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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메르 문명을 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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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제카리아 시친 지음 | 이근영 옮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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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
도서출판AK 펴냄 | 2009.11.25 발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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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
역사/문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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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
수메르 문명 전문가인 고고학자 제카리아 시친은 이 문제에 대해 아주 명쾌하고도 충격적인, 그리고..... | |
수메르 문명은 인류 문명의 발상지 중 가장 오래된 문명인 메소포타미아 문명에서 시작된 문명을 뜻합니다.

수메르 문명을 아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하지만 마야 문명, 이집트 문명 등을 모르는 사람도 드물다. (수메르 문명 이전에는 이집트 문명이 가장 오래된 문명이라고 알려져 있었고, 내 기억에 중학교 세계사에서도 그렇게 배웠다. )
많은 자료가 발견되었고, 수메르 문명에서 이집트 문명이 시작되었다는 것도 밝혀졌는데 여전히 수메르문명을 100% 인정하지 않기에 수메르 문명은 여전히 베일에 쌓여 우리에게 많은 자료가 공개되지 않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렇다면 왜??? 인류 최초의 문명을 발견하고도 인정 받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수메르 문명의 유물들은 그 정교함과 기록양식이 이집트 문명보다 발전되어 있다. 기원전 3500년 전 문명이 기원전 2000년전 보다 뛰어나다?? 많은 학자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 인위적인 부분이 강하다 라고 -
1. 수메르 문명이 발견된 시기를 읽어라!
수메르 문명은 1800년대에 발견된다. 이 과정에서 마야 문명처럼 여행가를 통해 우연히 발견된 것도, 도굴꾼에 의해 발견된 것도 아니였다. 고고학자의 치밀한 계산아래 발견되었는데.
이 치밀한 계산이 수메르 문명의 발굴이 아니라 성경에 관한 역사적 입증을 위한 발굴이였다는 것이 문제인거죠.
수메르 문명의 미스테리는
어디서 왔는가? 고도의 문명은 어째서 계승되지 않았는가? 정도인데, 사실 이런 이야기는 모든 4대 문명에도 적용되는 부분입니다. (원초적으로는 인간은 어디서 왔는가?? 라는 질문인 것이다.)
이 미스테리를 부각 시키려는 단체가 있으니. 바로 기독교입니다.
1820년. 베일에 쌓여 있는 메소포타미아 문명은 이집트와 이스라엘 문화 사이에 있는 지형적 특성으로 필시 하나의 문명이 존재한다는 가설 아래 발굴 작업을 하게 되는데, 성경에 따른 에덴의 동산이 바로 메소포타미아에 존재했다고 생각한 기독교는 수 많은 고고학자를 고용해 발굴을 시작하죠.
그리고 메소포타미아에서 하루 멀다 발견되는 유물과 유적들을 토대로 기독교에서는 하루 멀다 성경의 신빙성에 대한 자료를 발표하는데 그 과정을 살펴보면 , 야훼의 창조 이야기, 에덴 동산 설화, 노아의 방주 , 욥기, 아가서, 바벨 탑 사건까지 발표하게 됩니다.
이 발표를 토대로 기독교는 전세계로 퍼져 나가게 되는 계기가 되죠. .

