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날이 오면
심훈(沈熏)
그 날이 오면, 그 날이 오면은
삼각산(三角山)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한강(漢江) 물이 뒤집혀 용솟음칠 그 날이
이 목숨이 끊기기 전에 와 주기만 하량이면
나는 밤하늘에 날으는 까마귀와 같이
종로(鐘路)의 인경(人磬)을 머리로 들이받아 울리오리다.
두개골(頭蓋骨)은 깨어져 산산조각이 나도
기뻐서 죽사오매 오히려 무슨 한(恨)이 남으오리까.
그 날이 와서 오오 그 날이 와서
육조(六曹) 앞 넓은 길을 울며 뛰며 뒹굴어도
그래도 넘치는 기쁨에 가슴이 미어질 듯하거든
드는 칼로 이 몸의 가죽이라도 벗겨서
커다란 북[鼓]을 만들어 들쳐 메고는
여러분의 행렬(行列)에 앞장을 서오리다.
우렁찬 그 소리를 한 번이라도 듣기만 하면,
그 자리에 거꾸러져도 눈을 감겠소이다.
[시어 풀이]
하량이면 : 한다면
인경(人磬) : 옛날, 밤에 통행금지를 알리기 위해 친던 보신각 종
두개골(頭蓋骨) : 머리뼈
육조(六曹) : 고려와 조선 왕조 때 국무를 보던 여섯 관부. ‘육조 앞’은 지금의 광 화문 거리
그 날이 오면, 그 날이 오면은 : 가상(仮象)의 미래인 조국 광복의 날을 간절히 기다리는 마음을 반복하여 강조하였다.
삼각산이 일어나 - 용솟음칠 그 날이 : 무심한 조국의 자연까지도 해방의 기쁨을 이기지 못해 살아 움직일 듯하다고 의인화한 표현이다.
나는 밤하늘에 날으는 까마귀같이 : ‘까마귀’는 암울한 시대를 살아가는 시적 화자의 고독하고 비장한 모습의 상징이다.
두개골(頭蓋骨)은 깨어져 산산조각이 나도 : 광복에의 강한 열망에 찬 서정적 자아의 정서를 짐작할 수 있는 구절로 과장법이 사용되었다.
드는 칼로 이 몸의 가죽이라도 벗겨서 : 조국 광복을 위해서는 날카로운 칼에 살가죽이 벗겨지는 고통도 감수하겠다는 결연(決然)한 의지와 대의(大義)를 위한 희생 정신의 표현이다. 강한 촉각적 심상으로 전율감을 극대화하였다.
[핵심 정리]
지은이 : 심훈(沈熏, 1901-1936) 본명 심대섭(沈大燮). 소설가. 시인. 영화인. 언론인. 서울 노량진 출생. 제일고보 시절 3.1 운동에 참가했다가 일경(日警)에 체포, 투옥됨. <동아일보>에서 ‘브나로드(민중 속으로) 운동’의 일환으로 주최한 소설 공모에 ‘상록수’가 당선되었다.
갈래 : 자유시. 서정시. 참여시(저항시)
율격 : 내재율
어조 : 절절한 호소와 강인한 의지가 담긴 격정적 어조
심상 : 비유적. 촉각적. 역동적 심상
성격 : 저항적, 의지적, 지사적, 원망적(願望的), 직서적
특징 : 경어체의 종결어미 사용. 격정적 감정의 직접적 표출. 반복법 과장법 사용
구성 :
1연 환희의 그 날 염원
2연 광복의 염원(반복)
제재 : 민족의 해방
주제 : 민족 해방의 염원
출전 : 심훈의 유고 시 수필집 <그 날이 오면>(1949)
▶ 작품 해설
이 시는 한국 현대시의 역사에 저항시의 맥을 잇는 중요한 작품으로서 그 중에서도 가장 격렬하게 조국 광복의 환희와 감격을 상상적으로 노래한 작품이다. 제목이 웅변하듯 광복의 그 날에 대한 열망이 직접적으로 표출된 작품이다.
이 시는 1930년 3월에 창작된 작품으로 시가 및 수필집 <그 날이 오면>에 실려 있다. 암울한 시대 상황에서 대부분의 문인들이 친일(親日)로 변절하고 현실에서 도피하기 일쑤였던 당대에 예외적으로 강한 신념과 예언자적 의지로 노래한 격정과 충격의 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