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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드리히 니체는 관념의 역사에 강한 인격의 인상을 남겼다. 정열적인 참여와 새로운 급진적 의지, 첨예한 혜안과 언어적 마술이 그의 저작의 특징이다. 니체의 작품활동은 (서로 맞물려 있는) 세 번의 창작 시기로 나누어질 수 있다.
첫 번째 시기 (1869-1876)
루터파 목사의 아들로 태어난 니체는 고전 문헌학에 대한 교양을 쌓고, 발(Bâle, Basel)에서 고전 문헌학 교수가 되었다. 1871년 그는 『비극의 탄생: (부제) 음악의 정신으로부터(La Naissance de la tragédie: A partir de l'esprit de la musique, 1871)』을 저술한다. 니체는 그리스의 원초적인 힘인 아폴론적인 것과 디오니소스적인 것은 고대 그리스의 비극에서 융합되어 조화로운 종합에 도달했다고 풀어나간다.
'아폴론적인 것' 이성적인 척도를 대표하고, '디오니소스적인 것' 은 도취적이고 열광적인 것을 가리킨다.
비극의 몰락은 특히 소크라테스(Socrate)에 의해 구체화된 그리스의 이성적 철학의 발생과 연관된다. 유리피데스(Euripide, Euripides, Salamine 480- Macedoine 406)에게서 이미 이 같은 이행이 진행된다.
"그(유리피데스)를 통해 이야기되는 신성이란 디오니소스도, 아폴론도 아니고 소크라테스라고 불리는 완전히 새로 태어난 다이몬(démon)이다."
니체는 새로운 문화를 리하르트 바그너(Richard Wagner, 1813-1883)에게서 보았다. 그의 음악과 개성이 이 시기의 니체를 매료시켰던 것이다.
1871-76년에 니체는 당대의 문화에 논쟁의 길을 열었다. 그는 네 개의 논문으로 이루어진『반시대적 고찰』을 썼다.
교육받은 속물의 전형인 슈트라우스(David Friedrich Strauss, 1808-1874, 저술 『예수의 생애(La vie de Jésus, 1835)』)에 대해서; 역사적 사유의 지배라는 '역사적 질병'에 대해서(헤겔: Hgel, 1770-1831, 하르트만: Karl Robert Eduard von Hartmann 1842-1906); 비극적 사유에까지 올라간 철학자의 전형으로서의 쇼펜하우어(Schopenhauer, 1788-1860)에 대해서; 그리고 바그너(R. Wagner)에 대해서 고찰하고 있다.
두 번째 시기(1876-1882)
니체는 자신의 철학이 발전한 이 시기를 스스로 '아침의 철학'이라고 부른다. 이 시기에는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1부와 2부), 『여명』, 『즐거운 학문』 등 네 권의 저작이 탄생한다.
문체상으로 니체는 이제부터 경구(aphorisme)를 최상의 언어적 형식으로 생각한다. 이 네 가지 텍스트에서 내용의 깊이에는 무엇보다도 '퇴폐성(décadence)', 퇴폐성의 도덕, 퇴폐성의 종교(크리스트교)에 대항하는 논쟁이 들어있다.
니체는 회의적 합리성의 입장을 취하고, 진지하고 정열적 의지에 집착한다.
니체는 전통적인 철학적 문제 설정에 반대하여 늘 새로운 세부적 관찰을 통해 다음의 문제를 제기한다.
- '언어'의 의미
언어는 사실에 가면을 씌운다. 인간이 말과 더불어 현상적으로만 사물의 본질을 파악할 뿐이며, 실제로는 첫 번째[사실] 세계 옆에 두 번째[현상] 세계를 발명해 낼뿐이다.
그래서 니체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그러면, 진리란 무엇인가? 한 덩어리 유동적인 은유......[이다]. 인민은 그 은유를 오랫동안 사용하고 난 후에 확고히 되며, 법령적[계명적]이 되고 그리고 신앙으로 되어 버린다. 이 진리는 환상[착각]일 뿐인데 우리는 다만 진리가 그런 환상임을 잊어버렸다."
