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은 어두워져야 빛난다.
허 정 분
일요일이다. 한주동안 유일하게 아기 울음소리가 전무한 날이다. 어제 시어머님의 제사를 올렸던 뒷날이기도 하다. 이틀을 보통 날과 다른 정신없이 바쁜 가사일로 보낸 뒤끝이라 몸도 마음도 하루 쯤 누워 뒹굴고 싶었으나 출가한 아들딸에게 싸 보내고 남은 제사음식을 동네 분들을 초청해 점심으로 먹었다.
일 년에 일곱 번 모시는 제사와 차례가 예전과 달리 버겁다는 생각이 자주 드는 어느 덧 노년의 길목을 넘어서는 이순(耳順)이 올해다. 하지만 일이라면 왕 프로의 근성을 발휘하는 나 아닌가, 손님이 가신 후 아기가 없는 한가함을 뒷정리와 청소 등으로 마무리 하고보니 후딱 여섯시를 넘어가는 시계바늘, 얼른 tv앞에 앉았다. 좋아하는 프로가 있어서다.
1박 2일 애청자가 바로 나다. 강호동을 주축으로 움직이는 다섯 남자 주어진 과제를 개인적으로 잘 수행해야 식사와 잠자리가 보장되는 프로그램이 너무 재미있다. 예측불허의 튀는 행동 투박하면서 빠른 강호동의 말씨와 진행은 이 프로를 시청률 영 순위로 끌어 올리는 견인차 역할을 한다.
리모컨을 켜고 보니 ‘세시봉스페셜’ 이라는 자막아래 송창식 조영남 윤형주와 김세환씨가 기타 치며 노래 부르는 모습이 보였다. 제목만 보았다면 1박2일로 넘어갈 채널인데 그 네 사람의 가수가 내 마음과 눈을 붙들어 맸다. 애절한 노랫말과 절묘한 기타반주 초로의 스타들이 각자의 스타일로 몇 곡을 부르는데 한결같이 조화를 이룬 하모니는 심금을 울린다.
사회를 보는 유재석과 김원희가 네 사람의 나이를 합치면 257세라고 한다. 평균 64세를 넘긴 할아버지(?) 스타들이다. 그런 그들이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는 밤, 그들 앞에 앉은 수많은 방청객 중의 한사람으로 자리 잡자 빨려들듯 눈동자가 고정된다. 기타 송 구절구절이 온몸의 세포를 감미롭게 전율시키는, 가슴 밑바닥을 치고 올라오는 이 감상은 구구절절 향수며 그리움이다.
1970, 80년대 노래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우상이었던 그들이다. 숱한 젊은이들이 그들의 노래를 듣고 기타를 치며 외국가수들의 팝송을 부르는 게 유행했다. 나도 영어 한 구절 뜻도 모르면서 분위기와 기타의 매력에 넋을 놓던 시절이었다. 구멍가게를 점령한 라디오 볼륨을 유일한 젊음의 돌파구처럼 그들의 노래에 맞추던 시절이었다.
영혼을 파고든다는 묘약 같은 애수에 젖게 하는 목소리의 소유자이자 동시에 온 몸을 흔들며 열광하게 하는 마력을 지닌 그들이었다. 청춘, 그 아름다운 찬사를 제대로 누리지도 알지도 못하고 삶에 찌든 나만 보이던 세월이었다.
그랬다. 서른 살의 문턱을 넘어서며 나는 지독한 우울증에 시달렸다. ‘저 가수들이 청바지와 기타와 장발로 상처받은 청춘들의 영혼을 달래는 우상일 때 나도 내가 선택한 삶의 과정을 상처와 갈등으로 끌고 가며 좌절하고는 했었지’ 서른 살, 인생의 절반이 뚝 꺾어진 느낌이었다. 지금 돌아보면 한창 꽃다운 시절이었을 나이였는데 시든 꽃처럼 생기를 잃고 내 삶을 비관하는 철학적 메시지를 던진 셈이다. 생을 다 산 것 같은 허무감, 미래는 아득한 절망뿐이라고 자학하는 나날이 깊어질수록 몸과 마음이 황폐해졌다. 남편과 면벽의 골이 깊어질수록 우울증은 더 심했다.
세 아이의 엄마라는 책임감도 나를 옥죄는 수많은 고리의 일환일 뿐이라는 생각이었다. 숱한 갈등과 아픔으로 번민할 때 내 등을 두드리고 일으켜 세워준 분은 친정 엄마였다. “너는 네가 아니다. 아이들이 너다. 너 때문에 아이들이 큰다. 그리고 절대 내 앞에서 이혼이란 말은 꺼내지 말아라, 나 죽거든 네 마음대로 해라” 엄마의 부드럽고 결곡한 위로와 당부 앞에서 그 해를 넘기며 나를 추스렸다.
당시 조영남이 부른 딜라일라 번역 곡은 큰 반향을 일으킨 팝송의 전성기를 알리는 효시였다. 나훈아와 남진이 전 국민을 대중가요로 사로잡았다면 통기타가수는 시대적 상황을 불행으로 여긴 젊은이들이 그들이 부르는 노래에 열광했던 청춘의 우상이었다.
‘놀러와’ 특집 프로로 기획된 ‘세시봉’ 간간 토크를 곁들인 무대 웃음과 눈물까지 덤으로 쏟아내게 만든다. 연장자로 연민이 가는 스타는 조영남이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한결같은 돌출 언행은 변한 게 없지만 세월은 스타도 못 비켜 갔는지 늘어난 주름과 삶의 고뇌가 그의 얼굴에 얹혀 있다. 가수 중에서도 조영남은 자유분방한 파행으로 유명하다. 간간 tv에서 볼 수 있었던 생애역시 상상을 초월한 파란만장의 연속이었다. 인기 스타 윤여정이 그의 첫 아내였다. 그는 두 번째 이혼까지 했다고 털어 놓는다.
