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황제에 타협한 일본 자유주의신학
천황제와 타협한 전형적 모델은 일본적 기독교이다. 삼위일체를 부정한 유니테리언 같은 자유주의신학을 공부했던 요코이 토키오(橫井時雄)는 기독교, 불교, 유교가 혼합된 일본적 기독교를 창도하였다. 독일 튀빙엔 학파의 영향을 받았던 코자키 히로미치(小崎弘道)는 성서의 고등비평을 주장하였다. 조합교회의 에비나(海老名彈三)같은 저명한 신학자도 일본의 신과 여호와를 동일시할 만큼 혼합주의에 빠져있었다. 일본의 개신교는 개혁주의·복음주의신학의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니라, 유럽 특히 독일의 자유주의신학의 영향을 깊이 받았고 천황숭배를 국민의 의무로 인식하고 그것을 기독교신앙과 양립시키려는 혼합주의적 경향이 일반적이었다. 일본 개신교에 깊은 영향을 주고 일본적 주류신학으로 정립된 신학은 칼 바르트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서, 이 자유주의 내지 신정통주의의 사상은 한국 자유주의 신학의 대가 김재준과 조선신학교(한신대의 전신)으로 유입되어 개신교의 배교행위에 신학적 에너지를 공급해 주었다.
● ‘일본적 기독교’의 배교
일제는 1937년 중일전쟁이 시작하자마자 일본개신교에 대한 탄압을 강화하였다. 일본 특고경찰은 기독교의 동향을 감시하였는데, (1) 신도신앙을 우상숭배로 보고 신사참배를 거부하는 것 (2) 초국가적 평화주의를 표방하는 것 등이 당국이 우선적으로 억제하려는 감시대상이었다. 천황제국가는 기독교를 포함한 모든 종교를 통제하려고 시도하였다. 표면상 기독교 금지령은 해제되었으나 일제정부가 정한 기준을 벗어나면 감시, 통제하고 말살하는 전술을 사용했던 것이었다.
제국헌법은 모든 종교가 천황제에 봉사하는 조건으로 그 존재를 허용 받았다. |
행정적으로 신사( 神社) 는 내무성에 속하고 종교는 문부성에 속하는 형식을 취하였다. 일본 행정당국은 종교통제를 강화하기 위하여 종교 법안을 제출하였다. 1929년 종교단체법이 시행되었는데 이 법의 목적은 국가에 의한 종교의 관리통제에 있었다. 그러나 일본개신교를 통제한다고 해서 일제가 기독교라는 명칭을 삭제하지는 않았다. ‘일본적’이라는 관형사를 붙인 ‘일본적 기독교’는 하나님을 고려하지 않고 세상과 천황의 눈치를 보는 불행한 개신교로 자리 잡게 되었고, 이들의 영향은 한국에까지 수출되어 ‘일본적 한국개신교’로 정착하게 되었다.
● 신국주의를 수출한 일본개신교
신국주의, 군국주의와 신사참배강요에 무릎을 꿇은 일본개신교는 그 배교행위를 자신들만 간직하지 않고 한국개신교에게 수출하였다. 전시 일제는 일본개신교의 신사참배에 대한 소극적 찬성도 용납하지 않았다. 모든 종교와 일본개신교도 국민총동원의 대상이 되고 종교보국(宗敎保國)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도록 강요받았다. 일본개신교단은 집회 전 로마서13장을 낭독하여 국가에 대한 충성을 표시하였다.
그리고 한국교회가 신사참배를 국민의례로 수용하도록 설득하는 주구(走狗)의 역할을 하고 일제의 한국통치에 협력하였다. |
1939년 종교단체법이 발효되자 개신교 교파합동운동을 시작하여 1941년 ‘일본기독교단’으로 조직화하였다. 그래서 ‘제국교회’(帝國敎會)가 성립하고, 세상의 국가가 임명한 신인(神人) 일본천황과 하나님을 동시에 섬기는 혼합주의 배교의 교회가 성립되었다.
첫댓글 고등비평에 대한 일반 국어사전의 정의
성서(聖書)에 기록된 연대, 기원, 저자 등을 밝히는 ///비판적/// 연구 방법. 성서에 대한 역사적, 사상적 배경을 학문적으로 연구한다.
<--Daum 국어사전
성경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것이 아니라 비판적으로 보는 시각이네요. 학문의 자유 운운하겠지만 신앙적으로 유익하지 않습니다.
@노베 공감합니다.
