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19-24 (사회안전망(社會安全網))
성경본문 예레미야애가 3: 19-24
19. 내 고초와 재난 곧 쑥과 담즙을 기억하소서
20. 내 심령이 그것을 기억하고 낙심이 되오나
21. 중심에 회상한즉 오히려 소망이 있사옴은
22. 여호와의 자비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
23. 이것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이 크도소이다
24. 내 심령에 이르기를 여호와는 나의 기업이시니 그러므로 내가 저를 바라리라 하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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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 처| 김중석 목사
Social Safety Net. 우울한 이야기가 많은 요즘, 하나님이 만드시는 날씨는 기막히게 좋다. 가뭄에 비까지 내려주셨다. 단풍 색깔도 짙게 물들어가고. 그런데 또 지난 월요일 서울 강남 한복판에서 ‘묻지마 살인’이 벌어졌다. 한 고시원에서 31살 정씨가 불을 지르고 피해 나오는 입주자들 6명을 찔러 죽이고 7명을 중상 입혔다(자신2003.9입주). ‘묻지마 살인’금년 4번째라고. 자살과 살인! 이는 하나요 동전 앞 뒷면과 같다. 평소 불만과 분노가 해소되지 못하고 축적되면 어느 순간에 이르러 충동적 폭발로 이어지는데, 안으로 폭발하면 ‘자살’이고 밖으로 폭발하면 ‘살인’이다. 정씨 모친(66)은 자기 아들이 활달하고 말썽 일으키는 사람이 아니라 하고 친구들도 정씨가 말이 많고 빨라서 ‘종달새’ ‘달새’라고 했다는데, 그런 사람도 폭발한다는 사실. 자살로 받은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묻지마 살인’이 또 강남 우리 곁에서 발생. 정신 없다.강남에 교회도 많고, 주민의 70%가 기독교인이라는데, 이들이 자살하고 살인할 때 교회와 기독교인은 다 어디 있었나? 이들이 이렇게 ‘폭발’하지 않게끔 교회나 신자가 ‘오아시스’ 같은 ‘안전핀’ 역할, 사회안전망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사회안전망]
1. 예례미야 식 사회안전망.
구약은 신약보다 현실적이고 실제적인 면이 있다. 구약 4대 선지자 중 하나요 요 4대 선지서 중 하나를 쓴 예례미야. 그의 시대는 정말 폭발할 것 같았다. 죄악으로 유대 나라 전체가 폭발할 것 같았다. 그래서 그는 유다의 왕과 백성들에게 눈물로 호소했다. 그래서 ‘눈물의 선지자’라는 별명도 얻었고, 깨우치기 위하여 베 띠를 띠고 다니고 소같이 목에 멍에를 메고 다니기도 했다. 마침내 주전 586년 예루살렘 멸망이 임한다. 그 장면을 보면서 예례미야는 애가를 지어 부른다. 그게 [예례미야 애가]이다. 유다가 정말 ‘폭발’한 것이다. 다 끝난 것 같은데, 예례미야의 사회안전망 구실은 계속된다. ‘폭발’에 대한 ‘해법’제시는 계속된다.
예루살렘 멸망이라는 잿더미 속에서 그는 소망을 본다.
애3:19 “내 고초와 재난 곧 쑥과 담즙을 기억하소서.” ‘기억하소서’ 가 있다. 끝이 아니란 애기다.
20 “내 마음이 그것을 기억하고 내가 낙심이 되오나.”
눈에 보이는 현실과 현상을 보면 기가 막힐 뿐이고 낙심될 뿐이지만, 선지자에게는 다른 것이 있다고.
21 “이것을 내가 내 마음에 담아 두었더니 그것이 오히려 나의 소망이 되었사옴은.”
상황은 너무 괴롭고 괴롭지만(우리의 오늘의 괴로움은 예레미야 보다 덜하다)
‘오히려 소망이 됩니다’ 에 주목하자.
