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09. 18
밤 공기가 선선해지는 것을 보니 프로농구 개막도 성큼 다가왔다는 것을 느낀다, 외국선수들도 팀에 합류했고, 구단들도 해외전지훈련을 통해 좀 더 단단한 팀워크를 갖춰가고 있다.
한동안 코로나로 인해 해외전지훈련을 다닐 수 없었지만, 이제는 창단이 늦은 고양 소노를 제외하면 전구단이 미국, 일본, 중국, 필리핀 등 다양한 행선지로 향하고 있다.
해외전지훈련은 보통 외국선수가 입국하면 바로 나가게 된다. 팀 훈련을 많이 하지 않은 상태에서 연습경기를 하게 되면 손발이 맞지 않아 미스가 나오기도 하지만, 그만큼 서로를 더 빨리 알 수 있는 좋은 시간이 되기도 한다. 게다가 우리와는 다른, 다양한 스타일의 팀들과 경기하면서 경기력도 끌어올릴 수 있기에 중요한 시간이라 할 수 있다.
내가 신인시절 처음 만났던 외국선수들도 팀에 막 합류하고 연습경기를 치를 때만 해도 잘 맞지 않았다. 물론 나 역시 외국선수들과 뛰어본 경험이 부족했고, 나도 많이 부족했던 시절이었기에 어려움이 많았다. 하지만 미국에서의 전지훈련을 통해 그들을 더 잘 알아갈 수 있었고 소통을 통해 호흡을 맞출 수 있었던 기억이 난다.
이번 시즌에 데뷔할 외국선수들도 아마 이런 과정을 겪고 있을 것이다. 과연 새 시즌에는 어떤 모습을 보일지 기대된다.
그런가 하면 9월 말부터는 오랫동안 기다려온 대형 이벤트가 개최된다. 바로 아시안게임이다.
지난해 열리지 못했던 항저우 아시안게임이 9월 26일 시작된다. 문성곤 선수가 부상으로 빠지게 됐지만, 양홍석 선수가 그 자리를 대체하게 됐다. 오랫동안 많은 땀방울을 흘리며 준비했을 우리 선수들이 2014년 아시안게임의 영광을 다시 한번 재현해줄 수 있길 응원한다.
1달 간의 코치 알바
모교 연세대에서 지낸 한달 하고 6일간의 지도자 생활은 설레는 경험이 아닐 수 없었다. 직접 선수들을 지도해 본 경험이 없기 때문에 두려움도 있었지만, 짧은 기간 동안 가급적 많은 노하우들을 선수들에 전달하고 싶었기에 입에서 단내가 날 정도로 말을 많이 할 수 밖에 없었다. 내가 주고 싶었던 노하우는 아주 기본적이고 깜빡할 수 있는 작은 것들이었다.
정기전까지 기존의 틀에서 좀 더 디테일한 부분을 지적하고 알려주려 했고, 선수들이 혼란을 느끼지 않도록 풀어서 쉽게 설명하려 애썼다.
선수들을 더 이해하고 그들의 마음을 알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과연 나는 대학 시절에 어떤 마음으로 운동을 하고, 어떤 생각을 많이 했는지, 그리고 어떤 것이 이해되지 않았는지 계속해서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하다 보니 지금 선수들에게 가장 필요한 건 안정과 자신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심리적인 안정은 좋은 플레이의 원천이다. 그래서 선수들이 편하게 느낄 수 있도록 장난도 치고, 대화도 많이 하면서 선수들을 파악하려고 애썼다.
사실, 나도 선수 시절에 가끔은 내가 어떤 부분에서 잘했는지 혹은 어떤 부분이 잘못됐는지도 모른 채 그 상황을 넘어갔던 적이 많다.
머릿속에 맞고 틀림의 기준을 정확히 잡아준 다음에 잘된 부분과 그렇지 못한 부분을 알려주는 것이 선수들에게 도움이 될 것 같았다. 선수들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하다 보면, 계속해서 같은 실수를 하기 때문이다. 몸이 숙달되면 무의식적으로 움직이게 된다. 그런데 그 무의식이 계속해서 반복된 실수를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잘못된 부분과 새로 맞춰야 하는 부분들을 계속해서 얘기해 주었다.
예를 들어 무리한 패스를 한다거나, 수비를 할 때 멋있게 뺏으려 한다거나 블록슛을 하려는 동작들은 거의 무의식에서 나온다. 하지만 그런 실수나 파울 하나가 상대에게 또 다른 기회를 준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렇게 상황을 인지하고 플레이를 하는 것과 그렇지 못한 것은 하늘과 땅 차이다.
선수들이 연습경기를 거듭하면서 조금씩 생각을 하고, 본인들의 잘못된 동작들을 하지 않으려 인지하고 플레이하는 모습이 한편으로는 고맙기도 하고 기특하기도 했다.
나 역시도 머릿속에 선수들을 집어넣기 위해 계속해서 경기 영상을 돌려봤다. 칼럼에서도 늘 얘기했지만, 경기를 계속 보면 그 안에서 어느 정도 답을 찾을 수 있다.
선수들의 움직임이나 스타일, 좋아하는 스텝, 성향 등 많은 것을 얻을 수 있고, 상대 선수들의 스타일이나 전술들을 볼 수 있기 때문에 경기 영상은 많은 도움이 된다.