엄격한 개혁주의자들은 존 맥아더가 세대주의자이기 때문에 그를 전적으로 신뢰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맥아더의 경우 일부 보수적인 복음주의 입장에 서있는 부분도 있습니다. 그런 부분에 한해서는 맥아더의 이야기도 틀리지 않고 받아들일 부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
고등비평의 위험성
'성경 고등 비평'은 성경의 권위를 인간의 이성과 무신론적 자연주의의 권위로 대체했다. 중세 시대를 벗어나 계몽 시대에 도달한 유럽 사회는 인간의 이성과 과학적 경험주의를 강조했고, 영적인 것과 초자연적인 것을 무시했다. 인간이 자기 자신과 이성을 하나님과 성경의 우위에 올려놓기 시작하자, 합리주의는 이내 교회 안으로 침투해 들어왔다.
성경의 무오성과 영감설을 부인하는 고등 비평은 유럽과 미국의 신학교를 통해 개신교를 오염시켰다. 그리스도인을 자처하는 학자들이 '역사적 예수'에 대한 탐구를 유행시키고, 오경의 모세 저작권을 부인함으로써 믿음의 근본적인 교리를 의문시하기 시작했다. 합리주의는 지금도 여전히 신학적 자유주의의 형태로 살아남아 성경 무오론을 계속 공격하고 있다. 합리주의는 진리를 끊임없이 위협하고 있다.
‘오순절주의'는 성경의 권위를 사사로운 계시와 황홀한 경험의 권위로 대체했다. 은사 회복 운동으로 알려진 이 운동은 감정적인 경험을 진리를 규정하는 잣대로 삼도록 교회를 유혹했다. 성경 해석은 본문에 관한 명확한 가르침이 아니라 계시, 환상, 예언, 직관과 같은 검증 불가능한 주관적인 경험에 근거했다. 사람들은 성경을 무시하고, 주님의 음성을 직접 듣고 싶어 하기 시작했다. 결과적으로 성경의 권위가 전복되었다...
<--- 존 맥아더
@장코뱅 자유주의의 불신앙적 모습과 신비주의의 미신적 모습을 잘 피해야 하고, 신정통주의가 교회의 정상적인 성도들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부분인 것도 명심해야 하겠습니다.
@장코뱅 공감합니다.
아래 포스팅은 칼 바르트에 대해서 trinity님이 올리신 것인데요. 동영상을 보지 않아도 아나운서의 말한 내용이 문장으로 첨부되어 있습니다.
--------------------------------------
예수님의 몸의 부활을 부정하는 이단 신학자 칼 바르트
https://cafe.daum.net/1107/Y4PX/116
위 글과 글 밑에 있는 trinity님의 댓글을 다시 보니 조심을 해야 할 인물로 보입니다.
칼 바르트 신학의 이단성 검증 (feat. 신정통주의 신학이란 무엇인가? by 김용주 교수)
https://cafe.daum.net/1107/Y4PX/117
-----------------------------
신국주의에 굴복하고 신사참배를 행한 일본 개신교에 주류를 이루던 신학은 자유주의와 칼 바르트의 신정통주의였던 것은 사실입니다.
위 글도 문장, 문서화가 되어서 빨리 볼 수 있네요.
온전한 신앙과 정통 신학이 있어도 신사참배가 큰 시련으로 다가오는데, 그것마저 없는 자유주의와 신정통주의가 신사참배로 빠지는 것은 풍전등화의 연약함 같습니다.
신사참배와 배교강요의 위기 앞에서 나는 어떻게 행동했을까? 상상해 보았습니다.
아마도 내 능력은 깜냥이 아니고 내 안에 계신 성령께서 역사하실 때 배교를 거부하고 신앙을 지킬 수 있었을 것입니다.
네, 공감합니다.
일본 개신교회의 비극이네요. 일본 제국주의가 독일을 따라쟁이 했으니 신학마저도 독일의 신정통주의와 자유주의 신학을 공부한 자들의 영향으로 제국주의, 신국주의자들의 주구 노릇을 한 것이 돌이킬 수 없는 교회의 변질을 초래했군요.
천황과 하나님을 같이 섬길 수는 없는 법인데 혼합주의 기독교가 성립되어 배교에 앞장섰으니 무늬만 기독교지 전혀 기독교라고 할 수 없는 조직이 탄생한 거죠. 그러한 영향으로 일본 교회들이 죽어버린 것 같습니다. 우상숭배, 자유주의 신학, 혼합주의, 배교가 참 무섭긴 하네요.
좋은 글 잘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좋은 설명과 댓글에 공감합니다.
공감합니다22
기독교의 순수성과 정절을 지켜나가는 것이 참 중요하다는 것을 배웁니다. 선한 싸움을 해야 하는 건 기독교의 숙명이겠지요.
네,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네, 맞아요. 공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