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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프리마베라`는 1470년대 말 또는 1480년대 초 (날짜는 다양하다)에 그려진
이탈리아 르네상스 화가, 산드로 보티첼리의 템페라 채색의 대형 패널 그림이다.
이 작품은 세상에서 가장 많이 쓰여지고 가장 논란이 많은 그림들 중의 한 작품으로
그리고 또한 서양 예술에서 가장 인기있는 그림들 중 한 작품으로 묘사되어져 왔다.
이 그림은 정원 속 고전 신화의 단체 형체들을 묘사하고 있다.
하지만 이 특별한 단체가 모여있는 것에 대한 이야기는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
대부분의 비평가들은 이 그림이 봄의 무성한 성장을 바탕으로 한 우화이라는데에는 동의한다.
비록, 많은 이들이 그 당시, 이탈리아 플로렌스의 지성계를 매료시켰던
르네슨스(르네상스) 신플라토니즘 (신 플라톤주의)에 포함시키고 있지만,
정확한 의미에 대한 설명은 다양하다.
주제는 1550년, 이탈리아 플로렌스(피렌체) 바로 외곽의 이탈리아, 빌라 카스텔로에서
이 작품을 보았던 이탈리아 예술 사학자, 조르지오 바잘리에 의해 프리마베라로 처음 묘사되었다.
이 그림은 필연적으로 보티첼리의 다른 초대형 신화 그림, `비너스의 탄생`과 함께 논의 되어지고 있다.
하지만, 현재 두 작품이 한 쌍은 아니라고 알려져 있다.
작품`비너스의 탄생` 또한 이탈리아 플로렌스, 우핏지 박물관에 있다.
두 작품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그림이다.
그리고 이탈리아 르네슨스(르네상스)의 상징이다.
비너스의 탄생은 프리마베라보다 훨씬 더 잘 알려져 있다.
초대형 규모의 고전 신화에 대한 주제에 대한 묘사로써,
두 작품은 거의 고전 고대 이후, 서양 예술에서 유례가 없었다.
비너스의 탄생
산드로 보티첼리
1485년 경
초기 르네상스
캔버스 위에 템페라 채색
172.5 cm (67.9 in) x 278.5 cm (109.6 in)
이탈리아 플로렌스, 우핏지 갤러리 박물관 소장
이 그림의 이력은 확실히 알려지지 않았다. ;
이 작품을 이탈리아, 메디치 가문 중 한명이 그림 요청했을지 모르지만,
이 작품의 작품 요청에 대해 확실히 알려지지는 않았다.
이 작품은 고대 로마 시인, 오비드와 이보다 덜 확실하지만, 루크레티우스의 작품을 포함한
수많은 고전과 르네슨스 문학 자료로부터 영감을 받았다.
그리고 이 작품은 또한 보티첼리가 구성을 고안하는 데 도움을 주었을지 모르는
메디치 가문의 시인, 폴리치아노의 시를 암시하고 있는지 모른다.
1919년 이후부터, 이 작품은 이탈리아 플로렌스(피렌체) 우핏지 갤러리 박물관 소장 작품의 일부였다.
이 그림은 오렌지 나무 숲속에서 여섯의 여성 형태와 두 남성 형태 그리고 하나의 큐피드를 특징으로 하고 있다.
구성의 움직임은 오른쪽에서 왼쪽이다.
따라서 방향을 따라, 인물의 기준 신원은 다음과 같다.:
맨 오른쪽에는,
3월의 매서운 바람, 제피루스가 님프(자연에 대한 작은 신)인 클로리스를 납치해 소유하고 있다.
제피루스는 후에 클로리스와 결혼하고 클로리스는 데이티(신적 존재)로 변한다.;
클로리스는 영원한 생명을 지니는 봄의 여신이 된다.
그리고 클로리스는 땅으로 장미들을 흩뿌리고 있는 것으로 보여지고 있다.
클로리스의 입에서 나오는 꽃들은 클로리스의 변신을 나타내고 있다.
