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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코스 : 금광호수(수석정) - > 청룡사
등산을 애호하는 산군을 자처하지만, 단순히 고스락에 오르는 산행보다도 사찰을 거쳐 정상에 오르는 산행을 선호하고 특히 절에서 산을 오르기 시작하여 산을 넘어 또 다른 절에 이르는 산행을 가장 좋아한더,
그리하여 계룡산의 산행은 동학사에서 삼불봉, 관음봉을 넘어 갑사로 이어지는 산행을 좋아하고 수도암에서 해인사에 이르는 수도↔가야 종주 산행, 송광사 ↔ 선암사 등 절과 절을 연결하는 산행을 즐기고 싶은 것이다.
그런데 경기 둘레길 41코스가 금광 호수에서 걷기 시작하여 석남사를 참배하고 서운산을 넘어 청룡사에 이르는 도보 여행이 되어 더할 나위 없이 기쁜 마음으로 41코스를 걸어가고자 금광 호수에 이르렀다.
경기 둘레길의 걷기는 둘래길 안내도와 스탬프 함이 있는 곳에 시작하는데 이곳 인근에 박두진 문학관이 있어 그런지 그의 시를 새겨놓은 커다란 돌비석을 나란히 새워 경기 둘레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의 심금을 울려주고 있었다.
하늘 : 박두진
하늘이 내게로 온다
여릿여릿
머얼리서 온다.
하늘은
멀리서 오는 하늘은
호수처럼 푸르다.
호수처럼 푸른 하늘에
내가 안긴다. 온몸이 안긴다.
가슴으로, 가슴으로 스며드는 하늘
향기로운 하늘의 호흡.
초가을
따가운 햇볕에
목을 씻고,
내가 하늘을 마신다.
자꾸 목말라 마신다.
마신 하늘에
내가 익는다
능금처럼 마음이 익는다.
시 한 수를 읽고 정화된 마음으로 호숫가를 걸어갈 때 낚시꾼들이 여기저기에서 낚싯대를 들이 우고 있다. 금광 호수는 계곡형 호수로써 봄철 산란기에는 최상류 수초밭에서 떡붕어 월척이 대량으로 낚인다고 한다.
그래서 낚시꾼들은 호숫가에서 물고기를 잡으며 기쁨을 만끽하지만, 길손은 “산아래에 못이 있어서 기운이 통하여 위를 윤택하게 하는 것과 아래를 깊게 해서 높이를 더하는 것이 다 아래를 덜어내는 상이다.
군자가 損괘의 상을 관찰하여 자기의 잘못된 것을 덜어내니 修身하는 道에 있어서 마땅히 덜어야 할 것은 오직 분노와 욕심이다. 그러므로 忿怒를 懲戒하고 욕심을 막는 것이다.”라는(주역 손괘 대상전) 그 뜻을 새기면서 즐거움을 느끼며 걸어간다.
고요함이 흐르는 호수길에서 보도, 차도의 구별이 없는 도로의 가장자리를 따라 걸어간다. 한적한 아스팔트의 도로이자만 차량통행은 의외로 잦았다. 보, 차도가 구별이 없는 도로를 걸어갈 때는 평소 우리가 지키는 우측통행이 아니라 자동차를 마주 보며 진행하는 좌측통행이 더욱 더 안전하다.
길가의 가로수 잎사귀는 파랗게 물들었고 금광 호수가 길 바로 옆에 있어 자동차 드라이브 코스로는 운치가 있을지라도 쏜살같이 내달리는 자동차에 주의를 환기하며 걸어가는데 예상보다 길었다.
20여 분을 걸어 중대 마을에 이르러 주도로에서 지선의 도로에 진입하니 교통량이 감소 되어 다소 마음이 놓였지만, 이제부터 걷기의 시작을 알려 주려는지 가파른 오르막의 도로가 기다리고 있다.
오늘이 올해 중 가장 높은 기온 때문인지 오르막길에서 더위를 느꼈다. 뙤약볕은 아니지만 포근한 걸어가기 좋은 날씨도 아니었기에 오르막을 넘어가는 이마에 땀방울이 맺힐 때 갑자기 바람이 불어와 가슴속 깊이 시원함을 선사한다.
서 있을 때는 더운 줄을 느끼지 못하지만 경사진 오르막길에서 흘리는 땀방울을 때때로 바람이 불어와 시원함을 선사하는 봄의 기운에서 ‘항시 봄바람 같은 따뜻하고 시원한 품성을 지녀야 한다’던 어머니의 말씀이 떠올랐다.
