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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복음의 의미 안에 들어있는 0과 1이라는 디지털 기호를 코드로 성경말씀을 풀어내는
태승철의 오늘의 번제 <선민의 행동원리, 부화뇌동>의 줄거리:
부화뇌동(附和雷同)이란 아시다시피 우레 소리에 맞춰 함께한다는 뜻으로 자기 자신의 뚜렷한 주관과 소신 없이 그저 남이 하는 대로 따라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와 비슷한 개념으로는 개인의 생각이 사라지는 군중심리를 꼽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부화뇌동이라는 글자 자체의 의미는 군중심리 등과는 전혀 다른 뜻으로 해석 될 수도 있습니다. 선민은 부화뇌동하여 행동하는 자들입니다. 자기 소신과 주관으로 초지일관하는 자들이 결코 아닙니다.
선민의 행동원리, 부화뇌동
(출23:1~19)
1. 너는 거짓된 풍설을 퍼뜨리지 말며 악인과 연합하여 위증하는 증인이 되지 말며
2. 다수를 따라 악을 행하지 말며 송사에 다수를 따라 부당한 증언을 하지 말며
3. 가난한 자의 송사라고 해서 편벽되이 두둔하지 말지니라
4. 네가 만일 네 원수의 길 잃은 소나 나귀를 보거든 반드시 그 사람에게로 돌릴지며
5. 네가 만일 너를 미워하는 자의 나귀가 짐을 싣고 엎드러짐을 보거든 그것을 버려두지 말고 그것을 도와 그 짐을 부릴지니라
6. 너는 가난한 자의 송사라고 정의를 굽게 하지 말며
7. 거짓 일을 멀리 하며 무죄한 자와 의로운 자를 죽이지 말라 나는 악인을 의롭다 하지 아니하겠노라
8. 너는 뇌물을 받지 말라 뇌물은 밝은 자의 눈을 어둡게 하고 의로운 자의 말을 굽게 하느니라
9. 너는 이방 나그네를 압제하지 말라 너희가 애굽 땅에서 나그네 되었었은즉 나그네의 사정을 아느니라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말씀 중심으로 <선민의 행동원리, 부화뇌동>이라는 제목의 하나님말씀 증거 합니다.
‘선민의 행동원리, 부화뇌동’
우리가 지금 같이 읽어서 언뜻 본문의 의미를 감지할 수 있는데, 본문에서 느낄 수 있는 그 의미와는 전혀 상반된 제목 같아 보입니다.
풍설을 퍼뜨리지 말며, 다수를 따라서 거짓 증언을 하지 말라는 이야기들이 부화뇌동과는 반대 입장에 서 있는 말씀 같아 보이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 선민이 지켜야 될 규범들을 말씀해 주고 계시는데 하나하나 기억하면서 문자적 규범들을 따라 사는 것은 어렵습니다.
예를 들어 다수의 의견을 좇아서 행동하거나 거짓증언을 하지 말라고 하셨다면 그 말씀을 기억하면서 행동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참 어렵고 불가능하기까지 합니다. 한두 가지가 아니기 때문에 행동 할 때마다 그 모든 것들을 다 기억할 수도 없지만, 마5:18절에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라고 주님이 말씀하신 대로 우리에게서 다 일어나야 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래서 이 하나님의 율법과 규례와 율례들을 우리들이 대하는 마음가짐은 그것을 열매로 보는 것입니다. 한 나무에 수 백, 수천의 열매가 맺혀질 수 있지만 줄기와 뿌리는 하나인 것처럼 어떻게 나무가 될 것이냐에 우리의 초점을 맞춰서 말씀을 본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볼 때에 오늘도 이 말씀들이 맥락이 끊어지는 듯이 보이지만 이 모든 말씀을 관통할 수 있는 단어가 오늘 제목의 ‘부화뇌동’이라고 하는 행동원리를 펼쳐서 이야기해주고 계신 것입니다. 부화뇌동의 원리에 따라 행동하라는 말씀을 하시며 그에 따른 여러 가지 예를 들어 주셨습니다.
‘부화뇌동(附和雷同)’의 뜻은 붙을 부(附), 합할 화(和), 우레 뇌(雷), 같을 동(同)으로서, 우렛소리에 맞춰서 함께 한다는 뜻으로, 우렛소리에 천지만물이 진동하고 동화되는 것입니다.
우렛소리가 울려 퍼질 때에 내 귀와 마음까지도 우르르 꽝꽝하면서 진동하고, 모든 사물이 다 흔들리는 듯이 우렛소리와 붙어서 하나로 움직이는 것이 부화뇌동입니다.