- 존재와 '가치'의 허용될 수 없는 결합
합리적 판단의 가치에 대한 신뢰는 그 자체로 도덕적 현상이다.
- 도덕의 '상대성'
도덕적 판단은 무시간적이지도 절대적이지도 않고, 역사와 사회에 상대적이다.
니체는 도덕 철학이 사실의 다양성을 고려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난한다.
- 도덕의 실천적 모순들
- 도덕의 역사성
니체는 인습적인 편견을 오랫동안 실행함으로써 어떻게 덕목이 생겨나는지에 대한 주제를 더욱 발전 시켰다.
- '계보학적 논증'
[도덕의] 동기(motif)의 탄생에 대한 역사적이고 심리학적인 기준을 세우면서 전통적인 가치와 규범을 거부한다. 그는 덕이 있으면서 종교적인 인간, 그리고 덕이 있거나 또는 종교적인 인간에게 덧씌워진 가면을 부수고, [거짓을] 폭로하고, 가치의 객관적 근거에 대한 주장을 반박한다.
"도덕은 또한 정서의 연결부호(code)일 뿐이다."
인식에 대한 그의 비판은 또한 『즐거운 지식』에서 견고하게 되고, 특히 오류와 착란이 인식하는(생성하는) 존재의 조건이라고 더욱 분명하게 말한다. 그는 학문의 신앙(foi dans la science)을 단칼에 쳐내어 버리고, 그는 결정적인 진리에 이를 길을 비상식적(insensé)으로 꿈을 꾼다. 이 결정적 진리란 필연적으로 처음에는 '삶, 자연, 역사의 세계'와는 다른 세계를 욕망(소망)하고 결국에는 '이 세계, 우리들의 세계'를 부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내가 어쩌자는 것인지를 이해하게 될 것이요; 그것은 과학에서 신앙이 근거가능 하는 것은 '형이상학적 신앙'에서 이다."
니체는 쾌락을 획득하려는 목적을 가진 실용적인 반성만이, 비록 우회로를 취하고 있지만, 실제로 작용하고 있다고 본다. 그는 연민은 자기 보호이며, 이웃 사랑은 자기애(amour de soi, 이기심은 amour propre이다)라고 폭로한다.
크리스트교에 대해서 니체는 다음과 같이 비난한다.
- 크리스트교는 인간을 나약하게 하는 데에 본질적인 역할을 한다.
- 크리스트교는 고대의 역설적인 관념 세계에 대해 믿을 수 없는, 독단적인 유산으로 이루어져 있다.
- 크리스트교는 존재하지 않는 저 세상에 위안을 삼지만, 저 세상을 아무도 더 이상 믿지 않는다.
- 크리스트교인들은 자신이 믿고 있다고 주장하는 바에 따라서 살지 않는 위선자들이다.
이러한 공격은 『즐거운 지식』에서 신을 찾는 미친 사람을 묘사하는 데에서 절정을 이룬다. 여기서 니체는 지평도 없고 위도 아래도 없이 뒤집히기(chavirer) 시작하는 세계의 미래상을 그리고 있다. 왜냐하면 신을 죽었기 때문이다.
"신은 죽었다! 신은 죽은 채로 있다! 그리고 우리가 그를 죽였다!"
세 번째 시기(1883-88)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1883/85)』와 『선악의 피안』, 『도덕의 계보』, 『권능의 의지』(1880년대 쓰여진 텍스트인데 1901년에 처음으로 출판되었다)의 저작과 더불어, 새로운 시대를 선포하는 데에서 니체 철학은 정점에 이른다.
비판적 계기는 보존된다. 하지만 새로이 탄생한 니체의 사유세계를 통해 진단의 뒤를 이어 치료법이 제시된다.
니체는 정신이 겪는 세 가지 변신을 본 따서, 이 새로운 것(치료법)을 표현한다.
