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부흥의 어원: 히브리어 '하야(Chayah)' — "죽은 자를 다시 살리다, 생기를 불어넣어 소생시키다."
헬라어 '아나조피레오(Anazopyreo)' — "꺼져가는 불씨를 다시 활활 타오르게 부채질하다(딤후 1:6)."
부흥의 본질: 부흥은 땅에서 인간이 기획하여 올려보내는 이벤트가 아닙니다. 하늘 보좌에 계신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친히 하늘을 찢으시고(Rend the heavens), 당신의 백성과 잃어버린 죄인들의 한복판으로 뚫고 내려오시는 초자연적인 신적 강림(God Coming Down)입니다.
사람이 만든 프로그램은 사람의 열심이 식으면 끝나지만, 하나님이 강림하신 부흥은 인간의 자아를 완전히 산산조각 내며 그 지역과 시대 전체를 뒤흔듭니다.
2. 이사야 64장의 부흥 신학: 하늘을 가르고 내려오시는 하나님
이사야 선지자는 이스라엘의 영적 암흑기 한복판에서 인간의 도덕적 개선이나 정치적 해결책을 구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늘을 향해 전 존재를 던져 부르짖었습니다: "원하건대 주는 하늘을 가르고 강림하시고!"(사 64:1).
이 부르짖음 속에 담긴 참된 부흥의 성경적 표지는 세 가지입니다.
[ 죄악과 종교적 위선으로 막힌 하늘 ]
──────────────────────────────────────────────────
▲ │
│ (성도의 절박한 탄식) ▼ (하나님의 초자연적 개입)
[ 사 64:6 "우리의 의는 다 부정한 옷" ] [ 사 64:1 "하늘을 가르고 강림하심" ]
│
▼
[ 산들이 진동함 / 불이 섶을 사름 ]
(인간의 교만 파쇄, 죄의 소멸, 거룩의 회복)
① 막힌 하늘을 찢으심 (Divine Breakthrough)
인간의 죄악과 종교적 형식주의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가로막는 단단한 놋 쇠창살과 같습니다(사 59:2). 참된 부흥은 인간의 공로나 열심으로 도달할 수 없는 그 영적 절벽 앞에서, 오직 하나님의 긍휼과 주권적 은혜로 하늘의 빗장이 풀리고 거룩하신 임재가 쏟아져 내리는 것입니다.
② 견고한 산들이 진동함 (Shaking of the Mountains)
하나님이 임재하실 때 가장 먼저 일어나는 일은 '인간의 견고한 산'이 무너지는 것입니다.
목회자의 교만과 종교적 기득권의 산
성도들의 굳은 마음, 자기 의, 은밀한 우상의 산
인간이 쌓아 올린 모든 바벨탑이 하나님의 거룩하신 임재의 무게(카보드, Kabod) 앞에서 낙엽처럼 떨며 평지가 됩니다.
③ 불이 섶을 사르고 물을 끓임 (Consuming Fire)
하나님은 소멸하시는 불이십니다(히 12:29).
부흥이 임하면 성령의 불이 섶(마른 나뭇가지) 같은 인간의 부패한 죄악과 음란, 탐욕, 위선을 사차없이 태워버립니다. 차갑게 식어 얼어붙어 있던 영혼들의 마음에 성령의 거룩한 불이 붙어, 차가운 물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듯 하나님을 향한 거룩한 열정이 폭발합니다.
3. 부흥이 임할 때 나타나는 4대 성경적 실재
웨슬리 듀엘 박사는 성경 전체와 교회사 속 부흥의 현장에서 예외 없이 동일하게 나타났던 성경적 표지를 네 가지로 규명합니다.
1)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대한 압도적인 경외 (Awe of God)
성경적 근거: 이사야 6:5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부흥의 첫 번째 징표는 웃음이나 기쁨이 아닙니다. 두려운 하나님의 거룩하심 앞에 자신의 끔찍한 죄악을 직면하는 거룩한 공포(Holy Dread)입니다.
평소에는 아무렇지도 않게 여겼던 사소한 죄, 숨겨둔 거짓말, 음란한 생각, 시기와 미움이 하나님의 찬란한 빛 앞에서 적나라하게 폭로되어 성도들은 바닥에 엎드러져 통곡하게 됩니다.
