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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5시에 일어나 호텔 주변을 산책하는데 새벽부터 햇살이 따갑다. 요즘 타슈켄트의 한낮 기온이 36~8℃이고 밤에도 27~8℃를 오르내리지만 다행히도 습도가 낮아 그늘로 들어가면 그리 덥지는 않다.
오늘은 타슈켄트에서 310㎞ 정도 떨어진 사마르칸트로 이동하는 날로 5시간 반 정도 걸린다. 다른 날보다 조금 이른 7시에 호텔 식당에서 아침식사를 하고 8시 반 사마르칸트로 출발한다.
타슈켄트에서 사마르칸트까지는 고속철도가 건설되어 있지만 우리는 버스를 타고 간다. 우즈베키스탄이 구소련권에서 경제적으로 비교적 가난한 나라임에도 러시아에 이어 두 번째로 고속철도망을 개통했다는 의의가 있다. 고속철도를 건설할 때에 있어서, 경제력도 물론 중요하지만 충분히 고속철도가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구간이 존재해야 하기 때문이다. 주변 국가와 달리 우즈베키스탄은 인구에 비해 국토가 좁은 편이고, 대도시인 사마르칸트와 타슈켄트간의 거리가 고속철도를 깔기에 그리 멀지 않아서 가능했던 일이다. 타슈켄트 중앙역 에서 모든 아프로시욥 열차가 출발하고 있다. 아프로시욥이라는 이름의 유래는 사마르칸트에 있던 고대 도시의 이름으로 일부 구간문제로 1일 딱 4왕복(사마르칸트 종착 1회, 부하라 종착 2회, 카르시, 테르미스 종착 1회)만 운행된다. 히바 종착 노선의 경우 주 3회(화, 목, 금) 운행한다. 차량 최고속도는 250㎞/h이며 실제 최고속도는 200㎞/h 남짓. 아주 일부 구간만 250㎞/h로 주행한다. 타슈켄트 기준 사마르칸트까지는 약 2시간 15분, 부하라까지 약 4시간, 히바까지 약 7시간 30분, 카르시까지 약 3시간 20분이 소요된다.
가는 길에 보이는 풍경들은 페르가나의 페르가나 분지에서 타슈켄트로 오던 풍경과 비슷하다.
사마르칸트(Samarqand)는 당나라 장안(長安)과 동로마 콘스탄티노플을 잇는 동서양 실크로드의 중심도시 중 하나로 중앙아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중 하나다. BC 5세기경 조성되었을 것으로 보이는 사마르칸트는 "금을 캔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BC 329년 알렉산더 대왕이 이곳을 침략했을 때, 이미 사마르칸트는 세계적인 도시였다. "내가 이곳에 대해 들은 모든 것은 사실이었다. 하나 예외가 있다면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아름답다는 것이다."라고 알렉산더는 말했다고 한다. 그가 동방정복을 하면서 이곳에 마라칸다(Marakanda)라는 도시를 만들었는데 마라칸타에서 사마르칸트란 이름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사마르(samăr)는 고대 페르시아어로 돌, 바위를 의미하는 아스마라(asmara)에서 소그드어의 요새, 성곽도시(town)를 의미하는 칸드(kand)가 결합된 것이라고 한다.