쏙 고개를 내려서니 세종 ↔ 포천의 고속도로가 놓여있었고 금광 터널이 눈에 띄었다. 자동차도 넘어가기 힘들어 터널을 뚫은 곳을 우리는 두 발로 산의 날망을 넘어서 마둔 호수에 이르렀다.
마둔 호숫가를 따라갈 때 평택 ↔ 제천 고속도로 공사 현장을 지나가면서 마 둔 호수를 왼쪽에 두고 걸어가는 길 찾기에서 김 총무의 의견을 따르지 않아 길을 잃고 방황하였고 김 총무의 의견을 따르니 우리가 가야 할 길이었다.
드넓게 펼쳐진 마둔 호수는 “서운산 북동 자락에 위치해 있다. 경치가 좋고 다듬어지지 않은 자연미가 있는 곳이다. 마둔 저수지 주변에 둘레길 6.5km을 조성하여 산책하기 좋다. 한눈에 들어오는 서운산 자락들과 호수의 경치가 멋진 뷰를 자랑한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걸으며 멋진 추억과 힐링의 시간을 만들 수 있는 좋은 장소이다.] 대한민국 구석구석, 한국관광공사)라고 안내한다.
마둔 호수 변을 따라 걸어가는 길에서 방조제를 지나 그윽한 산길로 진입하였다. 장마가 되면 호숫물이 길을 덮어 걸어갈 수 없을 것 같은 호숫물의 찰랑찰랑하는 물소리를 들으며 걸어가는 아늑한 길이 되어 걸음걸음이 신이 났다.
아니나 다를까! 군데군데 물이 넘쳐 가시밭길을 헤치고 가는 고통을 즐거움으로 느끼고 걸어가야 했다. 호수 변을 따라 걸어가는 길이 다하고 나니 배수로 공사와 고속도로 공사 현장이 되어 다소 길 찾기에 주의를 요하였고 교통량이 많아지기 시작할 때 둘레길은 마을로 진입하는 길로 인도한다.
논과 밭이 펼쳐있고 옹기종기 가옥들이 모여있는 곳은 우리의 어린 시절의 모습을 하고 있어서 그런지 아무리 들어도 싫지 않은 물소리같이 언제 보아도 다정다감한 마음이 떠나지 않는다.
비록 이 길이 도로를 걸어가는 위험을 없애고자 마을 길로 우회하여 도로를 다시 만나는 길이 될지라도 예전의 농촌가옥에서 새마을로 탈바꿈된 선진 농촌의 풍광을 느낄 수 있는 명품 길이었다.
마을은 중촌마을이었다. 우리의 마을에는 상옥리가 있으면 하옥리가 있고, 전곡이 있으면 후곡이 있듯이 이곳도 상촌, 중촌, 하촌마을 가운데의 중촌마을일까? 라는 의구심을 가지고 걸어가는데 김해 김씨 열녀정문비가 세워져 있다.
”때는 임진왜란 당시 부인께서 의병장을 도와주었다는 사유만으로 부인을 무참하게 구타하고 젖을 만지며 농락하자 정절을 소중히 여긴 김해 김씨 부인께서 칼을 빼 들어 유방을 도려내고 자결하여 열녀비를 세웠다“ 는 내용이었다.
선비는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서 죽고, 여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얼굴을 단장한다(士爲知己者死 女爲悅己者容)하였고, 충신은 두 임금을 섬기지 않고, 열녀는 두 지아비를 섬기지 않는다(忠臣不事二君, 烈女不更二夫)하였으니 열녀의 정절이란 시대의 정신을 만세에 휘날리었다.
중촌마을을 지나 도로를 다시 만나 도로변의 상촌마을을 지나 석남사를 향하여 걸어간다. 아스팔트가 놓인 도로였지만 서운산 기슭이 되어 계곡물 소리를 들으며 깊은 산속으로 진입하는 길이다.
길가에는 부처님오신날을 축하하는 수박등이 걸려있다. 내달 15일이 부처님오신날이다. 불탄일에는 육식을 금지하셨고 우리를 위해 철야 정진을 하신 평생 불자로 사신 어머니가 그립다.
