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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순복음전주성령교회 원문보기 글쓴이: 임성재목사
4월26일 주일 낮
사55:6~13
가까이계실 때 부르라
하나님의 독생자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에게 복주시기를 기뻐하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성령교회에 모여 예배하는 우리 모두에게 충만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어느 목사님의 들꽃편지라는 글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떠나고 나서야 얼마나 소중한지 실감한다는 것이 인간의 비극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있을 때 잘해!"
그 말대로 산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한번 이렇게 생각해 보면 어떨까요?
"그것이 없으면 어찌될까?"
없어도 그만인 것이 있나요? 그렇다면 그것은 버려도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것이 있다면, 없는 것을 상상하기도 싫다면
꽉 잡으세요. 굉장히 소중한 것이거든요.
우리가 살면서 농담반 진담반으로 가까운 친구나 형제 또는 부부간에 이런 대화를 해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있을 때 잘해”
나를 부시하거나, 너무 가치 없이 생각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 한번쯤 생각하고, 또는 할 수 있는 말입니다. “있을 때 잘해”
서로가 서로에게 잘하면 얼마나 잘하겠습니까마는, 적어도 무시하고, 하찮게 여기는 일에 멀리하는 것이 그리스도인들에게 절대적이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형제를 사랑하는 것이 곳 예수님 당신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요13:35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반대로 형제를 미워하는 자에 대하여도 가르쳐 주셨습니다.
요한1서2:9 “빛 가운데 있다 하면서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지금까지 어둠에 있는 자요”
요한1서3:15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요한1서4:20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육신의 형제이든 믿음 안에서 영적인 형제이든, 같이 이 땅에 있을 때 잘하기만 할 것이 아니라 서로 예수님의 마음으로 사랑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본문을 중심으로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라는 제목으로 말씀이 선포 될 때 성령교회 안에서 예배하는 사랑하는 성도님 모두 영혼이 잘되고 범사가 잘되고 강건한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함께 하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왜 가까이 계신 하나님을 꼭 만나야 되는가?
첫째: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구원이 필요하기 때문에 하나님을 꼭 만나야 합니다.
오늘 본문 첫 서문에 이렇게 말씀을 하십니다.
사55:6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만날 만한 때, 가까이 계실 때, 같은 맥락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을 만나야 하는 절대적인 애원이며 절규의 메시지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절대적으로 만나야 할 하나님을 애원하고 절규하며 찾고 부르며 몸부림치고 간구하는 일들이 무한의 시간에 속한 것이 아니라 한정된 시간적 공간에서 주어진 하나님의 은혜요 축복이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와 축복은 모두가 구원과 연결된 것입니다.
하나님을 찾고 부른다는 이유는 나 스스로 내 인생을 책임지고 구원할 능력이 없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나의 연약함을 하나님께 고백하는 것입니다.
인간들이 하는 일에는 항상 한계라는 담이 있습니다.
그중에 생명과 사망의 문제가 그렇습니다.
사람이 생명을 창조할 수 없습니다. 반대로 사망을 영원한 생명으로 구원할 수도 없습니다.
사람의 생명과 사망에 대하여 하나님은 간단하게 설명해 주시고 계십니다.
롬5:12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히9:27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사람은 누구를 막론하고 사망을 이길 수 없습니다.
이길 수 없는 사망이 우리 앞에 있는 이유는 바로 죄 때문입니다.
죄 때문에 사망에서 벗어 날 수 없는 우리를 죄에서 벗어나 참 생명이 되게 할 수 있는 길을 하나님이 주시고자 만날만한 때에 찾고 가까이 계실 때 부르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요11:2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요14: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20:31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사람의 무능함은, 세상의 모든 것들을 다 이루어 놓을 수 있는 힘과 능력이 있어서 그것들을 모두 이루었다 할지라도 결국 그것들을 소유하고 누리는 것은 다른 사람들이 하게 된다는 것을 상각 할 때 자신의 무능함을 깨닫게 됩니다.
사망을 통해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살면서 이루어 놓은 인생의 공든 탑은 결국 바벨탑처럼 하나 남김없이 무너지고 말게 되는 것입니다.
죄로부터 오는 사망의 결과는 너무 큽니다.
인생을 송두리째 뿌리까지 뽑아 꺼지지 않는 불속에 집어던지는 최고의 적이 바로 죄라는 것입니다.