수메르 유적 중 하나. 이 석판은 다윗과 골리앗을 연상시키는데, 1990년에 밝혀진 바로는 (옆 문자를 통해) 파괴의 신과 대적하는 수메르인을 기록한 것으로 피괴의 신과 싸우는 용맹함을 의미하는 것으로 재분석되었다.
- 우르의 발견.
성경에 따르자면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당시 가장 번성하고 살기 좋은 우르를 떠나도록 명하는데, 그 약속을 믿고 우르를 떠나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리고 우르는 사막에 모래를 묻혀 사라지게 되었다는 결론으로 막을 내립니다. 만약 아브라함이 우르를 떠나지 않았다면 그대로 우르와 함께 사막에 묻혔을 꺼라며 하나님 전설에 한 획을 플러스 하는 일화가 있습니다.
그리고 1929년. 한 고고학자를 통해 우르로 추정되는 유적지가 발견 됩니다.
 우르는 존재했으며. 그곳이 바로 1820년에 발굴된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멀리 떨어진 곳이 아니기 때문에 기독교인들은 다시 입을 모읍니다. 성경은 역사적 기록이였노라 !!
하지만 여기서 다시 한번 주목해야 할 부분!!
우르 유적의 발굴 총 책임자! 영국의 레너드 경은 우르 발굴을 통해 세계적인 고고학자로 자리매김하는데. 레너드는 신학 대학을 졸업한 후 , 고고학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고고학자로써 1912년 시리아의 중심도시 카르케미스를 발굴하여 대영박물관과 펜실베니아 대학의 후원으로 우르 지역 발굴 작업을 시작하게 된 것 입니다.
레너드 경이 우르를 발굴 했다고 말하지만, 사실 이 지역은 1850년대 영국 고고학자들이 엘- 무카야르 라는 고대 유적지를 기록하였는데, 이 고대 유적지가 바로 레너드 경이 발굴을 시작한 지역인 것이죠.
즉 1850년대 이미 유적지가 있다는 것을 확인된 곳의 땅을 파 내어 12년만에 발견된 곳이 바로 우르! 첫 발견자가 우르라고 발표를 해서 우르가 되었지만, 성경에 나오는 우르라는 증거는 하나 없었습니다.
오직 성경에 실린 단 한줄, 당시 가장 번성하고 살기 좋은 우르를 떠나라는 계시. 그렇게 수메르 문명은 다시 한번 성경과 동화되어 성경의 증거물이 되었습니다.
2. 의혹 제기. 곤란해진 기독교.
수메르의 모든것이 성경의 증거물로 변화되는 과정에서 고고학자들은 많은 의문점을 제시하기 시작합니다. 그것은 바로 시대상과 수메르 언어에 관한 의문점들이였죠.
수메르 문명은 참으로 뛰어났던 문명입니다. 그 증거로 인류 최초의 문자, 인류 최초의 법률, 인류 최초의 종교 등이 바로 수메르에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죠. 물론 기독교에서는 인류 최초의 종교가 기독교라고 말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그들의 일반적인 사고방식일 뿐. 그리스 신화, 인도 신화, 이집트 신화의 유사성이 수메르 문명에서 시작되어 전파되었다면 단번에 모두를 수긍시킵니다.
2000년과 2010년. 10년 사이 빠른 속도로 변화는 지금처럼, 수메르 문명 역시 아주 빠른 속도로 문명이 발전 된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이전까지는 문자가 없었기 때문에 정보의 전달 과정에서 정확하게 전달되지 못했던 것과 달리 수메르 문명에서는 문자를 발명하여 모든 정보가 정확하게 널리 퍼질 수 있었던 것으로 분석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바로 이 문자! 수메르 문자는 기독교에 의해 분석되어 해독되었기 때문에 모든것이 성경과 일치된다고 발표를 하던 시절입니다. 하지만 몇몇 고고학자들은 문자에는 규칙이 있는데 기독교에서 발표한 내용에 따르자면 수메르 문명 문자에는 규칙이 없었다는 것!
기독교는 부정을 하고, 이러한 의문점은 그대로 사라질뻔 했습니다.

조금만 살펴봐도 생선을 그린듯한 문자가 눈에 띈다.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 보면 반복되는 문자가 눈에 띄는데, 반면, 기독교의 발표 속에는 반복된 단어가 거의 없다는 점에서 많은 고고학자들이 수메르 문자의 공개를 요청하였고, 기독교는 그저 묵인한체로 세월에 이 문제를 흘려 보내려 했다. (실제로 성경은 반복된 단어를 자주 사용하지 않는다.)
1980년.
프랑스 고고학자단(프랑스 고고학자들이 모여 만든 팀) 에서는 수메르 문명을 처음으로 발표를 하면서 성경조차 수메르 문명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지목한다. 그 발달은 노아의 방주!
노아의 방주 이야기를 간략하게 해본다면 대 홍수가 날 것으로 계시를 받은 노아는 방주를 만들어 지금의 인류의 시초를 만든다. 그 인류의 시초는 단 8명!
하지만 프랑스 고고학자단이 이집트에서 발굴한 수메르 문자로 기록된 석판을 분석하니 놀라운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분명 대홍수는 있었다. 이 대홍수는 마을 세개를 덮혔을 뿐. 고지대까지는 영향을 받지 않았고, 고지대에 모인 인근 마을 원주민들은 하나의 문명을 만드는 데 그것이 바로 수메르 문명이라는 것이다!
아벨탑에서는 모든 인류가 하나의 언어를 사용했고, 아베탑 사건으로 모두 각기 다른 언어를 사용했다고 하는데, 역으로, 각기 다른 언어를 쓰는 민족이 대홍수를 통해 하나의 집단을 형성하였고, 언어는 통일성을 갖추었다고 말하는 것이다.
말 그대로 성경을 뒤 엎은 것이다.
프랑스 고고학자단의 발표가 힘을 얻자 세계적으로 수메르 문명의 재평가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하루 멀다 기독교의 발표가 거짓이었다는 증거물이 나오기 시작한다.
1983년
수메르 문명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두가지 의견이 충돌하기 시작한다. 기독교와 수메르 문명. 이 충돌 가운데 1983년 또하나의 유적이 이라크에서 발견되었는데. 바로 우르.
우르는 실제 존재한 도시라는 것이 증명되면서 기독교가 힘을 얻기 시작하려는 찰라, 우르에서 수메르 문명이 섬기던 여신이 대량으로 발견 된 것.

