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국지색(傾國之色) - 여인이 나라를 기울게 하다(색에 빠지면 나라를 망친다) 이상호(소소감 리더십 연구소 소장) 아주 먼 고대부터 술과 여자(이성)는 삶과 늘 함께 했다. 그러기에 수많은 역사적 사건과 사랑이야기에는 술과 여가(이성)가 개입되어 있다. 그런데 옛날은 남성 중심의 사회였는지라 술과 여자라 하였지만, 오늘날 같은 남녀평등의 사회에서는 여자에게도 마찬가지이다. 어쩌면 인간의 삶에 있어서 술과 이성은 결별하기 어려운 대상이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건 술과 여자(여자의 경우 남자)와의 관계를 잘못하면 큰 사건이 발생한다. 그래서 술과 여자(남자)는 가까이 하면서도 절제하지 않으면 안 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술 먹기 비록 좋을지라도 한두 잔 이상은 먹지 말며 색(色) 하기 비록 좋을지라도 패망하게는 말지니 평생에 이 두 일 삼가면 백년지구(百年之軀)를 병듦이 있으랴 위의 시조는 작자 미상으로 전해오는 시다. 내용의 핵심은 술과 여자를 경계하라는 것이다. 술과 여자는 함께 하면 좋지만, 그것에 빠지면 절대로 백년지구(백년 동안 몸을 잘 보존하는 일) 할 수 없다는 것을 강조한다. 역사를 살펴보면 술과 여자로 인해 자신을 망치고 심지어는 나라까지 망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역사적으로 임금이 미혹(迷惑)하여 나라가 기울어져도 모를 정도로 미인에게 빠진 경우를 일컬어 경국지색(傾國之色)이라 한다. 이 말이 본격적으로 쓰이기 시작한 것은 중국 한무제 때부터지만, 경국(傾國-나라를 기울게 하다)이란 말은 원래 유비 현덕이 항우와 패권을 다투면서 나온 말로 알려졌지만, 그 이전부터 사용되어 오던 말이다. 그리고 훗날 한무제 때부터 ‘나라도 기울게 할 절세 미인’ 즉 통치자(왕)가 미인에게 빠지면 나라가 기울게 된다는 의미로 전환되어 오늘날에 이르렀다. 그 경국(傾國)과 경국지색(傾國之色)에는 일련의 사건이 개입되어 있다. 삼국지에 의하면, 항우와 유방이 천하의 패권을 놓고 다툴 때 유방은 팽성 전투에서 항우의 대군에 대패하여 구사일생으로 형양(滎陽)까지 도망쳐 겨우 목숨만 건졌다. 그때 경황이 없어 부친과 부인을 적군에 남기고 오는 바람에 부친과 부인은 항우의 포로가 되었다. 뒷날 전열을 정비하여 명장 한신, 팽월 등의 도움으로 항우의 군대를 대파하였다. 항우의 군대는 군량이 바닥나고 사기가 떨어졌으며 이탈자가 생겨 진퇴양난에 빠졌다. 이때 항우는 하는 수 없이 홍구(鴻溝)를 중심으로 천하를 둘로 나누어 가지자고 유방에게 제안했다. 유방이 이에 수락하는 조건으로 항우는 유방의 부친과 부인을 돌려주었다. 그것이 홍구(鴻溝) 조약이다. 이때 활약한 사람이 변설(辯說)로 유명한 후공(候公)이다. 그 소식이 세상에 알려지자 사람들은 후공을 ‘천하의 변사로다. 나라도 기울게 할 수 있겠구나.’하고 감탄했다고 한다. 이때부터 경국(傾國)이란 말이 성행했다고 한다. 그러나 유방은 후공의 공로를 높이 평가하여 평국군(平國君)이라는 칭호를 주었다고 한다. 그때까지 경국은 ‘세 치의 혀가 나라를 기울게 할 수도 있다.’는 의미 즉 ‘나라를 기울게 하는 변설’을 의미하는 경국지변(傾國之辯)이었지만, 한무제에 이르러서 변설이 천하의 미인을 의미하는 말인 경국지색(傾國之色)으로 바뀌었다. 중국 한무제 때 이연년(李延年)이라는 협률도위(協律都尉)가 있었다. 그는 궁중의 음악을 관장하는 관리로서 작사와 작곡은 물론 연주에도 뛰어난 재능을 지니고 있었다. 한무제는 54년간이나 재위한 중국 군주 역사상 세 번째로 길게 통치한 장수 군주였다. 그는 철혈군주였지만, 인생은 무상한 것, 나이 50을 넘기고 사랑하는 여인도 없이 홀로 쓸쓸함을 달래고 있었다. 무료함에 빠진 철혈군주에게 아첨하는 신하들이 그 무료함을 달래주기 위해 주연을 베푸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고 그 주연에는 당연히 음악과 여인이 등장하게 되어 있다. 