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시조에 관한 한마디 모음
배우식, 정형시학 창간호 권두언에서 - 시조는 땅과 하늘을 닮았다. 막힌 듯하면서도 막힌 데가 없이 트여 있고, 닫힌 듯하면서도 닫힌 데가 없이 열려있기 때문이다. 땅과 하늘이 품고 있는 모든 것들을 3장 6구의 정형 안에 자유롭게 담는다. 그야말로 유한하면서도 무한한 것이다.
정완영, 시를 왜 쓰는가? 그것도 시조, 그 고루한 형태시를 왜 쓰는가? - 그것은 나도 모르겠다. 다만 아는 것은 봄에 쓰면 한매(寒梅)가 터져 나오는 것 같고, 여름에 쓰면 강풍을 싣고 돛배가 가는 것 같고, 가을에 생각하면 하늘에 갈(蘆)밭이 서걱이며, 겨울에 붓을 들면 만산낙목(萬山落木)에 배곷 같은 눈이 날린다. 이 암울한 세상살이에서 삼장육구(三章六句)는 나를 밝혀주는 등불이요, 높낮이를 가르쳐 주는 지팡이이기 때문에 다만 거기 의지할 따름이다.
정완영, 시조의 형식 – 흐름(流)이 있고, 굽이(曲)가 있고, 마디(節)가 있고, 풀림(解)이 있는 것으로 해석하면서 그 형식이 우연히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우리 정신의 대맥이 절로 흘러들어 필연적으로 이루어진 것.
정완영, 시조의 내재율 – 다른 나라들의 시가는 일행직류(一行直流)인 데 반해, 유독 우리 시조만이 직류에다 일곡을 더 보태어 마치 여름날의 합죽선처럼 접었다 폈다 하는 시원함을 가져오는 것은, 할머니의 물레질, 한 번 뽑고(초장), 두 번 뽑고(중장), 세 번째는 어깨 너머로 휘끈 실을 뽑아 넘겨 두루룩 꼬투마리에 힘껏 감아 주던(종장) 것, 이것이 바로 다름 아닌 초, 중. 종장의 3장으로 된 우리 시조의 내재율이다.
정완영, 시조의 보법 – 첫째, 정형을 지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정형은 궁색하거나 옹색한 것이 아니라 우리 민족의 역사가 필연적으로 다듬어 놓은 그릇이어서 정제된 우리말이면 무엇이거나 다 담고도 남음이 있다는 이야기이다. 두 번째가 가락이 있어야 되겠다는 것인데, 우리 일상생활의 음율 그 내재율이 무리 없이 다 담겨야 한다는 것이다. 세 번째, 시조는 쉬워야 한다. 까닭은 시조가 국민시이기 때문이다. 쓸 적에는 깊이 오뇌하고 무겁게 사량(思量)하고 곰곰 성찰하되 다 구워 낸 작품은 쉬워야 한다는 이야기다. 언단의장(言短意長 )하라는 이야기다. 네 번째는 근맥이 닿는 시조, 즉 희(喜). 비(悲), 애(哀), 락(樂), 묘(妙), 현(玄), 허(虛), 그 밖의 어디엔가 뿌리가 닿는 작품을 쓰라는 것이다. 끝으로 시조는 격조가 높지 않으면 그것은 이미 시조가 아니다. 비속어, 천속어가 난무하고 제 몰골도 수습 못 할 지경에 이르면 이것은 이미 시조가 아니다.
정완영, 동시조집을 발간하는 까닭 – 과학문명이 발달하면 할수록 자꾸만 꿈을 잃어간다는 오늘, 우리는 어떻게 하면 우리 민족 전래의 꿈을 잃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 것인가. 여기 내 어린 시절의 아름다웠던 꿈 조각들을 주워 모아 동시조집을 엮어내는 뜻은, 어여쁘고 자랑스런 우리 어린이들에게 이 꿈을 조금이라도 심어 주고 싶은 생각 때문이다.
정완영, - 시조에 관한 말씀 한마디들
시조 한 수에 담지 못할 세계가 없다.
시조는 우리 모국어로 빚어 올릴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시 그릇이다.
시는 무력한 것, 부드러움이요, 봄비에 우주가 풀리듯 시는 타이름이며, 자족할 줄 아는 여유요, 치유이다.
족보는 안 갖고 다녀도 퇴고할 작품은 갖고 다닌다.
이근배 – 시조의 정의
시조는 이 나라 문화예술의 가장 휘황한 정화이며 인류 앞에 제시하는 언어 예술의 극치이다.
이지엽 – 현대시조는
현대시조는 세계 제일의 장르입니다. 대한민국만이 보유한 고유 브랜드입니다. 세계에 내놓고 자랑할 만한 것은 정작 이것밖에는 없습니다. 오늘의 현대시조는 당대의 아픔을 가장 밀도 있게 형상화할 수 있는 그릇이며, 우리 현대인의 정서를 쉽고도 명확하게 담아낼 수 있는 우리만의 자랑스러운 형식입니다.
