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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보좌로부터흐르는생명수 원문보기 글쓴이: 하늘산소
히11:32-34, 성도들의 무기는 믿음입니다.
구체적인 믿음의 예증의 네 번째 사사들의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신약의 성도들에게 주신 새언약과 관련된 말씀을 주시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도전하여 승리한 사건들, 믿음으로 고난을 견디고 인내한 믿음들. 그럼에도 이들은 그 약속의 실제를 자신들의 생전에는 받지 못했다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구약의 성도들보다 더 좋은 것, 그리스도의 구속의 제사를 통한 영원한 구원 받을 계획을 하나님이 세우셨는데 40절에서 말씀하시기를 구약의 성도들은 신약의 성도들과 함께 비로소 구원이 온전케 된다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신약의 성도들은 복된 자들이고 그리고 믿음을 지켜야 할 이유가 무엇인지를 말씀 하시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단점보다 장점에 관심을 두고 계십니다.
32절입니다. ‘내가 무슨 말을 더 하리요’ 이 말은 더 이상 믿음의 선진들을 소개할 필요가 없다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고 ‘시간이 부족하다고’말씀하십니다. ‘말 하려면’ ‘디에구메논’의 원형‘디에게오마이’는 ‘처음부터 끝까지 이야기를 전하다’‘자세히 말하다’‘충분히 이야기 하다’라는 의미입니다. 이 말씀은 처음부터 끝까지 이야기를 하려면 시간도 부족하고 그리고 사사들의 이야기는 히브리사람들은 다 알고 있기 때문에 그럴 필요가 없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생각할 부분은 ‘기드온, 바락, 삼손, 입다등 네 사사를 모세나 에녹같은 믿음의 선진들 속에 들어갈 수 있는가, 하는 부분입니다. 왜 그럴까요, 네 사사들은 결정적인 실수가 다 있습니다. 기드온은 에봇을 만들어서 훗날 백성들이 그 에봇을 우상으로 숭배하게 하는 실수를 범했습니다.(삿8:24-27)
다음으로는 바락인데요, 그는 이스라엘의 군대 장관으로서 담대하게 전쟁에 나가지 못하고 여자를 앞에 세운 장수입니다.(삿4:12-16) 또 삼손은 이방여인에게 눈이 멀어 두 눈을 뽑힌 사사이고(삿16:4-22)그리고 입다는 무모한 서원으로 딸을 번제로 바쳤던 사사입니다.(삿11:4-22), 이들의 공통점은 무얼까요? 인간의 치명적인 결점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또하나는 하나님의 대한 믿음으로 위대한 역사를 경험하였다는 사실입니다. 네 사사는 자신들의 삶을 통하여 믿음의 위력을 보여 주었고 증거하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들의 허물을 보지 않으시고 장점인 믿음을 보시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로 상대방의 단점을 들추어 내기 다반사입니다. 이는 바로 우리의 시각과 우리의 고정관념이 문제임을 알수 있습니다. 우리는 어떤 믿음 좋은 성도가 이해가 안되는 일을 했을 때 어떻게 그럴수 있어, 혹은 하나님 그 성도가 말도 안되는 일을 했는데 그가 믿음이 있는 사람입니까? 라고 물을수 있습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우리교회를 떠난 어느 집사가 있었는데 제 생각에는 말도 안되는 행동으로 보여서 하나님께 따지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에 보면 하나님은 그 말도 안되는 행동을 보지 않으시고 잘한 일을 보시고 믿음의 사람의 자리에 올려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시각과 하나님이 보시는 시각의 관점이 다름을 깨닫게 됩니다.
여기에 하나님이 우리를 보시는 시각과 우리가 상대방을 보는 시각이 다름을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장점을 보시고 우리는 우리의 결점, 단점을 보고 질타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연약함을 인정하시고 실수가 있었을지라도 인간의 장점을 기억하시고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에 동참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훗날에 주님 앞에 서는 날에 우리의 장점을 기억하시고 축복의 자리에 올리실 것입니다...할렐루야~~
그러므로 우리도 하나님의 시각을 가져야 합니다. 습관적으로 고의 적인 악한일이 아니고 연약함 때문에 일어난 실수라면 서로를 용납하고 위로와 격려로서 세워주는 자가 되어야 할것입니다. 단점은 나를 비추어보는 거울로 삼고 장점은 그를 세우는 도구로 삼는다면 아름다운 믿음의 공동체가 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주께서 기뻐하실 일인것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1)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혀가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마5:22)
바울은 “믿음이 강한 우리는 마땅히 믿음이 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롬15:1)그리고 데살로니가 교회에는 “또 형제들아 너희를 권면하노니 게으른 자들을 권계하며 마음이 약한 자들을 격려하고 힘이 없는 자들을 붙들어 주며 모든 사람에게 오래 참으라”(살전5:14)하셨습니다.
다음으로 등장한 자는 다윗입니다. 다윗은 믿음의 사람이고 기도의 사람입니다.
