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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복음의 의미 안에 들어있는 0과 1이라는 디지털 기호를 코드로 성경말씀을 풀어내는
태승철의 오늘의 번제 <빛의 나라 천국의 새내기들>의 줄거리:
어린양의 아내, 거룩한 성 예루살렘의 모습이 정말 화려하기 그지 없게 묘사 됩니다. 사도요한은 그 아름다움이 주는 무한의 감동을 자신의 언어세계로 그려내기 위해 각종 보석 금 수정 진주 등 알고있는 이 세상 모든 보화의 이름들을 총 동원합니다. 영원한 빛의 나라 천국에 대해서는 완전히 신입생격인 어린양의 아내요 성도들의 공동체인 새예루살렘! 요한이 그토록 간절히 표현 하고 싶어했던 그 아름다움과 무한한 감동의 내막을 한 번 들여다 봅니다.
빛의 나라 천국의 새내기들
(계21:9~27)
9. ○일곱 대접을 가지고 마지막 일곱 재앙을 담은 일곱 천사 중 하나가 나아와서 내게 말하여 이르되 이리 오라 내가 신부 곧 어린 양의 아내를 네게 보이리라 하고
10.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이니
11. 하나님의 영광이 있어 그 성의 빛이 지극히 귀한 보석 같고 벽옥과 수정 같이 맑더라
12. 크고 높은 성곽이 있고 열두 문이 있는데 문에 열두 천사가 있고 그 문들 위에 이름을 썼으니 이스라엘 자손 열두 지파의 이름들이라
13. 동쪽에 세 문, 북쪽에 세 문, 남쪽에 세 문, 서쪽에 세 문이니
14. 그 성의 성곽에는 열두 기초석이 있고 그 위에는 어린 양의 열두 사도의 열두 이름이 있더라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말씀 중심으로 <빛의 나라 천국의 새내기들>이라는 제목의 하나님말씀 증거 합니다.
‘빛의 나라 천국의 새내기들’
천국의 새내기들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오늘 어린양의 신부 새 예루살렘을 말한 것입니다.
이 땅에서 어린양의 십자가를 힘입어서 이긴 자들이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천국에 올라갑니다. 그 천국이 우리들에게는 완전히 새 하늘과 새 땅입니다. 이제까지 살아 본 적이 없는 그런 땅이죠. 그런데 하늘나라 입장에서 보면 영원 전부터 있었던 하늘나라가 이제 사람들에게 오픈 되어서, 사람들이 성영신해서 영의 몸을 입어서 천국 안으로 영입이 됐습니다.
이 사람들은 완전히 새내기들이잖아요. 천국의 신입생들입니다.
그런데 이 천국의 신입생들인 성도의 공동체, 어린양의 십자가를 힘입어서 이 땅에서 이긴 사람들의 모임인 새 예루살렘, 그들이 천국으로 자리를 옮겼을 때에 이들에게 빛의 나라에서 빛이 쐴 것 아니겠습니까? 이 초짜들한테.
영원한 빛의 나라에 들어온 이 성도들에게 이제 그 빛의 나라에서 빛이 쐬게 될 텐데, 이 빛을 받고 있는 이 사람들의 모습이 어떤 모습인지를 오늘 보여주는 것입니다.
빛과 관련해서 이런 속담이 있어요.
“개가 제 주인을 보고 짖어야 농사가 풍년든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무슨 말이죠? 집에서 기르던 개가 주인을 보고 왜 짖어댑니까? 그리고 그렇게 되어야 농사가 풍년이 든다는 겁니까?
생각해 보세요.
오뉴월 땡볕이 어떤 땡볕입니까?
“봄볕에는 딸 내놓고 가을볕에는 며느리 내놓는다.”라는 속담이 있잖아요.
그만큼 오뉴월 땡볕이 피부를 거칠게 만듭니다. 새카맣게 태워버리는 거예요.
그러니까 농부 아저씨가 봄에서 여름으로 옮겨가는 이 상황에서 얼마나 열심히 일을 했으면, 너무너무 새카맣게 타서 집에 돌아왔는데 개가 자기 주인 인줄도 모르고 막 짖어댄다는 거예요. 그럴 정도로 밭에 나가서 열심히 일을 해야 농사가 풍년이 든다는 겁니다.
