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자 대비하신 부처님 자비의 문을 열어 구원의 실상을 밝혀 주시옵소서 오늘 저희 재가불자들이 이곳 청정도량 반야암에서 갑오년 산사체험 철야수련회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저희들 모두는 지극한 마음으로 부처님께 정례 하옵나니 섭수하여 주옵소서
비롯함이 없는 영겁부터 탐냄과 성냄과 어리석음으로 밝고 맑은 본래의 성품을 등지고 살아 왔습니다. 이제서야 부처님의 가르침을 만나 불법의 참뜻을 믿고 닦아 바른 마음과 바른 행동과 바른 말로 살아가고자 발원하옵니다.
비록 짧은 일정이지만 이번 철야수련회를 통하여 신심을 증장시켜 더욱 환희심 가득하고 부처님의 무한한 광명과 지혜가 충만하여 하고자 하는 모든 일들이 원만히 성취되어지길 간절히 발원 하옵니다.
석가모니불 석가모니불 나무 시아본사 석가모니불
_ <수련입재 발원문>_
근자에 40여 년 간의 산속 생활에서 자연을 벗 삼아 사색의 공간을 오가는 자유를 즐기며,일구고 기르고 거두고 나누는 마음의 일에 관한 <마음의 정원을 거닐다> 수필집을 출간해 화제를 모으고 있는 대한불교 조계종 고시위원장. 반야불교문화연구원장 ‘요산 지안’ 큰스님의 상주처 <통도사 반야암>에서 지난 9~10일 양일간에 걸쳐, 불기2558년 산사체험 <제14회 철야수련법회>를 개최했다.
이날 지안 큰스님께서는 인사말을 통해 “마음 한번 닦는 것이 천년의 보배”라며 “세상일에 쫓기면서 몸과 마음에 누적되는 피로를 회복하고 새로운 자기개발의 창조적 의지를 키우기 위해서 사람에게는 반드시 수련이 필요합니다. 내 인생을 거울에 비춰 보듯이 자신을 투영해 보고 진리를 생각해 볼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좋은 생각, 지혜로운 생각을 한번 일으키어 내 주위의 내가 맺고 있는 인연을 좀더 아름답게 가꾸십시오. 내가 사는 이 세상은 내가 아니면 안 되는 일들도 많이 숨어 있습니다. 부처님 품안에서 따뜻한 마음을 서로 나누며 새로운 원력을 가꾸어 내일을 희망차게 살아갑시다.
이번 수련회에 동참하신 반야암 가족 여러분과 인연이 있어 함께하신 분, 그리고 이 행사 준비에 숨은 공을 보태준 모든 분들께 부처님의 가피를 빌어 드리며, 고마운 마음을 전해 드립니다.”라며 사부대중 중생들이 모두 생활 속 처염상정(處染常淨)과 위대하고 큰 지혜로 우리에게 당면한 일체의 괴로움의 문제를 풀 수 있는 ‘마하반야바라밀다’를 향한 보리심의 밝은 빛으로 나아가길 축원했다.
또한 청법가로 지안 큰스님께 법문을 청하며 3배(三拜)를 올렸다. 잠시 입정이 있은 후 지안 큰스님께서는 "올해도 산사체험 철야수련법회에 부산.울산.경남에서 참석하신 도반 여러분들께 부처님의 가피를 빕니다."라고 인사했다. "예전에는 1년에 6번 정도 잠을 자지 않고 불을 켜 놓고 철야정진을 통해 산사에 모여 밤샘을 하기도 했습니다."라면서 "수련(修練)이란(?) 불교에서 말하는 자기자신을 생각해 보는 시간 즉 자기 정체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어느 철학자는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부귀영화를 누리고 세속적으로 크게 출세를 하는 것, 사업을 해서 성공하는 것 보다도 내 자신에 대해서 내가 있는가(?)하는 것을 생각해 보는 것, 이것이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문제다' 라고 했습니다. 고려 역사에 보면 삼신충이 평소 우리 생활을 하나하나 옥황상제에게 가서 보고 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등을 켜 놓고 잠을 안 자면 삼신충이 못 빠져 나가기 때문에 수명을 연장 할 수 있다는 풍습이 있습니다. 도교에서는 인간의 수명을 120살까지라고 합니다.
