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시 카메라 철탑 위에 까치집
기억과 추억 사이/수필·산문·에세이
2005-12-25 16:40:01
까치 울음소리를 들어본 적이 꽤 오래 되었다. 내 마음 속으로만 그 옛날의 까치 울음소리가 선명하게 들릴 뿐이다. 아침이면 앞마당의 감나무 꼭대기에 앉아 깍깍 이른 잠을 깨우던 까치는 그 옛날의 사람들에게는 반가운 소식을 물어다 주는 길조(吉鳥)로 통했다.
더구나 까치가 울고나면 그 날은 이상하게도 우체부가 편지 한 통을 전해주고 꿈처럼 사라지곤 했다. 그런데 요즘은 사정이 확 달라졌다.
까치가 시골사람들부터 원성이 자자한 새로 욕 얻어먹기 일쑤다. 애써 키운 과일들을 속까지 파먹어 못쓰게 만드는가 하면 수확을 앞둔 농작물을 까먹어 막대한 피해를 입혔다. 그러니 시골 사람들은 까치를 반가워 할리가 없었다. 까치도 그 사실을 잘 아는지 마을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런지 까치는 이제 아득한 내 어린 시절의 기억속에만 남아 그리움의 둥지를 틀고 있었다. 사실 그 때의 까치소리는 참 선명했다. 신작로 미루나무 꼭대기에 둥지를 틀고 앉아 깍깍 소리높여 울면 푸른 창공을 지나가던 구름이 미루나무에 그리움의 손짓을 했다. 더구나 지나가던 엿장수가 찰칵찰칵 엿가위 소리를 내면 어느 것이 진짜 까치 소리인지 구별하기가 힘들었다.
까치가 깍깍 푸른 창공을 밀어올리는 미루나무 아래서 햇살에 녹아 철철 늘어지는 엿을 먹는 맛은 일품이었다. 찰깍찰깍, 깍깍, 서로 주고 받는 소리속에는 묘하게도 그리움의 슬픔과 달콤한 추억이 서로 뒤섞여 있었다.
그러나 엿장수와 까치, 이 두 존재는 요즘들어 서로 약속이나 한 듯이 사라져가는 대상이 되었다. 도회의 골목이나 시골의 한적한 거리에서 엿장수의 그림자를 보지 못하듯 까치 또한 눈에 띄지않는 존재로 전락되고 말았다.
그런데 어느날, 눈물이 흐를 만큼 그리움과 희망을 물어다주던 내 어
린 시절의 까치를 도심에서 발견하곤 흠칫 놀란 일이 있었다. 그것도
사거리 교차로 안에 높이 세운 감시 카메라의 철탑위에 나 보란듯이
둥지를 틀고 있었던 것이다.
감시 카메라가 교차로를 왕래하는 차량들을 숨가쁘개 감시하는 동안 까치는 감시 카메라 뒤에 앉아 높고 넓은 세상을 함께 보고 있었다. 도대체 까치는 위험하기 짝이 없는 저 철탑위에 왜 둥지를 틀었을까.
감시 카메라처럼 높은 곳에서 세상이 전해주는 소식을 듣고 그동안 원성이 자자했던 시골사람들에게 반가운 소식을 전해주려 함이었을까.하지만 이 세상에 까치가 전해줄만한 반가운 소식은 없을 것 같았다.
신용불량의 늪에 빠진 사람들과 자살하는 사람들의 슬픈 눈물만 원혼처럼 떠도는 하늘, 까치의 갈매빛 날개는 더 청승맞게 그늘져 보였다. 더구나 태풍으로 날아간 가옥과 전답을 바라보는 시골 사람들 눈에 까치가 반가운 소식을 물어다 준들 반가워 할 눈빛이 아니었다.
그걸보니 우리 집 감나무 꼭대기에 매달아 놓은 작년의 까치밥이 우굴쭈굴 단물이 빠져버린 현실이 서글펐다. 꼭 요즘의 주름진 경제를 보는 것 같아 안타깝다. 올해도 까치밥 몇 개 쯤 남겨놓는 아량을 베풀어 볼까. 배고프면 감나무 꼭대기에 남겨놓은 홍시 몇 개를 깍깍 쪼아 먹으면서 군대간 아들의 반가운 소식 하나 물고 오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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