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싸우시리라
느 4: 6-23
느헤미야는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그는 큰 일을 시도하면서 기도했고, 진행하면서도 기도했습니다. 또 일이 진척이 보일 때에도 기도했습니다. 일에 방해군이 나타나서 욕을 하고, 비난을 하는 현실에서도 그는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기도만하고 있는 사람은 아닙니다. 기도하면서 전력을 다했습니다. 자신의 할 일을 전념히고, 최선의 노력을 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이제 백성들은 힘을 모아서 성이 반이나, 쌓아져 갔습니다.
이 때에 또 어려움이 있습니다.
이번에는 대적들이 모여서 무력으로 훼방을 하려고 합니다.
(느4:7) 산발랏과 도비야와 아라비아 사람들과 암몬 사람들과 아스돗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이 중수되어 그 퇴락한 곳이 수보되어 간다 함을 듣고 심히 분하여 (느4:8) 다 함께 꾀하기를 예루살렘으로 가서 쳐서 요란하게 하자 하기로
산발랏과 도비야는 자신들 뿐 아니라, 여러 이웃 나라와 힘을 합해서 예루살렘을 치려고 합니다.
이 때에 백성들의 마음은 다시 흐트려집니다.
그들은 기운이 다 빠졌습니다.
마귀 전략 가운데 중요한 것이 김 빼기 작전입니다.
어떤 의로운 일을 하려고 하는데, 누군가가 와서 한참 그일에 대해서 헐뜯습니다. 열심히 주를 섬기려고하는데, 누군가 와서 "그런 일 한다고 밥목여주나?"합니다.
반대나 조롱이나, 비판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마음만 한 마음이면 되는데, 이것이 어렵습니다.
백성들이 힘이 빠질 뿐 아니라, 이제 낙망까지 합니다.
아, 이제는 할 수 없다. 우리에게 이 일은 너무 벅찬 일이었어! 이 사역을 중단할 수밖에 없어!
또 그들은 두려워했습니다.
(느4:11) 우리의 대적은 이르기를 저희가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가 저희 중에 달려 들어가서 살육 하여 역사를 그치게 하리라 하고
이 대적들이 이제 비난이나, 반대만 하는 것이 아니라, 무력으로 막으려 할 때에 이들은 지레 겁을 먹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14절에 느헤미야가 백성들에게 두려워말라 한 말씀을 보면 그들이 두려워한 것입니다.
이럴 때에 느헤미야는 어떻게 대처합니까?
첫째로, 여전히 느헤미야는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느4:9) 우리가 우리 하나님께 기도하며 저희를 인하여 파숫군을 두어 주야로 방비하는데
어떻게 현실이 어려워도, 느헤미야는 기도합니다. 비난이 왔을 때에도, 무력으로 달려들 때에도 그는 크고 두려우신 하늘의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우리의 기도가 들어지는 같지 않을 지라도, 기도하는 데, 형편이 더 어려워도 기도할 수 있습니까? 끝까지 기도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역사합니다.
둘째로, 느헤미야는 현 상황에서 인간으로서의 할 일을 최선을 다하여 합니다.
(느4:9) 우리가 우리 하나님께 기도하며 저희를 인하여 파숫군을 두어 주야로 방비하는데
기도하면서 파수군을 둡니다.
(느4:13) 내가 성 뒤 낮고 넓은 곳에 백성으로 그 종족을 따라 칼과 창과 활을 가지고 서게 하고
성의 취약지구에 보초를 서게합니다.
(느4:16) 그 때로부터 내 종자의 절반은 역사하고 절반은 갑옷을 입고 창과 방패와 활을 가졌고 민장은 유다 온 족속의 뒤에 있었으며
백성의 일부분은 일하고, 절반은 갑옷을 입고, 무기를 들고 경계합니다.
(느4:18) 건축하는 자는 각각 칼을 차고 건축하며 나팔 부는 자는 내 곁에 섰었느니라
한 손에는 연장을, 한 손에는 칼을 듭니다. 전쟁의 나팔 부는 자는 느헤미야 곁에서 떠나지 않습니다.
(느4:22) 그 때에 내가 또 백성에게 고하기를 사람마다 그 종자와 함께 예루살렘 안에서 잘지니 밤에는 우리를 위하여 파수하겠고 낮에는 역사하리라 하고
밤에는 파수하고, 낮에는 일합니다.
(느4:23) 내나 내 형제들이나 종자들이나 나를 좇아 파수하는 사람들이나 다 그 옷을 벗지 아니하였으며
모든 사람들이 그 무장한 옷을 벗지 않고 않았습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다 지켜주시니, 염려할 것도, 아무 준비할 것도, 방어할 것도 없습니까?
우리의 잘못된 깨달음은 신앙생활을 이상한 것으로 만들고, 세상에 비난 받도록 하는 것이 됩니다.
기도를 하는 사람은 일하는 사람입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기도 않는 사람 보다 기도 했기 때문에 더 성실하고, 열심히 일합니다. 기도와 일을 분리하지 않습니다.
항상 기도하라는 말씀은 일하지 말고, 기도만 하라는 말씀이 아니라, 너의 모든 생활을 기도로 하라는 것입니다.
기도하면 다 되는데, 믿음없이 기도않고, 병원가느냐?
기도하면 밥 안 먹어도 배도 부르고, 잠도 자지 않아도 피곤치 않고, 공부 안해도 하나님이 알아서 우등생되게 하느냐?