하여간 빛을 받으면 뭔가 변화가 일어납니다.
방사선으로 암을 치료하는 것도 빛을 쐬는 것 아니에요?
빛을 쐬면 암세포가 죽습니다마는 암세포만 죽이는 게 아니라 벼룩 잡다가 초가삼간 태운다고 다른 정상부분까지도 피해가 막심해집니다. 그래서 머리털이 빠지고 입맛이 없게 되고 사람들이 반 죽어갑니다. 빛을 쐬면 변화가 일어나는 거예요.
말라기 4장에서도 치료하는 광선이라는 이야기가 나오지 않습니까?
이런 것처럼 빛이 변화를 주는데, 빛이 꼭 이런 변화를 준다는 의미에서만 빛이 아니고, 또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만화를 보면 주인공이 보물이 가득 쌓여있는 곳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러면 대부분 거의 100% 그 장면이 어떻게 그려집니까? 보물을 잔뜩 그려놓고 그 보물 주변에 번쩍번쩍 빛이 비칩니다. 빛이 비치면서 보물에서 반사 된 빛을 쐰 주인공이 기쁨으로 가눌 수 없는 표정이 얼굴에 비치는 것으로 표현됩니다. 좋아서 어쩔 줄 모르는 그런 식으로 표현되지 않습니까? 이게 빛으로 비유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돈이나 보화나 이런 것만이 빛으로 그려지는 것이 아니라, 세계적인 경쟁에서 1등 했을 때,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땄을 때의 모습이 빛으로 그려지지 않습니까?
빛이 이런 비유적인 의미들이 많이 있어요.
예를 들어 우리가 빌게이츠를 바라본다고 하면 눈에는 보이지 않는데 마음에서 그 사람에 대한 아우라가 나타납니다. 그게 뭐예요? 돈의 빛을 쐬고 있는 거예요. 그 어마어마한 돈의 빛이 빌게이츠를 비추고 있는 것이 마음에 보이는 겁니다. 그런 것을 보는 거예요.
이 보화의 빛이 쐴 때, 이게 내 보화라고 생각하면 엄청 기쁘잖아요.
잠깐이지만 이 기쁨을 말 할 수 있겠습니까?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영이시면서 빛 자체이십니다. 빛 덩어리세요.
그 하나님이 나를 자녀 삼으셔서, 하나님이 계신 빛의 나라에 들어갔을 때 하나님의 빛을 쐬면 어떤 모습이겠습니까?
돈의 빛이 쏘이고, 보화의 빛이 쏘이고, 오뉴월 햇볕이 쏘이고, 방사선에 쏘이고, 레이저에 쏘이고 그 때마다 변화가 나타잖아요?
몸 안의 결석이 깨져나간다든지, 여드름이 치료 된다든지… 변화가 일어나는데…
그러면 하나님의 빛을 쏘이면 어떤 모습이 되겠는가가 이것이 오늘 본문입니다.
앞으로 우리가 천국에서 하나님의 빛을 영원토록 쐬면서 살게 될 텐데, 이 사람들의 모습이 어떤 모습이냐?
이 사람들의 인격은 땅에서 결정 된 거예요. 인격적 속성은 땅에서 결정된 사람들인데, 그 땅에서 하나님의 빛을 영원토록 쐬면서 살도록 인격이 만들어지고 신앙적, 영적 의미가 결정된 그 사람들이 빛을 쐬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게 어린양의 아내고 예루살렘인데 성도의 공동체를 말하는 것이죠. 어린양의 십자가를 힘입어서 이긴 자들을 말하는 겁니다.
자, 그러면 그 모습이 어떤 모습인가?
11절에 보면 “하나님의 영광이 있어 그 성의 빛이 지극히 귀한 보석 같고 벽옥과 수정 같이 맑더라”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언뜻 보니까 앞서 본 4장이 생각나요.
4장에 보면 “보좌에 앉으신 분이 벽옥 같고 녹보석 같고 무지개 같고 홍보석 같다.” 이렇게 표현을 했습니다.
