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절불굴의 신앙 (에 4:13-17)
(요약)
하나님을 어떻게 섬기고 사랑하는 방법 중 귀중한 하나는 목숨을 다하는 것이다.
성경에서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백절불굴의 사람이었다.
그들은 목숨을 걸고 우상에게 절하지 않았다.
또 욥이다. 욥은 온갖 시련 가운데서도 목숨 걸고 믿음을 지켰다.
또 에스더이다. 에스더는 파사의 규례를 어기고 목숨걸고 왕에게 나아가 민족을 구했다.
이 시대의 문제점은 목숨 내놓지 않는 라오디게아적 신앙이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목숨을 바쳐 생명을 주셨다.
우리도 목숨 바쳐 신앙생활 할 때 풍성한 생명적인 삶을 주신다.
(설교)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귀히 쓰신 사람들을 보면 모두 몇 가지의 특징이 있습니다. 그 중에 중요한 하나는 목숨을 내건 백절불굴의 믿음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함에 있어서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그 다음에, 그 다음에 또 중요한 것이 있어요. 그 중요한 것이 무엇일가요? 그것은 목숨을 다하여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런 믿음을 가지면 하나님께서 함께 하지 않으실 리가 없고 영육 간에 성공하지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오늘날 우리 성도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이런 신앙을 갖길 원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백절불굴의 믿음의 사람 몇 사람을 소개할까합니다.
1. 백절불굴의 사람은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입니다.
단3:18에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의 세우신 금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했습니다. 이들의 신앙은 무엇입니까? 이들의 신앙은 바로 “그리 아니하실지라도의 신앙”입니다.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던 시대의 이야기입니다. 바벨론 느브갓네살 왕이 극도로 교만하여 자기 신상을 세우고 사람들에게 엎드려 절하도록 했습니다. 이 때에 이스라엘에서 포로로 잡혀간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하나님을 믿기에 다른 신에게 절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곳을 본 원수들이 이 사실을 왕에게 고해 바쳤습니다. 느브갓네살 왕은 심히 노했습니다. 그러나 한 편으로는 이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불러다가 여러 모로 타이르며 만일 자기 금 신상에게 절하지 않으면 즉시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 던져 넣을 것이라고 협박했습니다.
그러나 세 청년은 ‘느부갓네살이여 그럴지라도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우리를 그 불속에서 능히 건져 내실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 아니하고 왕의 세우신 금신상에게 절하지도 않겠습니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얼마나 담대하고 목숨 건 대답입니까? 화가 난 왕은 평상시 보다 풀무불을 칠 배나 더 뜨겁게 하여 세 청년을 묶어서 불에 던졌지만 세 청년들은 털끝하나 상하지 않은 채 불속에서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믿음입니까? 우리들도 이들처럼 백절불굴의 그리아니하실지라도의 신앙을 가져야하겠습니다. 이런 마음으로 우상숭배하지 않고 어떤 유혹에도 세상 사랑하지 않고 어떤 일에도 결코 실망하지 않고 불평하지 않고 믿음으로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2. 백절불굴의 사람은 바로 욥입니다.
욥13:15에 “그가 나를 죽이시리니 내가 소망이 없노라 그러나 그의 앞에서 내 행위를 변백하리라” 했습니다. 이 욥13:15절의 난하주를 보면 “그가 나를 죽이실지라도”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대부분의 영어 성경은 “그가 나를 죽이실지라도”로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이 아는 대로 욥은 얼마나 순전하고 정직하고 하나님을 잘 경외하고 악에서 떠난 사람입니까? 그리고 또한 얼마나 물질의 큰 복을 받은 사람이었습니까? 그런데 어느 날 사탄이 하나님께 욥을 참소하여 상상할 수 없는 시험이 다가 왔습니다. 대풍에 집이 무너져 열 자녀가 죽고 여러 나라 사람들이 침략하여 그 종들을 죽이고 그 많은 재산을 다 가져가고 그나마 남은 욥의 건강마저 빼앗아 가서 몸은 악창이 나 말할 수 없이 괴로웠습니다.