그 옆은 클로리스가 두 번 보여지는 것 아니면,
조각상 같은 꽃의 여신, 플로라의 형태로 다른 형체이다.
중앙에는 (정가운데는 아니지만) 다소, 다른 형체들로부터 뒤로 물러나 있다:
비너스가 서 있다.
붉은 천으로 감싼 여신은 푸른색을 입고 있다.
그 여신 뒤 나무들은 시선을 이끄는 부러진 아치 형태를 형성하고 있다.
여신 위의 공중으로는 눈가리개를 한 큐피드가 왼쪽으로 활을 겨냥하고 있다.
이 그림 왼쪽에는 세 그레이스 여신(아름다움과 우아함의 신)이
세 명의 여성 형태의 단체로 다이애파너스(투명하고 얇은) 흰색 옷을 입고 춤을 추며 손을 합치고 있다.
맨 왼쪽으로는,
머큐리 신이 헬멧을 쓰고 검이 있는 붉은 옷을 입고 있으며,
다소 희미한 회색 구름들을 향해
자신의 카두세우스(신화에 나오는, 뱀 2마리가 올라가고 있는 형상을 하고 있는 지팡이. 전령의 신 헤르메스의 지팡이)
또는, 나무로 된 막대기를 들어올리고 있다.
인물들 사이의 상호작용은 암호적이다.
제피루스와 클로리스는 서로를 보고 있다.
플로라와 비너스는 그림 밖을 보고 있다.
비너스는 관람자의 응시를 되돌려주고 있다.
큐피드는 눈가리개를 하고 있으며.
머큐리는 다른 신들을 등 뒤로 한 채 돌아서 있다.
그리고 구름 위를 바라보고 있다.
중앙의 그레이스는 머큐리 쪽을 보고 있다.
반면, 다른 두 그레이스는 서로를 바라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플로라의 미소는 이 날짜로 된 그림에서 매우 특별하다.
전원 풍경은 정교하다.
이 그림 속에서는 묘사되고 확인된 500종의 식물이 있다.
190종의 다른 꽃들, 그 꽃들 중 적어도 130종은 명확히 확인될 수 있다.
이 그림의 종합적인 모양과 크기는
그 당시에 궁전 장식으로 인기있었던 플란더르의 테피스트리 (직조 그림), 밀레프루어(천가지의 꽃)의 모양, 크기와 유사하다.
이러한 테피스트리 (직조 그림)은 1480년대에 이탈리아 르네슨스(르네상스)의 예술적 발전을 따라가지 못했다.
그리고 이 그림의 구성은 여전히 이런 고딕 양식에 속하는 측면이 있었다.
형체들은 그림 공간 앞을 가로지르는 대략적인 선으로 펼쳐져 있다.
"끈으로 꿴 진주들 처럼 나란히 배치되어 있다."
그림이 고안된 배경에서,
바닥은 대략 시선 높이에 있거나 약간 시선 높이 위에 있다.
인물들이 서 있는 "완만하게 솟아오른 평면"으로 부분적으로 설명한다..
비너스의 두 발은 상당히 다른 여신들의 발보다 더 높다.
비너스가 다른 여신들 뒤에 있음을 보여준다.
비너스는 다른 형체들보더 더 크지는 않지만,
비너스는 같은 규모이다.
머큐리의 검과 클로리스의 손을 다른 형체들과 겹쳐보면,
그들이 각각, 다소 왼쪽의 그레이스와 플로라의 앞에 서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들의 발을 예로 들면, 분명히 그렇지 않을지도 모른다.
이 작품은 그림 공간 뒤로 갈수록 더 작아지지 않아 논쟁이 되어왔다.
확실히 밀레플루어 테피스트리의 특징이다.
비록 이탈리아 예술 사학자, 바잘리가 쓰기를,
다소 이 준연극적 의상이 `로렌조 데 메디치`가 시민 페스티벌(축제)과 경기를 위해
발명한 일종의 가면무도회용으로 고안되었지만,
형체들의 의상은 이 당시 이탈리아, 플로렌스의 드레스 버전(변형)이다.