근데 그 빛은 하나님 자신의 영광의 빛이시고, 여기서 말하는 빛은 하나님 자신이 아니에요.
하늘에 올라간 성도들의 공동체, 빛의 나라에 새로 들어온 초짜들입니다.
그런데 그 모임에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성에 빛이 가득합니다. 그런데 똑같이 보석 같고 벽옥 같고 수정 같이 맑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뭘 말하는 것이죠?
영광은 언제나 추상적일 수 있지만 ‘1등이다, 으뜸이다’ 이렇게 생각하시면 영광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의미를 붙잡을 수 있어요.
으뜸이 된다는 것은 많은 것들 중에 최고라는 것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의 영광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이 이 세상을 지으실 때에 보시기에 좋게 지으셨습니다. 그걸 기준으로 볼 때에 이 세상에 좋은 것들이 엄청나게 많지 않습니까?
천국에도 천사들도 좋고 다 좋지 않아요? 그리고 이 땅에도 하나님 보시기에 좋게 만드셨잖아요. 이 모든 것들 중에 제일 좋은, 보기만 해도 너무 좋은 분, 으뜸이신 분이 하나님이라는 거예요. 이게 바로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겁니다.
돈이 얼마나 좋습니까? 금은보화가 얼마나 좋습니까? 금이 집안에 가득 들어있다고 생각해보세요. 얼마나 좋습니까? 좋은 것이 너무너무 많아요.
대통령 되는 것이 좋고, 왕 되는 것이 좋고, 1등하는 것이 좋고, 서울대 수석 입학 생각만 해도 너무 좋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것은 그 좋은 것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으뜸이라는 겁니다.
이 세상 모든 것 중에서 하나님이 으뜸이라는 거예요.
그런데 그 하나님의 영광이 이 성도들의 모임인 새 예루살렘 속에 가득합니다.
이게 뭘 말하는 겁니까? 어떤 사람들입니까?
그 다음에 나오는 것이 이 성에는 열두 문이 있다는 거예요.
문이라는 것이 뭘 말하는 것이죠?
서로 다른 두 공간을 나누어 놓는 것이 문입니다.
그래서 이 문이라는 것은 성도들의 모임이 달랐다는 거예요.
어떤 사람들이 하늘로 올라와서 새 예루살렘이라고 비유되는 공동체에 속할 수 있느냐?
다른 사람들이었다는 겁니다.
어떻게 달라요? 남녀가 다른 것처럼, 노소가 다른 것처럼, 빈부가 다른 것처럼 그렇게 다른 것이 아니었다는 겁니다. 하나님의 영광에서 달랐다는 겁니다.
하나님의 영광에서 달랐는데, 그 다르다는 내용이 뭡니까?
오늘 보면 열두 문에 열두 지파의 이름이 쓰여 있다고 그랬어요.
열두 지파는 선택 받은 백성을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영광이 하나님 자신은 아닌데도, 하나님에게서 나오는 빛이 성도들의 모임 안에 가득합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이냐?
구분된 사람들이에요. 이 세상에서 다른 사람들과 구분되었어요.
그 구분의 내용이 뭐냐?
선택입니다. 선택을 받아서 구분됐어요.
그러면 선택을 받았다는 것이 뭘 의미하는 거죠?
나도 선택해야 한다는 그런 뜻을 말하는 겁니다.
나는 선택받았는데, 내가 하는 짓이 세상 사람들과 똑같다면 그건 선택받은 것이 아니에요.
나를 선택하신 이유는 나도 뭔가를 선택해야 하기 때문에 선택하신 겁니다.
그러면 선택받은 사람으로서 뭘 선택해야 하는 겁니까?
빛을 선택해야 하는 거예요.
마치 ‘마루 밑에도 볕들 날 있다. 쥐구멍에도 볕들 날 있다. 9년 장마에 볕들 날을 기다린다.’ 이렇게 말하는 것처럼 빛을 쏘이게 되면 기쁨이 주어지는 것을 의미하는 겁니다.
