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정정리:2002.2.24(일)
09:40의신-10:00대성교갈림길-10:20대성마을-10:45작은세개골입구-11:10큰세개골입구-12:00대성폭포-12:10영신대갈림길-13:30주능-13:45칠선봉-14:40선비샘-15:20벽소령산장-점심-16:00출발-16:50아지트갈림길-17:00삼정마을-17:30의신
오늘의 지리산행은 슬프고 착잡하다. 그동안 사랑했던 남도의 산하와 자주 올랐던 지리산 자락을 멀리 떠난다는 아쉬움이 너무나 크기 때문이다.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 감칠맛 나는 깨끗하고 정갈한 음식. 항상 다정다감한 동료들. 휴일이면 온종일 코트에서 만났던 테니스 멤버들. 게오르규의 소설 <25시> 주인공 요한 모리츠처럼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것은 아니었지만 이십여 년 생활했던 그곳을 떠나 나의 고향 서울로 돌아가는 것이다.
내가 광주를 알았던 것은 1980년 민주화의 봄이 열렸던 대학 3학년 때였다. 학원 민주화로 시작된 농성과 데모는 급기야 정치권으로 불똥이 떨어져 유신철폐와 계엄해제로 이어졌고 불안한 정국이 계속되던 그해 5.18 이 일어났다. 광주는 그 후 계엄군의 무자비한 총칼에 피로 물들여졌으며 신군부의 무력에 굴복하고 침묵을 지킬 수밖에 없었다. 호남선 완행열차에 몸을 실었던 나는 전남대학생의 광주의 진실을 조심스럽게 들었으며(그때는 광주에 관하여 이야기만 해도 체포 구금될 때였다) 한없이 울분을 삼켰고 계엄군의 만행에 진저리치며 눈물을 흘렸었다. 목포를 거쳐 진도와 해남 그리고 강진과 영암을 들러 광주까지 7일간의 남도 여행이 나에게 커다란 운명으로 다가선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거리에서 만나는 사람마다 무겁고 무표정했으며, 민주화의 성지 광주는 군사정권의 서슬 시퍼런 철퇴 앞에 침묵하고 있었다. 그 후 나는 그곳 남도에서 교직 생활을 시작하였고, 그 산하를 누구보다도 더 진정으로 사랑하였으며 진짜 전라도 사람이 되었다.
어젠 써리봉과 불출봉에 올라 내장산의 아름다움을 한껏 감상하였다. 매표소에서 내장사까지의 산책로는 평소에도 시간이 있을 때마다 자주 걷던 곳인데, 남도의 산자락에서 화순의 운주사 길과 고창의 선운사 길도 내가 제일 좋아하는 길이다. 하산 후 L 선생과 동동주와 파전을 찢어 먹으며 어둠이 찾아온 줄 모르고 이야기꽃을 피우다 자리를 털고 일어선다.
동동주에 취해 비몽사몽 긴 밤을 헤매다가 새벽에 잠에서 깨어 지리산으로 떠난다. 담양에서 사감 선생과 7시에 미팅을 하였고 따뜻한 지리산 남녘 화개로 방향을 틀어잡는다. 섬진강의 압록.. 이십여 년 전 지리산으로 가는 열차에서 짙은 섬진강의 운무와 함께 바라본 압록이 생각나 그때의 추억에 잠겨 눈시울을 적신다. 섬진강 압록은 아름다워 잊을 수 없는 곳이다. 드라이브할 때도 그곳을 자주 지나쳤고, 여름철에는 백사장에 텐트를 치고, 촘촘한 밤하늘의 별들을 헤아리며 행복한 가족휴가를 보내기도 했다.
봄이 성큼 다가온 화개의 단골 식당에서 된장찌개로 공깃밥 두 그릇을 게눈 감추듯 비워 버리고 의신마을에 도착하여 산행을 시작한다. 한 달여만의 대성골 산행이다. 매표소에는 낯선 관리공단 직원이 창구 사이로 힐끔 쳐다보더니 말을 꺼낸다. “어디까지 가셔요?” 세석에 갑니다. “오늘 주무실 겁니까?” 아니요, 하산합니다. 직원은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복장을 살핀다. 지금의 시간이 10시가 다 되어 가니 아마 그쯤 생각이 드나 보다. 대성교 들머리보다는 훨씬 편하고 널찍한 길을 따라 대성골 산행은 시작된다.
