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耳鳴 외 9편
오명현
질주하는 차 엔진소리 요란하다
길 복판에선 까마귀 몇 마리
횡사한 살쾡이의 살점을 쪼고 있다
돌진하는 차는 안중에도 없는 듯
등에 진땀 배 브레이크 밟으려는 순간에야
날개 퍼덕이는 소리
까옥까옥 우는 소리
목백일홍 나뭇가지에 부리를 닦으면서
길 복판으로 향한 시선 거둘 수 없다
목백일홍 줄지어 활짝 핀 산길로
상여 한 채 지나고 있었지
지게에 나를 태워 춤사위로 놀다가
내처 그 산길 어지럽도록 달려서는
숨이 멎었나 싶어서야 멈추곤 하던
건너마을 덕림 아재 저승 가는 날
하얀 소복 눈에 부시고
상엿소리 아스라이 고개 넘는데
까마귀 우는 소리도 따라 넘고 있었지
까마귀는 그 살점 다시 쪼고 있을 터인데
차는 여전히 확 트인 길을 질주한다
빈집
바람이 분다
외딴곳 빈집이 철망 뜰채로 바람을 뜬다
손잡이뿐인 뜰채로 바람을 뜬다
아무것도 없는 뜰채로 바람을 뜬다
어깨가 아프다
팔뚝이 아프다
빈집이 기침을 한다
지난밤 꿈에 기도에 눌어붙어
끝내는 돋우어내지 못한 가래를 털어내려는 듯
빈집은 등이 굽었다
잦은 기침에도 찾아오는 이 늘 바람뿐
바람은 뼈를 관통한다
뼈는 반쯤 삭아
등은 더 이상 굽힐 수 없다
밭은기침조차 힘겹다
달밤
덕룡산 불회사
빽빽한 비자나무숲을 간신히 빠져나와
운주사에 누워 있는 부처 몇 일으키려 힘깨나 써 보다가
닷새장 파한 뒤 중장터 후밋길
불 꺼진 국밥집 더그매에 한참 머물다가
고래실 벼 그루터기마다 살 오른 발자국
나동골 초입 목화송이 벌어지는 뙈기밭
징검돌 건너 사립문
섬돌
툇마루
우리 누님 옷솔기 시접에 드는 달빛
보릿동
덜 여문 아이들은 보리밭 사잇길에서
바람처럼 흔들리고
보리가 밭째 출렁이면 어지러웠다
아이들은 보리홰기를 지긋이 잡고
듬성듬성 뽑으면서 걸었다
자국 드러날까 뭉텅뭉텅 뽑지를 못했다
홰기 한 모숨을 그러쥐고들
옴팍한 하천 둔치로 휘돌아들었다
바람 잦아들면
꼴마리에 감춰 두었던 성냥개비로
독새풀 검부러기에 불을 놓았다
낮게 드리운 연기를 추적하면 금세 범행현장
보리모개에 붙은 까끄라기는 온데간데없고
고래질꾼 놀라 자빠지게 검댕 도배를 한
흰자위만 더욱 희어서 도적 같은 얼굴들
노릇노릇한 알갱이 한 주먹 잘근잘근 씹을 때
아이들 등 뒤로 검은등뻐꾸기 우는 소리
보리잇동
보리잇동
명포수
(전략)
한여름 밤에 평상에 누워 잠을 청하는데
큰 짐승이 번득이는 눈빛으로
외양간의 황소를 노리더란다
헛기침 한 방으로 종적을 감추기는 했지만
황소를 노릴 산짐승이 호랑이 말고 있겠느냐는 거지
먹뱅이골에서 사냥하던 중에도
사라지던 꽁무니와 꼴랑지가 분명 호랑이었단 말일세
내 이야기인즉슨
그런데 의아한 것이 헛기침 한 방에 종적을 감추는 호랑이도 있을까
아니야
영험한 동물이라 인간이 얼마나 독종인가를 알았을 수도 있는 거지
소문난 명포수겠다
꿈을 갖게 된 거지
눈이 흐려지고 근력이 뚝 떨어지기 전에
그놈을 잡고야 말 터인데
꽁무니만 보여준 뒤로는 나타나질 않는다는 거야
그래서 그놈은 아버지의 꿈속으로 들어가게 되었지
꿈이라는 건 뜻대로 할 수 없는 거잖아
아버지의 꿈속에 들어간 그놈은
