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전적 정의
럼은 카리브해의 서인도제도 원산의 스피리츠이다.
16세기경에 이미 제조되었고, 18세기에는 유럽인의 상선에 의해 세계 각국으로 보급되었다.
씁쓸하면서도 맛과 향이 중후한 사탕수수로 빚은 해적의 술
럼(rum)은 서인도 제도의 독특한 원주민의 술이다.
이 지역 사람들은 럼주를 '태양의 술'이라고 부른다.
그만큼 성격이 불같은 카브리해 연안 지역의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술이다.
어린이 소설 '보물섬'의 애꾸눈 해적 선장이 부하들과 함께 마시는 술이 바로 이 럼주다.
럼은 적도 부근의 열대 지방에서 풍부하게 생산되는 사탕수수에서 설탕의 결정을 분리해 낸 찌꺼기, 즉 당밀의 발효, 증류,
숙성시켜 만든 술이다.
럼을 처음으로 제조하게 된 것은 카브리해 서인도제도의 푸에르토리코에 스페인의 탐험가가 건너가 만들었다는 이야기와
17세기 초 증류 기술을 가진 영국인이 서인도 제도의 바바도스(babardos)섬에 이주해서 제조하기 시작했다는 두 가지였으며
사탕수수를 원료로 하였고 유럽에서 증류기술이 전해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럼은 유럽 강국의 식민지 정책으로 크게 발전했다.
아프리카의 흑인을 서인도제도로 데려가 사탕수수밭에서 일을 시키고 그곳에서 당밀을 실어 미국의 뉴잉글랜드로 운반한 후
거기에서 럼을 만들었으며, 이 럼은 아프리카 노예의 몸값으로 지불되었다.
이렇게 반복되는 삼각무역으로 럼주는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사탕수수의 폐액으로 만든술, 흑인이나 마시는 술이라 꺼려하던 인식이 바뀌게 되었다.
이는 1805년 영국의 대제독 넬슨이 트라팔가 해전에서 승리하였으나 전사하자, 그의 부하들이 자신들의 영웅이 부패되는 것을
막기 위해 럼이 들어 있는 통에 넣어 귀향한 데서 비롯되었다.
그 뒤로 영국인들은 짙은 호박색이 나는 다크 럼을 넬슨 블러드, 즉 '넬슨의 피'라고 불렀고, 럼에 대한 인식도 새로워졌다.
(1) 역사 및 어원
럼의 원료인 사탕수수는 인도가 원산지로 스페인을 거쳐 서인도에 전파되었다.
17세기경 발바도스섬에서 영국의 증류기술자가 사탕수수 줄기에서 즙을 내어 설탕을 만들어 나머지를 발효시켜 증류하였다.
이것이 럼의 시초인데 이 술을 마신 원주민이 취해서 흥분하여 원주민의 말인 Rumbullion(흥분하다, 소동하다)이 줄어서 Rum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그 이후 자메이카섬을 중심으로 사탕공업의 발달과 함께 번창하게 되었다.
(2) 제조법
럼은 증류주로서 사탕수수에서 설탕을 만들고 난 당만을 발효시켜 당을 알코올로 바꾸고 이것을 증류하여 오크통에 넣어 저장한다. 알코올 농도는 보통 40%~75%정도이다.
(3) 종류
헤비 럼 (Heavy Rum)
◀ 일명 다크럼(Dark Rum) 이라고도 한다.
◀ 진한 갈색으로 풍미가 강한 럼이다.
◀ 당밀에 물을 가해 약 20일간 자연 발효시켜 단식 증류기로 증류한다.
그때 파인애플 과즙이나 아카시아의 수액을 혼입하여 향미를 내는 경우도 있다.
◀ 자마이카의 Myers's 가 유명하며 바카디사의 블랙럼(Black Rum)도 같은 타입이다.
미디움 럼 (Medium Rum)
◀ 일명 골드 럼(Gold Rum) 이라고도 한다.
◀ 색, 향미는 헤비 럼과 라이트 럼의 중간 정도이다.
◀ 발효기간은 5~9일 정도이다.
◀ 핫드링크의 베이스로 적당하다.
◀ 쿠바의 "바카르디 골드"를 많이 마신다.
◀ 럼은 사탕수수라는 천연의 당분에서 제조를 하기 때문에 이것이 과당과 균형있게 어울리는 이유며 사탕수수가 열대식물이므로 열대과일과 제일 잘어울리고 열을 내리는 효과가 크기때문에 여름용 칵테일에 제일 많이 사용한다.
라이트 럼 (Light Rum)
◀ 화이트 럼(White Rum)이라고도 한다.
◀ 색은 감색에 가깝고, 맛은 가볍고 산뜻하다.
◀ 헤비럼과는 달리 효모로 2~4일간 발효하여, 연속증류기로 증류한다음, 단기간에 익힌 원주를 활성탄 처리를 하면 투명한 화이트 럼이 된다.
◀ 쿠바가 원산지이며, 멕시코, 하이티 등지에서도 많이 생산되고 있다.
◀ 세계 제일의 럼 소비국인 미국에서 가장 즐겨 마신다.
◀ 화이트 럼을 주문하면 일류 바에서는 반드시 "바카르디"나 "하바나 클럽"이라는 상표의 럼을 내놓고 있다.