상술이 뛰어난 소그드인(Sogd)인들이 사마르칸트를 지배하면서 실크로드 무역을 장악하였고 8세기 초 이란을 정복한 우마이야 왕조가 이곳을 점령하면서 이곳에 이슬람교가 유입되었지만 그 이전에는 불교를 보호하고 전파하던 왕조의 영향으로 인해 이곳을 통해서도 동양으로 불교가 전파되기도 했다. 우마이야왕조 이후에 압바스 왕조가 751년 탈라스전투에서 당나라를 격파하면서 중앙아시아는 이슬람을 기반으로 한 왕조가 자리를 잡게 되었고 이곳도 압바스왕조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압바스왕조는 탈라스전투에서 잡아온 2만 명의 포로 중에 제지 기술자로 하여금 이곳에 제지공장을 만들었고 그 제지 기술이 서양으로 흘러가게 되었다. 13세기에 몽골의 침략으로 도시가 파괴되고 그들에 의해서 차가타이 칸국이 세워지게 되었으며 이곳은 실크로드의 중심도시로 복구가 되었다. 14세기 후반 티무르에 의해서 티무르 제국이 세워지고 이곳을 수도로 삼으면서 도시는 황금기를 맞게 된다. 우리가 보는 대부분의 유적들은 티무르제국 때 만들어진 것이라 한다. 그러나 16세기 초 우즈베크인들의 침략으로 티무르 제국이 멸망하고 새 우즈베크족 왕조 부하라 칸국이 사마르칸트 대신 부하라를 수도로 삼으며 사마르칸트는 영화도 끝나고 수도의 위치도 상실하게 되었다. 그 후 대항해시대가 열리며 실크로드의 중요성이 떨어지면서 중앙아시아 일대가 유목민들의 침략과 내전으로 18세기경 도시는 황폐화가 되었다. 19세기 중엽 러시아 제국에게 복속될 당시 우즈베키스탄 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의 수도로 정해졌지만 1930년에 타슈켄트에 수도 자리도 내주게 된다. 소련이 해체되면서 사마르칸트주의 주도(州都)로서 우즈베키스탄의 제2의 도시가 되었다. 사마르칸트는 인구 60만의 도시로 해발 700m에 위치해 있다. 사마르칸트에는 우즈베크인들보다 타지크인(70%)들이 더 많이 살고 있다. 타지크인은 튀르크, 몽골계와 관련이 있는 우즈베크인들과는 달리 사마르칸트에서 오래 전부터 살고 있던 소그드인들의 후예와 튀르크인들이 섞여 만들어진 민족으로 보고 있다. 현재 티무르 제국의 영광을 드높이고 티무르 제국의 칸인 울루그 베크 칸의 동상을 레기스탄 광장에 세워 놓았지만 사실, 우즈베키스탄 민족은 티무르 제국을 몰아낸 민족이었다. 그러나 그들을 몰아냈다 하더라도 우즈베키스탄 민족은 티무르 제국의 문화를 그대로 흡수하면서 성장한 것이 사실이고 이 영토에서 일어났던 모든 역사와 문화를 자신들의 것으로 여기고 있다. - 나무위키에서 -
사마르칸트에 도착하니 두 시로 다섯 시간 반이 걸린 셈이다. 숙소는 사마르칸트의 유적지가와 가까워서 구르 아미르(아미르 티무르의 무덤), 레기스탄, 비비하눔 모스크, 시압 바자르 등을 걸어서 볼 수 있는 곳이다.
호텔(Hotel Asia Samarkand)에서 방을 배정받고 선배부부와 샤슬릭을 먹으러 간다. 길잡이가 추천해 준 우즈벡 전통식당 중 호텔 바로 옆 OLD HAVUZ는 손님들로 자리가 없어 좀 멀고 덥지만 우즈벡 전통요리를 맛 볼 욕심으로 레기스탄 광장 건너 Shokrukh Nur란 식당으로 간다. 도중 레기스탄 광장 건너편 공원에는 우즈베키스탄 초대 대통령 이슬람 카리모프(Islam Karimov) 동상이 보인다. 아직도 한낮의 햇볕에 달궈진 아스팔트 열기로 무척 덥다. 샤슬릭과 샐러드, 맥주로 식사를 한다. 샤슬릭(shashlik)은 러시아어로 꼬치구이라는 뜻으로 쇠고기, 양고기 등 고기와 야채, 해산물 등을 먹기 좋게 잘라 양념에 잰 뒤 30~60cm의 꼬치에 꽂아 숯불에서 고루 익혀내는 전통 요리로 대부분의 집에서 샤슬릭에 필요한 재료나 도구를 갖추고 있을 정도로 러시아와 중앙아시아인들이 가장 즐기는 음식 중 하나다.
식사를 마치고 호텔로 돌아가는 길에 이슬람 카리모프 동상에 들른다. 긴 코트의 주머니에 오른손을 집어넣고 어딘가를 바라보는 이슬람 카리모프 동상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소련시대의 잔재에서 벗어나지 못한 중앙아시아의 독재자들을 명안을 생각해 본다.