어느덧 빨치산 아니면 토벌 군경이 되었을 거야
아버지의 괴성은 호랑이를 쫓는 소리가 아니었어
어느 쪽에게든 쫓기면서 있는 힘을 다해
밭둑을 넘고 논둑을 넘고 고개를 넘어
아슬아슬 쫓는 쪽을 따돌리느라 내는 소리였어
군경 편을 들었다고 빨치산은 생매장하려 하고
빨치산에 밥해 줬다고 군경은 총을 들이댄 거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신세
꿈을 꿀 수밖에 없는 것이었어
아버지는 위장을 한 거야
그들이 꿈속까지 따라왔다고는
선뜻 이야기할 수 없었던 거야
그 이야기를 끄집어내면 아버진 끝내
목숨 하나 건지자고 비굴해질 수밖에 없었던 거지
그래서 호랑이를 잡았어야 했는데
그래야 호랑이의 포효하는 소리를 쫓는 더 큰 함성이
아버지의 잠자리에서 사라질 텐데
선비론
아버지는 선비였으므로
재를 넘지 않으셨다
예닐곱 살 먹은 나와 학교를 하루 거른 작은형이
덕림재를 대신 넘곤 했다
돌아서 가면 이십 리 길
덕림재를 넘어서 가는 쟁기머리는 십 리도 못 되었다
쟁기머리는 담배 배급인이 들르는 남방한계선이었다
담배를 받아 든 형제는 봇짐을 번갈아 짊어지고
덕림재를 넘었다
봇짐을 빠져나온 가공된 엽연초 냄새가 형제를 부축했다
고향마을은 깡촌 중의 깡촌이었고
우리 집은 동네에서 하나밖에 없는 담배가게였다
가게는 늘 한산하였으므로
아버지는 대청마루에서 행감을 치고
시조를 읊는 일에 골똘하셨다
마당에 널어 둔 붉은 고추가 소낙비에 젖어도
그것은 밭에 나가신 어머니의 일이었다
어머니는 핀잔을 소낙비처럼 뒤집어썼다
아버지는 또한 선비였으므로
쇠꼴을 벨 일도 없었다
어린 형제는 쇠꼴을 베듯 손을 베곤 했다
오늘 나는 문경새재를 넘고 있다
영남의 무수한 문사들이 진짜 선비가 되기 위해서 오르내렸던
새재를 넘고 있다
그러나 환갑에 이르지 못한 채 이승을 뜨신 아버지는
오늘도 재를 넘으실 리 없다
파옥破屋
아버지는 헛간에 방을 한 칸 들이더니
그리로 나앉으셨다
자식들의 거처를 읍내로 옮긴 후였다
용마름을 벗기고
몇 겹 이엉을 걷어내자
본채는 털 뽑힌 장닭 같았다
서까래 위 바싹 마른 흙을 털어내고
바람벽을 허물었다
먼지가 일었고 뼈대가 드러났다
아버지가 손수 쓴 상량문과
목수들이 남겨 놓은 그레질 자국에서는
아직도 먹 냄새가 풍기는 듯했다
족보의 구성처럼 뼈대는 잘 짜여 있었다
마룻대를 내리고 대들보를 내리고
기둥을 눕혔다
인부들은 뼈를 추리듯 조심스러웠다
본채를 이뤘던 뼈대는 다시 재목이 되었다
득세한 가문의 수장이 눈여겨봐 뒀던 대로였다
그럴듯한 제각을 지으려는 그의 얼굴이 오랫동안 환했다
다들 비싼 값에 팔려가는 것이라고 했다
무딘 트럭에 실려 재목이 된 뼈대는 떠났다
뒤란의 담요만한 밭에 키운 솔잎[韮菜]들 위로
구들미가 무겁게 내려앉았다
솔잎들이 마치 혼절해 있는 듯했다
초석은 소슬하게 남아서 터를 지켰다
나둔굴 보성오씨세장산 곁 볕바른 곳
아버지의 뼈가 묻힌 봉분은 몇 해 전부터
눈에 띄게 가라앉았다
마을 사람들이 그렇게 수군댔다
쪽머리
막걸리 몇 사발을 마셨으면
종3에서 일을 봤어야 했다
아리따운 아낙과 함께 가는 길이어서
그냥 참고 전철에 올랐더니
낭패다!