기도하는 사람은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맡긴 사람은 아무 것도 않는가? 아닙니다. 이제는 하나님께 순종으로 일하는 것입니다. 공부도, 사업도, 직장도, 가정살림도 하나님께 순종하는 믿음으로 일한다면 얼마나 바로하며, 잘 하겠습니까?
무디 묵사님이 배를 타고 대서양을 건너는데, 배에서 불이 났습니다.
이 때 무디 목사님의 명성을 아는 어떤 한 사람이 목사님을 찾아와서, "목사님, 불이 났습니다. 기도 좀 해 주십시오." 했습니다. 그 때 목사님은 "아니오, 물동이를 가져와요. 불을 꺼야지요. 불을 끄면서 기도해야합니다."했습니다.
불을 끄면서도 기도합니다. 하나님께 맡기면서 의뢰하면서 자기 행동을 하는 것이 옳습니다. 운전을 하면서도 기도합니다.
기도하는 것은 우리의 인간의 최선의 행위를 하는 것을 금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는 일을 더 잘하도록, 이전에는 거짓되게 했고, 제힘으로 하령고 했던 것을, 욕심으로 하려고 했던 것을 이제는 진실되게,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으로, 하나님 중심으로 일을 하는 것입니다.
기도하기 때문에 우리가 하던 일을 더 잘하는 것입니다.
셋째로,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느4:14) 내가 돌아 본 후에 일어나서 귀인들과 민장과 남은 백성에게 고하기를 너희는 저희를 두려워 말고 지극히 크시고 두려우신 주를 기억하고 너희 형제와 자녀와 아내와 집을 위하여 싸우라 하였었느니라
모든 것을 다 제 위치에서 하도록 하고는 바라보는 것은 자신들의 방비한 모든 것이 아닙니다. 원수들을, 그 문제들을 바라 보게 하지 않았습니다. 원수가 어떻게 강할지라도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묵상한다면 승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과연 여러분에게 크십니까?
당신의 하나님은 과연 세상에 어떤 정도로 크십니까? 어떤 세상의 권력이나, 힘 보다도 다 크신 분으로 믿습니까?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가기 전에 모세가 열 두 정탐을 가나안에 보냈습니다. 그 때에 열 정탐군은 (민13:28) 그러나 그 땅 거민은 강하고 성읍은 견고하고 심히 클 뿐 아니라 거기서 아낙 자손을 보았으며 (민13:29) 아말렉인은 남방 땅에 거하고 헷인과 여부스인과 아모리인은 산지에 거하고 가나안인은 해변과 요단 가에 거하더이다 (민13:31) 그와 함께 올라갔던 사람들은 가로되 우리는 능히 올라가서 그 백성을 치지 못하리라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니라 하고 (민13:32)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그 탐지한 땅을 악평하여 가로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탐지한 땅은 그 거민을 삼키는 땅이요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 (민13:33) 거기서 또 네피림 후손 아낙 자손 대장부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의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가나안 사람들을 보았을 때에 같이 보지 않았습니다.
(민14:7)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 일러 가로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탐지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민14:8)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민14:9) 오직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 밥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 말라 하나
여호수아 갈렙은 그 땅의 거민들이 장대하고, 강한 자들이지만, 하나님이 더 크심을 믿습니다. 그들은 우리의 밥이라. 여호아가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말라! 했습니다.
두려우신 하나님입니다.
누구를 두려워합니까?
하나님을 두려워않고, 환경을 두려워하고, 사람을 두려워하고, 별 것아닌 사건을 두려워하지는 않습니까?
우리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되, 이 크신 하나님께 경외하는 두려움을 가져야합니다. 이분을 존경하며, 이분께 영광을 돌려야합니다.
이스라엘이 어떻게 달라집니까?
두려워하고, 낙심하고, 기운이 빠졌던 백성들이 이 느헤미야의 권면과 느헤미야의 말에 순종하므로
(느4:16) 그 때로부터 내 종자의 절반은 역사하고 절반은 갑옷을 입고 창과 방패와 활을 가졌고 민장은 유다 온 족속의 뒤에 있었으며
그 때부터 다시 일어납니다.
(느4:20) 너희가 무론 어디서든지 나팔 소리를 듣거든 그리로 모여서 우리에게로 나아오라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싸우시리라 하였느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싸우시리라는 확신의 믿음으로 일합니다.
하나님을 바라 본 그 순간부터, 하나님을 기억한 이후부터, 하나님의 크심과 두려우심을 본 이후부터 이들은 담대해졌습니다.
다시 역사하고, 방어합니다.
이 모든 상황을 극복하고, 새로 힘을 냅니다.
반대나, 훼방이 문제가 아닙니다.
한 마음으로 일치가 안되는 것이 문제요, 그 어려운 문제만 보이고, 하나님이 보이지 않는 것이 더 큰 문제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다가 욕듣는 것, 반대에 부딪히는 것을 두려워맙시다. 진정 내가 하나님의 일을 했다면, 하나님께서 형통케 하실 하나님의 일을 하고 있다면 겁낼 일이 무엇있습니까?
비난과 반대 때문에 교회나, 단체가 마음이 나뉘기도 하지만, 하나님을 끝까지 붙드는 자들이 있으면, 오히려 반대 때문에 더 한 마음이 될 수도 있고, 하나님을 다 신뢰하므로 형통함을 입는 데 유리한 조건이 될 수도 있습니다.
기도해야합니다.
그러나 일하면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을 바라보고, 기억하는 것으로 두려움을 극복하고, 승리의 결과를 맺을 수 있습니다.
출처: 한국강해설교연구원 글쓴이: 옥련지침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