2. 술의 식민주의
술 식민주의는 술의 아주 특별한 용도를 말한다. 이 신조어는 한 나라의 국민을 식민지 노예로 만들기 의해 국가 내에서 제조되었거나 수입해온 술의 공급과 사용을 조작하는 것을 가리킨다. 우리는 역사에서 이에 대한 예를 많이 볼 수 있다.
순진하고 열등하며 힘없는 국민들이 접해보지 못한 술. 그것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던 무기였다.
이 무기의 희생자들은 여기에 길들여져 술을 더 달라고 아우성치게 된다. 이들을 더욱 더 예속시키기 위해, 잠들게 하기 위해, 순순한 동의를 얻어내기 위해,
그리고 판단력과 정신을 흐려놓기 위해 쓰인 술. 그것은 이들에게 헛된 자유의 환상을 심어주었다.
17세기부터 이 수치스러운 방법은 널리 이용되었다. 아프리카와 남아메리카의 정복자들은 아무 거리낌없이 이 파렴치한 수법을 마구 휘둘러댔다.
(1) 술을 이용한 민족학살
1549년에서 1848년에 이르는 3세기 동안 인류 역사상 최대의 민족학살이 자행되었다.
포르투갈이 맨 먼저 노예장사를 시작했는데 유럽의 노예상인들이 아프리카 대륙의 동부와 북동부에서 사냥한 흑인들은 약 2천만 명으로 추산된다. 그 중 6백만 명은 미대륙으로 가는 배 안에서 죽었다.
술은 노예장사를 위해 널리 이용되었다. 술을 먹임으로써 흑인부족 전체를 잡거나 그들의 머리를 둔하게 만들 수 있었던 것이다.
오드비는 교환가치가 있었던 물건이었다. 오드비 네댓병을 주면 제법 쓸만한 노예 한 명을 구할 수 있었다.
노예 장사는 더욱 극성을 부렸고 잡혀온 노예 중 많은 이들이 동족인 노예중개인들에 의해 백인 노예상들에게 넘겨졌다.
이런 장사는 주로 아프리카 현지에 세워진 운송 회사들에 의해 이루어졌다.
이 회사들은 그곳 왕으로부터 독점운영권을 부여받아 마음놓고 노예장사를 할 수 있었다.
물물교환 수완이 좋은 이들도 여기서 단단히 한몫 챙겼다.
(2) 식민지하의 아메리카
아프리카 대륙에서 노예장사가 판을 치면서 유럽인들은 한편으론 오드비, 럼, 아과르디엔테(사탕수수로 빚은 독한 술) 같은 독이 발린 선물로 아메리카 문명을 독살하고 있었다.
인디언들은 알코올 중독으로 엄청난 고통을 겪어야 했다.
멕시코 고원에 건설되었던 문명은 어떤 유혹에 빠져들어 옛부터 내려오던 기본적인 틀과 금기사항을 깨뜨리고 말았을 것이다.
그 유혹은 1600년대부터 엄청난 기세로 이 문명을 파괴하기 시작했다.
바로 새로운 지배자가 누구인지 깨닫게 하는 정책이었다.
그들에게 "새로운 욕구를 만들어 주어 그들이 우리 유럽인의 지배하에 있어야 함을 인식하게 해주는 것"이야말로 원주민 지배를
위한 최선의 방법이었다.
식민 정부가 식민지 원주민의 자결권을 인정하지 않고 계속 식민통치를 고집하면서 알코올 중독은 더욱 기승을 부렸다.
짓밟히고 굴욕당하고 소외당하며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느낌이 들 때 달리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술은 그들에게 마지막 탈출구이자 손쉬운 피난처였다. 그들은 자신들이 처해 있는 상황을 부끄러워하며 그것을 술로 잊고자한다.
인디언이 설 땅을 잃어버렸다는 사실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까지나 인디언이란 낙인을 짊어지고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 견딜 수 없어 스스로를 망치고 있는 것이다.
페랭은 자신의 논문 "라틴 아메리카에서의 알코올 중독"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인디언에 대해 사베드라와 마리아테는 이렇게 기록해 놓고 있다.
'에스파냐에 정복된 후 잉카제국은 사회, 경제 조직을 효율적으로 통제할 능력을 잃었다. 원주민들은 과음에 익숙해졌고, 전통 음주 예절도 변했다. 에스파냐에 의한 정복 이전에도 종교행사나 농경제 때 사람들은 술을 많이 마셨다. 그러나 그때는 공동체 생활을 다스리는 법령이 매우 엄격히 지켜졌다.
에스파냐의 침략은 어떤 대안도 남겨두지 않은 채 이런 사회조직을 해체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사회의 안전핀이 뽑히면서 균형이 깨져버린 것이다. 이와 동시에, 아니면 그 뒤를 이어 술은 인디언들을 매료시키기 시작했다.
그것은 고대 페루에서 코카에 대해 높은 관심을 가졌을 때와 비슷한 현상이었다.
지배자들이 술을 들여와 전파하면서 식민지에서의 술 생산은 더욱 쉬워졌다. 그 밖에도 점령은 피지배자들이 문화적 정체성을 버리고 지배자의 문화를 따라야 하는 결과를 초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