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산방(德山棒)
덕산 선사는 방이 가풍이다.
덕산선감(德山宣鑑) 선사는 용담숭신((龍潭崇信) 선사의 사법제자(嗣法弟子)다. 임제선사(臨濟禪師)와 함께 당대 선풍을 일으킨 선지식들이다. 임제선사는 누가 와서 불법을 물으면 고함 할(喝)로 후학(後學)들을 제접(提接) 하였고, 덕산선사는 주장자 몽둥이로 참문(參問)하는 수좌를 때렸다. 덕산선사 문하(門下)에는 걸출(傑出)한 설봉(雪峰) 암두(岩頭)와 같은 선사들이 나왔고, 설봉선사(雪峰禪師)의 고제(高弟)로는 운문(雲門) 현사(玄沙)등이 있고, 현사(玄沙)의 법손(法孫)에는 법안(法眼)이 나오게 되어서 덕산선사는 운문종(雲門宗)과 법안종(法眼宗)의 이대종파(二大宗派)의 태조(太祖)가 된다. 이렇게 덕산선사의 방선풍(棒禪風)은 중국선종사에 영향을 크게 미쳤다. 그러면 덕산선사는 회상 일주문 밖에 말뚝을 박아놓고 글귀를 써 붙여 놓았는데 부처가 오면 부처를 몽둥이로 치고, 조사가 오면 조사를 치리라. 불조(佛祖)가 와도 몽둥이로 타작하겠다는 선포다. 그러니 애숭이 선객이야 오면 몽둥이 맞을 준비를 하고 오라는 선전이다. 방(棒)의 실례를 들어보자. 어느날 덕산선사가 법상에 올라서 말씀 하시기를 오늘은 일체의 문답(問答)을 하지 않겠다. 만일 문답(問答)을 하는 자가 있으면 삼십방(三十棒)을 때리겠다. 이 말이 떨어지기도 전에 어떤 운수객승(雲水客僧)이 선 듯 앞으로 나와 묵묵(默默)히 절을 하니, 덕산선사가 주장자로 객승의 어깨를 삼십방을 쳤다. 객승이 이르기를 저는 한마디도 묻지 않았는데 어찌 삼십방을 때립니까? 항의하자, 도대체 너는 누구나? 그리고 어데서 왔느냐? 동국에서 왔습니다. 덕산선사(德山禪師)께서 동국에서 떠나기 전에 자~ 삼십방이다, 하고 또 때렸다. 입을 닫아(閉口)도 삼십방이고 입을 열어(開口)도 삼십방(三十棒)이다. 방(棒)이 덕선선사 종풍(宗風)이니 덕산선사를 참방하려면 방 맞을 준비를 하고 가야 한다.
어느날 덕산선사께서 법좌(法座)에 올라 수시(垂示)하기를 어기에서 묻는 사람은 그르칠(過) 것이며, 묻지 않음도 어긋날(背)것이니, 대중(大衆)들아! 그대들은 어떻게 할것이냐? 이때 한 스님이 나와서 절을 하니, 덕산선사께서 주장자로 방을 치셨다. 절하던 스님이 말했다. 저는 한마디도 묻지 않았는데, 무슨 허물이 있어서 방을 치십니까? 너의 입 열리기를 기다려서 무엇 하겠느냐! 하며 또 방으로 치셨다. 덕산선사의 방 소식을 듣고 어떤 선객이 아예 주장자를 들고 와서 덕산선사를 보자마자 주장자로 치려고 하니, 미소를 지어 보이면서 네 놈이 그렇게 무례한 짓을 하면 네 이 주장자가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하고 호통을 지자, 선객이 당황하고 문을 박차고 나가려는 찰나에 덕산선사의 주장자가 그 선객의 어깨에 내리치면서 살림살이가 고작 이것뿐이냐? 호통을 쳐서 내쳤다. 이렇게 덕산선사의 방은 묻는 자의 틈을 주지 않는 방이다. 어지간한 출격장부가 아니고는 당할 자가 없을 정도였으니, 선사의 문하에는 기라성같은 걸출한 선승들이 많이 배출되었다. 덕산선사의 방의 선풍 가풍은 어쩌면 주금강으로 자구만에 찾았던 시절 용단숭신 선사께서 칠흑같이 캄캄한 밤중에 지촉(紙燭)불을 건네주고 훅! 하고 불어꺼버린 그 찰나를 체험하고 나온 선풍이 아니겠는가? 묻는 자의 더덕더덕 찌든 분별망상(分別妄想)을 몽땅 단칼로 베어버릴 보검은 주장자 몽둥이가 직지인심(直指人心) 견성성불(見性成佛)로 이끄는 방편 도구가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