비유적으로 자신의 뚜렷한 소신이 없이 그저 남을 따라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점심시간에 뭘 먹을까하고 있는데, 컴퓨터 화면에 닭고기 선전이 떠 있는 것을 보고 그걸 먹어야겠다고 가는데 김 대리를 만났습니다. 김 대리는 뭘 먹을 것이냐고 하니 짜장면을 먹는다고 해서 짜장면을 먹기로 하는데 이것이 바로 부화뇌동으로, 처음의 결정을 일관되게 밀고 나가지를 못하고 마음이 바뀌어서 짜장면을 먹는 것이고, 강남의 엄마들이 부화뇌동하고 있다면 너무나 많은 학원 정보가 홍수처럼 쏟아지는데 어느 학원이 좋은 학원이고 어느 선생이 수학을 잘 가르치느냐면서 부화뇌동한다는 것입니다.
사실은 ‘부화뇌동’이라는 말은 ‘뇌동’이라는 말에 ‘부화’라는 말이 붙은 것이라고 합니다.
이런 식으로 생각하면 오늘 본문의 말씀은 전혀 반대의 의미를 지니고 있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지만 일단 그렇게 의심을 가져봅니다.
언뜻 보기에 선민의 행위가 다수를 따라서 위증하지 않고 악을 행하지 않고 내 소신껏 살아야 하는 것인데, 부화뇌동이 왜 행동원리냐는 의문을 가지고 생각해보면 부화뇌동의 긍정적 측면도 있다는 것이고, 부화뇌동의 고정관념을 좀 깨뜨려가자는 것입니다.
특별히 내가 비즈니스를 하는 주체의 입장에 있을 때에는, 마케팅전략에 있어서 부화뇌동처럼 도움이 되는 것이 없습니다. 특히 중국에서 비즈니스를 하려면 중국 마케팅의 핵심 키워드가 바로 부화뇌동이라고 합니다.
중국에서는 사람들이 일단 모이기 시작하면 그 다음날에는 열광적으로 몰려드는데 몰려드는 열기가 다른 나라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사람이 많다보니 독창적으로 행동하기보다는 많은 사람과 덩달아 묻어가는 습성이 아주 강하다고 합니다. 부동산투자 등에서 중국 사람들이 부화뇌동하며 몰려다니는 것은 세계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광경이라고 합니다. 비즈니스 측면에서는 사람들이 부화뇌동해줘야 하는 것이죠.
사실 엄밀하게 말하면 삼성 스마트폰이 좋다고 하는 것도 부화뇌동 아닙니까? 저는 지금 LG스마트폰을 쓰는데 제 수준에서는 비싼 삼성이나 애플의 것을 살 필요가 없는데, 스마트폰을 개통하기 위해 대화하다보면 한국 사람들 십중팔구가 삼성 것을 찾고 그 다음으로는 애플 것을 찾고, 비즈니스를 하는 것도 아닌데 일반 주부들까지 스마트폰은 삼성 것만 찾는다는데 이게 부화뇌동이 아니면 무엇이겠습니까? 이렇게 살아가는데 다수가 법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이러한 부화뇌동의 행동의 패턴이 선민의 행동원리가 될 수 있겠습니까?
부화뇌동이라는 말에 대한 선입견을 버리고, 성경적으로 부화뇌동을 글자를 뜯어서 이해해봅니다. 붙을 부(附), 합할 화(和), 우레 뇌(雷), 같을 동(同)으로, 붙어서 합하여 하나가 된다는 것입니다.
이 말을 우리가 출애굽기에서 살펴본 대로 이해해 보면 출19:16절에 “셋째 날 아침에 우레와 번개와 빽빽한 구름이 산 위에 있고 나팔 소리가 매우 크게 들리니 진중에 있는 모든 백성이 다 떨더라”라고 나옵니다.
이것이 지금 부화뇌동의 현상이 그대로 일어난 것으로 구름이 있고 우레는 구름과 구름이 부딪치며 전기가 일어나는 소리로 구름으로부터 우레와 번개가 땅으로 쏟아져 내려왔고 진중에 있는 모든 백성이 떱니다. 이것이 바로 부화뇌동의 현상으로 우렛소리에 천하 만물이 함께 진동하고 함께 움직인다는 것입니다.
