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 년 동안 함께 고생하며 준비한 ‘중학교 학력 검정시험’을 멀리 부산까지 와서 끝마쳤지만, 어디를 함께 갈 형편이 못 되는 우리는 그냥 헤어졌다. 나는 형님을 따라 큰 고모님의 딸네 집으로 가니 모두 반겨주었다. 부산에서 제일 좋다는 여중에 다니는 조카 옥희네 집에서 저녁을 먹고 생전 처음으로 이쁜 여중생 옥희와 부산 밤거리를 구경했다. 미화당 백화점이며 야시장 구경도 하고, 큰누나가 준 돈으로 군것질도 했다.
어제 옥희가 안내해준 모든 신기한 시내 구경에 지쳐 고종사촌 큰누나 집에서 늦잠을 다 자 보았다. 누님이 차려준 아침을 맛있게 먹고 밖으로 나오니 아직 꽤 춥다. 옥희를 따라 학교생활뿐만 아니라 시내 구경도 하고 좀 더 놀다 가고 싶었으나, 친형이 기거하는 곳에도 못 간 녀석이 사촌 누님댁에 머물기가 쑥스러워 10시경 버스를 타고 집 아니 일터로 되돌아갔다. 아무리 장담하고 친 시험이기는 하나 공민학교에도 제대로 다니지 못한 주제에 확실히 자신이 없어, 나는 불안하게 발표를 기다리며 하루하루를 지루하게 보냈다.
선거, 벌써 선거철이 시작된 모양, 국회의원에 출마한 사람들은 돈을 뿌리기 시작한다. 또한 표를 가진 무지렁이 촌민들도 이때라 싶게 공돈을 한번 먹어보겠다고 끄나풀 잡기에 한창이다. 우리 학교도 때를 만난 듯이 팔딱? 조회 시간, 우리 공민학교 학생 중에서 이번 중학교 졸업 인정 검정시험에 합격한 학생이 정규 고등학교 입학시험에 합격하면 고교 입학금 전액을 대주겠다는 모 인사의 말씀을 전해주신다. 틀림없이 이번 선거의 출마자이겠지만, 나는 한없이 반가웠다!
세월은 정말 물같이 흐르건만, 무심하게 흐르는 그 세월이 인생을 그냥 평탄하게 두진 않는다. 벌써 일월도 오늘이 마지막이지만, 나의 수심 걱정은 조금씩 더해만 간다. 엄마가 아무리 엄마의 도리를 다 못했다 할지라도 어머니는 어머니 자식은 자식이다. 그러나 자식을 버린 어미가 무선 염치로 버렸던 자식을 대할 수 있겠나만, 자식 또한 자식 된 도리로서 어찌 의지할 곳 없는 어미의 방황을 그대로 못 본 체할 수 있으리오? 100리 길이 넘는 부산까지 자리도 잡지 못하고 공장노동자로 고생하고 있는 큰아들을 찾아올 것이라고 형님은 함께 있을 거처 마련에 정신이 없으실 것이다.
에고, 시앗본 본처가 먼저 아들을 낳고 그 후에야 딸 하나 다음으로 아들을 낳아 주었으니, 울 엄마가 낳아 또 버린 딸과 아들은 배다른 본처 소생 누나 일곱과 형 하나 밑에서 어떻게 배겨 낼까?
내일은 정규 학교는 아니지만 그래도 십여 명의 학생과,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놀고 있는 마을 형들이 번갈아 국어 영어 그리고 수학도 가르치는 고등공민학교의 소집일이다. 내일은 학교에 한번 가보고 싶다.
1958년 이월 초하루 토요일이다.
첫 시간 국어, 오늘도 늦게 시작하여 10경에서야 수업이 시작되고 우리의 희망 김익현 국어 선생님께서 색다른 서류 봉투를 들고 교실로 들어오셨다. 수업이 끝나고 우리 학교의 번영과 학생들의 성공을 위해 온갖 정열을 다 쏟아붓고 계시는 선생님께서 서류 봉투를 뜯는다. 도청에서 온 서류였다. 아, 그것이 우리의 운명을 판가름하는 검정시험 합격자 명단이었다. 나뿐만 아니라 우리 일곱 모두의 첫 국가시험, 교실안은 잠잠 그대로, 그러나 일곱 학생의 간은 매우 아니 고물 차 엔진소리보다 더 요란하게 울렁거렸을 게다. 모든 학생들의 시선을 받으며, 선생님께서 찬찬히 일람표를 훑어보고는 한 사람 또 한 사람 합격자를 호명하신다.
손가득, 김무평 그 순간 나의 마음이야, 그 기쁨 어찌 글로써 다 표현할 수 있으리오! 선생님의 입만 바라보고 있던 학생들에게 ‘경남에서 백명넘게 응시했는데 합격자는 13명 그중 우리학교에서 득이와 평이 둘이 합격해서 축하한다.’ 라는 말로 합격자 발표를 끝내자, 그 때서야 모두들 우리를 쳐다보고는 환호하며 박수를 친다. 평이외 나는 손을 잡고 벙글거리며 집으로 달려 왔으나, 나는 집에 들어서자 괜스레 마당을 한 바퀴 빙 둘러 보고는 조용히 방으로 들어가 형님에게 편지를 썼다. 엄마와 함께 살 수 있으려나?
또 무슨 심보인지, 그제는 비가 오는데도 큰아버지께서 방에 있지 못하게 불러낸다. 어차피 내가 해야 할 일이라 비를 맞고서도 해 치웠다. 젖은 옷은 방에 늘어 말렸지만 옷이 마르는 동안 방에 있을 수 있어 피장파장이라고 생각하니 속은 편하다. 내가 검정시험에 합격했다는 건 어떻게 들었는지 식구들 모두가 알고 있는 듯 했다.
그 합격증 찾으러 또 부산엘 다녀와야 할 것 같다. 도청 학무과에서 합격증을 본인에게 배부한다고 했다. 차비가 있어야 하는데, 나는 일만했지 돈을 벌지는 않는데 이렇게 나가야할 돈은 누가 당한단 말인지? 그러나 격고 나가야 한다. 이 모든 고난을, 장애물이 많으면 성공의 보람도 훨씬 더 커질 것이다. 하지만, 나의 앞길은 너무 무정하고 막막하기만 하다. 캄캄한 동굴속에 한줄기 밝은 빛이 나의 앞길을 밝혀주는가 싶드니만, 그 빛은 신기루에 불과했다. 꼭 믿고 바란 것은 아니지만, 입학금 전액을 부담하시겠다는 분의 얘긴 형님에게도 말씀드렸다. 그러나 정말이지 그건 의뢰심 많은 나의 탓이리라? 난 참 어리석고 주제넘은 인간이다. 남의 재산을 공짜로 바란 나의 탓이었다.
‘어렵게 공민학교를 다니면서 열심히 공부하여 고교입학자격 검정고시를 거쳐 정규 고교에 합격한 자에게 입학금을 제공한다.’ 물론 우리에게 말씀해 주신 선생님께서도 틀림없이 믿었으리라! 그러나 나라 법인 것을 어찌하리요? 얼마 후 ‘국회의원 출마자는 사설단체 학교 및 개인에게 일체 기부금 형식으로 절대 돈을 쓰지 못한다.’고 선생님께서 씁쓸하게 말씀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