불교에서는 사람의 수명을 100세로 보고 있으며 부처님은 20년 앞당겨 80세에 열반했다는 설이 있습니다. 1년에 한번 정도는 철야를 통해 자기 자신을 반성, 성찰, 개선하는 계기가 되길 발원합니다. 이번 수련회가 원만히 회향하길 바랍니다."라며 저녁 예불 입재식을 했다.
이종화 거사님께서는 참석한 도반들의 <중생을 다 건지 오리다./ 번뇌를 다 끊어 오리다./ 법문을 다 외우 오리다./ 불도를 다 이루 오리다.> '사홍서원'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수련 일정을 이끌었다.
"지장보살님의 대서원이 '지옥중생이 모두 해탈하지 않으면 지장보살님도 해탈하지 않겠다'라고 했듯이 대보살님들의 결단심이 일본을 중심으로 한 태풍의 진로를 바꾼 것 같습니다."라고 말해 조금 전까지만 해도 거친 바람의 씽!씽! 거림에 법당 마당에 세워졌던 휀스 천막을 거사님들께서 힘을 합쳐 걷는 수고를 해 조용한 고요를 다함께 느끼며 함박 웃음을 터트렸다.
이밖에도 우란분절, <반야암> 대자연을 배경으로 <반야보전(般若寶殿) 반야용선(般若龍船)>무대에서 아름다운 하모니로 펼쳐진 '푸른열매' 등 ‘분다리카 합창단’의 찬불가 선물은 태풍의 거센 바람을 타고 영축산 기슭 골짜기마다 울려 퍼졌다. 초암선생의 기타연주 노래 또한 도반들에게 산사의 추억을 안기기에 충분했다.
저녁 공양 후 입재식 예불 및 향.등.차.꽃.과일.곡식 등을 부처님 전에 올리는 육법공양(六法供養) (의례儀禮)에 이어 직지성보박물관장, 불교중앙박물관장을 엮임 제4회 대한민국 문화유산상(2007)을 수상한 <문화재위원. 직지사 주지 흥선 큰스님>의 <불교 문화재의 이해> 초청 법문이 이어졌다. 흥선 큰스님께서는 오랜 세월 동안 전국을 돌며 그 간 준비해 두었던 불교문화유산 '승탑'을 주제로 절 집 문화유산을 보는 눈 <승탑 예술로 승화 된 죽음의 공간>에 대해 슬라이드 사진 한 컷 한 컷을 보여주면서 문화유산에 대해 다 함께 생각해 보고 나누는 시간을 열었다.
"우리들은 대체로 표면적인 문화유산 자체가 가지고 있는 가치 예술성만을 이야기 할 뿐, 그것을 만들어 냈던 사람, 그 시대적 배경 이런 것들과 어떻게 연결되는지에 대해서는 일반적으로 관심이 쏠리지 않고 있다. 알고 보면 우리에게 전해지는 문화유산은 그것을 창조한 그 시대 사람들의 삶과 사상, 생각, 역사와 절대로 분리될 수 없다. 그것을 단적으로 잘 보여주는 불교문화유산이 부도 <승탑>이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발달한 문화유산 불교문화재 승탑은 일본 중국에서는 그렇게 발달하지 않았다. 승탑은 우리나라에서만 유독 발달을 보인다. 이것을 우리는 어떻게 바라보아야 될 것인가(?) 지금부터 우리나라에서 발달한 문화재 승탑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지겠다. 그러면 승탑, 부도가 어떤 것인지 왜 우리 땅에 이렇게 산재해 있는지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부도=승탑=승려의 모탑은 성인들의 삶을 안치한 구조적 조형물로서 스님들께서 열반해 화장하고 나면 절 주변부의 한적하고 좋은 자리에 사리를 안치 했다. 그대신 또 하나의 부처님의 사리를 안치한 불탑은 절집 중심에 있다. '승탑'과 '불탑'은 서 있는 자리가 다르고 내용이 다르다. 절에는 탑이 중심이다. 탑에는 목탑, 전탑, 모전탑 등이 여러 가지가 있지만 우리나라 탑의 가장 보편적인 탑은 '석탑'이다. 그 중에서도 3층 석탑이 가장 많다.
승탑은 대부분 3층으로 이뤄져 있으며, 우리나라 부도의 가장 기본적인 형태는 8각 단층, 4각 다층 등 여러 형태를 보이고 있다. 승탑에는 반드시 그 탑의 주인공이 누구인지를 소개하는 그 분의 일대기를 새긴 <탑비>가 따라붙는다. '승탑'과 '불탑'의 차이가 바로 그것이다. 탑비가 있느냐 없느냐, 서 있는 위치 및 기본 형태, 내용물 이 4가지가 다른 요소이다.