선민에게는 이 부화뇌동과 똑같은 현상이 일어나는데 이 땅에서 들리는 그 어떤 소리에도 움직이지 말고, 오직 구름 위의 하늘에서부터 들리는 소리에 따라서 움직이라는 이야기가 됩니다. 성경적으로 부화뇌동이라는 한자를 해석해 나가다보면, 그 말이 선민에게는 행동원리가 되면서 이 땅의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움직인다는 뜻이 아니라, 문자 그대로 구름에서부터 쏟아져 내려오는 우렛소리에 따라서 움직이게 된다는 것을 뜻한다는 것입니다.
“마른하늘에 날벼락”이라는 말이 있듯이 선민에게는 맑은 하늘이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이 땅에서 살고 있는 동안에는 언제나 구름이 떠 있습니다. 이 구름이 떠 있다고 하는 것은 하늘과 땅을 구분 짓는다는 것을 뜻으로 주님께서 “하늘에 계신 아버지”라고 부르십니다.
구름 아래 있다는 것은 이 세상이 죄 아래에 있음을 뜻하므로 이 세상에는 밝음과 맑음이 없다는 것이고 이 땅에 살고 있는 동안에는 맑은 하늘이라는 것이 존재할 수가 없으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구름 위는 맑기 때문에 우리 마음이 구름 위로 올라가서 그 맑음을 경험하면서 이 몸이 이 땅을 살 때에 맑은 삶, 밝은 빛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이 땅은 언제나 구름이 덮여있기 때문에 이 땅에서 우리가 몸으로 움직일 때에는, 구름으로부터 들려오는 우렛소리인 하나님의 음성만을 따라서 움직이는 것이 선민입니다.
제가 사는 강릉의 아파트가 전투비행장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습니다. 여름에 문을 열어놓으면 정말 천둥치는 소리가 들립니다. 전투기들이 이륙할 때 엔진소리가 어마어마합니다. 그렇게 하늘에서 여러 가지 소리가 들립니다만, 옛날에는 하늘에서 들리는 소리가 우렛소리 말고는 다른 것이 있었을까요?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는 천둥소리와 비견될만한 것이 아닐 것입니다. 그 옛날 모세가 성경을 손으로 쓸 때로 돌아가 보면, 하늘에서 들리는 우렛소리를 따라 내 마음이 진동해서 내 행동이 그것을 따라 나타난다는 것은 부화뇌동이 선민의 유일한 행동원리, 행동패턴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원래 알고 있던 부화뇌동의 뜻인 덩달아 다른 사람의 뜻에 맞추어서 움직이게 된다는 것은 성경적으로 말하면 부화지동(附和地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늘에서 들리는 우렛소리가 아니라 땅에서 들리는 소리에 맞춰서 행동하는 것을 오늘 본문이 금하신 것입니다. 부화뇌동하면서 살뿐, 부화지동하면서 행동의 이유가 땅에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땅에 의해서 자극되고, 땅에 의해서 진동하고, 땅에 의해 동화되어서 움직이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런 질문을 할 수 있습니다.
“구름과 우렛소리가 꼭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어떻게 확증할 수 있느냐?”라고 질문할 수 있지요.
성경적인 증언들이 있습니다. 변화 산에서 예수님이 변화하실 때에 세 제자들에게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는 현상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마17:5절에 “말할 때에 홀연히 빛난 구름이 그들을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시는지라”라고 하십니다. 우레와 번개는 구름이 있어야 하고 그 구름 속에서 말씀이 들려옵니다.
또, 계4:5절에 “보좌로부터 번개와 음성과 우렛소리가 나고…”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이 앉아계신 보좌로부터 번개와 음성과 우렛소리가 났다고 하는데, 음성이 곧 우렛소리로 하나님의 말씀이 우렛소리로 들린다는 것입니다.
우레가 칠 때에 천하 만물이 우렛소리에 동화되어서 진동하는 것처럼 우리는 오직 하늘에서 들리는 우렛소리에 비유되는 하나님의 음성에만 진동돼서 움직여야 한다는 것으로 부화뇌동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렇게 살았던 사람의 예로 신약에서는 누구입니까?
대표적으로 오순절 이후에 베드로와 요한이 예수님을 전하다가 산헤드린공회에 붙잡혀서 예수님의 이름을 다시는 전하지 말라는 협박을 당하게 될 때에, 베드로가 행4:18-20절에 “그들을 불러 경고하여 도무지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 하니 / 베드로와 요한이 대답하여 이르되 하나님 앞에서 너희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하니”라고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너희 말을 듣는 것과 하나님의 말씀 중에 어느 말씀을 듣고 움직이겠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늘에서 들리는 우렛소리입니다. 베드로는 지금 산헤드린공회 회원들에게 “나는 부화뇌동할 것이다. 더 이상 나를 말리지 말라”고 한 것이고, 산헤드린공회의 회원들은 “전하지 말라”고 하는데 이것이 오늘 본문에 나타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2절의 “다수를 따라 악을 행하지 말며 송사에 다수를 따라 부당한 증언을 하지 말며”라고 하시는 것이 바로 이 얘기를 하시는 것입니다.