보통사람과 다를 바 없는 평범한 외모 때문에 더 친근하게 다가서는 스타가 조영남씨다. 화투를 즐겨 그리는 화가이자 최근에는 세시봉이 아닌 다른 방송에서『조영남은 조영남 이상이었다』는 책을 발간했다고 소개했다. 문인 이상에 대한 연구를 오랫동안 해 왔다고 한다. 가장 후회되는 것은 낭인 기질이 다분한 그가 가정을 꾸리고 살지 못해 자식들에게 제대로 아버지 노릇을 못해준 일이라고 가슴 아픈 고백을 했었다.
강호동과 쌍벽을 이루는 우리나라 MC계의 최고봉인 유재석이 네 명의 스타를 주무르는데 웃음과 눈물이 동반하지 않는다면 너무 무미건조한 프로그램이다. ‘막내 세환’ ‘럭비공 영남’ ‘시크릿 창식’ ‘까도남 형주’ 라는 별명을 현수막으로 내걸고 웃음을 유도한다. 가장 나이가 적은 막내 김세환에게 선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해보라는 ‘야자타임’ 시간은 폭소를 터트리게 했는데 윤형주가 ‘까도남’을 모른다. 인터넷이 지배하는 세상의 은어가 이제는 젊은이들 실생활에서 거침없이 쓰이는데 까칠한 도시 남자를 표현하는 말이란다.
깜짝 출연한 양희은 윤도현이 선배들에 대한 애정을 노래와 추억으로 털어놓는다. 네 명의 가수 외에 함께한 길, 이하늘, 김나영도 이 특별한 가객들의 공연을 감동과 찬사로 지켜보며 기립박수와 눈물까지 보인다. 눈물의 묘한 자극성 그 프로와 함께한 시간 내내 웃음과 눈물이 교차한다.
특히 미국에서 이십 여 년 동안 지내다가 이 무대의 그들을 위해 귀국했다는 가수 이장희씨가 특별손님으로 등장해 그들과 공유한 여러 가지 추억을 회고하고 세시봉의 변천사를 밝혔다. 세시봉은 당시 통기타가수들이 노래를 할 수 있는 무대를 갖춘 클럽으로 신인가수들의 등용문이었다고 한다. 홍대 앞이라고 했던지는 헷갈리는데 그 무대를 통해 데뷔한 가수들은 후일까지 인기가수로 명성을 유지했는데 그만큼 노래를 잘 해야 인정을 받는 무대였단다. 불과 40여 년 전의 풍경을 얘기하는데 아름답고 신비한 전설속의 한 장면같다.
오래 전에 콧수염을 양쪽으로 길게 길러 퍽 인상적이었던 가수 이장희씨는 깔끔한 초로의 신사가 되어 구수한 입담을 풀어놓았다. MC의 주문으로 조영남씨와 송창식, 윤형주 김세환씨까지 이장희씨와 얽힌 일화를 털어놓고 각자의 노래에 담아 열창했다.
시간은 영시가 넘었지만 재미의 차원을 넘어 신선하고도 아름다운 충격이 초저녁잠이 많은 내 눈꺼풀을 완전히 들어올렸다. 이장희씨는 그들과의 각별한 우정을 담은 편지를 써서 낭독했다. 비교적 짧은 편지였지만 그들 개개인의 자존심을 최고의 찬사로 담아낸 촌철살인의 문구는 너무나 부러워 경탄을 연발했다.
먹고 살기 바빠서란 식상한 핑계로 수많은 인연과 안부전화조차 못하는 나, 내가 사는 존재의 이유를 깨닫게 한 멋진 사나이들의 만남이며 감동이었다.
한국가요사에서 조용필이 가왕(歌王)이라면 송창식은 가객(歌客)으로 비교된다는 어느 문화평론가의 말처럼 송창식의 노래는 듣는 사람의 가슴을 파고든다. 애절하다 못해 순도 높은 와인처럼 온몸의 세포를 깨우는 혼의 울림, 신(神)에게 특별히 선택된 목소리다. 그가 윤형주와 트윈폴리오로 활동한 수많은 곡들은 아직도 중장년층의 애창곡으로 꼽힌다.
상대방이 노래 할 때 그 노래를 빛내주려고 기타 화음을 맞추는 가수들 또는 함께 부른 열창으로 방청객의 가슴까지 뜨겁게 달군 사람들, 그들이 그랬다.
지금은 아이돌 스타가 선풍적인 인기몰이로 모든 예능 프로를 장악했다. 아이돌 스타의 인기순위는 10대들의 광적인 팬클럽도 한몫을 담당한다고 한다. 우리 세대하고는 천지차이다.
시대의 흐름에 편승한 시청률에 밀려 조용히 자취를 감춘 스타들이 통기타 가수들이다. 하지만 아직도 온 국민의 사랑을 받는 통기타 가수들이 지금의 반짝하다 사라지는 아이돌 가수와 비교가 될 처지인가 그들은 조용히 제 자리를 지키는 별 일 뿐이다.
또 어떤 유사한 프로그램이 내 마음을 현혹시킬지는 몰라도 올 한해 그들이 부른 노래에 온 영혼을 적신 나는 조금은 메마르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오래오래 읊조릴 노랫말 두서너 줄 적어두었다는 안도감으로 그 밤 내내 몽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