부도발생의 배경 및 변화에 대해 살펴보면 9C에 부도는 보편화 됐다. 7C~9C 200년 사이 기본적으로 계급사회였던 신라 사회의 역사적, 정치적, 종교사상적 변화와 맞물려 있다. 신라는 성골, 진골 등 수직적 질서의 계급 사회였다. 그래서 권력 유지를 위해 힘의 <장치>가 필요했다. <무력>으로 지배한 사회는 힘으로만 되지 않는다. 그 사회가 움직여지는 공통의 고등한 차원 높은 사상, 그것이 종교 바로 <불교>였다.
사회학적으로 말하면 그 사회가 움직여지는 공통의 사상, 통치의 이데올로기, 그것이 바로 종교였다. 불교는 순수한 차원에서 받아들여진 종교가 아니었다. 사회 구조적인 통치 수단으로서의 불교...... 신라를 통치했던 왕족들은 자기네들이 샤크족의 후예라 생각했다. "왕이 곧 부처다"라는 생각의 바탕위에 신라 24대왕 진흥왕을 비롯해 진기왕, 진평왕, 선덕여왕, 진덕여왕 등 다 불교식 이름을 갖고 있지 않은가. 진흥왕은 출가해서 황룡사 주지까지 지냈다.
신라는 과거부터 부처님의 나라였다. 한마디로 통치를 위해 사회를 움직이는 원리로 써 먹었다. 9C를 지나면서 중앙에서 형제간에 왕권다툼으로 힘의 균형을 잃을 때, 지방에 공백이 생기기 시작하면서 새롭게 힘이 만들어진다. 힘의 형성 즉 무력, 경제, 권력 등,,,하지만 권력은 아무나 가질 수 없다. 권력은 명분이 있어야 한다. 9C 중앙집권 사회였던 이때 호족의 등장으로 그 세력들이 지방을 장악한다.
이즈음 신라사회의 변화 속에 '선종'이 등장한다. 스님들은 신라사회의 계급사회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하지만 그 당시 중국 '장안'은 국제사회였다. 그 곳에 12살 된 최치원이 중국 유학을 했다. 그리고 진골 귀족 출신의 자장스님이 부모님께서 일찍 돌아가시자 집을 절로 바꿔 혼자 수행 생활을 한다. 선덕여왕이 재상을 맡기려 벼슬하라고 했지만 권유했지만 듣지 않아 목을 쳐라했다. 하지만 목을 쳐라고 해 지혜로운 선덕여왕은 자기의 생각을 바꾼다.
선덕여왕 시절 놀라운 발전을 이뤘던 통일 시대, 자장스님께서 중국 유학에서 돌아와 <황룡사 9층탑>을 세웠다. 이런 일련의 일들은 진골 출신이 아니었으면 불가능했다. 이것을 쌍수들고 환영한 사람들이 바로 지방호족들이었다. 선종의 가르침 '그 마음을 바로 보아서 ,,,,견성성불(見性成佛)', 누구나 깨치면 부처가 될 수 있다. 즉 '누구나 깨치면 왕이 될 수 있다'로 해석될 수 있다. 중앙을 장악 못하고 지방에 가서 절을 세우고 글을 가르치고 구산서원은 전부 신라의 수도 서라벌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
지방 호족들에게는 더 없이 좋은... 지방마다 절을 세우...깨쳤다는 부처에 버금가는 부처님의 죽음에 맞먹는 위대한 고승들의 죽음, 화장해 사리를 수습 이것이 바로 승탑이 이뤄진 배경이다. 불교식 조형물인 부도, 승탑의 등장은 신라의 역사, 정치, 종교사상적 변화와 맞물리면서 필연적으로 생겨나게 될 수 밖에 없었다. 보편적인 부도의 시대, 불탑의 시대, 불상의 시대가 아닌 <9세기는 승탑이 가장 아름다운 부도의 시대, 승탑의 시대이다. 사상적으로는 교종이 아닌 '선종'의 시대였다.>
하나씩 쭉 서 있는 보편적 형태인 '단층 8각의 부도'가 쭉 등장 하다가 조선시대에 와서 '석종형 형태의 부도'가 한곳에 모이는 부도형태로 등장 20세기까지 가장 보편적으로 지속되고 있다. 여기까지 부도의 이론적부분이다." 라며 고려청자의 그 빛나는 고장 '전남 강진 백련사' 동백림 사이에 숨어 있는 부도탑의 아름다움을 마지막 컷으로 우리문화재의 섬세한 황금비율과 그 속에 깃든 미학적(美學的) 메시지를 읽어내며 역사적, 정치적, 종교사상적 배경과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는 수준 높고 열정적인 강의로 참석자들의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흥선스님의 저서로는 <석등_무명의 바다를 밝히는 등대>, <맑은 바람 드는 집_흥성스님의 한시 읽기 '한시일기'>, <답사여행의 길잡이>, <팔공산 자락>, <가야산과 덕유산> 등이 있다.