다시 33절을 봅니다. 다윗은 수 많은 나라들을 쳐서 파하고 승리를 했습니다. 그것의 밑바탕은 믿음이고 또 하나는 기도입니다. 전쟁하러 올라갈때에도 늘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의뢰하고 적군을 달리며 하나님을 의지하고 성벽을 뛰어 넘나이다, 고백했습니다. 그러나 기도하지 않을 때 다윗은 실수를 했습니다. 다른 병사들이 전쟁에 나갔을 때 그가 한가로이 성루를 거닐다가 목욕하는 밧세바를 보고 음욕이 불일 듯 일어나 그는 밧세바를 궁으로 끌여 들여 간음죄를 저질렀습니다. 그리고 그 일을 감추려고 우리야를 죽이는 살인까지 했습니다. 이 일로 인해 그는 그의 후비들이 백주에 강간을 당하는 일들이 일어났고 그의 아들(밧세바를 통해 낳은 첫째)은 죽었습니다. 죄는 용서 받았지만 형벌은 받은 것입니다.
이일을 지적한 사람이 나단 선지자였습니다. 그 일로 그는 침상을 적시는 회개를 했습니다. 그 말씀이 시51편입니다. 또 다윗은 나라가 견고하고 든든히 서갈 때 갑자기 나라의 군인들이 얼마나 되는지 알고 싶어서 인구조사를 했습니다. 요압 장군이 이일을 말렸으나 성경은 사단이 그의 마음을 격동시켰다고 말씀합니다.(대상:1) 그리고 하나님은 갓 선지자를 통해 벌을 말씀하십니다.(대상21:9), 이것은 다윗의 교만을 다스리려는 하나님의 마음이셨습니다.
(삼하24:18-25)
너는 벌을 택하라 첫째는 7년기근이며, 둘째는 3개월의 도망다니는 것, 셋째는 3일의 온역, 다윗은 자신의 징계(벌)를 택하지 않고 백성들이 대신 받는 징계를 택했습니다.(삼하24:14)그리고 그의 백성들이 사흘동안 7만명이 죽었습니다. 그때서야 다윗은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습니다. 이백성은 죄가 없으니 나와 우리 집을 치소서. 그러자 하나님은 그의 기도를 들으셨고 천사를 멈추게 하셨습니다. 천사가 멈추어 선 곳, 아라우나 타작마당에서 다윗은 번제를 드렸습니다. 그곳이 이삭을 드린 모리아산이고 솔로몬이 성전을 세운 곳이며 주께서 십자가를 지신 곳입니다.
그러면 타작마당의 의미는 무얼까요? 심판입니다. 알곡과 쭉정이를 가려내는 것, 그리고 가는 곳이 정해지는 것입니다. 알곡은 곳간에 쭉정이는 불속에, 세월이 흐른 후에 이곳은 예수님의 보혈이 흐르는 곳이고 죄의 세력을 끊어낸 곳이며 마지막 성전이 세워진 곳입니다,(오순절 성령강림으로 교회가 세워짐), 이제 이곳으로 주께서 다시 오셔서 주의 신부들을 데리고 가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신부로 단장을 해야 합니다.
성도는 세상과 육에 대한 싸움을 해서 승리해야 합니다.
33절에는 ‘믿음으로 나라들을 이기기도 하고’ 했습니다. 여기서 ‘믿음’은 ‘피스테오스’는 ‘디아’전치사를 앞에 추가해서 말씀했는데 이 ‘디아’는 ‘앞에 수단, 방편, 매개의 뜻’을 가지고 있어 더 선명한 의미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무슨 말씀일까요? 우리 앞에 믿음의 선진들은 믿음이라는 수단을 행동의 매개로 삼았다는 것입니다. 이들에게서 믿음이라는 수단과 방편을 빼 버리면 남는 것이 아무것도 없을 정도로 절대적인 믿음을 가진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믿음의 의한 삶, 믿음의 증거가 들어나는 삶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다시 33절을 보면 ‘나라들을 이기기도 하며’여기서 ‘이기기도하며’‘카타고니산토’는 원형이‘카타고니조마이’의 부정과거로 ‘정복하였다’‘패배시켰다’라는 의미입니다. ‘나라’‘바실레이아스’는 당시 방백들이 다스리는 왕국을 의미합니다. 사사들이 이 나라들과 전쟁을 할 때 칼과 창보다 믿음을 통해 나라들을 정복하였다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기드온은 달랑 횃불과 항아리와 300명의 소수정예를 이끌고 올라가서 거대한 미디안을 이겼고(삿7장), 삼손은 혼자서 블레셋을 이겼고(삿13:-16:), 입다는 암몬을(삿11:33)이겼으며, 백성에게 평안을 가져다주었습니다. 사사들과 싸운 적들은 무엇이 공통점일까요? 하나님의 백성들을 대적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적들을 이겼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무엇을 이야기하고 있을까요? 그리스도인과 교회는 이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기 위해 그리고 그리스도의 나라를 확장하기 위해 사용할 무기는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믿음만이 세상을 이길 수 있습니다. 사도요한의 전한 말씀입니다.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요일5:4), 할레루야!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겨자씨만한 믿음만 있어도 산을 명하면 그대로 옮겨진다고 하였습니다. 또 너희도 못할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마17:20), 왜 그럴까요? 겨자씨는 아무리 작아도 그 속에는 큰 나무가 될 생명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작은 믿음이라도 생명이 있는 믿음이라면 즉 살아 있는 믿음이라면 반드시 큰 역사를 이루게 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믿음은 우리의 생각이나 환경을 초월하는 크고 놀라운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화니 크로스비라는 찬송작가가 있습니다. 그는 의사의 실수로 눈이 멀어 장애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정말 누구도 따라할 수 없는 은혜의 찬송곡을 많이 만들었습니다.
