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10. 19.
대학에서 시행 중인 상대 평가를 없애고 절대 평가를 정착시키고자 학생들이 나서기 시작했다.
어제 수업에서 학생회 차원에서 절대 평가를 학교 측에 요구하기 위해 의견을 모으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무척 반가운 일이다. 사실 이 대학은 2020년 2학기가 끝난 후 학생회에서 당시 교수자들에게 설문 조사를 실시했다. 코로나로 1년 동안 절대 평가를 시행했기에 학생들 사이에서 상대 평가가 얼마나 비교육적인지 조금은 알게 되었으리라 싶다. 나는 학생회에게 조금이나마 힘을 실어주고 싶은 마음에 자유 응답란에 왜 절대 평가가 필요한지 교육학자로서의 입장을 최대한 자세하게 기술했다. 학생회가 학교측에 의견을 말할 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말이다.
교수자 설문 조사 결과가 어떻게 나왔는지 나는 아는 바가 없다. 다만 2021년 2학기에 다시 상대 평가로 전환이 되어 안타까웠다. 한 가지 고무적이라고 생각하는 점은 2학기 내 수업에 학보사에서 활동하는 학생이 있어 수업 시간에 절대 평가에 대한 대화를 자주 나누었다. 학보사 차원에서 학내 목소리를 내어주는 것이 학생들의 관심과 의견을 모으는데 도움이 된다는 말과 함께 말이다. 당시 타대학에서 절대 평가를 하고 있었던 나는 그에게 절대 평가를 이미 시행하고 있는 대학이 있음을 알려주었다.
올 초 새로운 총장이 취임했는데 선거 기간에 절대 평가를 도입하겠다는 공약이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아직도 절대 평가는 시행되지 않고 있다. 절대 평가가 선거 공약이었다는 말에 나는 용기를 내어 지난 1학기 초 총장에게 메일을 보냈다. 절대 평가의 취지를 설명하며 학생들의 배움을 위해 상대 평가를 폐지해달라고 정중하면서도 간곡하게 요청했다. 아무런 답이 없는 것으로 미루어 짐작컨대 메일을 읽지 않았거나 무시했거나 둘 중 하나인 듯 하다.
일개 시간강사인 내가 메일을 보냈다고 해서 총장이 곧장 답을 보낼 것을 예상한 것은 결코 아니다. 다만, 대학 교수자 중에, 그것도 교육학을 전공한 교수자가 절대 평가를 요청하는 목소리가 학내에 있음을 알리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유난을 떨거나 튀고자 함이 아니라 사회문화관점에 뿌리를 둔 교육학자로서 작은 실천과 노력이라도 몸소 하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지난 학기 수업에서 내가 학교에 메일을 보냈다는 말을 학생들에게 했을 때 상당히 놀라는 눈치였다. 다들 상대 평가를 폐지해야 한다는 입장에는 동의하지만 섣불리 나서거나 의견을 내는 것은 무척 조심하는 분위기였다.
"절대 평가 시행은 여러분의 일이예요. 여러분이 관심을 갖지 않는데 누가 나서서 절대 평가로 전환시켜줄까요? 대학 교수자들이 절대 평가를 원했다면 이미 바뀌었을 거예요. 대학 교수자라고 해서 교육에서의 평가를 제대로 안다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대학 교수자는 내용 전문가로서 교육학을 한 번도 배우지 않은 사람들이 많아요. 학교 측에서 상대 평가를 시행하라고 하면 그렇게 평가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교육 제도가 잘못 되어도 개선되기 힘든 이유 중 하나는 당사자인 학생들이 일정 기간이 되면 학교를 졸업해 떠나기 때문이예요. 대학에서 3학년만 되면 전공 공부에 바빠 교내 일에 관심이 없고 4학년이 되면 곧 졸업할 것이기 때문에 굳이 새로운 제도를 위해 목소리를 낼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지요. 이런 일이 반복되면 학생들의 목소리는 힘을 갖기가 어렵습니다. 여러분의 대학이예요. 여러분이 직접 경험했을 때 문제가 많다고 생각한다면 보다 나은 교육을 위해, 후배들을 위해 문제를 고칠 수 있도록 목소리를 내면 좋겠습니다. 제가 학교에 메일을 보낸 것이 여러분에게 용기를 줄 수 있길 바랍니다. "
이번 학기가 시작되고 교실에서 치열한 논의가 오고 갈 때마다 교육에서 평가에 대한 논의는 빠질 수 없었다. 이번에도 학생들에게 내 실천을 공유하면서 학생들에게 관심을 가져보라고 얘기했는데 학생회 차원에서 의견이 모아지고 있다니 얼마나 반가운 줄 모른다. 지난 학기만 해도 학생들이 과연 자신들이 힘을 가질 수 있을 지 반신반의하며 체념하는 마음이 컸는데 이번 학기에는 어딘가 모르게 학생들의 분위기가 달라짐을 느낄 수 있었다. 3~4학년 학생들이 서로 "설문조사에 참여했어요?"라는 말과 함께 참여를 독려하고 자신들이 목소리를 내면 힘이 만들어지고 제도를 바꿀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갖고 있음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오전 수업에서는 모둠마다 학내 상황에 대해 얘기를 많이 했는데 오후 수업에서는 다른 논의들이 많아서인지 학내 상황에 대한 언급이 없었다. 수업을 마치며 나는 학생들에게 학내 상황을 알고 있느냐고 물었더니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관심과 목소리를 내면 좋겠다는 말을 하자 다들 공감과 동의하는 모습을 보여 흐뭇했다.
