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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껏 자신과 함께 천계를 이끌어 온 노인이 아니던가.
아무리 천계라 하지만 그 구성원들 중에서도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 없이 살았다’ 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이는 그렇게 많지
않을 것이었다. 천제 또한 그들 중에는 포함되지 못했고 노인이야 말
로 천계에서 가장 신임 받고 존경받는 말 그대로 티끌만한 오점도
없이 살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는데 오늘 이렇게 강운으로
인해서 한 점의 티를 남기게 된 것이다.
“천제시여! 소신.. 거짓말을 했사옵니다. 태자마마를 모셔오기 위해 어
쩔 수 없는 선택이었습니다. 하지만 태자마마.. 께서 원하신다면 어떤
벌이라도 받을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
“허허허! 벌은 무슨 벌인가? 내가 찾아준다고 약속하였으니 결코 자네
가 거짓말을 한 것이 아니지 않겠는가? 그건 그렇고.. 이쯤에서 확실
하게 해 두어야 할 것이 있네. 비록 저 아이가 태의 사념을 제압했고
또한 태와는 전혀 다른 인물이라고는 하지만 그 영혼 역시 태와 같은
영혼임에는 틀림없는 사실이야.그렇지 않은가? “
노인은 천제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짐작을 할 수 없어 조심스럽게 대
답을 하였다.
“예! 그렇사옵니다. “
천제는 노인에게서 대답이 나오자 흡족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허리까
지 자라 있는 하얀 수염을 쓰다듬으며 강운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그래서 말인데. 나는 저 아이를 여전히 천계의 태자로 인정하고 싶다
네. 솔직한 심정이야 태의 사념을 제압해버린 저 아이가 증오스럽기
까지 하다만 그런 사사로운 감정 때문에 전체에 큰 누를 끼칠 수야 없
지 않겠는가? 저 아이가 천계의 태자로 남아준다면 천계는 그 어느 때
보다도 강한 힘을 얻게 되는 것이지. “
노인은 천제가 설마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기에 연
신 감탄스럽다는 표정으로 천제를 존경스럽게 바라보았다.
그도 그럴 것이 실질적으로는 자신의 자식을 구하지 못하게 한 가장
큰 원인이 바로 강운이었는데 그런 강운에게 원한을 품기는커녕
오히려 천계의 태자로 임명할 생각까지 하고 있으니 노인으로서는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노인이 천제의 의견에 동조를 하자 둘은 뭐가 그리 즐거운지 연신
호탕한 웃음을 흘리며 무언가 다른 이야기를 나누었고 강운은 자신을
앞에 두고 태자가 어쩌니 저쩌니 떠들고 있는 둘의 한심한 모습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 두 할아범들 왜 저래? 아.. 아직도 온 몸이 쑤시네. 이 망할 놈의
태자! 생각 같아서는 그냥 소멸시켜 버리고 싶은데. 일단 사부가 어디
있는지 알아낸 다음에 결정 해야겠다. ‘
강운이 홀로 생각에 잠겨 있다가 다시 정신을 차릴 동안에도 강운이
보기에는 천제와 노인의 수다로 밖에는 보이지 않을 이야기가 끝나지
않고 있었다.
“하하하! 그러면 되겠구만. 역시 자네의 그 추진력은 놀라울 따름이네.
내가 살짝 운만 띄워줬는데도 그 순간 다른 것들을 모두 생각해 놓다
니.. 하하하! “
“이봐요! 할아범! 그만 좀 떠들고 빨리 사부나 찾아줘요. 안 그러면
내 생각이 바뀔지도 모르니까. “
강운의 차가운 한 마디에 한참 즐겁게 웃고 있던 천제와 노인이 머쓱
하다는 표정으로 강운에게 말을 건넸다.
“허허! 이것 참! 내 생전에 이런 말을 들어보기도 처음이구나.
흠.. 그래 찾아봐야지. 자네가 수고를 좀 해주겠나? “
천제가 노인에게 말을 건네자 노인에게서 당연하다는 듯한 대답이
흘러나왔다.
“안 그래도 소신이 부탁할 참이었습니다. 잠시만 기다리시지요.
소신이 반드시 태자마마의 사부되시는 분을 찾아오겠습니다. “
노인이 천제와 강운에게 인사를 하며 바쁜 걸음으로 방을 나서자
천제는 믿음직 스럽다는 표정으로 노인의 뒷 모습을 바라보았고 반면
강운은 한번 속아본 경험이 있기 때문인지 얼굴을 찌푸리기만 했다.
