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풍기에서 하루 더 묵었다 어제 집으로 가려 하다가 백두대간 수목원을 거치는 바람에 하루 더 묵었다
부석사 근처에서, 소수서원 근처에서 묵을 곳을 찾았는데 마땅치 않아 풍기까지 와 묵었다
저녁에 남원천변 정자에서 멀리 소백산맥 산 그림자 위에 뜬 달빛을 감상하며 먹은 치맥이 낭만적인 저녁밤이었다
아침 일정은 영주 무섬마을이다
경상북도 영주시 문수면 수도리에 있는 무섬마을은 안동의 하회마을, 예천의 회룡포, 영월의 선암마을과 청령포와 같이 마을의 3면이 물로 둘러 쌓여 있는 대표적인 물돌이 마을이다.
낙동강의 지류인 내성천과 영주천이 합수되어-어제 묵었던 풍기 남원천이 내려오다 서천을 만나고 서천이 영주를 거쳐 내성천과 합류한다- 태백산과 소백산 줄기를 끼고 마을의 삼면을 감싸듯 휘감아 돌아 마치 섬처럼 육지속의 섬마을로 전통을 고스란히 간직한채 살아가고 있는 마을이다.
영주에서 오는 2차선 길을 거쳐 내성천을 지나는 소로길 다리(수도교)를 건너면 무섬마을이 나타난다
무섬마을은 물 위에 떠 있는 섬을 뜻하는 수도리(水島里)의 한국어 이름으로 삼면이 내성천과 접해있는 전형적인 물도리 마을로 마을 앞을 돌아나가는 내성천은 맑고 잔잔하며 산과 물이 태극모양으로 서로 안고 휘감아 돌아 산수의 경치가 절경을 이룬다
다리(수도교라 함)를 건너자마자 둑방길 주변에 마을 사람들이 간단한 난전을 마련해 손님을 기다리며 앉아있고 그 주변 넓은 터에 알아서 주차를 해야한다 주차하고 먼저 맞는 것은 해우당 고택이다
무섬마을에 사람들이 들어와 살기 시작한 것은 17세기 중반으로 반남박씨인 박수가 처음으로 이곳에 들어와 살기 시작했고, 이후 조선 영조때 그의 증손녀 사위인 예안김씨인 김대가 이곳에 들어와 살기 시작하면서 지금까지 반남박씨와 예안김씨 두 집안이 집성촌을 이루어 살고 있다.
그 중 해우당과 만죽재가 유명한데 해우당은 경상북도 민속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는데, 무섬마을로 들어가는 수도교를 건너자 마자 바로 왼편으로 보이는 가옥이다. 해우당은 19세기 말 의금부 도사를 지낸 김낙풍이 지은 집인데 해우당은 그의 호이다.
해우당 김낙풍은 흥선대원군의 정치적 조언자였다고 한다. 해우당 고택에 있는 현판은 바로 흥선대원군의 글씨라고 한다. 안채에는 역시 흥선대원군이 쓴 '대은정'이라는 현판이 보관되어 있다.
마을 한쪽 끝에는 아도서숙이 있다
일제강점기 항일운동을 벌인 곳이라는데 일본 순사가 불을 질러 폐쇄시켰던 것을 고증을 거쳐 다시 복원한 것이라 한다
일제 강점기에 뜻있는 주민들에 의해 건립된 아도서숙은 항일운동의 지역 구심체 역할을 한 곳으로 우리나라 독립운동사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는 마을이기도 하다
우리는 먼저 무섬마을의 상징 외나무다리로 갔다 넓은 개천 모래밭에 구불구불 이어놓은 나무다리가 장관이다
무섬 마을에는 한가지 빼놓지 말아야 할 볼거리가 있다. 바로 350여년간 무섬 마을과 강건너를 연결시켜준 외나무다리이다.
1979년 수도교가 놓이기 전까지 무섬마을의 유일한 통로 역할을 한 외나무 다리는 길이가 무려 150m에 이르고, 폭은 30cm에 불과한 다리이다. 폭이 좁아 긴 장대에 의지한채 건너야 했단다. 지금은 중간중간 피할 수 있는 곁다리난간이 있어 오가는 사람을 피할 수 있도록 해 놓았다
강변에 넓은 백사장이 펼쳐져 있고, 그 건너편으로는 울창한 숲이 있어 경관이 매우 아름답다.
외나무 다리는 해마다 새로 다리를 만들었는데, 장마철이면 불어난 강물에 다리가 떠내려 가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수도교의 건설로 사라졌던 외나무 다리는 최근 옛모습 그대로 복원되어 매년 10월에 '외나무다리 축제'를 만들어가는 중심이 되고 있단다.
원래 외나무 다리는 3개가 만들어 졌었다고 한다. 농사지으러 가는 다리, 장보러 가는 다리, 학동들이 학교 가는 다리. 지금은 농사지으러 가는 다리 하나만이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고 한다.
반대편 장소에서 바라보는 외나무다리와 내성천 모습이다
가운데 외나무다리에서 아래로 50여 미터 내려가면 학동들 학교가는 다리였는지 또 다른 외나무 다리로 반대편 마을과 이어놓았다
산의 암벽과 함께 참 목가적인 모습이다 물도 깨끗하고 모래도 깨끗하고 산도 깨끗하고 하늘도 깨끗하다
외나무다리 투어를 마치고 본격적으로 마을투어에 나섰다
수도교에서 가장 먼 아랫마을에 이곳의 역사를 알려줄 전시관이 있는데 문을 닫아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마을의 초가집에는 퇴미 놓을 자리에 까치구멍이라는 특이한 구조를 만들어놓은 집이 대부분이어서 전통주거 민속 연구의 귀중한 자료로서의 가치를 지니고 있단다.
만죽재는 반남박씨의 입향조인 박수가 1666년(헌종7년)에 지은 집으로 무섬마을에서 가장 오래된 한옥이다.
만죽재는 무섬마을의 가장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으며, 만죽재의 편액은 석운 박기양의 글씨이다.
또 마을의 중앙에는 19세기 초반에 지어진 만운고택이 있다. 민속자료로 지정되어 있는 집이며, 이집을 지은 만운 김휘걸의 호를 따서 지은 집이다. 바로 시인 조지훈의 처갓집이다. 조지훈은 시 '별리'를 통해 이곳 무섬마을의 아름다움을 노래했다고 한다.
그 외 무섬마을의 대표적인 부잣집 가옥인 김위진 가옥(문화재 자료)이 있다
실학자 박규수의 글씨가 남아 있는 박재연 고택 등도 둘러 보아야 할 전통 가옥이다(사진과 별개, 사진은 종택인 무송헌).
이제 금강산도 식후경 점심식사를 해야겠다 마침 마을에 전통집의 식당이 있어 찾았다 옛날집이라 에어컨이 없어 밖에서 먹어야하나 했는데 왠걸 방마다 에어컨이 시원하다
청국장 비빔밥을 먹었는데 반찬도 많고 청국장 맛도 끝내주는 맛깔나는 전통 식당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