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속에서
서영희
지독한 아픔이다
무엇을 보고 달리다
벼랑에 서게 됐는지
작은 땅 한 치의 여유만 있어도
이렇게 불안에 떨진 않았을 것을
금방이라도 끓어 넘칠 것 같은
가슴 속 타오르는 용광로에
편두통 몽땅 쓸어 넣어 제련하고 싶다
바람은 또 한 번 채찍으로 비탈에 세우며
줄 없는 거문고 타보라 한다
서영희 제3시집 < 사월의 암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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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영희 시인은 한국문인협회, 밀양문인협회 회원이다.
참 웃기는 일이다.
한 다리 건너면 학교 선후배고 사돈의 팔촌인 좁은 밀양인데
무슨 모임이 생기면 둘이나 셋으로 쪼개진다.
허물고 싶었다.
하여 밀양문협 시화전에 가
인사를 하고 시집을 받았다.
"어? 이 시들은 내 시랑 닮은 점이 있네¨
시집 한 권을 숨도 안 쉬고 금방 읽었다.
지은경 시인은 해설의 제목을 (참된 자아를 찾아가는 실존의 아우라)라 했다
신은립 제3시집의 해설 제목은 (존재의 본질적 사유와 깊이)이다.
밀양에서
문인협회 소속 서영희 시인이나 민족작가회의 소속 신은립 시인이나
전하고자 하는 말은 비슷할 것이다.
하여 창작의 길에 같이 갈 동지가 있어 외롭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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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리병동에서
서영희
병실 창문 밖
건물 난간 위 비둘기
부서지는 봄 햇살을 쪼아 먹고
병실 창문 안
파삭거리는 노인은
사곽의 두유를 쪽쪽거리며 마신다
가느다란 두 다리로 비둘기는
난간을 자유로이 왕래하고
가느다란 두 다리를 저당 잡혀
침대를 차지한 노인은 꼼짝 못 한다
병상을 지키는 아들의 두 다리도
창살 없는 감옥에 갇혀
멀쩡한 하루하루를 저당 잡혔다
잠기지 않는 저 문은 언제 열리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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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이 봉쇄 되었다.
코로나의 기세는 들불보다 더 거세 사람도 새도 다 타버렸다.
그런데 문은 잠기지 않았다.
우리는 잠기지 않은 문을 열지도 못하고
누가 열어주기만을 기다렸다.
암흑같았던 코로나의 상흔이 시인의 시로 남았다.
잠기지 않은 문이라
인류가 승리한건가
또 다른 시련이 오면
살아보니 살아지더라로 이겨야 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