아마도 확실한 이야기의 결여는 전형적으로 정적인 고딕 우화뿐 아니라,
페전트(의상을 통한 미인 대회)와 타블로 비바(사진들의 상영) 세계와 관련있는 지 모른다.
이 형체에 대한 다양한 해석들이 제시되어 왔다.
하지만, 적어도 한 가지 단계에서,
이 그림이 "세상의 비옥함이 솟구치는 데에 대한 정교한 신화적 우화"라는 것에 일반적으로 동의한다.
보티첼리가 이 그림의 구성과 이 그림이 담으려는 모든 의미를 고안하도록 도왔다고 여겨진다.
왜냐하면, 보티첼리가 가지고 있지 않았을 것 같은 고전 문학과 철학에 대한
깊은 지식을 반영하고 있는 것처럼 이 그림이 나타나기 떄문이다,
일반적으로, 메디치 가문의 시인이자 정치가인 폴리치아노가 이에 관여한 것으로 여겨진다.
비록 `로렌조 데 메디치`가문의 지인이자
르네상스 네오플라토니즘(신 플라톤주의)의 핵심 인물, 이탈리아 학자 겸 카톨릭 성직자인
`마르실리오 피치노` 또한 종종 언급되어지고 있다.
이 그림의 한가지 측면은 오른쪽에서부터 왼쪽으로 판독되어지는 계절, 봄의 진행에 대한 하나의 묘사이다.
초봄의 바람은 땅 위에 불고 성장과 꽃들을 가져온다.
이는 4월의 여신, 비너스가 주관하며,
왼쪽으로는 초기 로마 달력에서 5월의 신, 머큐리와 함께 여름 전, 마지막 구름들을 쫓아버리고 있다.
머큐리는 계절에 대한 연속의 부분일뿐만 아니라,
구름을 쫓아버리는 머큐리는 정원에 대한 경호원으로서 역활을 하고 있다.
부분적으로는 군복 그리고 그림 공간 밖으로 자신이 마주 보고 있는 것으로 설명된다.
고대 로마의 시인, 버질의 시 `아이네이드`에서는 카두세우스를 가지고 하늘을 청소하는 머큐리를 묘사하고 있다.
구름들에 대한 훨씬 더 긍정적인, 네오플라토니스트(신플라톤주의) 관점은
"구름들은
초월적 진실이 보는 이를 파괴하는 것 없이,
보는 이에게 도달할지 모르는 찬란한 빛을 지나는 은혜로운 장막"이라는 것이다.
비너스가 정원 - 오렌지 나무 숲 (메디치의 상징)에 대한 주관을 한다.
그 정원은 또한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의 심판` 속에서 황금 사과가 나온 고전 신화 속, 석양의 신, 헤스페리데스의 정원이다. :
헬레니즘의 그리스인들은 이 황금 사과들이 그들에게 이국적인 감귤류의 과일이었다고 판단했다.
로마 시인, 클라우디안에 따르면, 어떠한 구름들도 거기에서는 허락되지 않았다.
비너스는 미르틀(머틀꽃) 관목의 어두운 잎사귀 앞에 서 있다.
고대 그리스 시인, 헤시오드(헤시오도스)에 따르면,
비너스는 땅의 신,가이아의 아들, 우라누스의 정액이 바다 위에 떨어진 후, 바다에서 태어났다.
비너스는 하나의 조개 속에서 해안으로 오면서, 미르틀(머틀) 꽃으로 자신의 나체를 가렸다.
그래서 그 식물, 미르틀은 여신에게 신성하게 되었다.
비너스는 여기에서 결혼의 여신으로서 특성을 나타내고 있다.
머리는 겸손하게 가린 채 옷을 입고 있다.
마치 결혼한 여자가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낼 때 예상되는 것처럼 말이다.
세 그레이스는 자매이다.