곧 대성교에서 올라온 능인사 터를 만나고 산허리를 휘감아 돌아 나가자, 대성골에서 흘러 내려오는 물소리를 듣는다. 날씨는 무척이나 따뜻하다. 얼마 걷지 않았으나 벌써 등허리 골로 땀이 흘러내려 더위를 느꼈고 재킷을 풀고 반소매 티 쿨맥스 러닝만 한 장 달랑 입은 채 배낭을 다시 들쳐멘다. 대성마을에서 민박하며 밤새 고로쇠 물을 먹고 내려오는 듯한 남녀 일행을 계속 스쳐 지내 보내며 차츰 가파르기 시작하는 대성골의 속살을 파헤치며 걸어 올라간다. 곧 후박나무로 유명한 대성마을에 도착한다. 마을이라 고작 집 2채. 분위기가 너무 좋아 꼭 머무르고 싶은 지리산 자락 중의 하나이다. 편안하게 밤새도록 물소리를 들으며 하룻밤을 쉬어가고 싶은 대성마을. 마치 내설악의 수렴동 산장 앞 매점을 연상케 하는 대성마을이다. 펑펑 흘러나오는 약수로 한 대접 들이켜 속을 푼 다음, 우리의 산행 목적지 큰세개골과 칠선봉 구간을 오르기 위해 빠른 걸음으로 나간다. 오늘은 시간이 부족하여 칠선봉에 오른 후 벽소령을 거쳐 의신 마을로 회귀하는 산행으로 간단히 계획을 추진하였다.
눈에 익은 길을 따라 빨치산 격전지와 작은세개골 입구를 지나 드디어 큰세개골 입구. 입구엔 <등산로 아님> 표지판이 가로막고 있다. 정식 등산로가 아닌 곳을 제집처럼 드나드는 나를 바라보며 사감 선생은 이제 의아한 표정을 짓지는 않는다. 원리 원칙을 항상 고수하는 그이지만. 나의 지리산에 대한 집착과 열정을 아는지 오늘은 묵묵히 따라 들어선다. 산죽을 비집고 큰세개골로 들어선다. 사람의 인적이 거의 없는 큰세개골은 간혹 영신대를 찾아 나서는 전문 산꾼과 의신마을 사람들의 고로쇠 수액 채취로 들어설 뿐. 감히 보통 산님은 근접할 수 없을 정도로 까다롭고 깊고 깊은 협곡으로 이어지는 골짜기이다.
그렇기에 반세기 전에는 빗점골, 거림골, 도장골 등지에서 토벌군에 쫓긴 빨치산들이 숨어들었고 백야전사의 정보에 걸려 불바다가 된다. 끈질긴 투쟁을 이어 가던 빨치산들이 거의 몰살된 비극의 겨울 골짜기였다. 대성골의 참혹한 비화는 지리산에 오른 사람이라면 다 아는 사실이지만 그 당시 이야기를 사감 선생과 함께 나눈다. 여름철 장마 때마다 급류로 흘러내린 물살에 계곡의 곳곳은 파헤쳐져 있고, 흐르는 물 사이의 돌 틈에 주의하며 계곡 트래킹은 계속된다. 큰세개골 역시 본류로 치고 올라가면서 우측으로 지계곡이 자주 나타나는데, 영신봉 능선 쪽이라 생각이 든다. 아직은 그런 작은 지계곡까지 일일이 찾아다닐 시간적 여유가 없어 다음 기회를 노리며 눈도장만 찍는다.
봄이 조금 멀었지만 더운 날씨에 땀을 계속 흘린다. 홀로 산행이면 지금까지 물 한 모금 안 했겠으나 사감 선생의 정성 어린 먹거리 제공이 계속되어 체력을 보충한다. 사과, 감, 연양갱, 사탕 등을 계속 주워 먹으며 호강산행이 이어진다. 얼마나 올랐을까. 점차 가파르고 갑자기 계곡이 급격히 협소해지더니 험해진다.