아울러 <불교적 인간관계>를 주제로 <반야거사회 고문 김형춘 교수>의 특강이 진행됐다. 김 교수는 경남 진주 출생으로 <진주방언연구>, <석류네그루>, <방야시론>, <잡초는 씨앗을 이고 나온다> 등의 저서를 출간했으며, 반야암 법당 상량식 할 때부터 매월 <월간 반야>를 통해 150회 정도 글을 썼다. 통도사에서 지금은 <고궁>으로 발행하고 있지만 그 전에 <등불>이라는 정기간행물에도 한 10회 정도 글을 올려, 도합 160번 정도 불교관련 글을 써 온 재가 불자의 베테랑 지식인이다.
이날 김 교수는 "제가 알고 있는 알음 알이를 다 들켜버린 기분이다. 그렇지만 지안 스님께서 "사람 사는 이야기 좀 해보소"라고 말해 이 말씀을 거역 못하고 오늘 이 자리에 서게 됐다."라며 겸손으로 ‘인간의 가치로움’과 ‘부처님 행동’, 북송(北宋)때의 종색선사(宗色禪師)의 <입중오법(入衆五法)’>으로부터 자기를 낮추고 겸손하게 아만 아상을 내려 놓으면 인간관계에서 별 문제가 없다"며 사회생활에서 인간관계를 좋게 할 수 있는「하심(下心)」으로 강의의 서막을 열었다.
인간을 인간되게 하는 것 중의 하나 부처님의 가르침 <삼합> 즉 계(부처님의 행동 따라하는 것). 정(부처님의 마음 씀씀이, 뜻, 생각). 혜(지혜)에 대해 말했다. "인오(人五), 사람이면 사람이냐 사람이 사람다워야 사람이지"를 얘기하면서 "계 즉 <부처님의 행동을 따라하는 것> 이것을 생활 속에 접목하면 사회적으로 인간관계를 성공하는 것이다. 인간이 육도윤회를 하다가 사람으로 태어나게 된 것, 가장 오랜 성장 기간을 거치는 인간, 인격적, 경제적 자비, 사회적 자비 이것을 이루어야 인간 노릇을 하는데,,,,,,인간은 기본적으로 무한한 가능성을 가졌다.
학문, 문화가 총체적으로 내포된 불법 등을 만나는 인연 이것을 불교를 불교답게 해야하는 '불교의 미래 지향적 지표'인 불교의 자기화, 불교의 생활화, 불교의 지성화로 연결되는 입중오법에 적용시켰으면 한다. 하심(下心) 즉 아만(我慢) 방하착(放下着)-자만의식 이것을 내려 놓아라. 논어(論語)에 <학이불사즉(學而不思卽) 망(亡)이요/ 사이불사즉(思而不事卽) 쾌(快)>라고 했다. 사람과 더불어 살아가려면 자존심을 내려 놓아야 인간관계를 성공할 수 있다.
청매조사(靑梅祖師)의 ‘십무익송(十無益頌)’ 중 부절아만(不沂我慢)-내 아만을 꺽지 않으면 학법무익(學法無益)-,배워도 소용이 없다. 입차문래(入此門來)-이 문 안으로 들어 왔으면, 막존지혜(莫存知慧)-세간의 알음알이를 가지고 까불지 마라. <초발심자경문(初發心自警文)> 중 범유하심자(凡有下心者) 만법(萬法) 자귀의(自歸依),-하심(下心) 하는 자(者)는 만법(萬法)이 저절로 돌아간다.