천제는 강운의 그런 모습에 적잖은 실망감을 감출 수 없었다.
‘허허.. 천성이 착한 것 같아 보였건만.. 너무 속이 좁은 것 같구나.
흠.. 말투도 그렇고 고쳐할 할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구나. ‘
천제는 지금부터 강운을 엄하게 교육시킬 생각으로 강운의 고쳐할 할
행동이나 마음가짐들을 생각해보고 있을 때 강운은 신음소리를 흘리
며 앞으로 쓰러져 버렸다.
사실 온 몸이 만신창이가 되었다고 해서 강운이 쓰러질 일은 없겠지
만 무엇보다 강운에게 치명적라 할 수 있는 의식 공간을 망신창이로
만들어버린 태자의 공격에 노인이 나가고 나서 지금껏 버텨오던 긴장
이 풀려버렸던 것이다.
뒤늦게 사실을 알아차린 천제도 자신의 실수를 자책하며 재빨리 쓰러
지는 강운을 부축한 후에 직접 치료를 하기 시작했다.
외상이나 내상 정도야 간단하게 치료할 수 있었지만 정신적인 문제는
강운 스스로 치유해야 했기에 천제는 신하들을 불러 강운을 태자의
거처에 옮겨놓을 것을 명했다.
모두가 빠져 나가고 홀로 남게 된 천제는 씁쓸한 표정으로 강운이 서
있던 곳을 쳐다보았다.
‘강한 아이다! 정말.. 그 토록 강한 아이는.. 아! 나는 아직도 멀었구나.
나는 고작 그 아이의 절반도 따라가지 못할 것이다. 내가 만약 그 정
도의 상처를 입었다면.. 허허! 부끄럽도다.. 부끄러워. ‘
천제는 강운의 강함도 강함이지만 그 불굴의 의지에 진정으로 감탄을
한 것이었다.
강운이 정신을 잃고 쓰러졌을 때 마계에서는 인간계에 또 다시 열린
천계의 문을 주의 깊게 바라보았다.
이미 전면전을 준비하고 있는 마계로서는 천계의 동태를 세세하게 파
악하는 것이 중요했기 때문이다.
다행히 인간계에 내려온 천계의 인물들이 특별한 행동을 하지 않았기
에 마계와의 접전은 없었지만 천계와 마계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활
화산 같이 긴장된 상태를 유지했다.
강운은 쓰러지고 나서도 무려 삼개월 동안을 정신을 차리지 못했고
천제는 걱정스러운 마음에 하루에도 수십차례씩 강운이 머물고 있는
방을 들락날락 하였다.
오늘도 어김없이 천제는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강운을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똑!똑!똑!
천제는 밖에서 들려온 노크소리에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누군가? “
천제는 이미 자신이 강운의 거처에 있을 동안에는 어떤 연락도 취하
지 말 것을 명했기 때문에 말투가 상당히 딱딱해져 있었다.
“천제시여! 소신이옵니다. “
“오.. 자네 왔는가? 어서 들어오게. “
천제는 문밖에서 들리는 익숙한 목소리에 기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마침내 문이 열리고 예의 그 노인이 모습을 나타내자 천제는 달려나
가 노인의 손을 마주잡아주었다.
“자네가 그 동안 수고가 많았네. 안 그래도 지금 마계와의 일 때문에
자네를 인간계에 내려 보내고 나서 나는 한시도 마음이 놓이질 않았다
네. 이렇게 무사히 돌아오니 다행이야. “
노인은 인간계에 내려가서 무려 삼개월 동안이나 천계로 발을 들이지
못했던 까닭에 천제는 그 동안 강운의 일과 더불어 걱정 속에서 하루
하루를 지내오다가 이렇듯 노인이 무사한 모습으로 나타나자 그 기쁨
이 무척 컸던 것이다.
“그래! 내려갔던 일은 어찌됐는가? “
노인은 천제가 자신을 이렇듯 반겨준다는 사실에 감동을 받고 공손히
예를 올린 후 인간계에서의 일을 이야기 했다.