대성 폭포. 대성 폭포는 두껍게 얼어붙어 있었고 떠나려는 겨울을 붙잡고 있었다. 4단 폭포로 그 길이가 100m가 넘는 큰 폭포로 여름에는 수량이 많다. 단감을 깎아 먹으며 대성 폭포 상단에서 휴식을 취한다. 대성 폭포까지는 비교적 손쉽게 올랐으나 파란 하늘이 보이는 주능은 어떤 모습으로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까. 대성폭포를 지나 계속 오르면 우측으로 거대한 암봉이 연이어 나타나는데 마지막 암봉 아래에 영신대가 있다. 우측 영신대로 오르는 좁고 험한 협곡은 햇빛조차 들어 오지 않아 낮이건만 괴이한 느낌이 들었고, 눈과 얼음이 많아 두려운 마음이 들었으며, 신비스럽고 영스러운 영신대의 문을 좀처럼 열어 주지 않으려는 모습이다.
우리의 앞을 계속 치고 오르면 칠선봉과 영신봉 사이의 주능에 합류하게 될 것 같은데 칠선봉에 가까울 것이라는 예상만 해본다. 남쪽 사면이지만 강한 바람과 응달에 눈이 녹지 않고 있어 무릎까지 빠진다. 아이젠과 스패치를 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문제는 언제나 주능을 앞두고 가로막는 잡목 나뭇가지들이다.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디고 오르기 위해 우리는 단단한 각오를 해야 하였다. 마루금이 파랗게 다가섰지만, 좌측의 칠선봉과 우측의 영신봉은 아직도 드높다.
숨이 가빠 온다. 올라도 올라도 오르막은 계속된다. 지리산은 참으로 높고 광대하다. 아직도 가보지 못한 골짜기와 능선이 많다. 한숨을 토해낸다. 양쪽의 봉우리를 지켜보며 한참이나 올라섰다고 느꼈을 때 주 능선에 걸려 있는 <출입금지> 푯말이 눈에 들어온다. 여기가 어디쯤일까. 주능 길은 많이 다녔지만, 아직 감이 잡히지 않는다. 벽소령 쪽으로 조금 가서1,535m 봉우리에 오르고 영신봉 쪽과 칠선봉 쪽을 번갈아 가며 바라보며 우리의 현 위치를 알 수 있었다.
망바위에서 능파로 주름 잡힌 산자락과 큰세개골과 작은세개골을 한참이나 바라보며 우리가 오른 대성골을 헤아린다. 땀을 식히며 조망에 열중하다가 길을 떠난다. 일요일이건만 주능에서 산님들은 보이지 않는다. 지리산은 겨울을 맞이하여 자동으로 휴식년에 들어간 듯하다. 칠선봉을 지나 벽소령을 향하는 주능 길의 북사면은 아직도 눈이 많았고, 미끄러웠다. 주능 길에서 벽소령과 세석 구간은 평소에도 상당히 힘겹고 난코스의 구간이다.
선비샘을 지나 덕평봉의 사면을 돌아 구 벽소령길을 만났고, 그 좌측 아래 벽소령 산장을 보니 갑자기 배고픔을 느낀다. 벽소령 산장에서 늦은 점심으로 라면을 끓여 김밥과 함께 먹었는데 그렇게 꿀맛일 수가 없다. 산에서 먹는 라면 맛은 별미이다. 최근 들어 벽소령 산장에 유난히 많이 들렀는데 가장 빠른 의신마을로 내려선다. 이현상 아지트 갈림길을 지나 삼정마을까지는 불과 1시간. 이십여 일 전에 들렀던 삼정마을과 의신마을 구간은 벌써 군데군데 포장이 다 되었다. 지리산의 오지 마을까지 포장되니 지리 산꾼들은 마음이 편치 않을 것이다. 뒷당재를 바라보며 토끼봉 능선으로 이어진 까마득한 지리산의 주능에 시선을 모은다.
이제 다시 지리산에 오를 날은 언제일까. 며칠 후면 봄철 산불 경방 기간에 들어간다. 산불 경방 기간이 풀린다 해도 새로운 생활에 적응할 때까지 당분간 지리를 찾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마음이 가볍지 않다. 내가 외롭거나 행복할 때 틈틈이 올랐던 지리산. 언제라도 가고 싶으면 한두 시간 내에 품에 안겼던 지리산. 이제 당신을 두고 나는 멀리 떠나갑니다. 하지만 나는 그전보다 더 당신을 만날 수 없기에 더욱 그리워하고 더 사랑하겠습니다. 지리산. 당신은 내 마음의 고향이기 때문입니다.
첫댓글 지리산!!~
당신은 베누스의 첫사랑이며 영원한 베누스의 교주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