1980년대 베스트셀러, <감옥으로부터의 사색>_ 시국사건에 연류 돼 만20년 동안 감옥에 있다가 성공회대 교수를 지내고 몇 년 전 퇴임한 밀양 출신의 신영복 선생은 '해가 어디서 떠서 어디로 지나는가(?)에서 '사실이라고 해서 진리가 아니다' 라고 했다. 동양의 고전<사서(四書)= 논어,맹자,대학,중용> <삼경(三經)=시경,역경,주역> 여기에다 춘추, 예기를 보태면 사서오경(四書五經)이다. 공자의 논어(論語)에서 예(禮)는 자기 스스로를 낮추고 상대를 높임이다.
그러므로 하심(下心)은 인간관계에서 모든 것을 해결해 준다. 그리고 편견(偏見)은 내가 다른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고, 오만(傲慢)은 남이 나를 사랑하지 못한다.
불교에서「자비(慈悲)는 사랑하는 마음 즉 남의 괴로움을 들어줘서 가엾게 여기는, 발고여락(拔苦與樂) 이웃의 고통을 들어줘서 즐거움을 주는, 즉 불교의 근간을 이루는 근본, <상구보리(上求菩提)>-위로 깨달음을 구하고, <하화중생(下化衆生)>-아래로 중생을 교화한다. 논어(論語)의 심부재언(心不在焉)_마음에 없으면, 시이불견(視而不見)-눈으로 보아도 보이지 아니하고, 청이불문(聽而不聞)-귀로들어도 들리지 아니하고, 식이부지기미(食而不知其味),-음식을 먹어도 그 맛을 알지 못하느니라.
즉 자비를 베풀려고 해도 자기 마음에 없으면 안된다. 마음가짐이 선행돼야 한다. 염세주의 철학자 쇼펜하우어의 ‘호저의 딜레마’에서 호저는 극지방에 사는 고슴도치 같은 동물 이다. 두 마리의 호저는 항상 같이 극지방에서 사는 데 조금 떨어지면 추워서 못 살고, 너무 가까이 하면 서로 가시에 찔리고 늘 적당한 거리를 유지 해야한다. 이것이 사회학에서 말하는 사회적 거리 즉 어떤 관계든지 자기가 적당한 거리를 두고 사귀는 것, 자비심(慈悲心)으로 남을 도와주는 것, 불교의 기본정신과 일맥상통 한다.
「공경(恭敬)에서」공(恭)은 몸을 산다. 경(敬)은 마음을 산다는 뜻으로 예(禮)의 근본(根本)이다. 논어(論語)의 ‘군자수기이경(君子修己以敬)은 군자(君子)는 경(敬)으로서 자기 몸을 닦는다. 공자의 제자 자로가 군자란 무엇입니까(?)라고 물었을 때 <군자(君子)는 경(敬)으로서 자기(自己)를 수행(修行)해서 남을 편안하게 하는 사람이다>라고 대답했다. 상대방에 대한 공경의 근본 <공경(恭敬)과 겸양(謙讓)>은 참회의 어머니다. 탐.진.치 삼독을 항복 받는 최고의 신행이다. 경자예지본야(敬者禮之本也)에서 경(敬)은 예(禮)의 근본(根本)이다."라면서 공경(恭敬)과 겸양(謙讓)에 대해 평생을 교육계에 몸 담았던 경륜 높은 스승으로서 도반들을 향한 가르침을 잊지 않았다.
또한「지차제(知次第)」를 말하며 통도사 금강계단에 새벽 예불 드리고 흰고무신 찾아 신는 스님들의 질서정연한 그 모습을 예로 들어 차례를 지키는 것을 강조했다. "차례를 지켜주면 제일 편하다. 승단이나 세속이나 다 같다. 분수(分數)와 지족(知足),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입장에서 눈높이에 맞춰서 상대를 편안하게 해줘라. 낙동강을 중심으로 한 영남학파의 거두 좌(左) 퇴계(退溪), 우(右) 남명(南明)을 두고 선비들이 '퇴계와 남명의 사이를 오갔다'는 말이 있다. 남명 조식은 처가가 김해이며, 경남 산청이 고향으로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고 평생을 후학양성에 힘 쓴 조선 선비의 기개를 상징하는 대명사다. 남명은 <신독(愼獨)>이라고 해서 혼자 있을 때 스스로를 챙기고 자기자신을 삼가기 위해, 성성자(惺惺子)>라는 방울을 허리춤에 달고 다니며 자기자신을 가다듬고 찾았다.> <단성 소> 사건으로 유명하다.
