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월 1일 근로자의 날 день труда (휴일 : 4월 30일 ~ 5월 3일)
러시아 5월 중 큰 국경일인 노동절은 우리나라의 추석, 설처럼 3일씩 쉬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1886년 5월 1일 때 일어난 미국 헤이마켓 사건 때 8시간 노동제 재취와 유혈탄압을 한 경찰에 대항한 노동자들을 기념하고 노동자의 권익과 복지를 향상하기 위하여 1889년 파리 제2인터네셔널 창립대회에서 유래되었습니다.
과거 소련 및 동유럽 국가들은 사회주의 국가, 즉 프롤레타리아 계급이 우선인 나라였기 때문에 더욱 의미있는 국경일이었습니다.
이 때 러시안들은 대부분 행진을 하며 노동자의 날을 만끽한다고 합니다. 물론 다른 시간은 술 마시겠지만.
우리는 승리하였다.
우리의 위대한 인민, 승리자 인민에게 영광을!
러시아 국경일 중 제일 큰 행사로 알려져있는 대독전승일 (День Победы, Victory Day) 5월 9일. (토, 일에 있으면 월요일도 공휴일)
이 날을 기념하기 위해 성 게오르기 리본이나 훈장들을 매고 행사를 진행합니다. 붉은 광장이나 꺼지지 않는 불꽃이 있는
상트페테르부르크, 카잔, 옴스크 광장 등에 행사를 진행합니다.
성 게오르기우스 리본 Георгиевская ленточка, Georgiyevskaya lentochka
러시아 애국주의와 민족주의의 상징인 리본이며 러시아 군 고급 훈장에도 많이 쓰여짐.
주황색과 검은색은 전쟁의 연기와 불길을 상징.
70주년 대독전승일 영상
가장 유명하고 규모가 큰 모스크바 붉은 광장의 군사 퍼레이드를 기준으로 설명하면, 아침10시에 크렘린 첨탑의 종이 울리면 러시아 국기와 제1벨라루스 전선 제3충격군 제79군단 제150이드리츠카야[20] 소총병 사단[21] 글씨가 적힌 소련 국기[22]를 든 의장대 병사들이 성 바실리 성당 쪽에서 역사 박물관 쪽으로 붉은 광장을 가로 질러 간다.[23] 다음으로 러시아 국방부 장관과 제병지휘관이 탄 두 대의 자동차가 광장을 가득 메운 퍼레이드 참여 병사들을 사열한다. 사열이 끝나면 대통령의 연설이 있고, 전승 기념일을 축하한다는 말과 함께 대통령이 우라로 연설을 끝맺으면, 장병들이 일제히 우라를 외치면서 러시아 국가가 연주되고 예포가 발사된다.[24]
예포 발사와 함께 국가가 끝나면 퍼레이드 행렬 맨 앞에 선 제병지휘관의 구령에 따라 의장대 병사들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정렬한다. 제병지휘관의 구령이 떨어지면 퍼레이드가 시작하고, 2차 세계대전에서 전공을 세웠거나, 러시아군의 핵심 전력을 담당하는 현역 부대들과 특수부대, 여러 종류의 군사 조직, 준군사조직(철도경비대[25], 경찰, 비상사태부[26], 내무군, 연방보안국 등)부대들이 붉은 광장을 지나간다. 이 때 각 부대의 최고 지휘관들은 붉은 광장을 벗어나 퇴장하지 않고, 중간에 관중석 쪽으로 빠져서 정렬하고 있다가 퍼레이드 이후에 대통령의 사열을 받는다. 경우에 따라서는 2차대전 참전 용사들과 노동자들, 혹은 2010년처럼 외국 군대도 참여한다.
보병 부대의 행진이 끝나면 군악대가 국영백화점(일명 ГУМ(굼))쪽으로 이동하면서 자리를 바꾸고, 트베르스카야 거리에서 대기하고 있던 기갑 차량들이 진입하면서 기갑 퍼레이드가 시작된다.[27]BTR-80, T-90, S-400, 이스칸다르, 토폴-M등 러시아가 자랑하는 첨단 기갑 차량들이 쏟아져 나온다고 보면 된다. 현대 기갑 차량들이 등장하기 전에 T-34, SU-100같은 2차대전 기갑 차량들이 나오기도 한다.