그렇게 경기 영상을 많이 돌려보며, 상대의 어떤 점을 파고 들수 있을지, 우리 선수들이 어떻게 하면 좀 더 좋은 플레이 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한 달이었지만 선수들을 지도한다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인 것 같다.
많은 선배님들께서 “지도하는 것보다 차라리 뛰는 것이 낫다”라고 말씀해오셨는데 왜 그랬는지 새삼 느낄 수 있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즐거운 점도 있었다. 재능과 발전 가능성이 보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함께 땀 흘리다 보니 정기전의 시간이 다가왔다.
2006년 마지막 정기전을 끝으로 다시 정기전 무대를 밟게 될지 몰랐다. 코치로서 이렇게 큰 경기에서 함께 하다니! 정말 큰 영광이었다.
경기장에 파란색, 빨간색이 뒤섞여 정신없이 뛰어다니는 모습을 보니 오랜만에 내 심장도 강하게 뛰고 있음을 느꼈다. 온몸이 땀으로 젖을 정도로 내 몸은 에너지를 많이 쓰고 있는 듯 했다. 내 머릿속도 멈춤과 움직임을 계속해서 반복했다.
끝까지 고려대 선수들을 괴롭혔지만 역시 고려대는 강했다. 아쉬운 패배를 뒤로하고 경기장을 조용히 빠져나와서 마음을 달래야 했다. 대학 시절도 떠올렸다. 정기전을 지고 난 뒤 느껴야만 했던 복잡한 감정들이 발끝부터 올라오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일주일 뒤 열린 대학리그 결승전! 공교롭게도 결승에서도 다시 고려대를 만나게 됐다.
연세대 선수들도 그렇지만, 고려대 역시 정기전에서 힘을 많이 뺀 탓인지 몸이 무겁게 느껴졌다.
양 팀 모두 정신력으로 버텨야 하는 상황이었다. 전략과 전술도 중요했지만, 집중력이 더 요구 되는 경기였다. 연세대 선수들이 좀 더 힘을 냈던 3쿼터, 하지만 4쿼터 고려대 선수의 집중력이 더 강했고 결국 고려대가 2년 연속 우승트로피를 들어올렸다.
경기가 끝나고 경기장에 쓰러져 호흡을 가다듬는 선수들, 아쉬워 눈물을 보이는 선수들을 보며 정말 멋있었고 큰 박수를 받아 마땅하다 느꼈다. 보는 내가 다 안쓰러울 정도로 체력적으로 힘든 상황이었지만 모든 선수들이 끝까지 최선을 다해 경기에 임했다.
어쩌면 체육관을 찾은 팬들도 그런 대학생들의 패기과 열정을 보고 싶으셨을지도 모르다. 나 역시 이번 기회로 대학농구에 좀 더 관심을 갖게 되었고 기대를 하게 되었다.
그렇게 한 달이 조금 넘는 기간 동안, 코치로서의 역할을 마무리하고 나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선수들에게 더 많을 것을 주지 못해 아쉬웠고, 멋지게 경기장에서 투혼을 보여준 연세대 선수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그리고 연세대학교에서 짧게나마 코치 경험을 하며 선수들과 소통할 기회를 주신 윤호진 감독님께도 더 많은 도움이 못 되어 죄송하고, 감사하다는 말씀 전하고 싶다.
이제 대학리그는 모두 끝났다.
곧 드래프트를 통해 프로에 갈 선수들은 쉴 틈 없이 몸 관리에 들어간다.
이제 진짜 전쟁터로 나가야 한다. 본인보다 10살 이상이나 많은 베테랑 선배들을 비롯, 경쟁을 통해 이겨내야 할 선수들이 계속해서 보일 것이다. 팀에서 주축으로 뛸 때와는 달리, 많은 시간을 뛰지 못 할 수도 혹은 아예 엔트리에 이름도 못 올리는 날이 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선수들은 선수로서 해야 할 일들을 해내는 게 중요하다. 이제 정말 ‘프로농구 선수’라는 직업이 생긴 것이기 때문에 더 많은 것을 얻으려면 지금의 몇 배 이상의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프로에서의 생활은 어떻게 보면 화려하고 좋은 것만 보이지만, 굉장히 냉정한 곳이다. 그 누구도 본인을 위해 대신 운동해 줄 수 없고 몸값을 올려줄 수 없다. 그리고 그 누구도 믿고 의지하지 말고 오로지 본인의 노력으로 실력을 쌓고 성장해 나가기를 바란다.
프로에서 오로지 해야 할 것은 내가 선수로서 성장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고 체육관에 나가서 다른 선수들보다 10분이라도 더 많이 운동하는 것뿐이다.
당장에라도 데뷔하면 좋은 모습을 보일 것 같은 선수들도 있고, 지금이 아니더라도 앞으로 가능성 있는 친구들도 눈에 보인다. 모두 진심을 담아 응원한다.
대학농구에는 가능성이 있는 친구들이 생각보다 많았다. 농구 팬분들께서도 대학농구 선수들에게 많이 관심 가져주시고, 응원도 많이 해주셨으면 좋겠다.
이제 곧 있을 아시안게임 그리고 다음 달에 시작될 프로농구도 기대부탁드리며, 추석 연휴도 즐겁게 보내시면 좋겠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김태술 / 전 프로농구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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