불교에서 중도(中道)는 양극단을 버리고 그 어느 것에도 치우침이 없는 것을 이른다. 아리스토텔레스도 <시학(詩學)>에서 조화(調和) 즉 하모니를 강조 했다. 중국의 공자 또한 중용(中庸)을 말했다."라며 열강 했다. "불교가 가장 객관적이며 편안하고 과학적이다. 옛 수산대학(현 부경대학) 김화득 교수의 저서「보리를 밟는 마음」에는 겨울에 보리를 밟아줘야 착근이 좋아지는데 보리를 밟는 균형감각 즉 '농부의 마음을 생각해보라'는 중도적 입장의 메시지가 담겨있다. 아랫사람, 윗사람, 동료를 생각하면 인간관계는 문제 없다. 순리대로 살라. 바람 부는 방향으로 소리 지르면 소리가 바람을 타고 잘 들린다. 멀리 보려면 높은 곳에 올라 가야 한 다. 이것이「지차제(知次第)」다.
불설여사(不設餘事) 즉 '쓸데없는 말 하지마라' 사구업(口四業)으로 짓는 십악참회(十惡懺悔), 우리 다 함께 큰 소리로 외워봅시다. <살생중죄 금일 참회, 투도중죄 금일 참회, 사음중죄 금일 참회> 이 세가지가 몸으로 일으키는 <신삼악(身三惡)>이다. <망어중죄 금일 참회, 기어중죄 금일 참회, 양설중죄 금일 참회, 악구중죄 금일 참회> 십악(十惡) 중 넷을 차지하는 것이 입으로 짓는 <구사악(口四惡)>이다. 천수경 맨 앞에 구업(口業)을 깨끗이 하는 진언(眞言)이 있다. 우리 다 함께 외워보자. <수리수리 마하수리 수수리 사바하/ 수리수리 마하수리 수수리 사바하/ 수리수리 마하수리 수수리 사바하>
참회진언(懺悔眞言) <'옴 살바 못자 모지 사다야 사바하/옴 살바 못자 모지 사다야 사바하/ 옴 살바 못자 모지 사다야 사바하> 정구업진언(淨口業眞言), 화종구출(禍從口出) 즉 기어, 양설, 망어, 악구 등 모든 것의 재앙(災殃)이 되는 것은 말에서 부터 시작된다. 병종구입(病從口入) 즉 병(病)은 입(口)으로 들어간다. 모든 재앙(災殃)이 되는 것은 입(口)으로 부터 시작된다. 병균도 대부분 입으로 들어간다. 모든 병(病)은 입(口)으로 들어간다. 말 조심해라.
<여래십호(如來十號) 중(中) 명행족(明行足)>이란 '지혜의 눈과, 실천하는 말을 고루 갗춘 분 즉 부처님이시다. 낮추어 언행일치(言行一致) 즉 실천, 행동(行動)으로 옮길 줄 알아야한다. 가장 존경 할 만한 사람이 바로 <언행일치(言行一致)>가 되는 사람이다. 이 사람이 바로 성인(聖人)이다. 안다(知)는 것과 행한다(行)는 것은 다르다. 여기에서 실천한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사선재(四宣齋)>의 이미를 비롯해 "스페인의 철학자, 문필가, 왕의 스승이었던 ’발타자르 그라시안'은 <세상을 보는 지혜>에서 인생을 성공적으로 살기 위해 <생각을 조심하라/ 왜냐하면 말이 되기 때문이다/ 말을 조심하라/ 왜냐하면 행동이 되기 때문이다/ 행동을 조심하라 /왜냐하면 습관이 되기 때문이다/ 습관을 조심하라/ 왜냐하면 인격이 되기 때문이다/ 인격을 조심하라/ 왜냐하면 인생이 되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그 모든 인생의 바탕에는 생각이 있다.
지안큰스님께서 가장 좋아하는 말씀으로 지혜 제일의 사리불존자의【"나는 사는 것을 원하지 아니한다/ 죽는 것도 원하지 아니한다/ 품팔이가 품삯을 기다리 듯이/ 나는 내게 올 인연을 기다리며 산다"】우리 다 함께 읊어보자."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 사리불존자로 귀결, 늦은 밤의 졸림이 무색해지는 에너지를 발산하며 평생을 교단에서 훈육한 노익장을 과시해 박수갈채를 받았다.