유종호 – 시란 무엇인가
전통 앞에서 두려움을 느끼지 못하고서는 시 전통에 기여하지 못할 것
괴테 -
훌륭한 민족 문학이란 한 작가의 위대함으로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그 민족 문화의 전통과 민중적 기반 위에서만 가능하다.
엘리오트 -
그 사람의 작품은 노수한 작가일수록 전통문화에서 산출된다.
에즈라 파운드 -
한 줄의 이미지를 얻는 것은 위대한 사상 체계를 얻는 것보다 중요하다
강은교 -
오늘날 시인들이 마지막으로 이르러야 할 곳은 이미지와 소리의 결혼식이다
진창선 – 우리 시가문학사상 전통의 미학과 그 연계성
단형 시조는 알맞은 정조를 때로는 울분의 상황, 더 나아가서는 가슴을 파고드는 듯한 감흥까지도 쾌히 담아내는, 그러기에 전통 시가인 우리 시조를 ‘천년 미학’이라 표명함은 전통과 예술성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시조는 3장 6구로 먼저 시상을 기起, 그 다음 이를 이어받는 서敍, 그리고 시상을 마무리 짓는 것을 결結로 한다. 그리고 결에는 대개 시의 핵심을 하나로 모으게 된 것으로 역시 자연의 이법을 따른 바다.
박현오 – 시조가 어렵다고 하는 사람들을 위해서는 쉽게 가르쳐 줄 수 있는 교재를 만들어야 하고, 시조가 재미없다고 하는 사람들을 위해서는 재미있게 결합한 융복합 예술작품들을 개발해야 한다.
임종찬 – 시조가 걸어갈 길
시조는 형식 즉 율조에 기반해야 하고 3장으로 시적 마감을 해야 한다. 단수 1편이 아니고, 3수 1편 혹은 4수 1편의 시조 작품(고시조에서는 없던 형태이다) 이라 해도 각 수의 완성은 3장으로의 시적 마감을 할 때야 시조가 탄생하는 것이다. 각 수는 그것대로 시조로서 완결되어야 한다. 그리고 각 수끼리 서로 유기적 통합체가 되어야 3수 1편 혹은 4수 1편이 된다.
임종찬 – 시조의 장점
그것은 단아한 형식미다. 고정을 요구하는 형식미를 장애라 생각하면 안 된다. 자유분방이 자유시이 장점이라면 고정화된 형식미는 시조만의 장점이다. 시상의 산만이 우려되는 자유시의 단점과는 달리 시상의 압축, 언어의 절제는 시조의 장점이면서 자유시의 변별성이다. 너절한 수사나 산만한 시상의 전개를 애초부터 시조는 거절한다. 이것이 시조의 한계라고 하여 단점으로 몰아서는 안 된다. 물론 시인이 어떤 시 형식을 빌려 시 창작을 하느냐에 달린 것이지 굳이 자유시냐 시조냐의 장단을 따질 일은 못 된다.
윤덕진 – 시조에서의 여백
여운-여유-한가-침묵-여백 등등의 개념 연쇄가 우리 예술의 본질을 설명하는 데에 유효한 것을 이미 잘 알고 계시리라고 본다. 한국 종소리의 타종 뒤에도 이어지는 기다란 울림, 꾸밈이 없이 천의무봉한 한국 막사발 – 一子多音이나 語短聲長의 기다란 늘어짐, 鼓絃보다는 사이사이의 쉼이 더 큰 압박으로 다가오는 거문고산조, 형체보다는 그를 감싸고 있는 그림의 빈 곳이 가져다주는 너그러운 안도감 등등을 들 수 있다. 시조는 소리 사이에 침묵으로 절묘한 리듬을 만들어 간다. 음수(자수)가 아니라 경계의 여백으로 멈추어선 들리지 않는 소리가 시조의 리듬을 만들어 간다. 다만 의도적으로 만들어지지는 않고 일상어의 소박한 배열에 의하여 만들어져야 한다. 한국 사람이 무슨 일이든지 억지로 하지 않고 흥에 겨워 절로 이루어지는 것만을 용납함은 허술해 보여도 빠져나갈 것이 없는 절대적인 그물이다. 이 그물에 담긴 말이 곧 시조이다.
민병도 – 시조의 새로운 전성시대를 기다리며
요즘 시조가 시조시인들에 의해서 너무 쉽게 뒤틀리고 너무 많이 부서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현대시조는 시조 독점의 시대가 아니라 자유시라는 드센 물결과 함께 휩쓸리고 있음에도 정체성을 잃지 않을 힘을 지녀야 한다.
아래의 네 가지 잣대로 시를 쓰며 자기 진단을 하고 있다. 첫째, 무슨 말을 전할 것인가에 대한 보다 명료한 정리가 되었는가. 둘째, 우리말의 순기능을 살려 쉽게 전달되도록 살폈는가. 셋째, 시조의 형식미가 지닌 가치 확산에 걸맞게 정제되고 함축미를 확보하였는가. 넷째, 시조의 정대적 비중인 종장의 창조적 구성미를 계승하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