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수해 복구 일화들
1) 내가 잡았어요.
중계소의 방송 장비들이 침수되어 이를 복구하는 일이 최우선이었다. 다들 현장에서
부지런히 장비 복구작업을 하는 중에, 나는 송신 안테나 아래쪽의 침수 피해를 복구
하고 있었다. 동조함 내의 부품들을 깨끗하게 닦아내고서 이를 건조 시키는 작업에 몰두
하던 중에, 청주방송국 J 기술부장께서 현장에 오셔서 작업을 도와주셨다. 함께 작업을
하다가 자연스레 내 입에서 한마디가 나왔다.
나 : "침수 위험이 많은 하천 옆 저지대에 누가 이곳에 중계소의 위치를 잡았 을까요?“
J 부장 : "사실은 내가 처음에 출장 내려와서 여기에 위치를 잡았어요."
나 : !!! (속으로...결자해지(結者解之) 인가...??)
2) 수해 복구의 숨은 일꾼들
방송 장비 복구와 방송 긴급 복구를 위해서, 청주방송국에서는 '윤종원', '송종국' 두 분의
노고가 많았다. 두 분 모두 유능한 기술직 사원으로, 여러 날을 현장에 와서 고생하였다.
본사에서는 ‘김지영’ 사우께서 오셔서 여러 날을 함께 지내면서, 송신 장비 복구작업에 큰
힘을 보태 주셨다.
또한, 신임 청주방송국장으로 부임해 복구 현장을 독려하면서 함께 밤을 새우고 가셨던
S 국장께서, 그 후 얼마 되지 않아 해직자 중의 한 분이 되셨다는 소식에 안타까워했던
추억이 있다.
물론, 바쁜 업무 와중에 수해 현장에 와서 고생한 청주방송국 직원들의 이름은 일일이 다
거명하지 못하지만, 각자 바쁜 업무를 두고도 자주 오셔서 수해 복구에 진력해 주신 분들의
노고로 인해, 복구가 비교적 빠른 시간에 이루어질 수 있었다.
3) 사택 거주 가족들
당시에 중계소 사택에는 두 가구가 거주하고 있었다. 나와 나의 고교 2년 후배인 B 후배의
가족이었다. 연일 스무 명 가까이 되는 청주방송국 직원과, 현장에 상주하며 복구작업에
몰두하던 분들과 우리 직원들을 포함하여 30명이 넘는 분들의 식사를 준비하느라, B 후배
부인과 나의 아내가 뒤에서 수고를 많이 하였다.
점심 식사는 기본이고, 오전과 오후의 간식 준비도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다. 아내는 어린
아들을 돌보고, 복중에는 임신 중이던 상태였다. 묵묵히 배후에서 식사 뒷바라지를 해 주어,
지금도 감사한 마음을 금치 못한다. 이제는 고인이 되신 B 후배의 부인께서도 조용히 수고
하시던 모습이 눈에 선하게 남아있다. 이런 사정을 남들은 잘 모르겠지만 모두 수해 복구의
숨은 일꾼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