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밤의 풀벌레 소리
박 흥 순
섣달의 함박눈이 사뿐히 내려와
세상을 덮는 저 고요, 소복소복 쌓여만 간다.
나는 활활 타오르는 난로 앞에 앉아,
따스한 차 한 모금과 함께 시집의 페이지를 넘긴다.
이토록 완벽한 침묵 속에서—
내 귓속에서는 여전히 계절을 거부한
풀벌레들의 노래가 쉼 없이 들려온다.
푸른 여름을 벗어난 지 오래,
몇 해를 돌아도 그 작고 집요한 소리,
단 한 번도 잦아든 적 없으리.
밤새도록 세상이 하얗게 묻혀도,
이 고독한 진동은 끝내 멈추지 않으리라.
유리창 너머 내리는 눈발을 응시하며,
타오르는 붉은 불꽃의 온기를 가슴으로 느낀다.
시향詩香에 취해 내면의 뜰이 열리는 순간,
나는 비로소 끊임없이 들려오는 이명을
나만의, 오직 나만의 풀벌레 소리로 듣는다.
이것이 곧 존재의 소음이자,
세상의 가장 내밀한 속삭임이리니.
고통이라 부르지 않고, 병이라 규정하지 않는 찰나.
내 안의 울림을 기꺼이 세상의 노래로 바꾸어 듣는 것.
침묵 속에 울리는 나만의 오케스트라에 귀 기울이는 것.
이 역설적인 고요 속에서—
나는 비로소 온전해진다.
나는 지금 이 고요한 특권을 온전히 누리고 있다.
창밖에는 하얀 눈이 그득—
세상의 모든 번뇌를 덮어주듯 더없이 평화롭게 내려앉고 있으니.
내 안의 풍경과 저 바깥의 설경이
하나의 고독한 아름다움으로 만나는 겨울밤이다.
2011년 『시문학』 등단
시집 『장다리꽃』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