”백상타고 오셨네, 백상타고 오셨네,
화려하고 아름다운 도솔천으로부터
우리 중생 제도하실 그 인연을 따라서
상서로운 구름 위에 백상타고 오셨네,
아 어둠 속에 헤매는 온 누리의 생명은
님의 진리 광명 아래 삶의 길을 얻었네 “
학창시절 배운 찬불가를 부르며 소나무 펜션을 지나 석남사에 이르렀다. 통일신라 시대에 창건한 천년 고찰답게 깊은 산속에 파묻혀 있지만, 사람들의 발길은 끊이지 않고 있다.
대웅전에 오르는 금광루에 걸어놓은 주련은 다른 절에서는 좀처럼 보기 드문”. '효심 천심 불심' '언제나 이 마음' '수행도 봉사도' '나날이 즐거워'“라는 누구나 한번 들으면 알 수 있는 아름다운 우리말로 주련을 걸어 놓았다.
불교가 대중과 좀 더 가까워지려면 한문으로 되어있는 경전이 한글로 바뀌어야 한다는데 모두가 공감하면서도 한문 경전의 한글화는 요원하기만 한데 석남사는 금광루의 주련을 한글로 걸어 놓아 따뜻하고 흐뭇한 느낌을 주었다.
금광루를 지나 대웅전에 이르러 두 손을 모아 합장을 하고 부처님의 설법을 듣는다. 금광루에서 한글 주련을 보고 신선한 충격을 받았기에 대웅전 또한 한글 주련을 기대하였지만 아쉽게도 한문으로 새겨놓았다.
佛身普遍十方中 : 부처님은 우주에 가득하시니
三世如來一體同 : 삼세의 모든 부처님은 다르지 않네
廣大願雲恒不盡 : 광대무변한 서원의 구름은 항상 다함이 없어
汪洋覺海渺難窮 : 넓고 넓은 깨달음의 세계 헤아릴 수 없네.
석남사는 천년 고찰답게 항시 새로운 변화를 꾀하고 있는 것 같았다. 서운산 깊은 골짜기에 묻혀있을지라도 드라마 도깨비 촬영지가 되어 그 이름을 세상에 알렸고 진입로 또한 새로이 단장하여 사람들이 손쉽게 접근할 수가 있었다.
”서운산 아래 /금광루에서 /부처님 광명 /다시 빛내리”라는 금광루의 현판처럼 부처님의 자비 광명이 온 누리에 충만 하는데 석남사는 그 책임과 의무를 다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며 서운산 고스락으로 향했다.
아스팔트 길을 20리가 넘게 걸어왔는데 올해 중 가장 기온이 높은 30도에 육박하는 더위 날씨에 서운산 정상에 오른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면 서운산 정상에 오를 수 없다.
2시간 넘게 딱딱한 아스팔트 길을 걸어왔기에 부드러운 숲길은 사뿐히 넘어갈 수가 있다는 자신감으로 고스락으로 향하였다. 봄의 향연이 펼쳐지는 숲속의 길을 걸어간다.
딱딱한 시멘트 바닥도 아니요 아스팔트 길도 아니다. 가장 좋아하는 부드러운 흙길이다. 그리고 숲속의 나무들은 푸르게 옷을 갈아입어 내 마음도 절로 파랗게 물이 드는 길이다.
길은 넓고 평탄하였지만, 야생화 꽃길을 지나고 계속되는 오르막의 길에 땀이 밴다. 쉬었다 가는 것도 좋지만 이제 나이가 들어가면서 오르막길을 오르다가 쉬는 것은 체력이 50대의 체력을 유지하지 못하고 스스로 나이가 든 것을 자인하는 것 같은 생각이 들어 쉬지 않고 걸어간다.
하지만 기존 등산로가 힘이 들어 신규 등산로를 새로이 만들었다는 안내도가 세워진 지점을 지나고부터 하나의 봉우리에 오르면 또다시 봉우리가 계속해서 나타나는 등산로에서 쉬고 싶은 마음을 억누를 수 없었다.
그렇지만 김 총무는 농담으로라도 쉬었다 갈까요 ?라는 말이 없다. 힘들지 않아서가 아니라 아마 등산을 하면서 꼭대기에 이르기까지 쉬지 않는 습관이 몸에 배 있기 때문일 것이다.
다소 힘이 들었지만, 오늘도 예외 없이 쉬지 않고 고스락에 오르니 전망데크를 조성하여 놓았기에 서운산에서의 조망을 기대하였지만 마새먼지 가득한 뿌여케 흐린 황사 속에 오늘도 조망의 즐거움은 만끽할 수 없었다.
