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가을호를 펴내면서
나를 응시하는 눈이 있다
김추인
미행 당하는 기미에 휙 돌아본다 없다
내 안에 나인 듯 아닌 듯 들키는 이
바깥과 안쪽
현실의 나와 꿈꾸는 나
때때마다 다른 면상이
물과 기름 같아서
때론 샴 쌍동이 같아서
훈장님네 반듯한 딸과 바람 타는 딸이 내 안에서 티격태격 툭하면 목을 비틀고 싸우는 둘의 불화 그런 ‘나’들을 한심스레 바라보는 또 다른 내가 있고
바라보는 ‘나’의 근심에 안스러워 궁구하는 또 하나의 ‘나’라니...
이들만이 아니고
가끔 허락도 없이 생뚱맞게 튀어나오는
내 안의 ‘나’들
슬픔이와 우울이 사랑이와 명랑이 찬찬이와 덜렁이 팔랑이 부산이 묵묵이 탐심이 헐렁이 한심이 투박이 비단이 시치미 뚝뚝이 쪼잔이 대범이 상큼이 그리고 삐죽이와 넉살이, 숨겨둔 딸년들처럼 무시로 나오기도 하는데
광화문 교차로
숱한 내가
죽어도 아닌 것이 아닌 내가
신호등에 동공을 박고 섰던 처녀인 내가 상남자인 내가 깜박 바뀐 파란불이 지상명령이란 듯
삽시간에 부딪치며 스치며 흘끔거리며 조잘대며
겨울을 벗지 못한 내가 미리 꺼낸 반팔의 내가
환절기 기침을 숨기며 총총걸음으로 느릿느릿 팔랑팔랑
길을 건너가고 있다 다들 내안에서 때를 엿보던 것들
너도 나이고 파릇한 너도 완고한 너도 개같은 너도 너도 나다
----{애지}, 2021년 여름호에서
호머는 최초의 시인이자 최후의 시인이라고 할 수가 있다. 그는 서양문명의 창시자이며, 오늘날의 서양인들은 그의 말씀에 의하여 태어난 후손들이라고 할 수가 있다. 그리스의 신들, 즉, 제우스, 포세이돈, 하데스, 헤라, 아폴로, 아르테미스, 아프로디테, 헤파이스토스, 헤르메스 등을 창출해낸 것도 호머이고, 아가멤논, 아킬레스, 아이아스, 오딧세우스, 헥토르, 파리스, 프리암, 카산드라, 테이레시아스, 세이렌, 테티스, 메델라우스 등을 창출해낸 것도 호머라고 할 수가 있다. 이 세상에서 가장 고귀하고 위대한 사람은 누구이란 말인가? 그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많이 아는 자, 즉, 자기 자신의 앎(지혜)으로 수많은 사람들과 사물들의 이름을 명명하고, 자기 자신의 도덕과 질서와 법의 보호 아래 그 사물들과 인물들을 가르치고 먹여 살리는 사람이라고 할 수가 있다. 호머는 전지전능한 신들을 창출하고 그 신들의 성격과 활동영역을 부여했으며, 다른 한편, [일리어드]와 {오딧세우스}의 수많은 등장인물들을 창출하고, 그 인물들의 성격과 활동영역을 부여했던 것이다.
신이 인간을 창조했는가? 인간이 신을 창조했는가? 이러한 질문은 매우 중요하고 여전히 유효한 질문들이지만, 그러나 종교와 신화의 기원과 그 의미들을 살펴보면 신들의 존재는 흔적조차도 없게 된다. 신들은 존재하지 않았고, 존재한 적도 없었지만, 그러나 더없이 나약하고 무능한 인간들이 전지전능한 신들을 창출해낸 것은 인간의 나약함과 그 무능함을 극복하기 위한 최고급의 상책이기도 했던 것이다. 어렵고 힘들 때마다 전지전능한 신들을 상정하고 그 돌파구를 마련한다는 것, 다른 한편, 전지전능한 신들이 최고급의 인식의 진전과 과학적 발전을 가로막을 때마다 그 신들의 목을 비틀어버린다는 것, 바로 이 신앙과 독신이 우리 인간들의 역사발전의 두 축이라고 할 수가 있는 것이다.
