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추부각/ 지윤 이병란
끝물 고추 모두 따서 다듬고 목욕시켜
밀가루 고루 묻혀 살짝 쪄 말린 부각
들기름 향을 입히니 천하 진미 따로 없네.
(5) 어느 봄 날에 민정 / 강춘희
(6) 꽃가게에서 高松/황영칠
제일 예쁜 꽃을 골랐다가 내려놓았다 꿈을 잃은 어린이를 위하여
탐스러운 꽃도 집었다가 내려놓았다 마음이 가난한 이웃이 생각나서
가장 향기로운 꽃도 품었다가 내려놓았다 사랑에 목마른 사람들을 위하여
한참을 망설이다가 결국 뒷전에 밀려난 못난이 화분 하나를 사랑하기로 했다
(7) 밤은 깊어져 가는데 서명남
능선길 아래 어둠을 밀어내는 달빛
가슴 저미는 그리움이 삭아서 얼음장 밑으로 물 소린 들린는데
높은 계곡 숲에 잠들어 있는 새 내 마음 알지 못하네
북 가시나무 숲이 깊어 갈 수 없는 몸
눈썹달도 아무른 말 하지 않는 밤 보려 해도 볼 수 없는 모습
이렇게라도 지켜볼 수밖에
(8) 가을 시심(詩心) 성보 황의수
북두(北斗)가 금빛 타고 서산에 돌아드니
세상은 익는 빛깔 하늘엔 티가 없고
사색(思索)은 붓 끝에 모여 시를 낳고 춤춘다 .
(9) 아쉬움 아정/ 허용희
삭아 드는 불꽃에 내 입김 호호 불어 행여나 꺼질까 봐 머뭇 거릴 틈도 없이 이토록 애타는 마음은 접을 줄도 모르네.
그대여 힘차게 솟구치던 동튼 햇살 잊었는가 황홀한 저녁노을 타는 빛 숨겨놓고 서산에 햇님 따라 날 저물어 가러나 .....
(10) 배롱나무 꽃 청뫼 곽영석
바람 한점 없이 푹푹 찌는 더위 아버지가 부르는 것 같아 젠 걸음으로 달려가 아버지 계신 집 주위를 살펴본다
이리저리 둘러보아도 아버지는 보이지 않고 문 앞 뜰아래 배롱나무만 나와 환하게 웃어주며
더위에 지체 푸른 떡갈나무잎 사이를 기어서 찾아온 산바람 편에 은은한 향기만 전해주어 그리움에 지친 내 가슴만 뜨겁게 달구어 놓는다 .
(11) 문어(文語) 놀이 길손 김도형
지는 해 바라보며 저잣거리 헤매던 장돌뱅이 사는 게 뮌가하고 묻고 물으며 걷다가 문어들의 허풍에 놀아 나 문어 다리*에 엮이어 해어나지 못하고 여기까지 왔다네
공허한 가슴 잡을 길 없어 냉수 한 모금 마시고 속 차려 돌아보니 모두 허공이요 공일 뿐 시린 하늘 쳐다보니 허공일 뿐 져 멀리 떠 있는 한 조각 흰 구름인 듯 부질없는 인생이었소 그런 장돌뱅이 삶이었소 시린 가을 하늘 같은 문어 놀이에 빠진 길손이라네 .
*문어 다리/시,소설,수필,등 문학
(12) 오월이 오면 송수복
봄의 문턱을 넘어 옹알거리는 풀꽃들의 향기 녹색 바람에 넘실거린다
무성하게 휘감긴 등나무 그늘에 않아 삶의 무게 내려놓고
보리순 같은 열아홉 순정도 뜨겁던 장밋빛 사랑도 보라색 등꽃에 내걸고 지나온 세월을 밝힌다
힘들고 지쳐 쉬어가는 모두에게 빛이 되고 그늘이 되어줄 등나무꽃 피는 오월이 오면 . (13) 내리 사랑 박인숙
맑은 물이 계곡 따라 밑으로 내리 내리 흘러간다
물도 내리 사랑 자식도 내리 사랑 자연에 치사랑은 없다
물은 흘러 흘러 넓은 대지를 적지며 사랑의 열매를 맺는다
물도 내리 사랑 사랑도 내리 사랑 세상에 치사랑은 없다.
(14) 인생 여행 해성 방정숙
바람 날개 기대어 흘러가는 구름에 세월 속 사연 싣고
공허한 마음자리 다독이며 달린다
창문 밖 비치는 희로애락의 풍경
꽃날개 흩날리며 쉼 없이 활기찬 내일은 향한다
내릴 수도 멈출 수도 없는 여행 우리들의 인생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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