처음에는 정신이 인내하며 옛 도덕의 짊을 짊어지고 가는 낙타[퇴폐를 상징]가 되고, 그 다음에는 이 같은 가치를 상징하는 용(과거의 가치 [너는 해야한다: 칸트?])에 대항하여 싸우는 사자(자유정신 [나는 하고자 한다: 루소?])가 된다.
"자유를 창조하고 의무 앞에서도 성스럽게 거부하는 것 … 이를 위해서 사자는 필요한 것이다."
마침내 정신은 놀이하면서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아이가 된다. [미셀 뚜르니에의 어린이 찬미 - 들뢰즈의 미친 생성의 존재적 근거는 배아(수정란)?]
니체는 허무주의라는 개념을 통해 서구 문화를 진단한다.
"가치, 의미, 소망(le désirable)을 그 뿌리까지 거부하는 것"
최고의 가치는 평가 절하되고, 나약한 크리스트교적 사유의 거짓 세계와 소크라테스의 유산을 계승한 철학의 거짓 세계는 그 자체로 무너지고 있었다. 니체가 계속해서 설명하기를, 그리스-크리스트 전통은 자기 속에 허무의 씨앗을 지니고 있다고 한다. 니체는 그 씨앗의 결과를 확인한다. 그는 이러한 비전을 창출한 점에서 동시대인보다 앞서 있다고 생각한다.
'약자'는 이러한 사실에 직면하여 절망하며, '강자'(초인)는 이러한 사실에서 새로운 질서의 등대, '가치의 전환'을 위한 등대를 발견할 것이다.
『권능의 의지』를 중심으로 집약되는 니체의 치료법은 이러한 선포에 있다.
"니체 철학은 초인과 영겁회귀라는 이중의 미래상에서 절정에 도달한다. 그의 철학의 핵심 개념은 권능의 의지이다."(발터 카우프만, W. Kaufmann)
특히 짜라투스트라에서 니체는 초인을 찬미한다.
전통적 가치에 대항하는 총체적 자유에 의해 초인이 구별된다. .
초인의 행위는 지상의 규범에도 부합한다.
초인은 강과 생명력과 권능을 추구한다.
초인은 (고안되어진) 신의 독재에 복종하며 약자와 연민의 도덕을 섬기는 무리속의 인간들과 대립힌다.
[무리 속의 인간은 약하고 비겁하고 덕[목]있고 노예적이고 복종적이고 동정적이며, 이들은 수에 있어서 너무나 많다. 이에 비해 초인은 생명이 충만하고 용기 있고, 활동적이고 권능이 있고 자유롭고 근심이 없는 자이며, 그런데 그는 매우 드물다. ]
초인은 소수일지라도 자유와 거칠고 생명적인 방향에서 오는 쓰디쓴 귀결을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 충분히 강하다. 그들의 최종적인 시금석은 영겁 회귀 사상을 지탱할 수 있는 능력이다.
니체는 『즐거운 지식』에서 동일한 것의 영겁 회귀에 '가장 큰 비중'을 두면서 그것을 다음과 같이 생각한다.
"이러한 삶을..... 너는 또 한번 그리고 또 셀 수 없이 많이 살아야만 할 것이다. ......현존재의 영원한 모래 시계는 끊임없이 뒤집기를 반복하고 - 그리고 너도 그 모래시계와 함께, [모래시계 속의 모래처럼] [너도] 티끌 중에서도 티끌일 뿐이다."
니체는 마치 '다이몬(démon)'처럼 그를 엄습했던 영겁 회귀에 직관적인 확실성을 가졌다. 그 표현은 복잡하다. 그는 반복의 관념을 사건과 사실의 동일자(l'identique)로 번역하지 말하고 하고, 단순히 역사과정의 '순환'운동(나선형의 비유가 이것을 매우 잘 특징화 할 수 있다)의 존재를 지적한다고 주장한다. 계속해서 그는 안정된 개념적 기초 위에 관념[자기생각]을 확신하려고 논리적이고 자연 과학적인 논증을 이용하였다. 영겁 회귀의 의미는 초인을 최종적으로 '정당화'하는 데 있다.