호머는 단 하나의 호머가 아니고, 수많은 신들과 인간들이 살고 있는 호머라고 할 수가 있다. 알렉산더대왕도 단 하나의 알렉산더대왕이 아니고, 수많은 신들과 인간들이 살고 있는 알렉산더대왕이라고 할 수가 있다. 서양철학의 아버지인 소크라테스도 마찬가지이고, 동양철학의 아버지인 공자도 마찬가지이다. 나는 단 하나의 나가 아니고 수많은 ‘나’들이 살고 있는 ‘나’이며, 이 ‘나’라는 분신과 다른 사람에 의하여 ‘나’의 고귀함과 위대함의 크기가 결정된다고 할 수가 있다. 톨스토이는 그 얼마나 많은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창출해냈던 것이고, 셰익스피어는 그 얼마나 많은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창출해냈던 것인가? 괴테와 도스토예프스키가 창출해냈던 사람들도 인산인해人山人海를 이루고, 박경리와 조정래가 창출해냈던 사람들도 인산인해를 이룬다.
김추인 시인의 [나를 응시하는 눈이 있다]는 ‘나’와 ‘나’들의 관계를 천착해낸 인간의 철학, 즉, ‘자기 자신의 존재론’이라고 할 수가 있다. 내 안에는 나인 듯 아닌 내가 있고, 현실의 나와 꿈꾸는 내가 있다. 훈장님의 반듯한 딸과 바람끼 많은 딸이 있고, 그들은 툭하면 목을 비틀고 싸운다. 그 ‘나’들의 싸움을 바라보는 내가 있고, 그 싸움들을 근심스럽게 바라보는 나를 연구(궁구)하는 또 하나의 내가 있다. “이들만이 아니고/ 가끔 허락도 없이 생뚱맞게 튀어나오는/ 내 안의 ‘나’들”도 있고, 그 ‘나’들은 “슬픔이와 우울이 사랑이와 명랑이 찬찬이와 덜렁이 팔랑이 부산이 묵묵이 탐심이 헐렁이 한심이 투박이 비단이 시치미 뚝뚝이 쪼잔이 대범이 상큼이 그리고 삐죽이와 넉살이, 숨겨둔 딸년들처럼 무시로” 쏟아져 나온다. 광화문 교차로에는 숱한 내가 있고, “죽어도 아닌 것이 아닌 내가” 있다. 신호등에 동공을 박고 섰던 처녀인 내가 있고, 파란불을 기다리던 상남자였던 내가 있다. 겨울을 벗지 못한 내가 있고, 환절기의 기침을 숨기며 총총걸음으로 길을 건너가던 반팔의 내가 있다. 너도 나이고, 파릇한 너도 나이다. 완고한 너도 나이고, 개같은 너도 나이다.
나는 수많은 나이고, 나는 일인다역의 영원한 주연배우이다. 내가 나의 소설과 철학 속에서 전인류의 아버지이자 스승이고 재판관이라면, 내 안에는 대법원장, 국회의장, 대통령, 장관, 검찰총장, 아버지의 역할을 맡아야 하는 나들이 있어야 하고, 다른 한편, 내 안에는 대학교수, 총장, 교장, 교감, 교육감, 담임선생님의 역할을 맡아야 하는 나들이 있어야 하고, 그 ‘나’들이 상호토론과 상호비판, 또는 서로가 서로의 목을 비틀며 피투성이가 되도록 싸워야 하는 내가 있어야 한다. 이 수많은 나들이 상호토론과 상호비판 속에 살며, 이 투쟁 속의 영원한 평화를 연출해낼 수 있는 능력이 나의 고귀함과 위대함의 크기라고 할 수가 있다.