청량리역은 개표구 밖에 화장실이 있다
염치불구
개표구를 훌쩍 뛰어넘어 일을 보고
다시 뛰어넘는다
석계역 가는 차 여그서 타면 되요?
남정네가 그렇다고 한다
쪽머리 여인은 내게로 와서 다시 묻는다
그렇다고 대답하는데 의정부행 열차가 시끄럽게 들어온다
또 묻는다
석계역 갈라믄 이것 타면 되지라?
맞습니다
맞은 편 경로석에 다소곳이 자리 잡은 여인
영락없이 어머니였다
까맣게 물들인 머리카락만 빼면
강원도 작은 아들 집에 들러
버스 타고 전철 타고 다시 버스 타고
셋째 아들네 서울 집까지 오는 과정도 저러했으리라
PX에서 구입한 맥주가 싸다며
7월 뙤약볕 길을 걸어
그토록 무거운 맥주 한 상자를 이고 오신 어머니
술 좋아하는 것으로 셋째는 그렇게 불효했었는데
종3에서 일을 못 본 게 행운이로구나
관절염으로 거동 불편한 까막눈 어머니를
청량리역에서 뵈옵고
밀려오는 졸음을 석계역까지는 견뎌야 하다니!
낯설지만 분명 어머니인 쪽머리 여인
뚫어지게 바라보면서
불효를 지울 방도 궁리하는데
석계역에 들어설 즈음
이번에 내리시면 됩니다
아들네 집일지 딸네 집일지 모를 일이지만
쪽머리 여인의 종종걸음 뒤로
밀려들던 졸음이 서둘러 따라나선다
팬티 한 장
딸년은 시집가고 없는데
보면대譜面臺 위에 악보 한 장
겨울 볕뉘를 쬐며 졸고 있다
오선五線은 삭은 고무줄 같아서
매달려 있던 음표들은 거의 떠나가고
남은 몇 개도 퇴락한 그림자 같다
보면대의 골격이 제법 훤히 비쳐서
악보는 피아니시모pianissimo보다 더욱 여리다
귀는 모지라져 내가 한 말을
알아듣지 못한다, 그러므로 악보는
누구에게든 건네줄 말이 없다
장모 박복임 여사께서는 늘 그렇듯
군데군데 단이 풀어진 팬티 한 장을
내 딸년의 보면대 위에 널어놓았다
안개
소문이 돌기 시작하자
누님의 시름이 일기 시작했다
소문이 번지면서 색깔은 점점 짙어졌고
누님의 시름은 밑도 없이 깊어졌다
상심한 아버지와 봉황으로 시집간 고모가
등잔불 이울도록 두런거렸다
동틀 무렵 누님은 보퉁이 하나 들고
앞장선 고모 따라 먼 길 떠나고 있었다
면소재지 쪽으로 떠나가던 누님에게
안개가 소문처럼 몰려가고 있었다
소문의 진상이 밝혀지지 않듯
그때 그 안개는 십수 년 동안 걷힐 줄 몰랐다
아버지 세상 뜨신 바로 이튿날에야
자욱한 안개처럼 누님은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