절대 평가는 타인의 배움에 신경을 쓰며 경쟁하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열심히 공부하고 많은 것을 배워도 타인이 더 많은 것을 배웠다는 이유로 좋은 성적을 받지 못하는 것은 교육이 아니다. 자신의 배움에 오롯이 집중하고 노력한 만큼 그에 맞게 평가를 하는 것이 절대 평가이다. 내용 전문가로서 교수자의 능력은 절대 평가의 기준을 제대로 정하는데 있다. 과목마다, 전공마다, 교수자마다 관점에 따라 절대 평가의 기준이 다를 수 있다. 수치로 평가해야 하는 전공이나 교과목은 수치로 평가하면 되고 질적으로 평가해야 하는 전공이나 교과목은 질적으로 평가하면 된다.
학생의 배움의 정도를 제대로 평가할 수 없는 교수자는 평가에 대해 공부를 하면 된다. 대학 교수자는 전공 분야에 대한 전문가이지 교육 전문가는 아닐 수 있다. 교육학에 대해 배우는 것을 두려워하거나 창피해하지 않길 진심으로 바란다. 대학마다 교수학습지원센터 혹은 교수학습개발원이 존재한다. 대학의 역할은 배움 본연의 모습을 위해 절대 평가를 실시하고 교수자들에게 평가에 대한 교수법 특강을 주기적으로 제공하길 바란다.
학점 남용은 교수자의 문제이지 학생의 문제가 아니다. 학점 따기 쉬운 과목에 몰리는 것은 상대 평가에서도 늘 있는 일이다. 학생들의 배움에 진정으로 관심을 두고 있고 그들의 성장을 원한다면 학생들이 배움에 집중할 수 있도록 절대 평가를 시행해달라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된다. 사회와 기업에서 대학의 학점 남발을 우려하는 것에 휘둘리지 말고 교육에서의 무게 중심을 대학이 잡아주길 간곡히 바란다. 취업 시장에서 대학의 학점을 믿지 못하면 선발을 위해 기업이 각자 준비해야 할 것이다. 대학이 나서서 학생들을 줄세워 사회에 보낼 필요는 전혀 없다.
모두가 A를 받는 수업을 나는 본 적이 없다. 지난 학기까지 절대 평가를 시행하는 대학에서 강의를 했지만 모든 학생이 A를 받는 일은 단 한번도 없다. 만약 모두가 A를 받았다면 두 가지 경우이다. 하나는 모두가 목표에 도달하여 모든 학생이 A를 받은 것이다. 모두가 목표에 도달했다면 그 수업은 정말 대단한 수업이다. 수업에 참여한 모든 학생들은 A를 받아 마땅하고 교수자는 우수 강의상을 수상해야 한다. 다른 하나는 교수자가 무성의하게 평가한 것이다. 이것은 전적으로 교수자의 문제이지 학생이 상대평가라는 불이익을 받아야 할 상황이 아니다.
상대 평가에서도 교수자의 평가에 이의를 제기하거나 불만을 갖는 학생들이 많다. 상대 평가는 객관적이고 절대 평가는 주관적이라는 이분법 사고는 위험하다. 상대 평가에서 정답이 분명한 선다형 시험과 단답형 시험을 보는 경우 객관성을 가질 수는 있지만 제대로 된 평가인지는 의문이다. 수능이나 고등학교 내신에서 변별을 위해 지엽적인 문제를 출제하거나 아무도 풀지 못하는 문항을 출제하는 것이 객관적일 수는 있으나 제대로 된 평가라고 보는 이는 없을 것이다. 변별을 위해 학생을 괴롭히는 문항이 객관성만 갖고 있으면 괜찮은 것인가.
절대 평가라고 해서 교수자가 마음대로 평가하는 것이 아니다. 절대 평가에도 평가의 기준이 존재하는데 이를 주관이라고 말하는 순간 평가에 대한 신뢰성이 무너지게 된다. 평가는 평가자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출제되므로 어떤 평가이든 평가자의 주관이 담겨 있게 마련이다. 수업을 제공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학생에게 학점을 주기 위함인가? 아니면 학생이 제대로 배울 수 있도록 안내하기 위함인가? 후자라면 절대 평가를 실시한다고 해서 교수자 마음대로 평가할 수 없음을 알 수 있다. 후자인 교수자는 절대 평가를 시행함으로써 학생들 개인에게 초점을 두며 그들의 배움과 성장을 도와주고자 노력하게 된다.
세계 어느 나라 대학에서 상대 평가를 실시하는가? 30년 전 대학을 다녔던 나도 당시에 상대 평가 제도가 없었다. 대학에서 상대 평가를 실시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고등학교에서의 상대 평가도 당연히 폐지되어야 한다. 언제까지 학생들의 실력을 향상시킨다는 이름으로 학생들을 줄세우고 경쟁을 시킬 것인가.
학생들의 목소리가 조금씩 커지는 시점에서 그동안 마음은 있었지만 선뜻 나서지 못했던 대학 교수자들이 용기를 내어주길 진심으로 바란다. 힘을 가진 사람이 그 힘을 정의롭게 쓸 때 힘이 실로 빛나는 것이다. 대학의 전임 교원들에게 간곡히 말씀드린다. 교내 절대 평가 시행을 위해 제발 목소리를 내어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