그리고 전통적으로 비너스를 동행한다.
고전 예술(문학은 아니지만)에서, 세 그레이스는 보통, 누드(나체)이다.
그리고 그들은 손을 잡으며, 전형적으로 가만히 서 있다.
하지만, 여기에서 이 묘사는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의 건축가, `레온 바티스타 알베르티`의
자신의 저서, `데 픽투라`(1435) 속에서
이탈리아 정치가, 세네카를 채택하는 묘사와 매우 가깝다.
영국의 예술 사학자,에드가 윈드는
왼쪽에서부터 볼루프타스(쾌락), 카스티타스(순결), 풀크리투도(아름다움)으로서
세 그레이스는 신원을 확인하였다. .
신화 속에서는 다른 이름들이 발견되지만,
라이트보운과 에틀링거와 같은 많은 작가들은
보티첼리의 작품 속, 세 그레이스에 대한 이름을 붙이는 것에는 결코 삼가고 있다.
큐피드의 화살은 가운데 그레이스를 겨냥하고 있다. - 윈드에 따르면, 카스티타스(순결) -
순결에 대한 사랑의 영향은 결혼으로 이끌며, 많은 해석을 그 특징으로 하고 있다.
체스티티(카스티타스- 순결)는 머큐리 쪽을 보고 있다.
그리고 일부 해석들, 특히 실제 개인들로 모델화되었었던 것으로써 이 형체들을 식별하는 해석은
이 그림의 다른 편에 있는 클로리스와 제피루스와 견주는 것으로써 이 커플을 간주하고 있다.
다른 해석으로는,
오른쪽에서, 제피루스에 의해 대표되는 지상의 육체적 사랑이
그 장면을 등진 채 돌아서 있는 그레이스들 중 가운데 여신에 의해 포기되고 있다.
가운데 여신은 큐피드가 그녀에게 표현하는 위협에 무관심한 듯하다.
그녀의 초점은 머큐리에게 있다.
머큐리 자신은 캔버스 너머를 응시하고 있다.
많은 이들이 그 너머에는 프리마베라의 동반 작품 : 팔라스와 켄타우르(켄타우르스)가 걸렸던 캔버스라고 믿는다.
작품,`팔라스와 켄타우르`에서는
"지식을 향한 사랑" (팔라스 에트나에 의해 구현)이 욕정(켄타우르에 의해 상징화)에 대해 승리하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팔라스와 켄타우르(켄타우르스)
산드로 보티첼리
1482년 경
캔버스 위에 유화
205 cm (80.7 in) x 147.5 cm (58 in)
이탈리아 플로렌스, 우핏지 갤러리 박물관 소장
형체들의 기본적인 신원은 현재 널리 합의되었다.
하지만, 과거에는 때때로, 오른쪽의 여신들에게 다른 이름들이 사용되었다.
그것은 일반적인 해석에서 같은 여신에 대한 두 단계에 해당된다.
꽃무늬로 된 드레스를 입은 여신은 제피루스가 쫓는 인물인 플로라와 함께, 프리마베라 (봄의 의인화)로 불렸을지 모른다,
2011년, 한 학자는 중앙의 형체는 비너스가 전혀 아니며 그리스 여신, 페르세포네라고 제시했다.
이 작품의 명백한 의미 이외에,
이탈리아 학자이자 성직자, 마르실리오 피치노는 메디치 가문과 그들의 추종자 사이에 대중화되었던
네오플라토닉(신 플라톤적) 사랑의 이상을 보여주는 하나의 삽화로 해석해왔다.
네오플라토닉(신 플라톤) 철학자들은 비너스를 지상과 신성한 사랑, 모두를 다스린다고 보았다.
그리고 그들은 비너스를 버진 메리 (성모 메리)와 고전적 동등체라고 주장했다.:
성모 메리에 대한 그 당시의 이미지와 유사한 알타(단상) 같은 배경 속에서
비너스가 틀을 이루고 있는 방식에 의해 이런 사실은 추론되어진다.