기갑 퍼레이드가 끝나면 항공 퍼레이드가 시작된다. 퍼레이드가 짧으면 러시아 국기와 육해공군기 등을 매단 Mi-8헬기들이 상공을 지나가는 것으로 끝나지만, 몇 년에 한 번씩은 각종 헬기와, 전폭기, 수송기, 공격기, 폭격기, 조기경보기, 공중급유기 등을 수십대 동원해서 대규모 항공 퍼레이드를 한다. 최근 가장 규모가 컸던 년도는 2010년과 2013년. 항공 퍼레이드까지 종료되면 군악대가 관중석 쪽으로 전진하고, 의장대도 퇴장. 군악대는 슬라브 여인의 작별, 소련군 찬가, 승리의 날 등의 군가를 연주하면서 둘로 갈라진 다음 양쪽으로 퇴장하고, 대통령이 군 지휘관들을 사열하면서 퍼레이드가 끝난다. 퍼레이드를 마치고 퇴장한 부대 병사들은 가두 행진을 하고 시민들과 사진을 찍는 등 전승 행사에 참여한다.[28]
다른 지역의 퍼레이드도 형식은 대동소이하다. 다만 퍼레이드 지휘자가 해당 지역의 사령관들로 바뀌고, 퍼레이드가 진행되는 도시가 어떤 전공을 세웠는지가 뚜렷히 강조되는 편.[29] 또한 대외적으로 공개가 제일 많이 되고 신무기가 우선적으로 배치되는 모스크바의 퍼레이드와는 달리 다른 도시에서는 2선급 무기도(S-300, AKM, BM-21, 100MM 견인포 라피라, BMP-2 등등) 많이 보이고 아무래도 규모는 모스크바에 비하면 훨씬 적은 편이다. 그러나 훨씬 다양한 종류의 퍼레이드 형식과 내용을 접할 수 있다는 데서 밀리터리 매니아라면 충분히 볼만한 가치가 있다.
퍼레이드에서 흘러나오는 브금을 맞추는 것도 군가 매니아들에게는 쏠쏠한 재미이다. 퍼레이드에 행진곡으로 사용되는 곡들 중에는 슬라브 여인의 작별, 진격, 카츄샤, 포병 행진곡, 항공행진곡, 우리는 인민의 군대, 나는 믿는다 친구들아, 소비에트 마치 등이 있다.
대독 전승일에 관련된 이야기들.
이 날은 러시아뿐만 아니라 우크라이나나 벨라루스를 비롯한 과거 소련을 구성했던 대부분의 국가에서도 공휴일로 지정되어 있다. 독소전쟁에서 러시아 못지 않은 피해를 입었고[8] 독일군과 싸웠기 때문에 승리의 날을 자신들의 기념일로 여긴다. 소련을 향한 적개심이 하늘을 찌르는 발트 3국에서도 공휴일로 지정되어 있지는 않지만 참전 용사를 중심으로 기념 자체는 되고 있다.
약 4년간의 독소전쟁 기간 동안 군인과 민간인 합쳐서 대략 2900만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전쟁기간의 대혼란 때문에 정확한 수치는 아무도 모른다. 참고로 다른 나라는 독일 570만, 프랑스 60만, 영국 50만, 미국 40만 정도 수준이다. 전쟁 막바지에는 스탈린조차도 게오르기 주코프에게 "이제 우리나라엔 전쟁으로 친지를 잃지 않은 사람이 없을걸세."라며 그의 몇번 안되는 진실로 침통한 표정을 보였다고 한다. 당장 이오시프 스탈린조차도 큰 아들을 독일군에게 잃었다.[9] 스탈린은 종전 후 승전 축하연에서도 "우리의 승리에 저는 아무것도 한 일이 없고, 모든 것은 소련 인민들의 피와 땀이 이룩한 것입니다."하고 연설을 했다.
이 날이 되면, 당시 전쟁에 참가했던 노병들에게 꽃을 선물하고 꺼지지 않는 불 앞에 꽃을 바치며 전쟁 당시 사망한 전몰용사들의 죽음을 기억하는 시간을 가진다.