2) 뼛속까지 쪼개지는 자복과 철저한 배상 (Deep Conviction & Restitution)
성경적 근거: 사도행전 2:37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이르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누가복음 19:8 (삭개오의 토색한 것에 대한 4배의 배상)
참된 부흥은 추상적인 눈물로 끝나지 않습니다. 도둑질한 돈을 되돌려주고, 깨어진 인간관계를 찾아가 무릎 꿇고 용서를 구하며, 악습을 칼로 자르듯 끊어내는 구체적인 삶의 열매와 정결함으로 나타납니다.
3) 십자가의 피와 은혜에 대한 형언할 수 없는 감격 (Glory of the Cross)
성경적 근거: 로마서 5:5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공의의 심판 앞에서 영원한 지옥 형벌을 받아 마땅한 죄인임을 통회한 심령 위에,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이 쏟아집니다. 이때 맛보는 사죄의 확신과 평강은 세상이 주는 쾌락과 비교할 수 없는 영혼의 깊은 눈물과 찬송을 낳습니다.
4) 영혼 구원을 향한 불타는 해산의 고통 (Burden for the Lost)
성경적 근거: 로마서 9:1-3 ("내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부흥을 경험한 성도는 자기 은혜에 도취되어 머물지 않습니다. 지옥으로 떨어져 가는 이웃과 민족을 바라보며 창자가 끊어지는 듯한 안타까움을 느끼며, 전도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거룩한 복음의 불길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4. 하박국의 기도: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마옵소서"
하박국 선지자가 사역하던 시대는 종교적 타락과 불의, 그리고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바벨론의 침공)이 코앞에 닥친 절망의 때였습니다.
이때 하박국은 심판을 면하게 해달라고 구하지 않았습니다. 하박국 3장 2절의 기도는 역사 속 모든 부흥의 선구자들이 붙들었던 기도의 뼈대입니다.
"여호와여 내가 주께 대한 소문을 듣고 놀랐나이다
여호와여 주는 주의 일을 이 수년 내에 부흥하게 하옵소서
이 수년 내에 나타내시옵소서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마옵소서" (합 3:2)
"주의 일을... 부흥하게 하옵소서":
목회자의 성공, 교회의 확장, 내 사역의 브랜드가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일(Thy Work)', 하나님의 이름과 그분의 영광만이 높아지기를 구하는 순결한 동기입니다.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우리는 심판받아 마땅한 패역한 세대임을 인정하는 철저한 겸손입니다. 자격 없는 우리에게 오직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만을 호소하며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아가는 기도입니다.
5. 제1강의 결론 및 목회적 제단 앞에서의 결단
교회가 세상과 구별되지 못하고 세속화의 파도에 힘없이 밀려나는 이유는, 프로그램이나 재정이 부족해서가 아닙니다. 성령의 거룩한 불이 꺼졌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지혜로 조직을 짜고 마케팅으로 교인을 모으는 모든 시도를 내려놓아야 합니다. 그것은 마른 뼈들을 모아놓고 화장을 시키는 것과 같습니다. 에스겔 골짜기의 마른 뼈들을 군대로 일으킨 것은 사람의 손길이 아니라, 하늘에서 불어온 성령의 생기였습니다(겔 37:9-10).
우리가 오늘 강단과 무릎의 자리에서 흘려야 할 단 하나의 눈물은 이것입니다:
"오 주여, 인간의 수단과 방법을 거두시고, 친히 하늘을 가르고 이 메마른 강단과 백성들 위에 강림하여 주옵소서!"
[말씀 앞에서의 묵상과 점검]
내가 지금까지 꿈꾸어 온 부흥은 교회의 외형적 성장이나 인간의 기획에 불과했습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거룩하신 영광이 내려앉아 자아가 박살 나는 성경적 부흥이었습니까?
이사야 선지자처럼 내 자신의 부정함과 시대의 패역함을 끌어안고 "하늘을 가르고 강림하소서"라고 가슴을 찢으며 부르짖는 제단의 기도가 내 골방에 살아 있습니까?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