아마도 관람자를 향하고 있는 비너스의 환영의 손짓은
작품, `어넌시에이션: 성모 영보 대축일 (성모 메리가 지저스 크라이스트를 잉태한 것을 널리 알림)`의 그 당시 그림 속에서
대천사 가브리엘에게 성모 메리가 사용한 손짓과 똑같다.
어넌시에시션 (성모 영보 대축일)
레오나르도 다 빈치
1472년 경
패널 위에 유화
90 cm (35.4 in) x 222 cm (87.4 in)
이탈리아 플로렌스, 우핏지 갤러리 박물관 소장
아마도, 메디치 이름을 연상시키는 말장난에는
메디치 가문의 문장을 연상시키는 오렌지의 황금공, 오른쪽에 로렌초 가문의 월계수 나무들,
그리고 머큐리(불꽃은 머큐리의 정식 특성이다)와 비너스, 모두의 옷 위의 불꽃들을 포함하고 있다.
이것들은 또한 세인트 로렌스(성 로렌스- 이탈리아어로 로렌초)의 특성이다,
머큐리는 의학과 `의사(이탈리아어로 메디치)`의 신이였다.
메디치 가문을 위한 그러한 말장난,
그리고, 작품`비너스와 마스` 속에서
베스푸치 가문이 보티첼리의 신화 그림들 모두에게서 나타난다.
비너스와 마스
산드로 보티첼리
1483년 경
패널 위에 템페라 채색
69 cm (27.1 in) x 173.5 cm (68.3 in)
영국 런던, 내셔널 갤러리 박물관 소장
이 그림에 영향을 주었을지 모르는 매우 많은 문학 출처 중에서 가장 분명한 것은,
1893년 독일 예술 사학자, 에비 바부르크가 이 그림에 대해 자신의 중요한 논문에서 처음 현대에 언급하였다.
이 그림 오른쪽에 있는 단체는 로마시인, 오비드의 `봄의 도래`(파스티, 2권, 5월 2일)의 한 묘사에서 영감을 받았다.
이 묘사에서, 숲의 님프(자연에 대한 작은 신) 클로리스는
어떻게 나신으로의 매력이 첫 봄의 바람, 제파이어를 매혹시켰는지를 이야기하고 있다.
제파이어는 클로리스를 뒤쫓아 클로리스를 강간하자,
꽃들은 그녀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그리고 클로리스는 꽃의 신, `플로라`로 변신하게 된다.
오비드의 작품 속에서, 독자는 "그 때까지 지상은 오직 한 가지의 색깔이었다"라고 읽는다.
클로리스란 이름에서,
그 색깔은 녹색이었음을 추측할 수 있을지 모른다.
- 녹색에 대한 그리스어는 클로로필(녹색 염료)와 같은 단어의 어근인 클로로스(khloros) 이다.
- 그리고 그것이 보티첼리가 제파이어를 푸른-녹색의 색조로 그린 이유이다.
다른 특정 요소들은 이탈리아의 정치가이자 시인 겸 학자, 폴리치아노의 한 시에서 기인했는지 모른다.
폴리치아노의 시, "러스티쿠스"가 1483년 출판되었다,
그리고 이 그림은 일반적으로 1482년 경에 완성된 것으로 알려진다.
일부 학자들은 그 영향력이 뒤바뀌었다고 주장해 왔다.
왜냐하면 일반적으로 폴리치아노가 이 그림 속 우화를 고안하는데 도왔다고 여겨진다는 점을
일부학자들이 염두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이 그림에 대한 또다른 영감은 루크레티우스의 시, "데 레럼 나투라 (사물에 관하여)" 였을 것을 것 같다.
시,"데 레럼 나투라" 는 다음과 같은 구절을 포함하고 있다.
"봄날과 비너스가 오네,, 그리고 비너스의 아이도/
날개를 달고 알리는자, 앞서서 걸어가네/
체파이어의 발자국 위를 세차게..마더 플로라가/
그들 앞 길에 흩부리네..모두를 채우며/
온 색깔과 온 향기들로 훌륭하네....