강철의 대원쑤의 사진을 공공연히 꺼내도 되는 날이다.[10] 스탈린이 독소전쟁 때 병크도 많이 저질렀지만 소련을 승리로 이끈 주역 중 한 명이라는 것은 당시 주요 지휘관들[11]이나 현대 역사가들도 인정하고 있다.[12]
또한 러시아의 대표 TV 뉴스보도 프로그램인 브례마도 이날만큼은 특수 오프닝을 사용한다.
1945년 6월 24일 전승기념일 행사를 편집한 것이다. 게오르기 주코프 원수의 목소리가 감격에 겨워서인지 매우 쩌렁쩌렁하다. 흑마를 타고 주코프를 마중 나온 제병 지휘관은 콘스탄틴 로코솝스키 원수였다. 두 사람은 올라타면 금방이라도 내동댕이칠 것 같은 말을 잘 다루면서 사열을 받았다.[13] 원래는 소련군 총사령관인 대원수 스탈린이 말을 사열하는 것을 검토했으나, 이미 그는 60대의 노령이어서 간지나게 말 타는 것은 불가능했고,[14] 주코프에게 양보했다고 한다. 영상을 잘 보면 연단 위에 스탈린과 외무장관 뱌체슬라프 미하일 몰로토프, 세묜 부됸늬, 클리멘트 보로실로프, 미하일 칼리닌 등이 보인다.
이 영상은 1985년 전승일 당시의 것이다. 기념사를 한 소련 국방장관 세르게이 소콜로프 원수는 장고봉 전투에서 참전한 경력도 있는 74세의 고령 장성이었는데, 이후에도 소련 최고령 원수로 장수하다가 2012년 8월 31일에 101세의 나이로 타계했다.
2005년 전승일 당시의 영상. 중간중간에 보이는 노병들의 반응(특히 3분 26초 경)을 주목.
이 영상은 2009년 전승일 당시의 것이다.
이 영상은 2011년 전승일 당시의 것이다.
이 영상은 2012년 전승일 당시의 것이다.
이 영상은 2014년 전승일 당시의 것이다. 디지털 플로라 군복을 입은 병사들의 모습이 돋보인다
이 날만 되면 모스크바의 붉은 광장에서 엄청난 규모의 군사 퍼레이드를 벌인다. 최초의 퍼레이드는 1945년 6월 24일에 시작했으며, 그 뒤로는 쭉 독일로부터 항복을 받은 날인 5월 9일에 행사를 치르고 있다. 사실 독일이 연합군에게 공식적으로 항복한 날은 5월 8일이라서 서방의 VE Day는 5월 8일. 그런데 이 날 서명한 곳은 히틀러의 후계자로 지명된 카를 되니츠 제독이 있던 플렌스부르크였고, 스탈린이 "(소련군이 점령한) 베를린에 와서 항복하지 않으면 무효!"라고 떼를 쓰는 바람에 독일 대표가 5월 9일 베를린에서 다시 항복 조인식을 해야 했다. 사실 독일측은 처음에 서방측에만 항복하고 했고, 소련과는 전쟁을 계속한다는 아시발꿈 허황된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스탈린이 엉뚱한 고집을 부린 것만은 아니다.
소련 시절에는 1945년, 1965년, 1975년, 1985년, 1990년에 붉은 광장에서 군사 퍼레이드가 있었다.[15] 60년대부터는 모스크바 이외의 다른 도시에서도 전승 기념일에 군인들의 행진과 전몰자 위령탑에 대한 헌화 및 참전 용사들의 만남이 개최되기 시작했다. 소련 붕괴 이후에는 러시아의 사정이 좋지 않아서 대규모의 퍼레이드는 힘들었으나, 푸틴 집권 이후 러시아가 빠르게 국력을 되찾기 시작하면서 1995년부터는 다시 매년 대규모의 퍼레이드를 벌이고 있다. 그리고 2008년부터는 다시 기갑 차량과 항공기를 대규모로 동원하고 있다.