“예! 처음에는 단서가 잡히지 않아 많은 고처를 겪었지만 몇가지 단서
를 찾아내는데 성공했사옵니다. “
천제는 노인이 인간계에 내려갈 때 보다 훨씬 늙어 보인다는 생각에
그 말이 거짓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흠.. 그렇다면.. 결국 그 인간을 찾아내는 데는 실패했다는 말인가? “
“천제시여! 소신을 벌하여 주시옵소서! 그 동안 최선을 다하여 찾아봤
으나 몇 가지 단서를 제외하고는 태자마마의 사부되시는 분을 찾아내
지 못하였나이다.. “
노인이 눈물을 흘리며 천제 앞에 무릎을 꿇자 천제는 그런 노인을
손수 일으켜 세워주었다.
“됐네. 그만하시게나. 자네가 찾을 수 없다면 천계에 누가 있어 그를
찾을 수 있단 말인가? 그만하고 그 단서라는 것을 말해보게. “
“으음.. “
노인이 막 눈물을 훔치며 천제에게 말을 꺼내려 할 때 강운에게서 미
약한 신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얼마 동안을 누워 있었던 걸까.. 살며시 뜬 눈으로 보이는 천제와
노인의 걱정스러운 표정에 강운의 얼굴에 웃음이 배어나왔다.
강운은 다시 눈을 감으며 자신의 몸 상태를 점검해 보았다. 몸은
이미 외상이나 내상 모두가 치유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동안 강운에
게 큰 진전이 있었는지 강운은 지금껏 느껴보지 못했던 새로운 세상
을 느낄 수 있었다. 자신이 지금까지 세상의 끝이라고 생각했던 곳에
서 또 다른 세상이 느껴지는 것이었다.
너무나 많기에 짐작조차 할 수 없는 이질적인 기운들에 강운은 잠시
혼란스러움을 느껴야 했지만 마음을 가라앉히고 차분하게 혼란스러운
정신을 수습해 나갔다.
천제와 노인은 강운이 눈을 뜨고 자신들을 바라보며 웃음을 짓자 안
도의 한숨을 흘리고 있었다. 하지만 곧 이어 다시 눈을 감고는 오랜
시간이 지나도록 강운은 눈을 뜨지 않았기에 천제와 노인은 다시 불
안한 표정으로 강운이 눈을 뜨기만을 기다렸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강운은 다시 눈을 뜨지 않았고 할 수 없이
천제와 노인은 착잡한 기분으로 강운의 거처를 나왔다.
“이보게.. 자네가 보기에 저 아이가 왜 저러는 것 같나? 내 보기에는
이미 모든 상처가 치유된 듯 보이는데.. “
“소신 또한 이유를 모르겠사옵니다. 태자마마께서 잠시 정신이 들긴
했으나 아직 치유하지 못한 곳이 있는 듯 보이긴 합니다만.. 소신으로써
는 그 이상은 짐작하기 어렵사옵니다. “
“흐음.. 기다려 봐야지. 저 아이는 이제 나의 하나밖에 없는 자식과
다름없네. “
천제가 앞장서 걸어가자 노인이 그 뒤를 공손히 뒤따라갔다.
강운은 잠시 정신이 들었다가 다시 눈을 감은지 무려 한 달 동안이나
다시 눈을 뜨지 않았고 천제와 노인은 특별한 일이 없는 한 하루 일
과의 대부분을 강운의 거처에서 보냈다.
강운은 그 동안 혼란스러운 정신을 수습하고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어떤 무엇인가를 잡아내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하고 있었다.
비록 아직은 뚜렷하게 그 형체를 파악할 수 없었지만 강운은 더 이상
정신이 혼란스럽지만은 않았고 전보다 훨씬 머리가 맑아졌다는 생각
에 다시 눈을 떴다.
역시 이번에도 눈을 떴을 때 천제와 노인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강운은 자신이 눈을 감고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은 줄 알고 가뿐하게
몸을 일으켜 세웠다.
“내가 얼마동안 누워 있은 거지? “
강운은 몸을 일으켜 세우자 마자 가장 궁금했던 질문을 했고 천제는
강운이 무사히 깨어났다는 기쁨에 얼굴한가득 웃음을 들어내며 강운
에게 대답해 주었다.
“허허허! 말 하는 꼴을 보니 이제 괜찮은 모양이로구나. 흠.. 그래..
네가 그러고 있는 동안 4개월이 흘러갔구나. 그래도 생각보다 빨리
치유된 게야. “
“그렇게나 오래? “
강운은 자신이 무려 4개월 동안이나 정신을 잃고 있었다는 생각에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