이 죄로부터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이 하나님을 찾으며 부르는 것입니다.
이렇게 찾고 부르는 일들을 지금 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다윗은 하나님께 이렇게 고백합니다.
시6:5“사망 중에서는 주를 기억하는 일이 없사오니 스올에서 주께 감사할 자 누구리이까 ”
우리가 숨 쉬고 있는 이 순간이 바로 하나님을 만날만한 때요 또 가까이 계신 지금이 바로 내가 살아 숨 쉬는 이 순간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본문7절에 “악인은 그의 길을 불의한 자는 그의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로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그가 너그럽게 용서하시리라”
악인과 불의한자 모두가 죄인들을 지칭하는 말입니다. 죄의 대명사입니다.
이 죄를 하나님께서 너그럽게 용서하신다는 말은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바로 구원해 주시겠다는 약속이요 언약인 것입니다.
우리 모두 다윗의 고백과 같이 사망 중에는 주를 기억할 수 없으니 살아 숨 쉬고 있는 지금이 바로 하나님을 찾고 부를 수 있는 최고의 기회라는 사실을 분명히 기억하시고 하나님을 향한 예배와 말씀과 기도에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시는 저와 여러분 모두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다음은: 우리는 너무 연약하기 때문에 하나님을 찾고 구해야 합니다.
우리 스스로 본인을 생각해보면 사람은 참으로 연약한 존재라는 사실에 대하여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생각하는 것도 자기 스스로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하지 못하는 것이 사람의 한계입니다.
하고 싶은 것도 자기 스스로 다 하지 못합니다.
가지고 싶은 것도 자기 스스로 다 가질 수 없습니다.
포기 하고 싶은 것도 자기 스스로 포기가 안됩니다.
용서하고 싶은데도 그 용서가 스스로 안됩니다.
사랑하고 싶은데도 사랑이 안됩니다.
스스로 안되는 것이 되는 것에 비하면 너무 많습니다.
사람은 누구를 막론하고 참으로 연약한 존재입니다.
이렇게 연약한 존재이기 때문에 의존 자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의존 자가 되 주시기 위해서 하나님을 찾고 부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생과 너무 다르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십니다. 전능하신 분만이 우리의 의존 자가 되야 하는 것은 당연한 사실입니다. 세상에 있는 의존 자는 모두가 부족한 의존 자들입니다.
권력가도 지식자도 능력자도 모두가 부족한 사람입니다.
나의 모든 필요와 요구를 채워줄 능력자는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우리의 필요와 요구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있어야 할 것을 미리 준비해 주시는 여호와 닛시 이십니다. 미리 준비하시는 하나님, 이런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이야말로 완벽한 삶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본문8~9절에 “이는 내 생각이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라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
사람이 연약한 것은 생각이 하나님과 다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생각은 우리의 생각과 다릅니다.
하나님의 생각은 행함이 포함된 생각입니다. 하나님의 생각에는 결과가 포함된 생각을 말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생각은 생각 그 자체로 끝입니다. 생각만 하고 행동으로 옮기지 않으면 결과의 산물은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생각에 결과를 포함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외모를 보시는 분이 아니시라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 이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생각과 길은 우리와 다릅니다.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하나님의 생각은 높습니다.
우리 인생들의 생각과는 견줄 수 없습니다.
사람들이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게 되는 순간들을 보면 대부분 질병에서 자신들의 연약함을 보게 됩니다.
다음은 천제지변에서 인간의 무능함과 연약함을 인정하게 됩니다.
그리고 환경에 지배를 받으면서 인간의 연약함을 인정하게 됩니다.
건강하던 몸이 병들었을 때, 쓰나미와 같이 지진과 해일을 만났을 때, 잘나가던 사업실패로 모든 재산을 잃었을 때 등등 사람들이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게 되는 일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연약해 할 수밖에 없는 인생들의 두려움을 해결해 주시기 위해서 하나님을 찾고 부르라고 하는 것입니다.
렘33:3 “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하나님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일들을 알고 계시는 분이십니다.
