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열전206
부산 문단의 버팀목이었던 故 이상개 시인
1941년 일본 고베에서 태어나 창원에서 성장한 이상개 시인이 작년 9월 16일에 별세 했다. 이상개 시인은 부산시인협회장을 지냈으며 그동안 『파도타기』 등 14권의 시집을 펴냈고, 부산시협회상, 부산시문화상, 한국현대시인상, 김민부문학상, 창릉문학상 등을 수상한 바 있다. 부산의 문학동네 ‘중앙동’을 ‘빛남출판사’로 지키다, 강나루 주점을 운영하며 문인들과 언제나 함께했다.
이상개 시인의 부산 출현은 시인 정대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70년대 후반 부산에 시인이 30~40명에 불과하던 당시 정대현 시인은 부산 서대신동 저택에 살며, 부산문인협회 등 문단 활동에 적극적이어서, 부산시인협회 창립에도 관여하고 사무국장 일을 맡아 보기도 했다. 이 무렵 1964년 결성한 [잉여촌]의 참여로, 형·아우하며 가깝게 지냈는데, 이것이 인연이 되어 서울에서 부산으로 이전 정착하게 되었다. 부산 문화의 중심이었던 중앙동이 국제신문과 부산일보 그리고 MBC방송국의 이전으로 활기를 잃고 있을 무렵, 부산의 문학동네 중앙동 터줏대감으로 등장한 것이었다.
부산일보 최학림 대기자는 “1988~2003년 문학출판사인 빛남출판사를 운영했는데 당시 부산 문인들이 ‘중앙동에 간다’고 할 때는 ‘빛남에 간다’는 뜻이었다. 뭇 사람들을 넉넉히 껴안는 고인의 품이 그렇게 넓어 빛남출판사는 문인들의 사랑방이었다. 그 넓은 품으로 그는 99권의 시집을 ‘빛남’이란 이름으로 출간해 지역문학의 켜를 쌓고 층을 두껍게 했다. 빛남출판사가 출간한 책의 전체 종수는 15년간 400여 종을 헤아린다. 그는 1993~1998년 부산의 문학계간지 『지평의문학』 『문학지평』의 발행인을 맡아 지역문학을 후원하기도 했다. ‘빛남출판사’는 그의 둘째 딸 이름을 그대로 가져와 지은 이름인데 그 출판사가 걸었던 길은 이름 그대로 ‘빛나는’ 것이었다”라고 썼다.
당시 시인 서규정은 출근부에 도장을 찍을 정도였고, 시인 정일근, 박응석, 김영준, 김인환 등의 특별 사랑방으로 고시회(고스톱을 좋아하는 시인들 모임)라는 말까지 써가며 빛남 출판사의 사무실을 애용했다.
부인 목경희 여사는 당시를 앞으로 벌고 뒤로 밑지는 세월이었다며, 직원의 수를 줄여야 한다고 사정해도 들어 주지 않았고, 목돈 한번 제대로 준 적이 없었다고 회고했다.
정훈 문학평론가가 이상개의 시집 『산 너머 산』에서 “이상개라는 이름은 부산에서 시를 쓰는 특정 시인을 지칭하는 고유명사다. 한편으로 필자는 그 이름에 덩달아 따라오는 보통명사의 뒤척임을 열거하지 않을 수 없다. 강나루, 모자, 중앙동, 소주, 침묵, 안부, 하늘을 쳐다보는 그윽한 눈빛, 낮고 굵직한 중저음의 목소리, 천천한 걸음걸이 등을 말이다. 부산 시단을 무던히도 지키면서, 그리고 동광동 소재의 주점 ‘강나루’를 말없이 지키면서 문단의 버팀목이자 언제라도 찾아가 술을 나누어도 불편하지 않은 분이다”라고 썼다. 이상개 시인의 삶과 문학을 참으로 알맞게 표현했다.‘강나루’는 이상개 시인과 목경희 여사 부부가 운영해온 소탈한 주점으로, 부부는 누구라도 언제든 편한 마음으로 들러 쉬며 마음을 달래고 갈 수 있도록 운영해, 부산 문인과 예술인의 소박한 아지트 구실을 해왔다.