그래서 이부인전, 진아교, 위자부, 왕부인, 이희, 조쳡여 등 그와 관련된 사랑 이야기가 그의 업적만큼이나 전한다. 그는 먼저 위자부(衛子夫)를 무척 사랑했다. 그러나 세월은 여인의 꽃다운 모습을 앗아가게 되어 있다. 위자부가 늙어가 아름다움이 쇠퇴하니 무제는 다른 여인에게로 마음이 쏠렸다. 그는 왕부인(王夫人)으로 무제의 총애를 받아 제회왕(齊懷王 )인 굉(宏)을 낳았다. 다음이 연자왕(燕刺王)을 낳은 이희(李姬)였다. 그러나 그녀들 역시 세월 앞에 늙을 수밖에 없었다. 이때 천거된 여인이 경국지색(傾國之色)의 주인공인 이부인(李夫人)이다. 한무제가 무료함에 빠져 있을 때 그의 무료함을 달래주는데 크게 기여한 인물은 누나인 평양공주(平陽公主)였다. 누나는 황제인 동생이 무료함에 빠지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었다. 그래서 계속 무제에게 악공과 여인을 알선해 주었다. 위에 나오는 여인들 모두 평양공주의 추천에 의한 것이었다. 위자부도 원래는 평양공주의 집안의 여가수였다. 협률도위(協律都尉)인 이연연(李延年)도 평양공주의 추천으로 궁중에 들어와 벼슬을 하게 되었다. 평양공주는 무료함에 빠진 무제를 달래주기 위해 이연연에게 주연을 베풀게 했다. 동생인 무제에게 이부인을 소개하기 위함이었다. 이연연은 음악적인 소질과 재능이 풍부하여 작곡뿐만 아니라 편곡까지 능했다. 그뿐 아니라 춤과 노래도 능하여 사람들은 그의 공연에 빠져들었다, 무제 또한 그에게 빠져 그를 무척 아꼈다. 평양공주의 주선으로 이연연은 무료한 황제 앞에서 공연하면서 자작곡을 읊었다. 북방유가인혜(北方有佳人兮) 북방에 아름다운 여인이 있네 절세이독립혜(絶世而獨立兮) 세상에 둘도 없는데 홀로 있네 일현편경인성혜(一顯便傾城兮) 한 번의 고개 저으면(몸짓을 놀리면) 성(城)이 무너지고 재현편경인국혜(再顯便傾國兮) 두 번 고개 저으면(몸짓을 놀리면) 나라(國)가 기우네 녕지경성경국(寧不知傾城傾國) 성이 무너지고 나라가 기우는 것은 그 누가 모르랴마는 가인난재득(佳人難再得) 그런 여인은 다시 얻기 어려우리 이 공연을 지켜보던 무제는 그 여인이 누구인지 안달이 났다. 이때 평양공주가 무제에게 이부인을 추천했다. 이부인은 부름을 받고 즉시 황제 앞에서 공연하였다. 그녀는 악사인 이연연의 누이동생이었다. 그녀의 몸매와 춤솜씨 또한 대단하였다. 황제가 보기에 정말 절세 미인이었다. 무제는 단번에 그녀에게 빠졌다. 이제 황제는 이부인에게 빠져 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태어날 때부터 건강 체질이 아니었다. 그녀는 아들 창읍왕(昌邑王)을 낳고 난 후 몸이 극도로 쇠약해져 병석에 눕게 되었다. 그 후로부터 그녀는 이불을 뒤집어 쓰고 누구에게도 얼굴을 보이지 않았다. 그 아름다운 얼굴을 한 번이라도 더 보고 싶었던 무제는 이부인의 병문안을 가서 얼굴 한번 보기를 청했으나 이부인은 아들인 창읍왕과 형제들을 잘 보살펴 달라는 부탁만 할 뿐 끝내 얼굴을 보여주지 않았다. 황제는 기분이 나빠 그냥 발길을 돌렸다. 형제들이 마지막이니 황제에게 한 번이라도 얼굴을 보여주라고 했을 때 이부인은 이렇게 말했다고 전한다. “화장하지 않은 얼굴로 군부(君夫)를 맞이하는 것은 결례입니다. 나는 천한 신분이었지만, 용모가 아름답다는 것만으로 폐하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습니다. 꽃은 아름다울 때 바라보고 시들면 바라보지 않듯이 아름다운 얼굴과 몸으로 사랑을 받던 사람은 그 아름다움이 사라지면 사랑도 사라지는 법입니다. 저는 오랜 병으로 화장을 하지 못하고 얼굴도 보기 흉해졌습니다. 만약 황제께서 나의 흉해진 얼굴을 본다면 기분이 상해버리셔서 나에 대한 사랑은 식고 형제들을 돌봐줄 마음도 사라질 것입니다. 모두 다 가족과 형제들을 위한 일입니다.” 이부인은 끝내 황제에게 얼굴을 보여주지 않고 죽었다. 무제는 이부인을 성대하게 장사지내주었다. 권력자에게 미인은 가고 나면 사랑도 끝나는 것, 황제는 이부인의 부탁을 끝까지 들어주지 못했다. 이연연은 가수 출신이었지만 이부인이 살아있을 때 이부인의 추천에 의해 장군까지 되었다. 