사회자는 "지혜광명이 곧 명품이 아닌가(?) 명품을 갖기 위해 불교를 생활화, 자기화, 지성화 해야한다"며 "목표했던 명품인생을 살기 위해 우리는 오늘 이 수련회에 참여했다. 명품인생을 살기 위해 가열찬 정진의 힘을 보태라"며 독려했다.
또한 평소 역경을 겪으면서 이룩한 일이나 신행생활 속에서 영감을 얻으면서 뜻 깊었던 ‘나의 신행생활 이야기’ 및 ‘신묘장구대다라니 20독’, 신경스님의 ‘참선’ 지도를 비롯해 백팔참회 정근이 뒤를 이었다.
반야암 법당에서 밤을 꼬박 지샌 도반들은 새벽예불을 드리며, 계사(戒師) 조실 요산(樂山) 지안(志安) 큰스님의 "수계제자 등은 지금 대덕 스님을 청하와 우바새 우바이 계를 화상으로 모셔옵니다. 저희들은 이제 대덕스님을 의지하와 삼귀계와 오계를 받사옵고 올바른 불자가 되겠사오니 원컨대 대덕스님께서는 청정한 계를 주옵소서. 자밍고! 자밍고! 대자밍고! <어여삐 여기소서/ 크게 어여삐 여기소서> 라는 말입니다. 여러분들이 이와같이 법사를 청하니 내가 이제 여러분들을 위해 계사가 되겠습니다.
대저 계라고 하는 것은 <생성매락> 즉좋은 것을 생겨나게 하고 나쁜 것을 소멸하게 합니다. 생성매락의 기본이 되고, <초범입> 즉범부를 뛰어 넘어 성인에 들어가는 종자 씨앗이 되는 것입니다. 사람마다 마음이 있고 마음에는 8만 4천 번뇌가 있고<중생의 마음> 번뇌는 한량없는 법을 지어서 생사의 괴로운 바다가 한량이 없는 것입니다. 세세생생에 윤회를 하게 마련입니다. 윤회라는 것이 결국 시간이 진행됨에 따라서 생사의 세계가 계속 반복되는 것입니다.
오늘이 어제가 되는 것이고 내일이 오늘이 되는 것 처럼 금생이 전생이 되는 것이고 내생이 금생이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 부처님의 계품을 받는 것은 그 근본이 생사윤회를 끊고 해탈열반을 얻게 되는 지름길이 되고 그 터전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처님의 계는 부처님 자리에 올라가는 계단, 사다리와 같고 생사의 긴 어둠을 지나가는데 필요한 등불과 같고, 괴로운 바다를 건너가는 배와 같고, 멀리 길을 가는 이의 먹을 수 있는 양식과 같고, 병든 환자에게는 좋은 약과 같고, 흐린, 혼탁한 물을 순식간에 깨끗이 해 주는 <수천기>라는 구슬과 같다고 했습니다.
살생하지 말라는 하는 것은 마음속에 자비와 사랑과 어진 덕을 쌓게 하라는 것입니다. 성을 내지 않는 성품으로 포악한 마음, 잔인한 마음을 멀리하고 이득과 자업을 닦으면 이것이 평화의 바탕이 되는 것입니다. 고단하시겠지만 현재 저녁예불부터 새벽까지 철야를 해 오셨는데 이런 경을 한번 가지시면 살아가는데 어려운 일에 부딪쳐도 그것을 극복해 넘어갈 수 있는 자신감, 용기, 힘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철야정진을 많이 하신 분들은 다른 사람들보다도 자기 생활 속에서 여러 가지 어려운 경계를 잘 극복해 가는 정신적 의지가 높습니다.
투도하지 말라하는 것은 경세도세의 법도가 세상을 살아가는 생활 방식 또 이 세상을 어떻게 내가 대처하면서 살아야하는가(?) 하는데 있어서 이 법도가 그 정의를 잘 지키고 보시정신으로 항상 남을 도움으로서 인간과 천상에 한량없는 복업을 지으라는 것입니다. 사음하지말라 하는 것은 예의와 순결을 지키므로 극기의 힘을 키우고 스스로 자제하는 능력으로 인격을 도야하며 방위를 멀리하고 행복을 얻으며 타인에게 관대하고 자기를 청기롭게 하는 해탈법을 닦으라는 것입니다.