왜 이 파멸이 소망이 될까?
유다의 멸망은 유다의 돌이킬 수 없이 꽉 찬 죄악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다. 그런데 이 심판은 끝이 아니다. 징계이다. 징계은 끝이 아니다. 사랑함으로 죄악을 심판하고 때린 것이지 그 자녀된 유다를 버림이 아니다. 이제 벌을 받았으니 그 다음은? 상처를 싸매주시고 다시 안아주시고 사랑과 긍휼을 베푸실 차례다. 징계도 본래 본심이 아닌 것이다.
33 “주께서 인생으로 고생하게 하시며 근심하게 하심은 본심이 아니시로다. 젊은이들이여! 그래서 좀 실패하고 망그러지더라도 서러워말 것은”
27 “사람은 젊었을 때에 멍에를 메는 것이 좋으니 혼자 앉아서 잠잠할 것은(불평 불만하지 말고) 주께서 그것을 그에게 메우셨음이라 그대의 입을 땅의 티끌에 댈지어다(피하지 말고 정면으로 대응) 혹시 소망이 있을지로다(있다) 자기를 치는 자에게 뺨을 돌려대어 치욕으로 배불릴지어다(예수님도 그렇게 하셨고 그리하라고 권면) 이는 주께서 영원하도록 버리지 아니하실 것임이며(잠깐 누르시는 것) 그가 비록 근심하게 하시나 그의 풍부한 인자하심에 따라 긍휼히 여기실 것임이라”(32)./
생각해보면, 최진실씨나 정씨도 이 말씀을 들었으면 어땠을까? 우리가 이 점을 들려주었어야! 후회스럽고 우리가 안타깝다./
예례미야의 소망은 점점 더 커진다.
22 “여호와의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 더 나아간다. :23 이것들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하심이 크시도소이다./ 더 나아간다. :24 내 심령에 이르기를 여호와는 나의 기업이시니 그러므로 내가 그를 바라리라 하도다.” ‘여호와는 나의 기업’이라 했다./
선지자는 이 깨달음을 스스로 정리한다.
25 “기다리는 자들에게나 구하는 영혼들에게 여호와는 선하시구나! 그러므로 :26 사람이 여호와의 구원을 바라고 잠잠히 기다릴 줄 알아야 하겠구나!” 답답할 때, 일일 잘 안될 때, 그것이 쌓이고 쌓여 폭발하게 되었을 때 기억하자.
2. 사도 요한 식 사회안전망.
신약은 구약보다 원리적이며 완전하다. 사람이 불만(不滿)하는 것은 욕심(欲心)때문이다. 욕심이 클수록 불만이 많으며, 하나님이 없으면 욕심도 한이 없고 따라서 만족(滿足)은 없다. 욕심은 하나님의 의하여 통제 받아야 하며 통제된 욕심에는 만족이 있어서 행복해진다.
요일3:14 “아이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아버지를 알았음이요(하나님을 아버지로 알고 그에게 통제를 받으라) 아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알았음이요(조물주의 통제를 받으라,의 어른 형) 청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강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 안에 가하시며(네 힘만 믿지 말고 전능하신 이의 말씀을 들어 통제를 받으라) 너희가 흉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라(그리하면 너희가 사람만 아니라 마귀도 이기게 될 것이다).”
주를 믿는 자를 이처럼 나이에 따라, 신앙 연배에 따라 ‘아이들’ ‘아비들’ ‘청년들’로 불러 각각 맞는 형태로 권면하였다. 다시 주를 믿는 자들에게 사회안전망을 이렇게 구축하라고 놀라운 통찰로 권면하신다(성령께서).
신자가 통제 받아야 할 것들: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16)으로 요약된다.
첫째: 육신의 정욕은 가장 원초적인 욕구이다.
