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사우회 사보 기사 송고
“기억하겠습니다‘...파독근로자 ‘리멤버 픽쳐’
4월 7일 독일 베를린 근교 스판다우 마을 자치센터, 이른 아침부터 교민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서울 나눔 클라리넷 앙상블 ‘베를린 아리랑’ 공연에 앞서 진행하는 ‘리멤버 픽처’ 기억 사진을 찍기 위해서다. 앙상블 부단장이자 촬영 감독인 필자를 비롯한 사진 봉사팀 12명은 베를린에 도착하자마자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필자의 현장 지휘로 촬영장 세팅부터 안내, 분장, 촬영까지 각자의 역할을 나눠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임시 스튜디오에는 이틀동안 120여명의 파독 1세대 어르신들이 오셨다. 가족들을 포함하면 총 200명 가까운 분들이 사진 촬영에 참여했다. 부부가 오신 분도 있고 가족과 함께 찍는 분들, 반려견을 데리고 온 분까지 성황을 이루었다. <리멤버 픽쳐>는 파독 근로자 그들의 삶을 기억하고 또 기념하기 위해 마련한 자리다.
오랜만에 화장을 하고 카메라 앞에 앉은 어르신들의 표정이 의외로 무덤덤했다. 웃어 보세요, 라는 말을 건네도 표정은 그대로다. 표정의 변화가 없다. 어떻게 하면 50~60년의 세월을 한 장의 사진으로 담아낼 수 있을까. 파독 근로자로 독일에서 길고 고단했던 시간을 지나 이제는 흰머리 성성한 노인이 된 어르신들의 모습이 아름답고 빛나게 사진 속에 담겨지길 바라고 바랬다. 몇 년도에 독일에 오셨어요? 첫사랑을 생각하면 어떠세요? 누가 먼저 고백하셨어요? 계속 질문을 건네면서 자연스러운 표정을 놓치지 않으려 연신 셔터를 눌렀다. 노년의 파독 근로자는 스무살 아가씨가 되기도 하고 힘들었던 탄광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았던 혈기 왕성한 청춘이 되기도 했다.이런 사진 처음 찍는다고 하시는 분도 계시고, 눈물을 흘리는 분들도 있다. 파인더를 통해 그분들을 보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흐른다. 이번 사진이 마지막일 거라고 하시는 어르신의 모습에서 내일을 준비하는 표정은 마음을 짠하게 만들기도 하였다.
성공적으로 사진 촬영은 마쳤지만 또 다른 난제가 기다리고 있다. 한 사람에 수백 컷까지 너무 많이 촬영한 탓에 액자로 제작할 사진을 선별하는 작업도 쉽지 않았다. 밤샘 작업으로 골라낸 사진 파일을 서울로 보내 프린트하고 액자로 만드는 작업을 진행했다. 일주일 후
베를린에서 공연을 할 서울 나눔 클라리넷 앙상블 본대가 올 때 가져올 수 서둘렀다. 007 같은 작전 덕분에 보낸 사진 파일은 인화된 후 액자에 담겨 서울에서 베를린에 공수됐다. 우리 팀에게 본대 도착시 제일 먼저 궁금한 것이 사진인데 포장을 풀어보니 마음에 든다. 고생한 보람이 있다. 액자에 든 사진 들이 모두 정겹다. ‘리멤버 픽처’는 4월 15일 음악회가 끝난 후 나눠드렸다. 사진을 확인한 어르신들이 모두 만족하셨다. 리멤버 픽쳐 책임자로서 최선을 다한 나의 마음이 그분들의 기쁨이 되었다니 정말 뿌듯했다. 700여 명의 파독 근로자와 그 가족 그리고 재독 동포들의 아리랑 합창으로 가득 찬 베를린 공연은 60년 전 파독 근로자를 기억하는 리멤버 픽처가 함께해 더욱 뜻 깊었다.
60년 전 낯선 이국 땅에서 헌신한 어르신들의 삶이, 단 한 번의 음악회와 기억 사진으로 보상 받을 순 없을 것이다. 눈물을 훔치는 파독 근로자 어르신들을 보며, 우리의 음악과 기억이 그분들에게 위로가 되고 감사와 축복이 되기를 바라고 또 바랬다. 대한민국이 경제규모 세계 13위, 무역규모 세계 8위의 경제강국이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흘린 땀과 눈물 덕분이라고, 그 수고와 헌신을 절대로 잊지 않아야겠다고 마음을 더 깊이 갖게됐다.
글; 박길홍 대촬영감독 (전 KBS 영상제작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