망언을 하지 말라하는 것은 앞의 세가지 계가 몸으로 짓는 업인데, 구업에서 네가지 업이 있습니다. 망어, 기어, 양설, 악구가 말로 짓는 업인데 이 업을 경계하라는 것입니다. 진실한 말은 믿음을 주게하고 믿는 마음은 불자의 근본정신이 됩니다. 술을 마셔 취하지 말라 하는 것은 지혜의 선용으로 마음의 휴식을 얻어 성성적적한 인물 명달한 인격을 완성하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부처님의 오계법은 남에게 배우는 교훈이 아니고 자기가 자신을 가르치는 교육입니다. 곧 불자의 생활 신조가 되어서 마치 높은 탑위에서 멀리 바라보는 사람처럼 보이는 경계가 더욱 멀리 넓어지게 되며 이것이 우리에게 많은 지혜와 양식을 얻게 하는 그런 결과가 되는 것입니다. 이 모두가 자기 발견의 길입니다. 불교에서 '내가 나를 발견했다'는 말을 자주합니다. 해탈을 보호하는 방편문인 것입니다. 일심이 청정하며 일신이 안락하고 나아가서 자신과 용기를 가지고 국가와 사회에 이바지 할 수 있는 자신의 영역을 키우게 되는 것입니다.
이리하여 부처님의 계를 받음으로서 모든 허물을 멀리하게 되는 것입니다. 계를 한번 받으면 그 순간에 자기가 지었던 좋지 못한 업이 소멸됩니다. 천년동안 어두웠던 방에 한번도 불을 밝히지 않았던 방에 불을 밝히는 것과 같습니다. 수계를 하고 난 후에 계를 파하는 허물을 지었다 하더라도 이것은 안 받고 지은 것 보다 허물이 적어진다는 것입니다. 알고 잡는 불덩이가 모르고 잡는 불덩이 보다 손을 적게 데인다는 말과 같습니다. 무시이래의 지음과 죄장을 삼보의 광명 심통 도안 앞에 드러내서 참회해야 합니다.
따라하십시오. '수계 제자 등이 무시 이래로부터 오늘에 이르도록 탐욕심과 진심과 질투와 아만과 방일한 마음으로 한량없는 무거운 죄를 지었으매 몸과 말과 생각을 가다듬어 지극한 마음으로 참회 하겠나이다. 지극한 마음으로 참회 하나이다. 지극한 마음으로 참회 하였나이다.' 참회진언 다함께 따라하십시오. '옴 살바 못자 모지 사다야 사바하/ 옴 살바 못자 모지 사다야 사바하/ 옴 살바 못자 모지 사다야 사바하/ 옴 살바 못자 모지 사다야 사바하/ 옴 살바 못자 모지 사다야 사바하/......' 기름을 불태우듯 즉시에 소멸 되었습니다. 몸과 마음이 물들어짐이 없어지고 도의 그릇이 깨끗하기 마치 유리 그릇과 같아져서 안팎이 훤희 비치게 되었습니다.
이제 바로 삼보전에 광대하고 자비로운 상품심을 일으켜서 '수계제자 등이 부처님께 귀의하겠습니다. 수계제자 등이 부처님 법문에 귀의하겠습니다. 수계제자 등이 청정한 승가에 귀의하겠습니다. 수계제자등이 이미 부처님께 귀의 하였사오니 차라리 심명을 버릴지언정 끝내 자제천마 등에게 귀의 하지는 않겠나이다. 저희들이 귀의한 여래지진 등 정각은 저희들의 세존이십니다. 자비로 어여삐 여기소서. 수계제자등이 이미 부처님 법문에 귀의 하였사오니 차라리 심명을 버릴지언정 마침내 애도의 전적에 귀의 하지는 않겠나이다.' 저희들이 귀의한 여래께서 설하신 바 3장12부의 일체 경전 ..."으로 마무리 하며 <지안 큰 스님>을 계사로 념념자각(念念自覺) 찰나행(刹那行) 수계식이 장엄하게 진행됐다.
신생의 이른 새벽, 고요에 잠들었던 우주법계 만물들이 사그락(!)사그락(!) 적막을 깨트리며 움직임을 전하는 시각, 온 밤을 자기 단련의 수행(修行)으로 일관한 도반들은 반야암 뒤뜰 푸르른 솔내음 향내 짙은 송림(松林) 산책 숲길에 발자국을 남겼다. 아침 공양 후 회향, 다음을 기약하며 각자의 위치로 돌아갔다.
첫댓글 초발심을 다지든 그 마음으로 다시 합장해봅니다.
고맙습니다.()
수련법회를 다시한번 새기게되어 감사드립니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