하나님에 의해서 선택을 받은 자들이 선택 받은 자로써 나도 뭔가를 선택해야 하는데, 빛을 선택하는 거예요.
‘돈의 빛을 쐬어서 기쁠 것인가? 이 세상 경쟁에서 1등 함으로써 그 빛을 쐬어서 기쁠 것인가? 보화의 빛을 쐬어서 기쁠 것인가? 대통령이라는 자리의 빛을 쐬어서 기쁠 것인가?’
선택받은 사람들에게 요구 되는 빛은 뭡니까?
하나님의 빛이에요. 하나님의 빛으로 기쁠 것을 선택하는 자들이 바로 선민이라는 겁니다.
그 뜻을 말하는 거예요. 하나님은 아닌데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합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들이 기쁘기 위해서 행복하기 위해서 오직 하나님의 빛을 선택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빛을 쐬면 변화가 일어나는 거예요. 하나님의 빛을 이길 빛은 없습니다.
돈이 없어서 돈 빛이 비치지 않아도, 건강이 없어서 건강 빛이 비치지 않아도, 하나님의 빛을 쐬면 변화가 일어나는데, 그것이 주님께서 요14:27절에서 말씀하신 “내가 주는 평강은 세상이 주는 평강과 같이 아니하다.” 샬롬의 마음 상태로 되는 거예요.
내가 치료하는 광선을 발하리니 우울하고 걱정하고 근심하고 염려하고 있던 사람의 마음에 하나님의 영광의 빛이 쐬면 변화가 일어나는 겁니다. 평강의 변화가 일어나는 거예요.
그러면 이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았기에 하늘나라에서 하나님의 영광의 빛으로 가득 하냐?
14절에 “그 성의 성곽에는 열두 기초석이 있고 그 위에는 어린양의 열두 사도의 열두 이름이 있더라”
성곽에 열두 기초석이 있는데 거기에 열두 사도의 이름이 있었다는 거예요.
그런데 어린양의 열두 사도라고 이야기합니다.
열두 사도는 뭐 하는 사람들입니까?
어린양이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하고 승천하신 사건이 열두 명의 마음속에서 현재의 사건으로 돼버렸습니다. 그 열두 명이 나가서 각자가 열두 명에게 어린양의 십자가 사건을 현재의 사건으로 전했습니다. 그들이 또 다른 열두 명에게 어린 양의 십자가 사건을 오늘의 사건, 현재의 사건으로 전했습니다. 그러니까 열두 사도에 의해서 시작된 어린양 되신 주님의 십자가 사건의 현재화가 그 마음속에서 일어났던 사람들, 그럼으로써 하나님을 선택할 수 있었던 거예요.
왜냐하면 열두 사도의 마음을 통해서 그대로 물려받게 된 현재화된 십자가 사건이 지금 나한테 일으키는 역사는 이 세상 빛인 돈의 빛, 보화의 빛, 높은 고관대작의 자리의 빛, 형통의 빛, 성공의 빛, 이 땅에서 일어나는 모든 빛에 대해서 등 돌리게 만들고 하나님의 빛을 선택하게 만드는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땅에서 열두 사도를 통해서 십자가 사건을 현재의 사건으로 받아들이는 거예요.
오늘도 현재의 사건이고 내일도 현재의 사건이고 모레도 현재의 사건이고 이전에도 현재의 사건이었어요. 그렇게 현재의 사건으로 받아들인 사람들이 그걸 받아들임을 통해서 ‘나는 하나님의 빛만을 선택하겠습니다.’라고 선택을 하는 것이 믿음이고, 그렇게 하나님의 빛을 선택하면서 이 땅에 사는 동안에 그 빛에 의해서 평강을 유지하며 살았던 사람들이 올라왔을 때에 이제 육체가 다 없어지고, 육체에 대한 환경들이 다 사라지고 그냥 그들도 빛 덩어리가 된다는 겁니다. 하나님은 아닌데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는 그 빛과 똑같은 빛을 내는 자들로 존재한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천사들이 우리를 부러워하지요.
