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화
유배지에서 부르는 노래: 도끼모스와 아도끼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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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물 밖에서 펴는 39년 전의 책
39년 전, 대학교 1학년 실험실에서도 끼고 살았던 헬라어 문법책을 다시 펼쳤습니다. 교회라는 익숙한 우물을 잠시 떠나, 세상이라는 거친 현장에서 마주하는 헬라어 단어들은 더 이상 활자가 아닌 생생한 실존으로 다가옵니다. 오늘 저는 로마서 1장 28절을 통해 ‘진짜’와 ‘가짜’의 갈림길을 묵상합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심사하다
καὶ καθὼς οὐκ ἐδοκίμασαν τὸν θεὸν ἔχειν ἐν ἐπιγνώσει... (까이 까쏘스 우크 에도끼마산 똔 쎄온 에케인 엔 에삐그노세이)
“또한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라고 번역된 이 구절에서 바울은 ‘에도끼마산(ἐδοκίμασαν)’이라는 단어를 씁니다. 본래 ‘금속의 순도를 검증하다’라는 뜻이죠. 놀랍게도 인간이 재판관의 자리에 앉아 하나님을 시험대에 올렸다는 뜻입니다. “내 이성과 상식에 비추어 볼 때 하나님은 합격인가, 불합격인가?” 인간은 자신의 지식으로 하나님을 심사하고, 결국 그분을 마음 밖으로 밀어냈습니다.
오만한 지성과 유배의 필요성
오늘날의 지성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을 신화나 허구로 치부하며 자신의 명석함을 뽐내는 이들이 있습니다. 교권주의의 폐단을 지적한다는 명분 아래, 스스로가 진리의 최종 판결자가 되어버린 오만함이죠. 하지만 기억해야 합니다. 성경은 화려한 강단이 아니라 ‘유배지’에서 기록된 책입니다. 자신의 사고가 깨지고, 모든 기득권을 추방당한 자들이 비로소 발견한 광대하신 하나님에 대한 증언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검증할 수 있다는 착각이 깨질 때, 진짜 신앙은 시작됩니다.
아도끼몬의 비극과 도키모스의 소망
...παρέδωκεν αὐτοὺς ὁ θεὸς εἰς ἀδόκιμον νοῦν.
(...빠레도껜 아우뚜스 호 쎄오스 에이스 아도끼몬 눈)
하나님을 검증에서 탈락시킨 인간에게 찾아온 결과는 충격적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아도끼몬(ἀδόκιμον)’ 마음대로 내버려 두셨습니다. ‘검증에 불합격한, 가짜’라는 뜻입니다. 기준이신 하나님을 버리니, 인간의 마음 자체가 선악을 분별할 기능을 잃고 함량 미달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유배의 시간’을 통해 다시 ‘도끼모스(δόκιμος)’, 즉 하나님께 인정받는 정금으로 빚어질 기회를 얻습니다. 그것은 방종도, 경직된 근본주의도 아닌 ‘자기부인’의 길입니다.
창조주 앞에서의 겸손
인공지능이 만능이 된 시대, 길을 잃지 않는 유일한 방법은 우리가 창조주가 아님을 겸손히 고백하는 것입니다. 정직하게 사유하되 늘 하나님의 불꽃 같은 감찰(도끼마조) 앞에 서십시오. 저 역시 이 안식의 시간 동안, 제가 버림받은 자(아도끼몬)가 되지 않도록 저의 삶을 거울 앞에 비추어 봅니다. 오늘 당신의 보물창고에는 무엇이 쌓이고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