산헤드린공회는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기관으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을 때에 만장일치였습니다. 선민이 만장일치로 육체를 입고 오신 하나님을 못 박아 죽인 것으로 이 땅에 의해서 자극을 받은 것입니다.
또 다른 부화뇌동으로 오직 하늘의 소리만 듣고 움직인 대표적인 예로 구약에서 다윗이 있습니다. 다윗이 사무엘상 24장에서 사울왕의 손을 피해 도망 다니고 있을 때에 동굴에 깊이 들어가 있었는데, 사울이 다윗을 쫓다가 다윗이 있는 동굴 안에 들어와서 생리적인 현상을 해결 할 때에, 삼상24:6-7절에 “자기 사람들에게 이르되 내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내 주를 치는 것은 여호와께서 금하시는 것이니 그는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됨이니라 하고 / 다윗이 이 말로 자기 사람들을 금하여 사울을 해하지 못하게 하니라 사울이 일어나 굴에서 나가 자기 길을 가니라”라고 합니다.
다윗의 사람들은 지금이 사울을 죽일 수 있는 찬스라고 합니다. 지금 일을 보는 중이기 때문에 사울은 움직일 수가 없습니다. 다수가 만장일치로 결정하고 다윗에게 죽이자고 하는데 듣지 않고 부화뇌동합니다. 오직 하늘에서 들리는 우렛소리에만 귀를 기울여서 여호와께서 세우신 자를 내가 처단할 수 없다고 부화뇌동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부화뇌동이라는 말을 성경적으로 이해하면서 군중심리와 구분해야 하는데 군중심리는 부화지동으로 땅에 의해서 자극받아 움직이는 것입니다.
1절에 “너는 거짓된 풍설을 퍼뜨리지 말며 악인과 연합하여 위증하는 증인이 되지 말며”라고 하시는데 부화뇌동의 원리에 위반되는 사안들을 말씀하고 계신 것으로 ‘풍문을 듣거나 퍼뜨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내가 입을 열어서 퍼뜨릴 수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부화뇌동해서 하늘 구름 속에서 들리는 우렛소리만 전달하면 되는 것이고, 또 2절의 “다수를 따라 악을 행하지 말며…”라고 하시는데 사람들은 다수가 모이면 그것이 정당한 줄로 압니다만 이단들도 엄청나게 불어나고 있고, 예수님을 죽일 때에도 만장일치로 죽였고 다수에 의해서 마음이 진동합니다. 그 다수가 가는 방향으로 마음이 따라가게 되는 것을 세상에서는 부화뇌동이라고 하는데, 성경적으로는 하늘에서 들리는 우렛소리를 듣지 않고 땅에서의 다수의 음성을 듣고 따라가기 때문에 부화지동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분명히 아세요.
3절에 “가난한 자의 송사라고 해서 편벽되이 두둔하지 말지니라”라고 하시는 것은 가난함이라는 현상에 의해서 마음이 진동하는데 두둔하지 말라는 것이고 참 냉정합니다.
또 6절에 “너는 가난한 자의 송사라고 정의를 굽게 하지 말며”라고 하시며 반대말이 나옵니다. 가난한 자가 힘이 없으니 부자들이 힘을 합해서 몰아내려고 하는데 그렇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것도 부자들과 힘 있는 자들과 권력자들에 의해서 마음이 진동하는 것으로, 하늘에서 들리는 우렛소리 같은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소리에 마음이 진동하지 않고 왜 땅에 있는 말과 땅의 현상과 땅의 사람들과 땅의 형편들에 진동이 되어서 그것을 따라 움직이느냐는 것입니다.
4절에 “네가 만일 네 원수의 길 잃은 소나 나귀를 보거든 반드시 그 사람에게로 돌릴지며”라고 하십니다.
원수의 소나 나귀가 길을 잃었으면 얼마나 고소하고 잘 된 것입니까?