서운산은 금북정맥의 산이다. 백두대간 속리산에서 뻗어온 한남금북정맥의 산줄기가 칠현산에 이르러 서운산을 일으키고 그 산세가 충청도를 향하여 힘차게 뻗어 오서산, 가야산을 일으키며 태안의 안흥진에서 그 여백을 다한다.
산경표에서는 서운산을 청룡산으로 표기하였는데 상서로운 구름이 머무르는 산이란 의미를 지니고 있다. 안성의 진산답게 고스락 주변에는 많은 등산객이 땀을 식히며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고스락에 올랐기에 잠시 배낭을 내리고 휴식을 취할 때 정상에 세워진 표지석을 보니 서운산의 높이가 산림청에서 세운 전망데크는 547.4m, 서운 산성 안내문에는 535m, 예전의 표지석에는 564m로 각기 달랐다.
고스락에서 청룡사까지는 2.5km이다. 이미 다 내려온 것 같은 기분이다. 하지만 하산하는 길은 갈림길이 많아 주의를 요했다. 엽돈재로 내려 가는 길, 서운산 최고의 조망명소인 탕흉대로 내려가는 길도 있어 무심코 내려설 수 없는 길이다. 경기 둘레길은 은적암으로 방향을 잡아 청룡사로 가는 길이다.
은적암에 이르니 공사 중에 있었다. 기실 서운산에서 하산하면서 은적암이란 이름을 듣고 동학의 창시자 최제우 선생께서 무극대도를 깨달으시고 전라도의 남원 은적암에서 주석하신 일화가 떠올라 수운 선생 같은 도인을 안성의 은적암에서 만날 수가 있기를 기대하였다.
기대가 망상일까? 도인은 보지 못하고 공사 중인 사람으로부터 저쪽 계단으로 내려가시라는 퉁명스러운 대답을 들은 채 은적암을 내려서야 했다. 오늘날에 진정 도인은 없는 것일까?
아니다, 예전에 있었던 도인이 오늘날에는 왜 없을까? 도인을 만나고도 도인을 알아보지 못하고 지나치는 덕성과 역량이 부족한 눈높이로 도인이 없다고 단정하여 스스로 무지를 들어내고 있다.
나의 무지를 자각하며 은적암을 내려서 42코스를 걸으며 지나갔던 단풍나무 숲길을 또다시 지나며 청룡사에 이르렀다. 두 번째 청룡사에 이르렀기에 오늘은 청룡사를 탐방하지 않고 평소 가슴속에 새긴 이름 모를 선사의 경어를 떠올려본다.
我有一卷經 : 나에게 한권의 경이 있으니
不因紙墨成 : 종이와 붓 없이 만들었네.
展開無一字 : 펼쳐 봐야 한 글자도 없지만
常放大光明 : 항시 크나큰 광명을 발하네.
청룡사 주차장에 이르니 14시 20분이다. 땀을 흘리며 서운산을 넘어왔기에 몸의 열을 식히고자 시원한 묵밥을 먹고 싶었지만 10분 후에 도착하는 버스를 놓치면 2시간을 기다려야 했기에 먹고 싶은 묵밥을 먹지 못하고 14시 30분에 출발하는 버스를 타고 안성 시내로 나와서 물냉면으로 점심을 먹었다. 이제 60코스, 860km의 대장정 경기 둘레길도 7코스가 남았다. 그중 4개 구간이 봄철 산불 예방 기간 국유림 출입금지 규정에 따라 걸어갈 수 없다.
아쉽지만 경기 둘레길 완주는 산불 예방 기간이 종료되는 5월 15일 이후를 기다려야 한다. 하루라도 빨리 완주하고 싶지만 어디 사람의 뜻대로 모든 것이 이루어질 수가 있을까? 오로지 기다릴 뿐이다.
● 일 시 : 2024년 4월 14일. 일요일 맑음
● 동 행 : 김헌영 총무
● 동 선
- 10시20분 : 금광호수
- 11시10분 : 마둔 호수
- 12시10분 : 상촌 마을
- 12시30분 : 석남사
- 13시20분 : 서운산 고스락. 전망데크
- 13시50분 : 은적암
- 14시10분 : 청룡사
● 도상 거리 및 소요시간
◆ 총거리 : 15.4km
◆ 시 간 : 3시간50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