 안경(여자용)

앞서 『이재전서』에 나왔던 경주 남석 안경입니다. 왼쪽은 남자용이고 오른쪽은 여자용 안경으로 안경알이 타원형이어서 ‘샐쭉안경’이라고도 하였습니다. 안경의 남녀 구분이 있다는 것이 참 신기합니다. 19세기 초에 제작된 것입니다.

 

대모 안경과 대모 장도

중국에서 들여온 것으로 타원형의 두 점은 여자용입니다. 안경 코에 구름 문양으로 만들어져 있네요.

 

무테안경

중국에서 들여온 것이며 안경 코에 조각이 되어 있습니다. 무테안경을 만들려면 굉장한 기술이 필요했을 것 같습니다.

 

기역자 꺾기다리 안경

1910년경에는 안경다리 끝이 기역자로 개선되었습니다. 또 코의 압박감을 덜기 위해 코 받침이 생겼지요. 전 안경다리가 접히는 것은 근래 발명됐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선조들은 대단합니다.

 

 

 

기역자 다리 안경

일제초기에 만들어지기 시작했으며 에보나이트, 셀룰로이즈 재질이라고 합니다. 요즘 유행하는 뿔테안경과 거의 같아 보입니다. 역시 유행은 돌고 도는 건가봅니다~

 

 

 밀회투전

 

안경이 나타난 풍송화입니다. 이 그림은 긍재 김득신이 200년 전에 그린 것입니다. 왼쪽에서 두 번째 사람이 실다리 안경을 쓰고 있습니다. 특이한 것은 코 받침대가 망건 끝에 달려있다는 것입니다. 이 그림은 간송 미술관에 있다고 합니다.

 

 

 매천 황현의 초상화

 

조선 말기 궁중 화가였던 석지 채용신이 그린 것으로 이 그림에는 매천이 우각테로 만든 꺾기다리 안경을 쓰고 있는 모습입니다.

 

 우리나라에 ‘안경박물관’이 있다?없다?!

 

 있습니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 안경의 역사를 체계적으로 재정립하고 문화유산을 보호하며 국민들의 안경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돕는 실습체험 학습장으로 활용한다는 취지하에 지난 2001년 9월 18일에 전남 무안 초당대학교 내에 안경박물관이 개관했습니다. 안경박물관은 옛안경, 광학기기, 특수안경, 유명인사안경 전시실 등 총 7개의 전시실을 갖추고 있습니다. 또 13세기에서 현대에 이르는 안경과 광학기기 등 5천여점의 수집품 중 2천5백여점이 전시되고 광학 체험실도 마련되어 있다고 합니다.                                                                      초당대학교 본관 모습

 

 

 패션의 하나가 된 안경

 

현대시대의 안경은 단순히 시력을 보정하는 목적이외에 패션의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 옛날의 안경이 없었다면 지금의 안경도 없을 것입니다. 아직은 불투명한 안경의 역사, 앞으로 꾸준한 연구가 이루어지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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