식욕, 성욕, 생존욕이 이에 속한다. 다 하나님이 주신 욕구요 하나님의 말씀으로 절제되면 선한 것이다. 절제되지 못하면? 죄가 되고 악한 결과를 가져온다. 자기 몸을 망치고 인격을 훼손하고 집안과 교회와 사회에 누가 된다. 하나님과 성령님 주님을 슬프게 한다.
둘째: 안목의 정욕은 남에게 칭찬받고 싶어하는 마음, 아름답게 보이기 싶고, 사람에게 잘 보이고 싶은 것인데 인기 명예욕이다.
이런 것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절제되면 선한 것이 된다. 절제가 안되면? 추하게 된다.
셋째: 이생의 자랑인데 권력욕, 물욕인데 절제되면 선한 것이 된다.
절제 안되면 바보 멍텅구리가 되고, 바람을 잡으려는 사람처럼 수고만 많이 하고 하나도 가진 것 없이 헛되어진다.
이런 것들에 대한 매력과 유혹은 대단하다. 그래서 주를 믿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은 다 이에 넘어간다. 주를 믿는 사람들 가운데도 주와 더불어 이런 것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다. 아마 꽤 있다. 이들에게 하시는 성령의 음성
15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그러면 마귀의 자식처럼 생각하고 사랑하고 놀아나게 된다. 그러나 이것을 생각할 것.
17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사람이 불만에서 만족으로, 불행에서 행복으로 나아가는 방법, 사회안전망 구실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하나님을 아는 것,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이다.
불만인 자여! 하나님 아버지를 만나보라 불만이 안개 사라지듯 사라지고 만족이 샘처럼 솟아는 것을 체험하게 된다. 불행한 자여!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보라 불행의 그늘이 걷히고 행복이 햇살처럼 펼쳐지게 된다. 분노하는 자여! 성령 하나님을 만나보라 분노는 그치고 참회의 눈물이 앞을 가릴 것이다. 하나님을 만나는 것만으로도 이런데, 하나님의 나를 향한 뜻(상황과 관계가 된다)도 알면 더 행복해지고 더 안전해진다. 그 뜻을 행하면 남까지 행복해지고 사회까지 안전해진다. 할렐루야!
한국의 첫 우주인 이소연(30)씨가 지난 목요일 대한YWCA ‘젊은 지도자상’을 받고 한 말이 감동을 주고 있다. ‘저는 우주에 가기 전까지 한 번도 이 지구에서 살만한 자격이나 요건에 대해 따져본 적이 없었어요 사는 것 자체에 대해서도 감사보다는 불평 불만이 더 많았죠. 그런데 서울에서 부산까지의 거리 400Km를 위로 올라가면 정말 살기 힘들어요 숨쉬고 밥 먹고 화장실 가는 일부터 앉아 있기 위해 압력을 유지하는 데 어마어마한 돈과 노력이 필요하거든요. 지구에서는 그런 비용이 필요 없잖아요. 정말 하나님께서 주신 귀중한 선물이구나! 감사하게 되더군요. 내가 만약에 하나님이라면 저렇게 어마어마한 집을 공짜로 줬는데 인간들이 매일 싸우며 이것도 안 주시네 저것도 안 주시네 불평하는 걸 본다면 어땠을까 상상해 봤어요.’
언더우드 선교사의 손자 원한광 교수가 은퇴하고 미국으로 가면서 한 말. 자기가 한국에 평생 살 동안 한국사람이 ‘경기가 좋아졌다, 살만해졌다’라는 말을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
세계 경제가 심각하여 아시아 유럽 정상들이 베이징에 모여 묘안을 따 짜도 별 묘약이 없다. 왜냐하면 경제공황에 대한 불안(공포)가 세계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때 교회는 무엇을 해야 하나? 기독교인은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나? 간단하다. 믿음을 줘야 한다. 하나님 때문에 산다! ‘이 세상도(불황도) 지나가고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할렐루야! [사회안전망] 되기를 바란다.(합심기도)
출처: 성경 벌레들 글쓴이: 성경 벌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