쎄븐 25시
양상태
그럴까? 그렇지만은 아닐 것 같다. 찾지도, 부르지도 않았는데 다가와. 이미 와 있어. 문 앞이야. 아파트 정문에 떡하니 버티고 서 있잖아. 시간이 흐르면 현관문을 열고 들어올지도 몰라. 들어와 거실에 떡 하니 판을 벌일지도 몰라 진짜.
소주 한 병에 맥주 두 병. 환상의 호흡이지. 3 대 7로 크리스털 유리잔에 부어봐. 때깔부터 달라. 흰 모자를 쓴 은은한 황금빛 몸매. 침은 저절로 마중을 나와 입안에 맴돌다 목을 타고 흘러내리지. 닭털 솟는 짜릿함. 원래 술이란 눈으로 한 번, 입술로 한 번 적시고 목으로 넘기는 거야. 독한 술보다는, 배부른 것보다도 섞은 술은 목 넘김이 좋아. 술술 넘어가. 입은 맛에 꿰이고 목구멍은 농락당하지.
냉장고를 지키던 소주병은 스스로 위치를 바꾸지도, 냉동실에 오르지는 않아. 우리 왕비만이 위치를 바꾸지. 언젠가는 가출한 녀석을 찾으러 헤매다가 결국 찾아낸 맥주병. 김치냉장고에 홀로 우두커니 누워 빤히 나를 바라보고 있더라고. 촛불 심지 같은 아내의 작품이었던 것 같아. 그림으로 찍어 놓을까, 현란한 언어로 교만한 자태를 그려 볼까 하다 반가운 마음이 앞서 황급하게 한 몸이 되어 버렸지. 역시 훔치고 몰래 먹는 사과는 맛이 있더라고.
요즘 아이들은 갈수록 운동 부족으로 허약이라는 명찰을 달고 살아. 주전자 들고 오리 정도는 단숨에 뛰어 심부름하면 국민 체력 향상에 도움이 될 터인데. 미성년자에게 술 심부름시키면 잡혀간대. 운동 삼아 직접 다녀. 다리 힘을 키워야 건강해서 한 잔이라도 더 오래 마시지. 하체 근육은 주량과 비례한다잖아. 처음으로 말하지만, 내 주장일 뿐이야.
어느새, 걔들은 너무 가까이 다가와 있어. 편리하긴 해도 건강을 해치는 부분도 없진 않을 거야. 하나만, 하나만 더 하던 약속은 ‘4캔에 만 원’에 무너지고 말아. 건강에 좋지 않으니 빨리 팔아서 없애려는 애국심의 발로이기도 하겠지만 왕비에게는 통하지 않아. 당신이 아니라도 애국자는 많으니, 줄에서 빠져나오래. 사탕발림이라는 거 죄다 알아. 생필품을 그렇게 팔면 칭찬이 자자할 텐데. 진보적 사안인데 말이야, 많은 득표를 하겠어. 담배를 2+1행사에 초청하면 어떨까 싶어. 나라님이 싫어할 거야. 나랏빚이 얼만데. 담배를 유리창에 선팅하고 판다 해서 모르나? 담배를 팔지 않는 편의점 보았어? 꼬마둥이들도 담배 가게는 몰라도 세븐 25시는 알아.
술은 마셔도 몸은 돌보라 했어. 누구냐고? 다들 그래. 위장에 혹독하게 강술을 주입해서는 곤란해. 번데기와 두부가 같이 하자며 봉투 안에 들어와 있네. 소시지도 따라왔어. 단백질은 아무래도 동물성보다는 식물성이 낫지 않을까 싶어. 건강상? 소시지와 번데기를 매몰차게 하차시키고 어묵을 태웠어. 생선 부스러기가 왠지 좋을 것 같아.
늦은 밤. 소맥에 컵라면은 누가 창안했는지 노벨상감이야. 노벨은 뭐 하는지 몰라. 유튜브를 모르나 봐. 운동 경기 보면서 마시는 치맥보다 훨씬 나아. 속이 시원해서 한 잔, 짭짤해서 한 잔, 매워서 한 잔, 속은 짜르르르. 가끔은 짜장면도 괜찮은데 탄수화물은 줄여야 해. 당이 조금 있어, 공화당도 아니고 민주당도 아니야. 그저 혈당이 있어 그럴 뿐이야. 늦은 밤 먹거리는 눈퉁이만 붓게 하는 것이 아니라 아침 공복 시 당 수치도 끌어올려. 쭈욱. 허들 경기가 아니라 높이뛰기를 해.
어느 뉘가 폭탄주라 작명했는지 몰라. 아마 군대 쪽 사람일 거야. 검찰 쪽 사람이라는 말도 있고. 나는 그래도 낯섦을 갈구하는 사람인지라 ‘섞임 주’라 칭할 거야. 그저 섞는 게 아니라 서로 끈끈하게 결속을 다져 하나가 되는 술이야. 먹다 아껴놓은 소주병에 김빠진 맥주를 부어 놓거나, 소주병에 물 부어 놓은 것, 누가 그랬는지 나는 다 알아. 알고도 말하진 않아, 원래 입이 무겁다고들 해. 입에 대보면 알지. 내 혀는 못 속여. 양조장 술맛 감별사가 장래 희망이기도 했었어. 순간의 선택이란? 이런 거야.
구석구석으로 번식력이 대단한 편의점. 보이고 고개 돌리면 눈에 띄는 편의점. 지상에서 경영하다 저세상으로 먼저 간 친구는 그곳에 진즉 개업했을 거야. 구하기 힘들다던 알바 두고서. 국적은 몰라. 개업 문자는 보냈을 거야. 그러나 수신은 하지 못했어. 국번이 달라 수신을 못 했을 뿐이지. 걔들 번호는 천국이잖아. 그곳에도 거리 제한이 있을까? 미성년자에게 술·담배를 팔지 않을까? 거기는 몇 살까지 미성년자일까? 나이 셈법을 몰라. 대다수가 경로 우대받을 텐데. 정말 24시간 영업을 할까? 낮과 밤이 있을까? 가 보아야 알 수 있을 텐데 말이야. 당겨 경험 해보고 싶지는 않아.
우리 동네 편의점은 24시간 눈을 뜨고 있어. 밝은 불빛으로 잠이 오지 않아. 끊어야지 하며 내던진 담배, 이른 아침에도 다시 살 수가 있어 금연에는 전혀 도움이 안 돼. 요즈음 다른 가게들은 일찍 문 닫는 곳이 많은데 쎄븐 25시는 그렇지 않아. 길거리를 걷다 보면 보이는 간판은 두 글자, ‘임대’와 ‘금연’만이 보이지. 편의점도 한몫을 하지. 구멍가게는 자취를 감춘 지 오래되었어. 비탈길 계단 입구 전봇대 아래. 세상살이 축소판인 양 졸고 있는 30촉 백열전구가, 불 밝히던 동네 입구 점방, 외상이 허락되던 정다운 이웃이었는데 말이야.
시곗바늘이 두 팔 들어 만세를 부르고 있어. 날마다 발부되는 수면행 티켓은 밀려 있는데 간판 불이 너무 밝아. 창문에 롤스크린 내리고 커튼을 드리우니 잠은 올 것 같기도 해. TV 코드를 뽑고 콘센트도 죄다 껐어. 어둠에 싸인 밤. 자야겠어. 잠은 올까? 올 것 같지만도 않을 것 같아.
첫댓글 쎄븐24시와 친하지 않아서.ㅋ
어쨌든 왕비마마님이 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