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순적 발화*
이렇게 시작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개발새발 쓴 시로 발화를 한다 강의실에 모인 수강생 열다섯 명이 귀를 연다 발화자에게 소리가 되돌아가는 점에서 편백숲을 지나는 바람 소리와 확연히 구분된다 말하기 머 하지만 공사장 소음도 귀를 귀찮게 하는 순간에 사라진다 고루한 말이지만 말이 잦아들면서 의미를 남긴다는데 김서 시는 매번 성공할까 민 머리가 부끄럽지만 나는 시인 모자를 쓰고 탈모를 감추는 데 쓴다 좀 다른 말이지만 수국이 아직 연두라서 양산을 받쳐주면서 둘이 산책을 하는 데도 함빡 웃어 주지 않는다 죄송한 일이지만 불볕더위보다 너의 피부가 더 싫어서 목장갑을 낀다 강아지 산책은 좋아서 하는 일인데 강아지 배변은 비위 상해서 청소차를 부른다 종점에서 말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막차 버스는 일 분 전에 떠났다 발화가 공기를 울리고 사라짐으로써 정신적인 것을 만든다는데 우리는 산책을 마치면서 둘의 시간을 합산한다 중요한 말은 아니지만 깍지 낀 손에 힘을 더 주었다 막말로 시집에서 묘사하는 대로 길거리 키스를 하여도 하나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시간이 쌓이면서 연인이 된다 무조건 높게 쌓아 놓고 심을 박아 놓지 않아서 한 사람이라도 손을 빼는 순간 연인은 산사태처럼 순식간에 허물어진다 애들 앞에서 아니 할 말로 입속에서 혀가 왔다 갔다 해도 하나도 역겹지 않았다 목소리 속 의미가 밖으로 나왔다 뭐라고 설명할 수 없지만 의미는 다시 목소리 내부로 되돌아간다 맘에 드는 표현은 아니지만 모든 세상 사람들 속에서 너는 나에게 가장 정신적이었다 좀 새어나간 말이지만 나는 고집이 세서 고집이 세지 않은 것들을 받아들인다 지금 중요한 말은 아니지만 한 번 한 결심은 바뀌지 않는다
*장인봉, 「모순적 발화 양태」,『기호학 연구』 Vol. 17, 한국 기호학회, 2005, 312쪽, 모순적 발화 양태 표현을 가져와서 변용
작가와 사회 겨울호 88∼8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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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시작 메모
논문을 읽다가 이것 '시로 써 보면 좋겠다'라고 생각해서 10여 분 만에 후딱 쓴 시
선행하는 문장이 주어져서 뒤 문장만 채우는 식으로 아주 쉽게 씌여진 시입니다
지평동아리(시창작) 매주 화요일 10시30분부터 12시 30분까지 3층 휴게실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