그러면서 그의 이름은 황제의 명에 의해 이연연에서 이광리(李廣利)로 고쳤다. 그는 명장 이릉(李陵)과 함께 흉노 정벌에 참전했다. 그는 동생만 믿고 마음대로 위세를 부렸다. 결국 자신의 작전 실패로 흉노의 포로가 된 이릉에게 반역의 죄를 씌웠다. 이때 유명한 『사기』의 저자 사마천은 이릉 장군을 변론하다가 화를 입어 궁형(宮刑)을 받게 되었다. 그때는 이부인이 살아서 무제의 사랑을 받고 있을 때였다. 그러나 이부인이 죽고 난 후 황제는 이광리에게 죄를 물어 처형했다. 한서(漢書)에 전하는 이 이야기는 나라도 기울게 할 만한 이부인의 미색을 말하지만, 여인의 위력은 대단하였다. 한 나라의 통치자가 주색에 빠지면 이성적 사유를 할 수 없고 그 여인은 통치자를 이용해 온갖 욕망을 채울 수 있다. 그래서 ‘이부자리 법’ ‘이부자리 정책’도 생겨난다. 이부인이 살아있을 때 그녀에게 빠진 무제는 이부인의 모든 부탁을 다 들어주었다. 가히 나라를 기울게 할만했다. 역사상 그런 일들은 무수하게 많다. 경국지색(傾國之色)이다. 한 나라의 통치자는 항상 이성을 가지고 균형을 잡고 있어야 나라가 어지러워지지 않는다. 사기에 의하면 중국의 유명한 변설가들은 나라를 기울게도 하고 흥하게도 했다. 많은 장군과 통치자들이 미인으로 인해 전쟁에서 패하고 나라를 망하게도 했다. 그래서 변설(辯說)이건 미색(美色)이건 통치자가 그에 지나치게 빠지면 나라는 기울 수밖에 없고, 권력은 무너지기 마련이었다. 지금도 지도자가 여색에 빠지면 나라가 어지러워진다. 그리고 권력은 위태로워진다. 얼마 전 충남 도지사를 했던 안희정 역시 여색에 빠지는 바람에 권력을 잃었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은 여색을 밝히다가 자살까지 했다. 세계적으로 많은 국회의원과 지도자들이 성추행 문제로 파문을 일으키고 그 명예를 잃고 만다. 얼마 전 지방선거에서 박완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성추행 파문은 선거에서 민주당이 패배하게 하는데 일조했다. 최근에 이준석 대표를 둘러싼 국민의 힘 내홍도 여자 문제가 개입되어 있다. 이준석이 과거 술집에서 업자로부터 성 상납을 받았다는 것이다. 이것을 빌미로 국민의 힘에서는 이준석을 징계하였다. 술과 여자 문제이다. 물론 당내에서 실세들이 이준석을 손톱의 가시처럼 여겨 제거하고자 하는 의도라지만 그 과정에서 국민의 힘은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잃고 당내의 분열과 혼란을 일으켜 당이 기울고 있다. 경당지색(傾黨之色)이다. 경국지색(傾國之色), 이 말은 국가의 통치자에게 해당하는 말이지만, 다방면으로 해당하는 말이다. 오늘날은 옛날과 달리 남녀평등 사회이다. 그런 만큼 성의 문제는 매우 복잡하다. 그래서 경국지색(傾國之色)이란 말은 남성 지도자에게만 해당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회사의 사장이 여인에 빠지면 회사가 기운다. 정당의 대표가 이성 관리를 잘못하면 정당이 기운다. 가정의 가장이 이성에 빠지면 가정이 기운다. 한 개인이 이성에 너무 빠지면 인생이 무너진다. 남자가 여자에게 빠져도 그렇고 여자가 남자에게 빠져도 그렇다. 경국지색(傾國之色), 경사지색(傾社之色), 경당지색(傾黨之色), 경가지색(傾家之色), 경생지색(傾生之色)이다. 술과 이성은 삶 속에서 어울리고 즐길 수밖에 없는 대상이지만, 항상 조심하고 절제하여야 한다. 중요한 것은 즐기되 중심을 지키고 절제하는 자세일 것이다. 避色如避讎 (피색여피수-색을 피하기를 원수를 피하듯 하고) 避風如避箭 (피풍여피전-바람 끝을 피하기는 화살 피하듯 하라), 莫喫空心酒 (막끽공심주- 빈속 즉 허전한 마음에서는 술을 마시지 말고), 樂不可極 (낙불가극- 즐거운 일이라고 끝까지 하지 말고), 慾不可縱(욕불가종-욕심을 끝까지 쫓지 말라)이다. 백년지구(百年之軀)를 위해 주색(酒色)을 잘 다스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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