아무리 두려운 일이 닥치더라도 그 일을 대처하고 이길 수 있는 방법을 주시기 위해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만날만한 때에 찾고 가까이계실 때 부르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삶에 건강 또는 자연재해 또는 환경으로 두렵게 밀려오는 어떤 문제들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가까이 계시는 하나님을 찾으시고 가까이 계시는 하나님을 부르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은 외면치 않으시고 반드시 우리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비밀을 알게 하셔서 연약한 우리를 강하고 담대하게 하셔서 인생을 승리하게 하실 것입니다.
순복음 전주 성령교회 성도님들은 하나님의 생각이 어떠하실지 알기 위해서 항상 기도와 말씀과 예배를 중심으로 사셔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들을 주님 앞에 모두 내려놓고 항상 기쁨과 기도와 감사로 승리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을 찾고 부르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로 하나님의 말씀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본문10~11절에 “이는 비와 눈이 하늘로부터 내려서 그리로 되돌아가지 아니하고 땅을 적셔서 소출이 나게 하며 싹이 나게 하여 파종하는 자에게는 종자를 주며 먹는 자에게는 양식을 줌과 같이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이와 같이 헛되이 내게로 되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기뻐하는 뜻을 이루며 내가 보낸 일에 형통함이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모든 환경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환경입니다.
처음 창조하셨을 때와는 많이 다른 모습이겠지만 실상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그 위에 인간들이 제 창조한 역사를 통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환경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창조와 하나님의 역사는 완벽하십니다.
그러나 사람들의 역사는 파괴적이고 부패성이 강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사회를 부패시키며 파괴시키는 문화와 환경을 만들어 가는데 혈안입니다.
반대로 그리스도인들은 부패한 세상에 소금의 역할을 하고 파괴의 문화를 만들어가는 곳에서는 하나님의 문화로 다시 제 창조하는 빛과 같은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사람들은 그의 마음과 생각에 하나님의 것으로 채워져 있는 것입니다. 그런 마음과 생각이 세상에 나가게 되면 세상은 변화를 가져다줍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헛된 말씀이나 파괴의 말씀 부패의 말씀이 아니라 빛의 말씀이며 소금의 말씀이고 밀알의 말씀인 것입니다.
세상 부패를 막고 어둠에 빛을 비추어 주시고 땅에서 썩어 많은 열매를 맺되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하는 열매로 풍성하게 맺게 하시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생각의 말씀이신 것입니다.
사람의 생각이 아무리 차원 높은 것이라 할 찌라도 하나님의 생각에는 절대 미치치 못하는 것들입니다.
하나님의 생각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으로 세상과 더불어 삶으로 본문12~13절과 같은 하나님의 나라를 실현하여 내는 것이 그리스도인들의 삶인 것이며 또 하나님께서는 이런 하나님의 세상을 만들어 항상 기뻐하고 쉬지 않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며 사는 하나님의 나라와 백성들을 만들기 위한 것입니다.
본문12~13 “너희는 기쁨으로 나아가며 평안히 인도함을 받을 것이요 산들과 언덕들이 너희 앞에서 노래를 발하고 들의 모든 나무가 손뼉을 칠 것이며 잦나무는 가시나무를 대신하여 나며 화석류는 찔래를 대신하여 날 것이라 이것이 여호와의 기념이 되며 영영한 표징이 되어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을 불러서 결국 하나님의 실체를 발견하고 경험한 하나님의 사람은 세상 권력과, 지식과, 건강, 그리고 풍요로운 물질에 연연하지 않습니다.
상황이 어떠하든지 환경이 어떠하든지 그 선 자리가 어떠하든지 오직 기쁨으로 나아갑니다.
그 사람은 평안히 하나님의 인도함을 받습니다.
산들과 언덕뿐만 아니라 만물들이 노래하고 손뼉 치며 나를 반기는 소리를 듣게 됩니다.
전에는 내 삶의 주위에 가시나무같이 나를 찌르고 아프게 했던 것들로 가득 했었다면, 이제는 잣나무로 바뀌어 있음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찔레나무같이 아무 쓸데없이 주위에 괴롬을 더하고 결국 화목으로 태워질 존재로 살았다면 이제는 화석류가 되어서 향기를 발하는 기름으로 가득하여 평화와 감사의 사람으로 발견되는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넘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순복음 전주성령교회 성도님들에게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하신 이 말씀을 마음 깊이 새겨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되셔서 영혼이 잘되고 범사가 잘되고 강건한 전인구원의 축복을 받아 누리시며 승리하시는 성도님들 모두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