모든 교육은 이 다양한 ‘나’들을 조직배양하고 창출해내는 교육이며, 밤하늘의 별들만큼이나 더욱더 많은 나를 거느린 전인류의 스승들을 창출해내는 교육이라고 할 수가 있다. 인간의 철학은 주체철학이며, 김추인 시인의 [나를 응시하는 눈이 있다]는 수많은 ‘나’들이 다양하게 분화하고 활동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수작이라고 할 수가 있다. 나를 사상가, 시인, 소설가, 영화배우, 오페라가수, 화가로 만들고, 나를 대통령, 장관, 국회의장, 대법원장, 대학총장, 교수, 학생, 농부, 거지로 만들고, 이 다른 사람들, 이 다양한 나들을 나의 몸과 마음 속에 살게 하며, 더욱더 크고 영원한 제국을 연출해낸다는 것은 나의 영원한 꿈이라고 할 수가 있다. 나는 내가 아니고 수많은 사람들이며, 나의 몸과 마음은 그 어떤 나라보다도 더 큰 영원한 제국이라고 할 수가 있다.
공부를 한다는 것은 나를 나 아닌 나들로 조직배양하는 것이고, 나를 나 아닌 나들로 조직배양한다는 것은 나의 몸과 마음이 수많은 사람들의 이상적인 낙원인 영원한 제국이 되어간다는 것이다.
나는 수십 억의 나들이고, 전인류의 총체이며, 나는 전인류의 영원한 제국이다.
나는 전인류이고, 나는 전인류의 영원한 제국이다.
‘기획특집: 논쟁문화의 장’은 여든 다섯 번째로 반경환의 명시감상과 이형권의 [청년 임화-임다다, 생각과 세상을 전복하라](세 번째)를 내보낸다. 이번 호의 ‘애지의 초대석’에는 유성식 시인과 김지녀 시인과 오영미 시인을 초대했다. 유성식 시인의 시, [성냥팔이 소녀는 아직도 성냥을] 외 4편과 권온의 작품론 [반복과 변주로 빚은 우주의 상상력], 김지녀 시인의 시, [정착]과 최서진의 작품론 [미학의 언어로 감각하고 기록하는 새], 그리고 오영미 시인의 신작시, [잇는 중] 외 4편과 황정산의 작품론 [아이러니의 시학과 공존의 정신]을 다 함께 읽고 감상해주기를 바란다.
‘애지의 초점: 이 시인을 주목한다’에서는 홍지호 시인과 김선옥 시인, 그리고 신혜진 시인의 신작시들을 내보낸다. 홍지호 시인의 시, [포기하고 싶다면]과 문종필의 작품론 [쓸쓸한 뒷모습을 사랑하지 못하고 느낌만을 사랑했던 어리석은 이야기]와 김선옥 시인의 [허수아비] 외 4편과 전구의 작품론 [밤에, 오롯이 혼자], 그리고 신혜진 시인의 [A and B or doctor or today] 외 4편과 박남희의 작품론 [어긋남과 상처를 어루만지는 시적 방식]을 다 함께 읽고 감상해주기를 바란다.
본지는 이번 호에도 [망치도둑을 잡아라] 외 4편을 응모해온 박지수 씨와 [어서 말하라] 외 4편을 응모해온 김소형 씨를 애지신인문학상 당선자로 내보낸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다면서 자살바위로 가거나 형무소를 간 사람들이 있다.
거짓말쟁이들은 모든 사람들을 다 죽인다. 자기 자신과 그것을 믿는 사람들과 그것을 믿지 않는 모든 사람들을 다 죽인다. 거짓말쟁이들은 잔혹마, 살인마, 식인마들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는 시의 힘으로 이 거짓말쟁이들을 다 소탕하지 않으면 안 된다.
비판만이 위대하고, 또 위대하다. 비판은 당신의 존재증명이다.
당신은 누구를, 무엇을 비판할 수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