주님이 하나님의 독생자로서 하나님아버지의 빛이 그대로 드러나는 삶을 공생애에서 사시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이것이 육체로 가려져 있으니까 드러나긴 드러나도 믿음이 없는 자는 못 보는 건데, 이제는 이런 육체가 다 없어져서 영의 몸을 입게 되면서 하나님의 영광의 빛이 그대로 다 드러나는 겁니다.
아마 여기 이야기가 나오지는 않았지만 지옥에 가는 자들은 사탄과 짐승에게서 나타나는 고통의 어두움이 그들에게 그대로 투영될 겁니다. 불 못에서 사탄이 괴로운 만큼 괴롭고, 두 짐승이 괴로운 만큼 괴로울 거예요. 똑같이 전이되는 거예요. 살아있는 동안에도 그런 지옥불이 앞당겨져서 마음에 생긴 것이 바로 화병 아니겠습니까? 근심과 걱정이고 원망이고 불평이고 이게 다 지옥의 기운들이 앞당겨져 있는 것이지요.
자, 여기서 재미있는 표현이 있어요.
16절에 “그 성은 네모가 반듯하여 길이와 너비가 같은지라 그 갈대자로 그 성을 측량하니 만 이천 스다디온이요 길이와 너비와 높이가 같더라”
금으로 된 갈대 자로 길이를 쟀는데 그 성이 정방형이라고 해요.
정방형이라고 하는 것은 회막 안에 지성소가 정방형이고 성전 안에 지성소가 정방형이었어요. 회막 안에서는 10x10 규빗이고, 솔로몬 성전 안에서의 지성소는 20x20 규빗이었는데, 여기서는 만 이천 스다디온이라고 하는데 10이라는 숫자가 계속 반복됩니다.
만 이천 스다디온은 킬로미터로 환산하면 2,200km입니다. 어마어마하죠.
실제로 이 측량한 대로의 크기를 생각하면 그 크기가 미국 본토의 3/4 정도 된답니다.
그게 천국에서 우리가 살 나라인데, 좀 작지 않아요?
그리고 이게 공간이 아니라 영의 세계니까.
만 이천 스다디온 이라는 것이 사도 요한에게 있어서 어마어마한 규모 아니겠습니까?
그걸 나타내는 것이죠. 한정되어 있는 성도들의 모임을 성으로 비유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144 규빗이라는 것도 12x12 잖아요.
그러므로 12라는 것이 뭘 뜻하는 겁니까?
구약의 12지파와 신약의 12사도입니다. 하나님의 선택의 사랑을 의미합니다.
선택의 사랑에 의한 의도와 그 사랑에서 나오는 뜻을 의미하는 것이죠.
하나님의 선택하시는 사랑의 의도와 사랑의 정확한 계산과 뜻을 따라서 이 성도의 모임이 이루어졌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서 측정한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건축 재료는 여러분이 읽어 보세요. 18~21절에 “성벽은 벽옥으로 되어있고 ... 열두 문이 진주로 되어 있대요.”
미국의 3/4 만큼의 크기의 나라에 열두 문이 있는데 그 문이 얼마나 크겠습니까?
그 열두 문이 진주로 되어있어요. 어마어마한 것이죠.
남대문, 동대문, 당나라 때의 수도 장안성의 출입문보다 더 크지 않겠습니까?
미국의 3/4만한 크기가 하나의 성인데, 열두 개의 문이 진주로 되어 있으면…
영적인 세계에서 성도들이 모여 있는 모습을 비유하다보니 얼마나 장엄한지 말로 다 못하겠어요.
그런데 마지막 부분이 재밌어요.
뭐라고 했느냐?
22절에 “성 안에서 내가 성전을 보지 못하였으니 이는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및 어린 양이 그 성전이심이라”
‘그 안에는 성전이 없다.’고 해요.
당연하죠. 이 땅에서 성전이 있는 이유는 영이신 하나님과 육체를 입고 있는 인간들이 만나기 위해서 성전이 필요한 것인데, 이제 성영신 됐잖아요. 모든 육체를 입고 살던 인간의 인격들이 영으로 된 몸체를 입었으니까 성전이 필요 없는 것이죠.