과거 소련 시절에는 U-2 같은 격추된 서방의 비행기를 전시하는 등 반서방적인 모습을 보였고, 폴란드군, 체코슬로바키아군 등 바르샤바 조약기구 소속 국가 정도만 같이 참여했으나, 페레스트로이카 이후부터는 퍼레이드 연설에서 함께 독일과 맞서 싸웠던 서방측 연합국들의 공로가 언급되고, 2010년에는 독립국가연합 국가들과[16] 미국군, 영국군[17] 프랑스군,[18] 폴란드군이 참여하는 등 서방을 포함한 다양한 참전국들도 같이 초청하여 퍼레이드를 하고 있다. 2005년에는 조지 워커 부시, 자크 시라크, 후진타오, 고이즈미 준이치로 뭔가 이상하지만 그냥 넘어가자. 퍼레이드 보면서 기분이 어땠을까 등등 세계 각국 정상들을 대거 초청하였는데, 노무현 대통령도 여기에 참석하면서 러시아의 전승 기념 퍼레이드가 우리나라에도 널리 알려졌다. 2005년 당시 퍼레이드 영상을 잘 보면 노무현 대통령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런데 70주년인 2015년에는 안그래도 우크라이나 위기의 여파로 꽁기꽁기한 마당에 김씨 조선 꿀꾸리우스가 박근혜, 아베 신조 등과 함께 초청된 것이 알려지며 언론에서 대대적으로 보도되기도 했다.말 그대로 이짤이 실제로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아무래도 서방권과 러시아의 관계가 얼어붙은지라 결국 이런 드림매치(?)는 무산되었다. 80주년을 기념해보자 아니 그보다 김정은이 그런 몸 상태로 10년 후에도 멀쩡할런지
냉전 이후인 1990년대 이후에는 독일 총리가 승전 기념식에 참석하고 있다.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총리와 뒤를 이은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거의 매년 전승기념일 행사에 참석하고 있다. 독일의 과거사에 대한 반성과 러시아와의 관계 개선을 잘 나타내 주는 사례이기도 하다.[19] 다만 2015년에는 이례적으로 초청을 거절했는데, 역설적으로 독일 총리가 나치 과거사 반성에 소극적이라 욕 먹을 것을 각오하고 불참하는 것이 러시아와 서방권의 관계가 얼마나 얼어붙었는지 보여준다.
참고로 이 날은 히틀러 생일과 마찬가지로, 네오나치와 스킨헤드들이 극성인 날 중 하나이긴 한데, 그렇다고 전승기념일 날 러시아 전역이 위험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 날은 스킨헤드가 짜져(…) 있는 날 중 하나이고, 극동이나 시베리아 같이 유색인종 비율이 높은 지역에서의 위험 요소는 거의 없다.
그렇다면 왜 스킨헤드가 극성이냐고? 이런 축제 분위기에 사람들이 들떠 있을 때 원래 깽판부리고 관광객 시비 걸기 더 좋은 법(…). 특히 사람들이 기뻐서 술 취하고 돌아다니는 야밤에 그렇다. 그렇게 큰 걱정을 하지는 않아도 된다.
물론 그렇다고 전혀 걱정 없이 낮에 으슥한 곳을 지나가거나 밤에 유흥가 돌아다니지는 말자.
그리고 매년 퍼레이드 영상에 헬마치 또는 소비에트 마치를 넣은 영상이 유튜브에 나온다. 원조의 위엄
붉은 군대 합창단 버전
한국어 자막.
작사: 블라디미르 하리토노프 (Владимир Харитонов, 1920-1981)
작곡: 다비트 투흐마노프 (Давид Фёдорович Тухманов, 1940-)
러시아의 군악. 어원은 1번 항목
처음으로 부른 가수는 레프 레셴코(Lev Valerjanovich Leshchenko/Лев Валерианович Лещенко, 1942-)이다.
사실 이 노래는 2차대전 당시 작곡된 게 아닌, 전후인 1975년에 작곡되었는데, 소련 정부가 2차대전 30주년에 써먹을 곡을 모집하던 중 응모되었던 곡 중 하나였다.
