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여행을 자주 떠난다. 심지어는 여행이 아니더라도 저녁마다, 주말마다 나가기 바빠 결혼 전에는 아빠가 선거운동이라도 하느냐고 묻곤 했다. 공사가 다망했던 딸은 집순이와는 거리가 먼 삶을 살다가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던 첫해, 두 번의 여행이 취소된 후 비자발적 집콕 생활을 하게 되었다. 처음으로 집에 온전히 머물며 나의 공간을 들여다본 것이다.
집은 참 신기한 곳이다. 정겨운 세월과 취향이 곳곳에 묻어나는가 하면, 버리지 못해 이고 가는 짐도, 미련도 가득하다. 가만히 있지 못하는 병에 걸린 나는 쇼파에 누워 눈으로 집을 쓰윽 스캔했다. 당시만 해도 조그만 타운 하우스에 살고 있었는데, 비좁은 공간에 아이들 물건과 생활용품이 어찌나 많이 쌓여 있던지 보기만 해도 숨이 턱 막히는 듯했다.
물론 모든 것에는 나름의 사연과 이유가 있었다. 아이가 백일 때 입었던 예쁜 꼬까옷, 여행지에서 사 온 (그러나 물이 이미 탁해진) 스노우볼, 지난 생일에 받은 꽃을 말려둔 것, 심지어는 학창 시절 친구들과 찍은 스티커 사진들까지. 대부분이 추억과 관련된 것들이다. 이래선 안 되겠다 싶어 집어 든 까만 쓰레기봉투를 시작으로 비우는 삶이 시작되었다.
우선은 안 쓰거나 오래된 것들부터 처리하기로 했다. 구역을 정해 모든 물건을 꺼내 쓸만한 것들은 나누고, 쓰임을 다한 것들은 버렸다. 살 빼면 입으려고 사놓았던 맞지 않는 옷, 철이 지나버린 아이들 장난감과 책, 불필요한 잡동사니들과 그를 수납하기 위한 장 모두가 처분 대상이었다.
곤도 마리에는 말했다.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라고. 물건 앞에 공손히 두 손을 모으고, 설레지 않는 것들은 과감하게 처분하는 그녀를 따라갈 순 없지만, 나에게 필요하지 않은 것들은 충분히 솎아낼 수 있었다. 매일 조금씩 커지는 공(空)을 보며 내심 우리 집이 이렇게 넓고 쾌적했던가 싶다.
비워진 모습에 마음이 편안해지는 걸 보니 집이 곧 마음속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들어오는 감정들을 차곡차곡 잘 정리해 두었다고 생각했는데, 정리의 개념 자체가 틀렸나 보다. 정리란 쌓아 두는 것이 아닌 비우는 것임을, 마음의 정리도 집 정리와 별반 다를 바 없음을 깨닫는다.
묵힌 감정을 하나씩 흘려보낼 준비를 한다. 깊은 곳에서 나를 옥죄던 슬픔과 미움, 시기, 증오를 하나하나씩 꺼내 본다. 대부분은 무뎌진, 철 지난 감정들이다. 더 이상 쓸모가 없음에도 마음 한편을 너무 오랫동안 내주었다. 게으름과 나태함도 비워내고 싶지만 바닥에 들러붙은 껌딱지처럼 쉽지 않다. 진작에 떼어냈어야 하는데… 비워진 공간으로 사랑과 행복, 즐거움과 호기심을 펼쳐 둔다.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니 새로운 감정들이 퐁퐁 샘솟는다. 비운 후에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다.
더 이상 불필요한 것들에 마음도, 공간도 내어주고 싶지 않다. 다음 여행을 떠날 땐 가볍게 떠나 더 가볍게 돌아오리라 다짐해 본다.
박새미 / 2020 창작산맥 수필부문 신인상 등단, 시드니 문학동인 ‘캥거루’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