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자의 립스틱
- 최화경
여자는 몸 어딘가에 염증이 있는 것처럼 추위를 탔다. 제비꽃 같이 푸르스름한 입술은 마르고 생기가 없어 항상 입덧하는 여자의 고단함이 묻어 있었다. 이상했다. 그런 여자에게서 어디에도 여자가 느껴지진 않았다. 그냥 전사의 느낌만 있었다. 한기와 고단함에서 측은함이 느껴 질법도 한데 여자의 말과 행동에는 구차함 따윈 없었다. 도무지 여자도 엄마도 아내의 느낌도 없이 냉기의 단호함만 보이는 여자가 궁금했다. 아니, 너무나 알고 싶었다.
어느날 봄 색깔의 맆스틱을 바르고 나간 내게 여자가 립스틱 색깔을 환호하며 칭찬했다. 여자가 마른 입술에 내 립스틱을 칠했다. 여자의 눈이 기대와 호기심에 긴장했다. 순간, 여자의 입술에서 분홍색 꽃잎이 춤추듯 날아 올랐다. 예뻤다. 이런 분위기의 여자인줄 몰랐다.
그리고 난 알아버렸다. 여자는 여자였고 핑크색을 좋아했고 무엇보다 잘 어울렸다. 순간 전사의 모습은 사라지고 다소곳한 분홍 꽃다발을 보고 있는 듯 기분이 좋아졌다. 여자에게 분홍 립스틱을 건넸을 때 잠자코 있었던 건 립스틱을 발라보고 싶었던 마음이 있었을 것이다. 아니, 내 립스틱 색깔을 칭찬했을 때 이미 립스틱은 여자의 간절함 아니었을까.
여자가 쓰는 시는 자신의 수수함과 단호함에 당치 않는 작업들이다. 여자의 시가 미려함과 사려 깊으므로 진저리를 치게 하는 이유다. 때론 너무 아름답고 똑똑해 배반처럼 쓰라릴 때도 있다. 밤새 시집을 부여잡고 여자를 이해하려 했지만, 여자는 호락호락 곁을 내주지도 않는다. 생각해 보면 여자의 내면은 결국 여자로 여자로 꽁꽁 싸매고 있으면서 전사로 사는 듯 포장 된 건 아니었을까.
어느 날 여자가 울기도 한다는 걸 알았다. 뭉클하면서 안쓰러워 왈칵 반가웠다. 여자에게 립스틱을 선물했다. 내 것과 똑같은 핑크였다. 발랐을 때 야단스러운 나와는 달리 여자의 입술은 완강하면서 부드럽고 도발적이면서 은근했다. 전생에 왕비였을 것 같은 높은 이마와 잘 어울렸다. 여자의 정점은 한기도 입덧도 없이 압도하는 에너지와 생명력이다 제비꽃 입술을 숨긴 그여자의 립스틱 색깔은 드레스 핑크다.
첫댓글 그 시인이 누구인지 궁금 또 궁금하네요 단호하고
구차하지 않다는 것이 나는 좋습니다 화경샘 그시인의 시를 보고싶어요 네가 시를 알아?하겠지만 이운용 선생님께 오랫동안 수학을 해서 그런지
좋은 시는 알아본답니다 화경씨 나한테만 살짝요
어렴풋이 윤곽이 잡히기는 한데, 글쎄요.
설령 맞지 않아도 나는 내가 생각하는 <그녀>라 말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