그러나 자본주의 냄새가 풀풀 난다고 기각당했으며, 승전행사는 커녕 밤에 흘러간 노래 위주로 진행되는 골루보이 오고뇨크(Голубой огонёк)라는, (한국으로 친자면) 가요무대같은 TV프로그램에서나 틀어주던 곡이었다.[30]
바로 이 때에 부르던 가수가 레셴코였으며, 그저 그런 노래로 묻힐 뻔 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그 해 소련 경찰의 날이었던 11월 10일에 이런 흥행 저조를 한번에 박살내고, 말 그대로 대박을 쳤다고 한다.
하지만 이 노래가 이 날에 항상 틀어주는 단골 곡이 된 데에는 더 큰 이유가 있는데, 바로 당시 소련 서기장이었던 레오니트 브레즈네프(…)가 이 곡에 아주 빠져 살았다고 한다. 그래서 그저 그런 가요로 묻힐 뻔한 곡이 결국 정식 군악으로 승격되고, 매년 승전일마다 연주되게 되었다.[31]
저 위에 있는 2011년 퍼레이드의 49분에 이 곡이 연주 된다. 관료주의의 표본이 따로없다. 지난 2007년에는 레셴코 본인이 승전기념 행사에 등장, 이 곡을 직접 부르기도 했다.#
러시아어 | 로마자 | 한국어 | |
1절 | |||
День Победы, как он был от нас далёк, | Den' Pobedy, kak on byl ot nas dalyok, | 승리의 날이여. 이를 위해 얼마나 멀리 달려왔던가 | |
Как в костре потухшем таял уголёк. | Kak v kostre potukhshem tayal ugolyok. | 폐허가 된 고향에서 꺼져가는 포연속에서의 승리의 날이여. | |
Были вёрсты, обгорелые, в пыли[32] | Byli vyorsty, obgorelye, v pyli | 승리를 위해, 불타버린 머나먼 길을 달려왔고 | |
Этот день мы приближали как могли. | Etot den' my priblizhali kak mogli. | 이날을 위해 우리 모두 장렬하게 싸워왔네. | |
후렴 | |||
Этот День Победы Порохом пропах, | Etot Den' Pobedy Porokhom propakh, | 강토가 화약냄새로 덮여버린 승리의 날이여. | |
Это праздник С сединою на висках. | Eto prazdnik, S sedinoyu na viskakh. | 그날의 용사들이 모인 승리의 날이여. | |
Это радость Со слезами на глазах. | Eto radost' So slezami na glazakh. | 그때의 환희로 우리 모두의 눈에 눈물이 고이네. | |
День Победы! x3 | Den' Pobedy! x3 | 승리의 날이여! x3 | |
2절 | |||
Дни и ночи у мартеновских печей | Dni i nochi u martenovskikh pechey, | 밤낮으로 우리는 시련을 겪었고 | |
Не смыкала наша Родина очей. | Ne smykala nasha Rodina ochey. | 우리의 고향은 잠들지 못했네. | |
Дни и ночи битву трудную вели | Dni i nochi bitvu trudnuyu veli, | 우리는 고향을 위해 악귀같이 싸웠고, | |
Этот день мы приближали как могли. | Etot den' my priblizhali kak mogli. | 이날을 위해 우리 모두 장렬하게 싸워왔네. | |
3절 | |||
Здравствуй, мама, возвратились мы не все | Zdravstvuy, mama, vozvratilis' my ne vse | 엄마. 그간 잘있었어요? , 우리들 중 몇몇은 고향에 돌아오지 못했지마는… | |
Босиком бы пробежаться по росе! | Bosikom by probezhat'sya po rose! | 우리 모두 맨발로라도 집으로 가고 싶어요! | |
Пол-Европы, прошагали, пол-Земли | Pol-Yevropy proshagali, pol-Zemli | 유럽의 반을, 천하의 반을 큰 걸음으로 달려왔네, | |
Этот день мы приближали как могли | Etot den' my priblizhali kak mogli. | 이날을 위해 우리 모두 장렬하게 싸워왔네. | |
후렴 x2 |
보면 알겠지만 가사가 매우 장렬하다. 아니, 이 노래 어디에서 자본주의 냄새가 난다는 거야?[33] 가사는 그럴듯 한데 음악이 좀 뽕짝 냄새가 난다…
|
첫댓글 브금 추천받습니다.
소비에트 군가요
전승기념일 오랜만에 들어보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