이슬람 카리모프는 1938년1월30일,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에서 태어났다. 그는 타슈켄트 농업연구소를 졸업하고 경제학박사 학위를 취득하며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 소련시대에 우즈베크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의 재무장관을 역임했고, 1989년엔 우즈베키스탄 공산당중앙위원회 제1서기로 임명되면서 공산당 내에서 빠르게 권력의 핵심으로 부상했다. 당시 미하일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 정책에 반대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1991년 소련 붕괴와 함께 우즈베키스탄이 독립을 선언하자, 카리모프는 초대 대통령으로 취임해 처음에는 민주적인 개혁을 약속했지만, 곧 권력 강화에 나서 야당을 탄압하고 언론을 통제하며 반대파를 숙청하는 한편, 1995년 국민투표를 통해 임기를 연장했고, 이후에도 수차례 부정선거를 통해 장기집권을 이어갔다. 카리모프는 냉전시대의 권위주의적 통치 방식을 그대로 답습해 KGB 출신의 비밀경찰을 동원, 국민들을 감시하고 통제해 자신의 권력기반을 공고히 하는 한편 고문, 강제 실종, 정치범 수용소 운영 등 심각한 인권탄압을 지속했다. 카리모프는 경제적으로는 시장경제 체제를 도입하고 외국인투자를 유치하며 경제성장을 이끌어 풍부한 천연가스와 금 매장량을 바탕으로 상당한 경제적 성장을 이루었으며, 국영기업의 민영화를 추진하고 농업부문을 개혁하며 경제구조를 다변화하려는 노력을 기울였지만, 이런 성장의 이면에는 심각한 부패와 빈부격차가 존재해 카리모프 일가와 측근들은 국가자원을 독점하고 부를 축적했으며, 일반 국민들은 빈곤과 실업에 시달렸다. 카리모프정권의 부패는 경제성장의 과실이 국민들에게 골고루 분배되는 것을 막았고, 사회 불안정을 심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2016년 9월 2일 뇌출혈로 사망했으나, 카리모프의 유산은 오늘날 우즈벡 사회에 여전히 큰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그의 공과에 대한 평가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그는 독립 우즈베키스탄의 건국자이자 동시에 독재자였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숙소로 돌아와 잠시 휴식을 취한 후 선배부부와 레기스탄광장으로 레이저 쇼를 보러 간다. 저녁 8시부터 시작한다고 해 좋은 자리에서 보기 위해 조금 이른 7시 경 호텔을 나선다. 레기스탄 광장으로 가는 도중 공원 입구에서 차력 쇼가 펼쳐지는데 옛 약장수들을 보는 듯하다. 한 남자가 무거운 쇳덩이를 드는 차력시범을 보여주고 관객 중 한 사람에게 들어 보라고 하며 무언가를 판다. 레기스탄 광장에 도착하니 벌써 많은 현지인들과 관광객들이 계단에 앉아 레이저 쇼를 기다리고 있다.
여행 오기 전 인터넷 블로그를 검색해 보니 사마르칸트에 가면 레기스탄 광장에서 밤 8시부터 펼쳐지는 레이저 쇼를 반드시 보고 와야 한다고 하면서 다음과 같이 소개해 나도 큰 기대를 갖고 레기스탄 레이저 쇼를 기다린다.
| 사마르칸트 여행의 하이라이트가 레기스탄이라면 레기스탄 광장의 하이라이트는 밤 8시에 시작하는 레이저 쇼로 세 개의 마드라사 건물을 거대한 스크린 삼아 화려한 조명과 레이저가 비춰지는데 그냥 건물에 레이저를 쏘는 수준이 아니라 음악에 맞춰 색과 패턴이 끊임없이 변하며 사마르칸트의 역사와 문화를 시각적으로 풀어낸 블록 버스터 멀티미디어 쇼다. 쇼는 사마르칸트가 걸어온 길을 화려한 이미지로 풀어내며 동서양을 아우르는 장대한 역사의 파노라마처럼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가 나타나고 이어 중앙아시아의 위대한 통치자와 학자들의 초상화가 차례로 떠오른다. 동서양이 교차하던 실크로드의 심장, 사마르칸트를 그대로 상징하는 듯한 장면이다. 황금 갑옷을 두른 티무르가 말을 타고 달려 나오는 듯한 장엄한 장면이 펼쳐지더니 끝 무렵엔 OZBEKISTON이란 글자와 함께 독립일이 선명히 투사되어 우즈베키스탄의 독립을 기념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
그러나 오늘 광장에서 비춰지는 것은 우리가 기다리고 기다리던 레이저 쇼가 아니라 그냥 조명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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