이상개 시인은 부산 시단 ‘우유부단파의 두목’이라는 별칭으로도 통했다. 목소리 한 번 높이는 일 없고, 남에게 압박감이나 힘겨움을 주는 일이 없으면서도 어느새 복잡한 현안이 해결되도록 주선하고 이끄는 그의 면모를 시인들은 ‘우유부단파’로 표현하기도 했다.
살을 딱고 뼈를 깎는 보람은/따분한 침묵을 용해한 체험뿐/山을 밀고 生成의 숲을 도망쳐 나와/현대의 문지방을 핥는/거세된 계절들
材質은 탄력 있는 자세로 여유 있어도/심장을 도리고/衣裳을 찢어 내면/기초 곡선과 포물선 정점에서부터/변신하는 이데아의 골격이 된다
裸身의 검은 피부가/거칠게도 용광로의 용해열을 꼽아 보다가/하나의 추상으로 자리잡고/어느 후예의 자손은/미묘한 흥분의 틈새에다/독한 소주를 붓고
차라리 천 개의 의지로 된 우상 앞에는/퇴색한 삶이 햇살 퉁기리라/孤立의 성벽 헐린/未來를 보는 구도
지옥의 불길로나 시린 가슴 달래려나 국기/너부죽이 열을 삼키는 分娩 앞에/숨결과 指紋이 찍긴 화석을 남긴다
―「鑄型製作」 전문
시인은 1965년 『시문학』에 「鑄型製作」을 발표하며 등단했다. 그는 “인간을 못 믿고 인간이 못되고 악랄한 짓을 하는 동안은, 인간이 인간임을 포기한 상황에서 본다면 차라리 기계가 정직하다”고 생각한다. 그가 기계를 믿는 까닭은 기계는 인간이 일한 만큼 정직하게 보답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것은 기계적인 사고를 하는 인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기계주의 사고가 주는 인과의 법칙이 중요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주는 것만큼 받을 수 있는 정직함이야말로 인간과 대비되는 기계의 속성이다. 이러한 사고는 그가 사물을 관념의 속성으로 보는 관점이라 할 수 있다.
황선열 문학평론가는 “이상개의 시는 시의 이미지를 강조하는 관념의 속성에서 사물과의 관계를 탐색하는 동양시학의 관점으로 변화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사물은 이성의 영역에 포착되고 그 사물은 사유의 체계 속에서 시적 의미로 표현된다. 그의 첫 시집에서 발견할 수 있는 사유체계는 기계주의라는 말로 설명할 수 있는데, 이는 하나의 사물에 포착된 이미지를 하나의 이미지로 끌고 간다는 점에서도 그렇고, 그 이미지에 대응하는 구도를 지닌 이미지를 나란히 두고 있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이는 사물에 대한 직선적인 사고이고, 사물에 대한 일정한 관념을 중시하는 태도라 할 수 있다. 그가 말하는 기계주의 사고란, 하나가 일어나면 반드시 그 하나에 상응하는 하나의 결과가 일어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인과의 법칙이 정직하면서도 뚜렷하다는 것이다. 70년대의 시대적 상황도 무시할 수 없지만, 그보다도 기계에 대한 작가의 체험이 이러한 사유체계를 형성하게 된 동인이 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라고 이상개 시인의 시 세계를 설명했다.
시집 『강나루 하나』에는 자신의 시 세계를 언급하는 시인의 산문과 시집 『산 넘어 산』에 문학평론가가 목도하는 시인의 시 세계가 담겨 있다.