문헌 자료는 풍부하지만, 대부분은 보티첼리가 직접 알지 못했거나
조언자들이 보티첼리를 위해 준비했을 것이며 시각적 자료는 전혀 다른 문제이다.
하지만, 문학적 의미보다 시각적 의미에서, 그 비전은 어디에서 나온 것입니까?
그것은 천재의 신비입니다.
고대 석관에서, 몇몇 보석과 부조에서, 그리고 아마도 로마 아레틴 도자기의 일부 조각들에서,:
18세기 건축가의 형태 전집과 같이 플로렌스의 공방에서 유통되어진 그 당시 예술가의 고전 유물 드로잉에서:
그런 부족하고 평범한 재료에서,
보티첼리는 예술 전체에서 신체적 아름다움을 가장 개인적으로 불러일이키는 것들 중 하나인,
작품`프리마베라` 중 세 그레이스를 창작했습니다.
(- 영국의 예술 사학자, 케네스 클락)
이 그림의 기원은 불분명하다.
보티첼리는 `시스티네 채플(성당)` 내에 그림을 그리면서, 1481-1482년의 수 개월동안 로마에 머물고 있었다.
최근에는, 제작 날짜가 대체로 이것보다 후이지만, 때론 제작 날짜가 여전히 이전이라고 제시되었다.
생각은 1499년 `로렌초 디 피에르프란체스코 데 메치니` 소장작품 목록의 1975년 발행으로 다소 변하였다.
1499년 목록은
이 작품이 `로렌초 디 피에르프란체스코 데 메치니`와 그의 형제 `지오반니 일 포폴라노의 도시 궁전에
걸려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들은 이탈리아 플로렌스의 실질적 통치자인, 로렌초 데 메치니(로렌초 일 마그니피코)의 사촌들이다.
그리고 그들의 아버지의 이른 사망 후, 그들은 로렌초 데 메치니의 피후견인이었다.
이 작품은 코니스 장식이 된,
받침대, 좌석, 뒷판이 포함된 정교한 가구, 대형 레투치오 위에 걸렸었다.
같은 방에는,
보티첼리의 작품`팔라스와 켄타우르(켄타우르스)`와 `성모와 아이`라는 대형 원형 그림인 톤도가 있었다.
이 톤도는 현재 신원 확인이 되지않고 있다.
하지만, 보티첼리와 특히 연관된 일종의 그림이다.
이 작품은 3점의 그림들 중 180리라라는 가장 높은 가치를 받았다.
1503년의 추가 목록에는 작품,`프리마베라`가 대형 흰색 액자를 가지고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성모와 아이
산드로 보티첼리
1490년 경
패널 위에 템페라 채색
88.9 x 55.9 cm (35 x 22 in.)
미국 메사추세츠주, 하버드 아트 뮤지엄스 소장
1550년 발간된 `보티첼리의 인생`의 초판에서.
조르지오 바사리는 이 그림과 작품,`비너스의 탄생`이 메디치 가문의 시골,`빌라 디 카스텔로`에 걸려있는 것을 보았다고 말했다.
목록이 알려지기 전,
보통, 이 두 작품, 모두는 빌라 가문을 위해 그려졌다고 믿어져 왔다.
아마도 1477년 이 작품이 인수된 직후,
`로렌초 디 피에르프란체스코`가 그림 요청했거나
아마도 `로렌초 디 피에르프란체스코`의 사촌형이자 후견인인 로렌초 데 메치니가
`로렌초 디 피에르프란체스코`에게 주었을 것이다.
다소 이상하게도, 바사리는 두 그림들이 여성 누드를 포함하고 있었다고 말하고 있다.
여기서는 엄밀하 그 경우는 아니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현재 이 그림을 `로렌초 디 피에르프란체스코 데 메디치`의 결혼과 연결시키고 있다.