이난나 여신과

소와 사람이 합쳐진 신
이는 인도의 신화가 수메르 문명에서 시작되었다는 증거도 된다.
이 두 유물의 발견이 중요한것은 1929년 우르 유적지 발굴 당시 이 유적들을 의도적으로 왜곡 시킨 후
발표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참고로 소와 사람이 합쳐진 신 주변에는 12명의 여인이 함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윗의 물매에서 날아간 돌이 여전히 박혀 있다는 이 유물! 이 해골이 바로 골리앗이라고 주장하는 기독교!
하지만 1983년. 또 한번의 발굴이 이루어졌는데, 수메르 문명은 농경 사회를 이룩하여 있었고, 시대에 흐름에 따라 수렵 생활을 하게 되는데, 초기의 사냥은 바로 돌팔매로 했다는 것이 밝혀졌다.
부족간의 다툼이 잦았던 이 시절에 돌팔매로 죽은 자도 여럿이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한 프랑스 고고학자단은 유적지와 멀리 떨어진 지역을 발굴하기 시작하는데 (사냥터로 추정되는) 그곳에서 위와 같은 유골의 형태가 대량으로 발견되는가 하면, 유적지에 가까워 질수록 위와 비슷한 형태의 동물뼈가 발견되면서, 기독교는 더 이상 프랑스 고고학자단 발표에 대응하지 않게 됩니다.
고고학자단은 수메르 문명은 농경 사회로 법률이 있었으며, 그 법률은 무척 엄격하게 적용된 것으로 보이는데, 육식은 마을을 벗어나서 할 수 있었다는 것으로 추정.
신으로 모시던 동물들을 잡아 먹는 새로운 문화를 받아들이는 과정으로 분석하게 됩니다.
이집트 문명과 달리 유적지 부근에서 동물뼈까 발굴되지 않는 점으로 미루어, 마을에서는 동물을 따로 키우지 않는 것으로 추정되며, 동물의 시체는 마을 밖에 방치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돌팔매로 죽은 유골이 한 장소에서 대량으로 나온 것으로 미루어 , 사형 제도가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의문도 있지만, 법률상에 처벌에서 사형은 없기 때문에 가능성은 낮다고 보고 있습니다.
혹은 사냥 중 죽은 시체는 한 곳에 모아 방치한 것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이는 오랜 문명에서
사체 처리에 대한 의구심에 대한 관점에서의 발표로 보입니다만, 수메르 문명 역시 장식구와 함께
무덤을 만들어 둔 유물이 자주 발견되어 힘을 얻지는 못하고 있죠 .)
3. 진실게임은 여전히 ....
하지만 기독교인들은 여전히 수메르 문명은 성경을 뒷받침해주는 유적이라고 주장합니다.
노아의 방주도, 아벨탑 사건도 모두 수메르 문명을 통해 사실인것이 밝혀졌다고 여전히 신학대학에서 배우고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대부분 역사학자들은
수메르 문명에서 전파된 이집트 문명과 이스라엘 문명. 그리고 그리스 신화. 그 속에 성경이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기독교에서 주장하는 것 중 하나가 그렇다면 수메르 문명은 어디서 나타났으며? 어디로 갔는가? 입니다. 처음 글을 시작했을 때처럼, 이 질문은 사실 인류의 탄생에 대한 원초적인 질문으로 그 누구도 대답할 수 없는 것이죠.
어디서 나타났으며? 라는 질문에 대답하지 못하는 역사학자들이지만, 어디로 갔는가? 에 관한 대답은 확실하게 할 수 있다고 합니다.
- 인도 , 이집트, 로마 , 이스라엘, 유태인 등. 세계 각지로 퍼져 나간 것! 이죠.
그렇다면 수메르 문명은 왜 멸망했으며? 왜 사라졌는가? 이라는 질문에는 아직 대답을 할 수 없다고 합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성경이 만들어지기 이전에 새겨진 석판의 문자들. 그리고 그 해독이 성경의 내용과 흡사하다는 부분.
기독교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 성경에 내용들이 역사적 사실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전해져 내려오는 과정에서 변질이 있었을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전지전능한 하느님은 오래 전 역사적 사실이 성경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변질되어 내려오는 것에 대한 핑계는 언제나 준비해야 할 것 입니다.
-퍼온 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