얼마나 기가 막힌 재난입니까?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을 것입니다. 웬만한 사람 같으면 “하나님 믿어봐야 소용없구나. 하나님이 계시다면 내게 이런 고통이 오겠느냐?” 했을 터지만 욥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욥1:20-22절에 “그가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고 땅에 엎드려 경배하며 가로되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 가올지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오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면서 이 모든 일에 범죄하지 않고 하나님을 어리석게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온 몸에 악창이 나서 피고름이 나고 구더기들이 우글거리고 고통스러워 기왓장으로 몸을 긁으면서도 하나님께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그의 아내가 얼마나 보기 답답했으면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고 하고 친구들도 와서 무슨 죄를 그렇게 지어서 그렇게 되었느냐고 비난을 퍼부어도 그는 하나님을 배반하거나 욕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 “그가 나를 죽이실지라도 나는 그를 신뢰하겠노라”고 했습니다. 그랬기에 하나님께서는 그의 모든 곤경을 돌이키시고 그에게 전보다 갑절이나 복을 더 주셨습니다.
이 욥의 백절불굴의 믿음 본 받으시기 바랍니다. 우리에게 다가오는 시험들은 하나님께서 더 큰 복을 주시려는 섭리입니다. 그러므로 육신의 눈으로 원망하지 말고 오히려 감사하고 찬송하십시다. 그 때 하나님께서는 악을 선으로 바꾸어 주십니다. 이것이 요셉이 경험한 하나님이시고 다윗이 경험한 하나님이십니다. 사람들이 생명으로 풍성함을 사모하는데 목숨 바치지 않고는 풍성한 생명을 누리지 못합니다. 죽어야 살아요. 한 알의 밀도 죽어야 열매를 맺어요. 스데반의 얼굴이 천사 같이 빛난 것은 생명 충만입니다. 그의 신앙의 비력은 곧 성령 충만이요, 성령 충만은 목숨 걸고 신앙생활함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3. 백절불굴의 사람은 에스더입니다.
에4:16에 “나도 나의 시녀로 더불어 이렇게 금식한 후에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리니 죽으면 죽으리이다” 했습니다.
이 때 역시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잡혀간 후 파사가 정권을 잡을 때 일입니다. 그 때 파사왕이 아하수에로인데 그 때 에스더가 하나님의 은혜로 왕비가 됩니다. 그런데 교만한 아말렉 사람 하만이 총리가 되어 모르드게가 하만에게 절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모르드게의 민족인 유다사람들까지 모두 죽이려고 합니다. 그래서 온 유다 사람들은 크게 애통하여 금식하며 곡읍하고 부르짖고 굵은 베를 입고 재에 누워 슬피 기도했습니다.
이 사실을 에스더의 외삼촌 모르드게가 알고 상복을 입고 대궐로 가서 왕비 에스더에게 알립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왕이 왕비에게 오지 않은지 한 달이 되었고 또 당시 법은 엄해서 왕의 부름이 없이 나가는 자는 누구를 무론하고 처형하는 법이었습니다. 그러나 에스더는 모르드게에게 “당신은 가서 수산에 있는 유다인을 다 모으고 나를 위하여 금식하되 밤낮 삼 일을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소서 나도 나의 시녀로 더불어 이렇게 금식한 후에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리니 죽으면 죽으리이다”(4:16) 하며 목숨 내건 모험을 합니다. 그 결과 에스더는 하만에게서 민족을 구할 수가 있었습니다. 이 목숨 바친 신앙과 결단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지금 이 시대 교회를 진단하는 사람들은 이 시대 교회를 가리켜 라오디게아 시대라고 합니다. 모든 것이 부흥 발전되고 안정되고 다 갖추어져 있고 지식적으로는 이것 저것다 경험해 보았습니다. 보기에는 여러 직분들도 갖고 꽤 좋은 믿음들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진정 있어야 할 목숨 건 신앙, 생명적인 신앙, 뜨거운 신앙, 참 신앙, 헌신하는 신앙, 희생하는 신앙, 성령 충만한 신앙은 보기 어렵다는 말씀입니다. 이러한 라오디게아 교회에게 주님이 하신 말씀을 들어봅시다.
계3:15-19에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더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더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하셨습니다. 이 모든 것을 해결할 답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목숨을 다하여 섬기는 것입니다. 이것만 되면 다 이루어집니다. 그러므로 지금 이 시대는 이 목숨을 강조하여야 할 시대입니다.
우리 주님 말씀하시기를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마22:37) 하셨습니다. 막12:30에도 “목숨을 다하고”란 말씀이 빠지지 않습니다. 눅10:27에도 “목숨을 다하며” 그랬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주님은 우리 위해서 목숨 바쳐주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게 믿습니까? 하나님은 우리가 목숨 바쳐 섬기기를 원하십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목숨 바쳐 신앙 생활했습니다. 우리 모두 믿음의 선진들을 본 받아 백절불굴의 신앙을 갖는 참 신앙의 소유자들이 다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한성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