니체가 자신의 철학을 가장 잘 파악한 것으로 보는 공식은 '권능의 의지'에서이다. 그는 쇼펜하우어와 스피노자(Spinoza, 1632-1677)의 철학 그리고 당시의 생물학에 영향을 받아 인간의 행동과 모든 생명체의 지도 노선에 자기 보존의 의지가 있다는 것을 인식했다.
모든 사유와 행위의 '동기'는 의지이며, 이 의지는 쇼펜하우어와 반대로 맹목적인 것이 아니라,
'자기 보존', '삶의 감정과 능력의 증대', '힘과 권능'의 획득
이라는 여러 목적들을 추구하는 것이다.
이러한 원리가 도처에서 인간을 지배하기 때문에 니체는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이 세계는, 힘[자연적 힘 또는 물리적 힘]의 괴물이며, 시작도 끝도 없으며, 견고하고 완강한 거대한 힘이고.... 이 세계는 권능의 의지[생명과 심리의 힘]이지 - 그 밖의 어떤 것도 아니다!"
이러한 배경을 정의하면서 니체는 모든 가치의 전환을 시도한다.
옛 가치들은 빛이 바래지고 새로운 가치들은 권능의 의지라는 원리에 따른다.
선과 악을 미래에 규정하려면 어떤 행위가 '활력'을 얻는데, 또는 그 활력에서 이끌어낼 수 있는 '힘을 획득'하는 데 '유용(utilité)한가 아닌가'에 따라 규정되어야 할 것이다.
[이 유용성의 개념에서 공리주의- 실용주의의 접근 방식을 보는 경우가 있는 데 그것은 잘못이다. 영국의 공리(utile)과 미국의 실용(pragmatique)인간이 사물에 대해 적용과 그 귀결에서 인간에 맞게(합목적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생명과 심리(영혼)의 유용성은 생명의 자기보존을 의미하며, 자기 생산성(스피노자의 naturante)을 말한다. 이 생산성이 자기에 의한 자기 생산(신즉 자연의 자기 생산)일 경우에 선하고 행복하다. 이런 의미에서 아래 글은 매우 스피노자적일 수 있고, 생각보다 니체도 스피노자의 『윤리학(Ethique, 1661-1675)』을 수학적으로 읽기보다 생명과 심리의 자기 풀림으로 읽었을 것으로 보인다. - 또한 이런 생각(idée)은 베르그송이 『창조적 진화(1907)』에서 말하는 생명의 엔트로피 역행과 같은 맥락이며(제3장), 의식의 자기 생성(제1장)과 같고, 『물질과 기억(1896)』에서 기억의 확장도 같은 맥락이다.]
"무엇이 좋은 것[선]인가? - 권능의 감정을, 권능의 의지를, 인간 안에 있는 권능 자체를 고양시키는 모든 것은 좋은 것[선]이다.
무엇이 나쁜 것[악]인가? - 약함에서 나오는 모든 것은 나쁜 것[악]이다.
무엇이 행복인가? - 권능이 성장한다는 감정이 [행복이다]......
만족이 아니라 더 많은 권능이, [일반적]평화가 아니고 전쟁[치열한 생존경쟁-다윈의 관점?]이, 덕목이 아니고 열렬함이 [행복이다]"
1888년 니체는 특히 『반크리스트교인』과 『이 사람을 보라』와 같은 일련의 비장한 글을 작성하였다. 첫 번째 글에서 그는 또 한번 크리스트교에 분노를 터뜨린다. 두 번째 글에서는 그가 자신을 과대 평가하고 있음이 명백히 드러난다. 과거를 회고하면서 그는 "왜 나는 이토록 영리한가", "왜 나는 이토록 좋은 책들을 쓰는가" 등의 표현을 하고 있다. 1889년에 니체는 정신 나간 상태(ailénation)에 빠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