“나는 내 시 세계가 이렇다 저렇다 고집하지 않는다. 시 쓰는 데는 수학처럼 공식이 없다. 그러므로 예술 특히 시는 좋은 술을 빚는 과정이나 정원사들의 전정 과정과 같은 것이라 생각해 왔다. 이를테면 덜 숙성된 술도 술이요 신 술도 술이며 잘 익은 술도 술이다. 좋은 재료도 중요하지만 정성도 중요하다. 그리고 때를 맞추어 빚어내는 것도 중요하다. 이런 것을 종합해 보면 술에 티가 들어간 것이 흠일 수는 있으나 술맛에는 별 영향이 없는 게 아니지 않는가. 초기에는 ‘맛’과 ‘멋’의 조화를 주장하던 나의 시에 대한 관심은 변함이 없지만 80년대 ‘詩心天心’을 주장하다가 90년대에 와서는 ‘시여 독침이 되라’고 까지 거침없이 내 뱉었는데, 이제는 고정관념을 깨뜨려 버리고 바람 부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 흘러가고 볼 일이다.”(「시여, 독침이 되라」 중)
불 냄새를 피우며 달려드는/총천연색 알몸의 단풍// 산봉우리들이 달려 나와/달콤한 춤을 춘다// 흩날리는 잎새를 타고/마음이 물드는가 싶더니// 불 냄새를 씻어내며/노을 씻는 산사 종소리// 저기 저 춤사위 따라 흐르는/아, 저 알몸의 단풍노을
- 「단풍노을」 전문
“이상개 시의 본령은 서정이다. 무르익어 노을처럼 붉게 물든 언어를 선보이는 시인이다. 형식적으로는 단풍 든 산의 풍경을 형상화했지만, 이 짧은 서정시 안에 시인의 내면이 다 들어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정훈 「이상개의 시 세계」 중)
오 년 전쯤에는 소주에 생수를 타 마시더니, 이삼 년 전쯤부터, 생수에 소주를 타 마셨다. 이 무렵 술좌석 안주는 사람이 최고라며, 분위기를 즐기며 한탄조로 읊은 시다.
사천만 손가락질 칼날보다 예리하다
장마 뒤 불볕더위는 부글부글 끓고
후보 3명에 1명꼴로 전과자라는 보도다
국기國旗는 펄럭이나 국기國基가 무너지네
물고문 불고문에 너도 나도 유권자들
지옥의 불길로나 시린 가슴 달래려나
「가슴이 시리다」 전문
지난해 가을 필자는 즐거운 마음으로 강나루 주점에 들렸다. 부인 목경희 여사에게 점심때 약속하기를 저녁에 만나기로 하였는데 어찌된 것이냐는 질문에 어이없어 하면서 요양병원에 입원했다고 한다. 정신줄이 왔다갔다 하는데, 그래도 오늘은 상태가 좋은 것이라 했다. 전화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부인에게 바꿔주자, 목여사가 젖은 목소리로 “여보 사랑해!”라고 말한다. 뜸 들이던 이상개 시인이 특유의 저음으로 “나도”라고 했다. 생전 우유부단파 두목이었지만, 필자가 “이 선생과 소주 한잔 하고 싶소”하면 그는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나도”라고 답할 것만 같다. 이상개 시인 홀로 자리를 비운 강나루가 유난히 텅 비어 보인다. 글 _조연로 시인
** 예술부산 3월호에 게재 예정
첫댓글
푸른 저녁 / 이상개
그 푸른 저녁에
우리들은 별자리를 새기며
이야기꽃을 심었다
여백을 위한 약속은
언제나 따뜻하고 든든했다
가끔 별동별이 흘러갔다
열차가 자정을 향해 달리면
별자리에서 피어나는 꽃들은
몸부림도 잊은 채
따끈따끈한 별들을
마구 쏟아 부었다
그 푸른 저녁에
*시집 『산너머 산』 (2020. 빛남출판사)
당신은 수천 개의 눈을 뜨고
당신을 지키는 별이었습니다.
우리는 아무도 죽어보지 못한 사람,
가고없어도 고스란히 여운으로 남아 있는 자취들,
시는 삶에 대한 부드러운 복수라는데,
부산 문단의 버팀목이자
삶과의 연애로 시를 찾아 헤맸던
죽음은 항상 맨 나중 것이기에
‘응어리진 마침표는 세상 마감하는 날,
오직 한번 모질게 찍고 싶다’는 고경숙님의 시처럼
시인의 삶을 한 장면에 모아
기리게 해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오늘 이일기님이 경기도지부의 회원집을 보내 왔습니다. 우리도 회원집이 그리워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