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간혹 설교를 통해서, 또는 대화를 통해서 다른 사람의 구원을 진단하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이단에 속한 교단이나 그를 따르는 사람들이 구원을 잃을 것이라는 말을 하는 것과 같다.
너무나도 자명한 일이기 때문에 거리낌없이 내뱉는 말일 때도 있다.
그러나 이단 아니라 그보다 더한 경우에도 인간의 구원의 대한 감별은 월권행위이다.
인간으로서는 이단사설에 빠지지 않도록 경고하는 수준을 넘어서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
한발짝 더 나아가서, 현대 기독교에 대한 경고를 함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한국 교회에서도 동일한 현상이 일어나고 있지만, 세계적으로 현대 기독교는 급속히 세속화 되어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세속화가 사회 변화에 '적응'해가는 과정이라고 착각한다. 이런 현상에 대해서 강하게 질타하는 것은 당연하고 필요한 것이지만, 그 과정에서 세속화된 교회에는 구원이 없다고 단정하는 것은 극히 위험한 일이다.
하나님께서 적용하시는 구원의 수준은 각 사람에 따라 다를 수 있다.
많이 배운 사람과 무식한 사람에게 동일한 수준의 구원관을 요구할 수 없다.
소위 '모태신앙'과 성장기에 회심한 사람에게 똑같은 수준의 구원관을 요구할 수 없음은 마찬가지이다.
성품이 온건한 사람과 거친 사람에게 동일한 잣대를 들이댈 수 없음도 역시 같은 원리이다.
소위 사회화가 잘 된 사람과 '반골적' 혁명가에게 동일한 구원 수준을 적용할 수 없다.
내 눈으로 보기에는 전혀 구원받을 것 같지 않은 사람이 구원받지 못한다고 믿는 것만큼 위험한 일이 없다.
특히 전교조 이후의 현대 한국사회는 극도로 이에올로기화 되어 있기 때문에 내 편이 아니면 모두 적이 되는 피폐한 정신세계를 가지고 있다. 나와 색깔이 다르다고 하나님께 저주받은 사람이라고 단정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이 없다.
보다 관용적으로 세상을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