23절에 “그 성은 해나 달의 비침이 쓸 데 없으니 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비치고 어린양이 그 등불이 되심이라”
이렇게 해나 달의 비침이 쓸데가 없는 하나님의 영광이 비치고, 어린양이 등불이 되어서 비치는 나라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24절에서 “만국이 그 빛 가운데로 다니고 땅의 왕들이 자기 영광을 가지고 그리로 들어가리라”라고 했어요.
여기서 해석의 문제가 발생합니다.
아니 지금 만국은 다 없어지고 땅도 다 없어진 상태에서 새 하늘과 새 땅을 이야기하고, 어린 양의 신부되는 성도들의 공동체인 예루살렘 성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데, 만국이 그 빛 가운데로 들어간다는 것이 무슨 말입니까?
그래서 별의별 해괴한 추측과 해석들이 다 나와요.
지금 21장에서 말하는 새 예루살렘 성은 만국이 그 빛 가운데로 들어가고 왕들이 자기 영광을 가지고 그리로 들어간다는 얘기를 들어보니까 영원한 나라는 아직 아니라는 얘기까지 나와요. 그런 게 아니에요. 좀 문학적인 상상력이 동원되었다는 생각은 못 합니까?
이것도 그 영원한 나라인 예루살렘 성, 성도들의 공동체인 그 모습을 사도 요한의 언어로 표현을 하는 거예요.
‘만국이 그 빛 가운데로 다니고 땅의 왕들이 자기 영광을 가지고 그리로 들어가리라’는 이야기는 성도의 공동체 안에 비치는 하나님의 영광의 빛, 마음속에 하나님을 모셨으니까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속에서 하나님이 으뜸이 되셔서 영광을 받으시는 것이고, 영광의 빛이 머물게 된 것이죠. 땅에서 그렇게 인격이 신앙적으로 형성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을 선택해서 으뜸이신 하나님이 마음에 들어와 계셨던 것이죠.
그래서 하나님이 마음에서 1등이 되셨는데 이게 진짜 땅에서는 우리가 하나님을 선택한 거예요. 이걸 믿음이라고 말하죠.
그런데 하늘나라에 올라가서 하나님의 빛을 보니까 그 빛이 어떤 빛이냐 하면, 그 빛을 진짜로 쐬면 만국이 그 빛 가운데로 다닐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무슨 이야기입니까?
만국은 만국 백성들을 말하는 것인데, 만국 백성들이 이 땅에서 얼마나 좋은 것들의 빛을 쐬려고 노력하면서 살았습니까?
말씀 드린 대로 보화의 빛, 돈의 빛, 높은 자리의 빛, 1등의 빛, 건강의 빛, 인기의 빛, 그런 빛이 쏘일 때 마음이 기쁘잖아요. 햇빛이 쐴 때 따뜻한 것처럼 빛이 쐴 때 기쁘잖아요.
만국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좋다는 온갖 빛을 쫓아다녔는데, 내가 진짜 하늘나라에서 성도들이 쐬고 있는 하나님의 영광의 빛을 실제로 이 계시를 통해서 보니까, 만국 사람들 중에 그 누구도 하나님의 빛을 알았더라면 보화의 빛을 향해 나갈 사람이 없고, 돈의 빛을 향해 나갈 사람이 없고, 이 세상에서 1등하고 경쟁해서 잘 해보겠다고, 성공하고 형통해 보겠다고, 그 빛을 쫓아갈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땅에서 희망이 뭐예요?
‘돈을 더 많이 벌 때가 오겠지, 높이 올라갈 때가 오겠지, 지금의 문제가 해결 될 때가 오겠지.’ 이게 다 빛이에요. 희망이라는 것이 빛을 쫓아가는 것인데, 누구나 만국 중에서 빛을 쫓아가는 것이 사람의 특성이고 본성인데, 빛을 쫓아가는 사람 중에 그 누구도 하나님의 빛을 보고 나면 이리로 들어오지 않을 사람이 없다는 거예요.
그리고 ‘왕들이 자기의 영광을 가지고 들어온다.’
이 말은 무슨 의미입니까?