그림들과 가구는 결혼을 축하하는 선물로써 종종 받았다.
그 결혼은 1482년 7월 19일이었으나,
3월 25일 로렌초 어머니의 죽음 이후 연기되었다.
결혼은 원래 5월로 계획되어 있었다.
최근 그림 날짜는 보티첼리가 로마로부터 돌아온 후인, 1480년대 초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직접적으로 이 결혼과 연결되어 그림 요청되었음을 암시하고 있다.
많은 이들이 지지하는 관점이다.
초기 작품 날짜를 가정하여,
또다른 오랜 이론은 로렌초가 조카,`줄리오 디 줄리아노 데 메디치`(후에 교황이 됨)의 탄생을 축하하기 위해
초상화를 그림 요청했다고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1478년, 줄리오의 아버지이자, 로렌초의 형제인 줄리아노의 암살 후, 그는 마음을 바꿨다.
대신, 로렌초 디 피에르프란체스코의 결혼 선물로써 이 작품을 완성시켰다.
이 초상화에서, 로렌초 디 피에르프란체스코가 머큐리를 위한 모델이었다고 자주 제시되었다.
그리고 그의 신부, 세미라미드가 플로라 (또는 비너스)로 표현되었다.
더 오래된 이론에서는,
이 그림을 1470년대에 놓으면서,
비너스를 위한 모델은 마르코 베스푸치의 아내인, 시모네타 베스푸치였고
또한 대중적인 전설에 따르면,
(때로 머큐리를 위한 모델이었다고 전해지는) 줄리아노 데 메디치의 정부라고 제안되어 왔다.
이러한 신원확인은 대개, 두 명이 1478년에 사망했기 때문에,
1470년대, 초기 날짜 달려있다.
시모네타는 로렌초의 신부, 세미라미드의 이모였다.
이 그림에 대한 많은 해석을 요약하자면,
독일 태생의 예술 사학자, 레오폴드 에틀링거는
"터무니 없는 것으로의 계승 - 지중해의 은총으로 위장한 게르만 `노른` 족과 함께
살해된 `줄리아노 데 메디치`와 그의 사랑하는 `시모네타 베스푸치`를 기억하며 제정된
바그너의 판토마임 - 이란 해석을 포함하고 있다.
이 그림과 작품,`비너스의 탄생`은 이탈리아 카스텔로에서 합쳐졌다.
그 때 이후 두 작품은 함께 있어왔다.
두 작품은 1815년까지 카스텔로에 있었다.
1815년, 우핏지 박물관으로 이전하였다.
1919년까지 몇년 동안,
두 작품은 이탈리아 플로렌스의 또다른 정부 박물관인 갤러리아 델`아카데미아 (아카데미아 갤러리 박물관)에 있었다.
1919년 이후, 이 작품은 이탈리아 플로렌스 우핏지 갤러리 박물관에 걸려있다.
2차 세계 대전의 이탈리아에 대한 작전 동안,
이 그림은 전쟁 폭격으로부터 작품을 보호하기 위해 플로렌스의 남서쪽 약 10마일, 몬테구포니 성으로 이사하였다.
이 작품은 우핏지 갤러리 박물관으로 돌아왔다. 그곳에서 현재까지 있다.
1978년, 이 그림은 복원되었다.
이 작품은 시간의 과정을 거치며 상당히 어두워졌다.
프리마베라
산드로 보티첼리
1480-1485년 사이
초기 르네상스
패널 위에 템페라 채색
203 cm (79.9 in) x: 314 cm (10.3 ft)
이탈리아 플로렌스, 우핏지 갤러리 박물관 소장
https://youtu.be/JFtMgt0nqgU?si=TtZCfpnTgLw8NYbJ
https://youtu.be/6iJJjzwRnLU?si=5vbddRiuoWHyoxxJ
https://youtu.be/rV4tI8GTYEU?si=nCXhFBkjEub5zcg2
https://youtu.be/DtaVAml0WcQ?si=UmqSznvOsufZ_1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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