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나무 벗다
벽지를 할퀴었다 손톱 뿌리 차마 붉다
기억은 꽃잎처럼 와락 지지 않았는데
이 몹쓸 이별하는 일 사랑일까 그래도
바람의 발목 위로 마른 울음 서걱대고
남은 건 만신창이 그 내력이 흥건하다
이 몹쓸 이별하는 일 사랑일 거야 그것도
시간은 해어져서 넝마같이 뒹구는 날
이제는 너를 벗는다 흔들려도 버텨야 해
이 몹쓸 이별하는 일 사랑이다 그러니깐
<2023년 시조시학 여름>
장갑꽃이 피다
역무원 단속 피해 무임승차 고무장갑
한 켤레 3천 원 두 켤레 5천 원요
더듬고 어눌한 몸짓
꽃무늬가 떨린다
세상을 한쪽으로 짚고 사는 젊은 사내
용기였다 구석이 몸 일으켜 서기까지
좋아요 잡상인 되어
목구멍에 숨는 말
묵은 집 거미줄 같던 시선들 달싹이고
풀 죽은 장갑꽃이 빼꼼히 실눈 뜬다
창밖은 여즉 어두운데
꽃다대가 환하다
<2023년 시조시학 여름>
머리를 자르다
수채의 구멍에 낀
머리채를 꺼내었다
보풀과 뒤엉킨 채
긴 밤이 딸려오고
효수된
잠의 뿌리가
총총하게 걸렸다
나에게 떨어져 간
생각을 수습한다
불면한 시간들이
맨발로 배회하고
한밤의
머리를 자른다
난립문자 뒹군다
<2023년 시조시학 여름>
칸나
허물만 남기고 간
그녀는 매미였다
기도하듯 주문 외듯
찰나를 타오르던
여름을 다 삼키고도
더 뜨겁고 싶은 혀
<2023년 시조시학 여름>
밥무덤*
-남해가천마을
포개진 다랭이마을 계단이 풍금 친다
등고선 지겟길로 빈 젖 물린 바다 지고
논배미 산으로 간다 허기로 축대 쌓아
귀 얇은 바람살에 목줄 맨 삿갓배미
파도는 눈치 없이 어망만 아작대고
빈 쌀독 채운 보름달 부푼 가난 고봉이다
얼마나 간절하면 그 귀한 밥 묻었을까
헛된 욕慾 핥아대는 설익은 혀 순장한다
숨찬 새 날개를 꺾어 고단한 밥 안친다
<2023년 시조시학 여름 시조 FOCUS>
*음력 10월 15일 저녁 풍요를 기원하는 동제를 지낸 후 제삿밥을 묻어두는 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