왕들은 이 세상에서 만국에 사는 사람들이 추구하는 모든 빛이 그에게 다 쏘여지고 있는 상태입니다. 그런데 왕들도 하나님의 빛을 봤다면 자기에게 쏟아지고 있는 세상의 모든 빛, 모든 영광을 다 가지고도 하나님의 빛 앞에 비교해보면 아무것도 아니라서 그 영광을 가지고도 하나도 만족됨이 없어서 하나님의 빛을 쫓아서 들어온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말한 것 아닙니까?
그 말을 들었어야죠.
“아그립바 왕이여! 베스도 총독이여! 이 세상에서는 당신들이 영광을 가지고 있고, 모든 사람들이 당신들처럼 되어서 그런 빛을 쐬기를 바라고 있지만, 당신이 보기에 내가 포박되어 있고 가진 것도 없고 남루한 모습이라서 불쌍해 보일지 모르지만, 나처럼 되세요.”라고 말했던 사도 바울의 이야기와 똑같은 이야기입니다.
그 영광을 가지고도 하나님의 빛으로 들어오지 않으면 못 견디게 되어 있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는 뭐예요?
우리는 뭘 위해서 살아야 됩니까? 그런 왕들도 들어가고 만국의 백성들이 그리로 찾아들어올 수밖에 없는 그런 빛이 우리에게 약속되어 있고, 우리가 어린양 십자가를 붙잡고 이 세상의 빛에 대해서 죽어버리면, 세상에 빛을 향해 가려는 마음을 꺼버리면, 하늘빛이 비춰져서 맛을 보고 있는데 이 땅에서 뭘 얻겠고 뭘 추구하며 살겠냐는 말입니다.
이 땅에서 우리가 추구할 것은 뭡니까?
하나님의 빛이 나를 통해서 조금이라도 더 나타나길 원해서 사는 것이지, 내가 이 땅에서 돈 빛을 쐬겠다고 쫓아가겠습니까? 경쟁에서 1등 하겠다고 쫓아가겠습니까? 뭘 향해서 쫓아가겠습니까? 이 세상에서 가질 수 있는 모든 영광을 다 가진 왕들이 그것을 갖고서도 들어올 수 밖에 없는 그런 하늘의 빛이 내게 비추고 있고, 비출 수 있는데.
어떻게 비춰요?
어린양 십자가에서 세상 빛에 대해서 죽으면 됩니다.
그리고 그 빛에 의해서 내 마음의 평강과 기쁨이 유지되는 것을 맛 볼 수 있는데, 이 땅에서 뭘 얻겠다고 살겠느냐는 겁니다.
그 이야기를 하면서 27절에서 마지막 마무리를 짓는 거예요.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가지 못하되 오직 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만 들어가리라”
생명책에 기록 된 자들이 누구라고요?
어린양을 통해서만 기쁨을 얻겠다고 하는 자들이 기록된 책이 생명책입니다.
갑자기 이 땅 이야기가 나온 이유는 뭡니까?
하늘나라의 빛이 이런 빛이니까 이 땅에 살고 있는 동안에 어떻게 살아야 되겠느냐는 것을 우리로 스스로 답하도록 유도하는 것이고, 땅에서 이러이러한 자들은 못 들어간다는 이야기를 하고 계시는 것이지요.
아! 우리가 바로 그런 사람입니다. 여러분!
기도하십시다.
하나님아버지!
이 하나님의 영광의 빛, 모든 만물의 좋은 것들을 다 모아 놨을 때에 그 중에서 으뜸 되시는 하나님의 빛을 오늘도 어린양의 죽으심에 연합함으로 쐬면서 평강을 누리며 살아가다가 하늘나라에서 육신 벗고 성영신하여서 영원토록 이 찬란한 빛에 쐬면서 살아가는 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첫댓글 잠시 잠깐 후면 오실 이가 오시는데 슬기로운 다섯 처녀들과 같이 주님 맞을 준비를, 그 나라에 합당한 자로 세움받을 수 있게 어린양 십자가에 연합함으로 성영신하여 찬란한 빛 가운데 영원히 영원히 살게 하옵소서.
아멘. 실재의 빛, 하나님나라~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