원수가 나의 마음을 진동하는 것입니다. 앞에서는 다수가 긍정적으로 나를 진동시켜 잡아끄는 힘이 있었다면, 원수는 나를 밀치는 방식으로 진동을 일으키는데 밀치지도 말라는 것입니다. 사울과 다윗은 원수였지만 다윗은 사울을 죽이지 않았습니다. 우렛소리를 듣고 부화뇌동했기 때문으로 하늘에서 들리는 우렛소리에 마음이 붙고(附) 합하여(和) 하나(同)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선민의 삶의 윤리입니다.
오늘 여러 가지를 말씀하시다가 안식년과 안식일과 매년 세 번 무교절(유월절), 맥추절(오순절), 수장절(장막절)의 절기 이야기를 하시며 모든 남자는 매년 세 번씩 성전에 가서 여호와께 보이라고 말씀을 하시는데 이것은 같은 맥락의 의미로, 안식년과 안식일과 성전에 가라는 얘기는 구름 위에 계신 하나님께 마음을 드리라는 것으로, 구름 아래에 마음이 머물다가 땅에서 자극을 받아 행동이 나타나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너희 마음은 안식년과 안식일과 절기를 기억하고 성전에 가서 제사 드리는 것을 기억하고, 그 의미를 기억하면서 언제나 세상에 대해서 죽고 마음이 하나님께 붙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과 붙고 합하여 하나가 되어서 이 땅에서는 우렛소리에 비유되는 하나님으로부터 들리는 음성에 진동하며 움직여가야 한다는 이야기를 해주고 계시는 것입니다.
구름 아래에 있기 때문에 이 세상에는 맑음이 없습니다. 맑음이 없다는 것은 기쁨이 없다는 것이고 행복이 없다는 것입니다. 구름에 가린 상태는 상황이 안 좋은 것임을 비유적으로 말합니다. 이 세상 전체가 다 죄 아래에 있습니다. 맑음이라는 것은 구름 위에만 있는 것으로 우리 마음이 구름 위로 올라가야 마음이 맑아지고 밝아지고 빛의 소리를 받아들일 수 있게 되고, 그러면 이 땅에서 나의 행동이 맑음과 밝음의 빛을 따라 행동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의 행동은 마음이 하늘로 올라가게 됨으로써 부화뇌동하여 하늘에서 들리는 우렛소리를 따라 진동이 되어야 합니다.
8절에 “너는 뇌물을 받지 말라 뇌물은 밝은 자의 눈을 어둡게 하고 의로운 자의 말을 굽게 하느니라”고 하십니다.
뇌물을 가지면 뇌물에 끌려갑니다. 부화뇌동이라는 말도 우렛소리에 삼라만상이 진동한다는 의미로 우리 행동은 진동입니다. 우리 마음이 무엇에 붙고 합해서 하나가 되어 같이 움직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원수를 봐서 마음이 원수에게 붙으면 원수와 함께 움직이는 것인데 원수이므로 밀쳐내게 되고, 다수를 믿어서 다수에 마음이 붙으면 그 다수의 나쁜 뜻을 따라 같이 진동하게 되는데 그렇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부화지동해서 이 땅에서 일어나는 현상이나 사건이나 사람에 붙고 합해서 하나가 되어 진동하지 말고, 오직 하늘에서 들리는 우렛소리에 붙고 합해서 하나가 되어 움직이라는 부화뇌동의 삶을 살라는 것이 오늘의 주제인 것입니다.
부화뇌동하는 선민이 될지언정 부화지동하는 비 선민 같은 삶의 양식은 십자가로 끊어내야 하겠습니다. 땅에 대해 죽는 것으로 원수가 땅에 있다면 원수에 대해 죽고, 다수에 의해 만장일치가 되는 땅의 상황에 죽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공생애 때에는 세상은 만장일치로 죄인이었으나 예수님은 혼자 그 다수에 동화되지 않으시고 오히려 그 만장일치가 된 인류를 당신에게로 끌어당기시는데 이러한 패턴을 유지하는 자들이 선민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베드로와 요한이 대답하여 이르되 하나님 앞에서 너희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고 한 것처럼 오직 하늘에서 들리는 우렛소리에 붙고 합해서 하나가 되어 그 소리를 따라 진동하는 행동을 할 수 있게 되기를 같이 기도하십시다.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아버지!
오직 하늘에서 들리는 우렛소리 같은 하나님의 소리에만 감전되듯이 하나가 되어 진동하게 해주시옵소서. 그러기 위해서 이 땅에서 들리는 모든 소리와 이 땅에서 보이는 모든 현상에 대해서 오직 십자가에서 주님과 함께 죽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