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는 숫자”, “내 나이가 어때서”, 몸은 늙어도 마음이 팔팔한 이들이 즐겨 하는 말이다. 나 또한 살다 보니 望八에 들어 선지가 이미 오래 전이다. 또 다시 해가 바뀌어 새해가 되니 멀리 사는 선배가 안부를 전하며 스스로 희수喜壽가 되었다며 내가 잊어버리고 있던 나이를 되살려 준다.
우리나라 남자들의 평균 수명이 재작년(2019)에 이미 80세를 넘어 섰다(80.3세). 평균수명이란 특정 나이에서 앞으로 살아 갈 수 있는 나이를 말한다. 통계용어로는 기대수명, 기대여명이라고 한다. 쉽게 말해 재작년에 태어난 남자 아기들의 기대 수명은 평균 80.3세이고, 재작년에 75세 남자 노인의 기대여명은 13.2년이다. 별일 없으면 88세를 넘겨 산다는 의미이다. 사는 동안에 엄청난 역병이나 전쟁같은 대참사가 없다면 말이다.
새해에 희수를 맞은 노인들은 해방둥이들이다.(동갑내기 일본사람은 내년이 희수이다) 1945년생 남아들의 기대수명은 통계가 없으니 알 길이 없지만 그 25년 후인 1970년도 통계를 보니 기대수명이 58.6세에 불과하다. 그 보다 25년전인 해방둥이들의 기대수명은 50세에도 훨씬 미치지 못했을 걸로 미루어 짐작할 수가 있다. 그러니 새해에 희수가 되는 친구들은 또래에 비해 이미 살아도 한참을 더 오래 살았으니 장수에 관한 한 여한이 없어도 될 듯하다고 하면 나만의 생각인가.
예전부터 장수의 시작은 환갑이다. 첫돌과 함께 환갑날에 가장 큰 잔치를 하곤 했다. 그리고 더 늙어 가는 10살 마다 칠순, 팔순, 구순으로 생일날에 잔치를 베풀어 장수를 축하한다. 유식하게 古稀,稀壽(70), 傘壽(80), 卒壽(90), 上壽(100)라고도 한다는데 국어사전에는 고희와 상수만 있을 뿐이다.
진갑에 들어서면 10년 앞을 내다 보고 望七, 望八, 望九, 望百으로 부르기도 했다. 일본에서는 환갑이 지나면 미수美壽, 희수喜壽, 미수迷壽, 백수白壽, 라고 장수를 축하한다. 화투를 발명한 민족답게 66, 77, 88, 99 땡땡이 들다. 모두 한자漢字를 분해하여 숫자에 엮은 글이다. 일제 시대를 거치며 이제는 우리말이 되어 국어사전에도 실려있다 (중국어사전에는 없다). 종주국 일본보다 우리나라에서 더 인기있는 화투처럼 씁쓸하다.
우리나라에서도 이제는 환갑보다 칠순에 더욱 의미를 두지만 일본에서는 오래 전부터 희수에 가장 큰 잔치를 한다고 한다. 그렇지만 이제는 120세 시대라고 하고, 실제로 100살 넘은 노인들도 부지기(?)하니 그에 맞는 말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무식을 무릅쓰고 아무리 한국, 중국, 일본의 경우를 찾아 보아도 그에 해당하는 말이 나타나지 않는다. 옛날에는 100살 넘은 노인이 너무 희귀하여 축하할 일도 없으니 말 조차도 없었나 보다.
나름대로 생각해보니 상징성이 있는 111세를 기리는 말이 적합할 듯하다. 백百에서 곰곰히 유추하다 불현듯 황皇이란 글자가 떠올랐다. 파자를 하니 바로 111이 된다 (해보시라). 권력의 최고가 황제皇帝이듯이 나이의 최고를 황수皇壽하면 의미상으로도 어울리지 아니한가. 한국어, 중국어, 일본어 어느 나라 사전에도 없는 새로운 단어이다.
내가 알고 있는 사람들 중에 희수를 맞거나 맞게 될 많은 이들이 황수皇壽를 누리게 되기를 빌어 본다. 그때쯤이면 황수도 보통명사로 국어사전에 올라 있을까. 그리고 황수연皇壽宴의 잔칫상을 두고 하객들에게 들려줄 노래를 추천하면, “나이는 숫자”, “내 나이가 어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