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 하나님의 아들들과 사람의 딸들의 혼합(6:1-4)
3) 노아 홍수(6:1-9:29)
죄는 전파되고 성장하고 파괴하는 성질이 있다. 선악과 범죄는 하와의 개인의 영혼을 희생시키더니 아담의 가정을 파괴하여 결국 후손에 이르러 가인이 아벨을 죽이는 참사를 가져왔고 드디어 한 사회를 파괴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 이 사회적 파괴는 어떻게 발단되었는가.
가인이 동생을 죽인 이후 아담의 가정엔 최초의 살인자와 최초의 순교자(마23:35)가 나온다. 하나님은 살인자 가인을 저주하여 하나님 앞을 떠나게 했고 그는 에덴 동쪽 놋 땅에 거주하면서 하나님을 모르는 계보를 이어갔다.(4:16-24) 한편 하나님은 아담에게 순교자 아벨 대신 셋을 씨로 주셔서 하나님을 섬기는 계보를 이어가도록 했다.(5:1-32) 세월이 흘렀다. 하나님을 모르는 가인의 계보 사람들과 하나님을 섬기는 셋 계보의 경건한 사람들이 만나게 된다. 그동안 양 계보 사람들은 서로 다른 문화를 발전시키고 있었다.
당시의 인구는 급격하게 증가했다.(1) 그 근원적 이유는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1:18)는 하나님의 축복에 기인한 것이었으며 실제적 이유는 당시 사람들의 수명이 천 년에 가깝고 자녀들을 많이 두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여기서 문제가 된 것은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과 결혼을 시작한 것이다.(2) 여기서 하나님의 아들들과 사람의 딸들은 각각 누구를 가리키느냐 하는 이론들이 발생할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들은 경건한 셋 계통의 자녀들이고 사람의 딸들은 가인 계통의 자녀들을 가리킨다고 보는 것이 옳다. 그렇다면 경건한 셋의 후손들과 세속적인 가인의 후예들의 씨가 혼합되었다는 의미가 된다. 그렇다. 사회의 파괴는 경건한 사람들이 세속적인 사람들과 혼합되는 타협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이렇게 되면 두 계통의 구별이 없어지고 세상과 교회의 구별은 없어진다. 이런 현상을 하나님은 가장 싫어하신다
진리가 자기 영역을 포기하여 비진리와 타협하고 정의가 제 위치를 지키지 못하고 불의와 타협하며 교회와 세상이 타협하면 어떻게 되는가. 맑은 물과 구정물이 섞이면 깨끗한 물이 될 수 없다. 더러운 물이 되어서 후에 썩게 된다. 이런 이치로 진리와 비 진리가 타협하면 진리는 파괴되고, 정의와 불의가 타협하면 불의가 득세하여 정의로운 세상은 기대할 수가 없다. 교회가 세상에 타협하는 것을 교회의 세속화라 한다. 그러면 교회는 거룩한 예배자들의 모임이 아니라 세상의 어떤 이익단체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 기도하는 사람은 없고 장사하는 사람들만 당당히 매매하는 참담한 모습을 보고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다고 분노하신 것은 너무도 당연했던 것이다.(마21:12-13) 바울 사도가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고 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고후6:14-16) 의와 불법이 함께하면 불법이 되고 빛과 어두움은 함께하지 못한다. 기독교와 사탄은 조화될 수 없다. 종교다원주의는 그래서 사탄의 계교다. 인류의 최초 실패가 하나님께 대한 불순종이었다면 다음의 실패는 불신앙과의 타협이었다.
하나님의 아들들과 사람의 딸들의 결합이 외부에 나타난 감각적인 조건 때문이었다는 것도 불행을 자초한 일이었다. 당시에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모든 여자를 아내로 삼았다고 하는 데에는(2) 적어도 세 가지의 도덕적인 결함이 들어 있다. 첫째는 결혼 당사자들이 상대방을 택할 때의 조건이 ‘아름다움’이었다. 여기서 아름다움이란 인간의 내적인 인격이나 품성을 고려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육체적인 모습을 감각적인 눈으로 보고 결정했다는 것이다. 다분히 관능적인 미를 찾았다는 의미다. 둘째는 자기들이 좋아하는 사람을 택했다는 점이다. 물론 결혼 당사자들의 뜻이 무시되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부모의 의견이 무시되어서도 안 되고 더구나 당시에는 영적으로 동일한 혈족을 무시했다면 불행은 싹틀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사사시대에 삼손도 부모의 권유를 뿌리치고 블레셋 여인을 택하여 불행을 자초했지 않은가.(삿14:3) 셋째는 모든 여자를 아내로 삼은 것이다. 여러 여자로 아내를 삼았다는 뜻이다. 감히 경건한 가정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고 가인 계대의 라멕으로부터 시작된 부도덕한 결혼 습관이었다. (4:19)
이러한 하나님의 아들들과 사람의 딸들의 결합은 급속도로 사회를 부도덕으로 몰아가며 파괴하기 시작했다. 그중의 하나가 네피림의 탄생이다. 네피림이란 ‘거인’, 또는 ‘장부’라는 뜻으로 신체 조건이 좋고 건강한 사람, 즉 용사를 가리킨다. 그런데 이 네피림이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에게로 들어와 낳은 자식이라고 지시하는 것을 보면(4) 아마 ‘타락한 자들’을 지칭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즉 ‘압제자’, ‘난폭군’, ‘훼방자’등으로 보아야 한다. 이는 아마도 당시 사회가 힘 있는 자들에 의하여 지배되는 사회가 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폭력과 부정이 사회 전체를 다스리는 법이 되었다면 역시 당시대가 타락과 방종의 시대라 아니할 수가 없다. 이에 하나님은 그 사회에 진노를 내린다. 그 하나가 “나의(하나님) 영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는 것이다.”(3상) 여기서 “나의 영”이란 인간을 지으실 때 흙으로 빚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어 생령이 되게 했는데 여기서는 영적 생명력을 말한다. 이 영적 생명력이 없다면 사람은 죄의 오염으로 타락한 육신적 삶밖에 살 수 없다. 그리고 죽어야 한다. 그렇다면 인간이 장차 홍수로 인하여 땅 위에서 멸망할 것을 암시하는 말씀일 것이다. 또 하나의 진노는 “그들의 날은 백이십 년이 되리라.”(3하)는 것이다. 여기서 이상근 박사는 120년을 인간의 수한을 가리킨다고 보았고 박윤선 박사 등은 120년 후에 홍수로 인류를 멸망시킬 것을 의미한다고 보았다. 홍수는 노아 나이 600세에 있었으므로(7:6) 이 진노를 말씀하실 때는 노아의 나이가 480세였을 것이다. 아무튼 인간이 하나님의 뜻을 거역할 때는 하나님의 진노에 의한 징계와 심판을 면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