그는 평생에 9000편의 찬송시를 작곡하였고 현재 우리 찬송가에도 여러 편의 찬송이 실려 있습니다. 그의 눈이 보이지 않게 되어 오히려 그는 하늘의 소리를 들을수 있게 되었고 그러므로 많은 찬송곡을 만들어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 드렸습니다. 그는 고난을 고난 자체로만 보지 않았고 하나님의 섭리와 손길로 믿고 하나님을 바라보고 살았습니다.
우리의 처한 환경에서 믿음이 있다면 크고 놀라운 일로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어 드리고 영광을 돌리게 됩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에게 말씀합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막9:23), 이일을 증명한 사람이 바로 다윗입니다. 어린 소년의 나이로 팔척장신 골리앗을 상대로 그는 전쟁터에 나아갔습니다. 그의 형들이 동생을 꾸짖었습니다. 너가 지금 전쟁을 구경하려고 왔느냐고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이름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물맷돌을 다섯 개를 들고 골리앗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그리고 외쳤습니다.“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삼상17:45), 이 믿음이 우리에게도 있기를 축복합니다. 아멘.
33절에서 ‘사자들의 입을 막기도 했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막기도 하며’‘에프락산’의 원형‘프랏소’는 ‘둘러싸다’‘산울을 두르다’ 방어나 보호를 위해서 ‘요새화 하다’등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다니엘을 보면 그가 신앙으로 인한 하나님에 대한 핍박속에서 사자굴에 던져 졌을 때 하나님은 천사들을 보내셔서 사자들의 입을 봉하기도 하셨습니다. 죽음 앞에서도 하나님을 의뢰하는 믿음의 행위가 얼마나 위력이 있는가 생생하게 보여주고 교훈하고 있습니다(단6:23)
34절에서 ‘불의 세력을 멸하기도 하며’ ‘에스베산’의 원형‘스벤뉘미’는 불을 ‘끄다’‘소화시키다’ 라는 의미 부정과거 시제로 쓰였습니다. 이 말의 의미는 맹열히 타오르는 불을 일시에 완전히 꺼버렸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누구의 이야기를 하는 것일까요, 불을 끈 사람이 누굴까요, 직접 끈 것은 아니지만 불속에서 살아나온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의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온전한 믿음으로 불속에 들어갔을 때 그 맹열히 타는 불꽃이 그들을 사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단3:1-18)
칼날을 피하기도 하며 구약에서 칼날을 피한 믿음의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고 칼을 던졌을 때 엘리사가 아람왕의 칼날을 피한 것(왕하6:11-23)칼날은 권세의 상징이기도 하여(롬13:4)권세자들이 하나님의 사람들을 괴롭히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 연약한 가운데서 강하게 되었다는 것은 누구를 생각나게 할까요? 삼손입니다. 두눈이 뽑혀서 연자 맷돌을 돌리는 그가 다시 하나님으로부터 힘을 공급받아 마지막으로 그가 기도하여 많은 블레셋 사람을 대파한 사건, 죽음을 앞에 놓고 하나님께 기도하여 15년을 연장 받은 히스기야왕,(왕하20:1-7),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하나님께 대한 믿음의 끈을 놓지 않음으로서 놀라운 하나님의 힘을 다시 얻게 되었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힘들고 어려운 일은 다 같이 찾아옵니다.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다고 하셨습니다. 지금도 전폭적인 믿음이 있다면 그 믿음에 겨자씨 같은 생명이 있다면 하나님의 능력은 지금도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십니다. 할렐루야!
이 땅에 정욕을 버리고 의에 병기가 되어 날마다 거룩함에 들어가야 하겠습니다. 세상과 벗이 되면 하나님과 원수라고 했습니다.(약4:4), 구원받은 성도라면 이제 수 많은 장애물을 넘어서야 할것이고 사단과 세상과 자신과 싸워서 이겨야 할 것입니다. 이렇게 되기 위해 우리가 바라 보아야할 것은 주님입니다.
아8:5절에 “그의 사랑하는 자를 의지하고 거친 들에서 올라오는 여자가 누구인가” 다시 말씀을 드리면 주님을 의지하고 거친 세상에서 올라오는 교회(성도)가 누구인가? 묻고 계십니다. 성도는 이땅에서 두가지를 버려야 합니다. 하나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죄악된 육신과 세상입니다. 날마다 주님을 의지하고 그리스도로 옷을 입고(전신갑주)싸워서 승리하시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아멘.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받았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언을 하였도다”(딤전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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