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서의 검투경기의 유래에 이어, 오늘은 검투경기의 생생한 모습과 검투사들의 애환에 대해 이야기 해보려 합니다. 조금 딱딱했던 지난 글보다는 비교적 흥미가 있으리라 봅니다. 그럼 2천년 전의 검투사들의 세계로 함께 떠나보실까요.
검투사는 어떻게 싸웠을까?
다양한 인종으로 구성된 지망생들이 검투사 양성소에서 훈련을 마쳐 선수가 되면 속주를 비롯해 로마 각지의 원형 경기장에서 시합을 했고, 특별히 잘 싸우거나 실력이 출중한 선수는 로마의 콜로세움 아레나에 설 수 있었다. 이것은 야구 선수가 메이저 리그에 서는 것 만큼이나 당시 검투사 에게는 영광의 무대였다.
[사진] 망(網)투사‘레타리우스’에게 항복하는 어(漁)투사
검투사는‘파밀리아’로 불리는 조직으로 그룹 지어져 단체생활을 했고, 위계질서가 매우 엄격했다.‘파밀리아’는 생사의 경계를 공유하는 그들만의 끈끈한 유대감이 있었다. 아마도 데뷔전을 갖는 검투사는 현대의 격투시합처럼 그의 트레이너, 동료들이 시합내내 손에 땀을 쥐고 응원할 것이다. 여담이지만‘파밀리아’는 영어‘패밀리’의 어원이다. 이탈리아계 마피아들은 조직을 패밀리라 부르고, 조직원을 병사라는 의미의‘솔다티’로 부르는데 이것 역시 로마시대와 연관되는 것 같아 재미있다.
영화 스파르타쿠스 에서는 귀족들이 같은 소속의 검투사끼리 사투를 벌이게 해 폭동이 일어나는 것을 묘사하고 있다. 그것이 사실이었는지 아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요즘에도 불가피한 경우가 아니라면, 팀에서 같은 소속의 선수끼리 시합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검투사들이 현대의 프로레슬링처럼 태그매치를 했다는 기록이 있는데, 아마도 같은 소속의 검투사끼리 팀을 짜 라이벌 체육관이나 팀에 대항해서 싸웠을 것이다. 로마 시민들은 전차경기뿐 아니라 검투시합에서도 특정 팀에 대한 팬이 존재했는데, 경기가 격해지면 장외에서 팬들끼리 패싸움이 벌어지기도 했다. 또한 2인 4인으로 조를 짜서 동물과 사투를 벌이기도 했다. (右.사자에게 물어뜯기는 검투사를 묘사한 조각)
검투사는 흥행주(라니스타)의 재산이었고, 모든 훈련경비와 장비를 지원하기 때문에 죽어 버리기라도 하면 재산의 일부분을 날리는 셈이었다. 7백년간 지속된 검투사 경기를 통해 검투 종사자의 직업은 대물림 하기도 하였고, 격투방식, 훈련법 등이 양성소 별로 그 노하우가 전수되어 점점 파이팅 스타일이 고정되게 되었다.
오늘날 MMA 격투 스타일이 무에타이, BJJ 계열의 서브미션, 레슬링 계열이 주종을 이루듯 로마시대 검투사 스타일도 몇 가지 스타일로 고착되었다. 한가지 특징적인 것은 검투사들의 복장이 로마 병사들의 것은 일체 따르지 않았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검투사는 로마의 적을 상징했고, 다양한 출신들에 의해 그들 고향의 이국적인 복장, 갑주, 무기, 격투방식을 고수했다.
현재까지 기록에 남아있는 검투사 스타일을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 Myrmillo 어(漁)투사: 물고기처럼 보이는 투구를 썼고 중무장을 했다. 미르밀로는 대체로 넷맨이자 어부투사인 레티아리우스와 싸웠는데 이것은 물고기와 어부의 싸움을 상징했다.
■ Thracian 양 다리에 정강이받이. 사각형 혹은 원형의 작은 방패, 얼굴 전체를 가리는 면갑 마스크, 혹은 얼굴이 보이는 넓은 챙의 투구, 구부러진 트라키안 단도를 가지고 싸움.
■ Samnite 깃장식의 면갑투구를 쓰고 칼과 큰 방패를 착용해서 싸웠다. 팔보호대를 갖췄지만 정강이 받이는 착용하지 않았다.
■ Dimachaerius 최소한의 갑주를 착용하고 두 개의 칼을 가지고 싸웠다.
■ Laquearii 레티아리우스와 장비와 격투 스타일은 같지만, 그물대신 올가미를 사용한다.
■ Secutor 추척자라는 별칭으로 거의 갑주없이 벗은 상태로 달걀형 혹은 직사격형 방패와 칼, 단검을 소지하고 싸웠다. 왼쪽 다리에만 정강이 받이를 착용한 것이 특징. 팔굼치와 손목에는 가죽밴드, 높은 챙의 투구를 쓰고 싸웠다.
■ Velitus 야만족을 상징하며 갑주 없이 오로지 창만으로 싸웠다.
■ Essedarius 기마검투사: 말을 타고 방패나 창을 들고 싸웠다. 때로는 전차를 타고 싸우기도 했다.
■ Retiarius 망(網)투사: 어부로 상징되는 검투사로. 벽화 등으로 워낙 유명해서 로마의 검투사를 상징한다. 어깨받이용 철갑 방패(galerus)와 허리의 천(subligaculum), 그물(iaculum), 단검, 삼지창 혹은 참치나 다랑어 잡이용 작살을 가지고 싸웠다. 투구와 정강이 받이를 착용하지 않는다.
■ 여자검투사 여자들의 검투사 경기도 종종 개최되었는데, 최근 영국에서 스무살 무렵의 여자 검투사 유골이 발견되기도 했다. 한때는 여자 검투사 경기가 너무 성행해서 셉티무스 세베루스 시대에는 그것이 금지되기도 했다고 한다. 칼리굴라 다음 황제인 클라우디우스의 아내이자 탕녀로 유명한 황녀 멧살리나가 여자 검투사 출신 이라는 설도 있다.
이와 같은 여러 스타일의 검투사들이 지하통로를 거쳐 아레나로 부상한다. 그러면 몇 차례 개회 선서후 주위의 악사들이 음악으로 분위기를 고조시킨 다음 경기가 시작된다. 음악은 무에타이 시합처럼 시합내내 악사가 청동피리로 연주를 한다. 만약 황제가 직접 참관하면 격투사들은 열을 지어 황제 앞을 지나면서“황제 만세! 죽음 앞에 서 있는 우리들이 인사합니다.’라고 맹세한다. 콜로세움 아레나에 서는 것이 검투사의 꿈이라면 황제앞에서 멋진 시합을 펼치는 것은 그야말로 인생 최고의 영광이었다.
검투사 중에서 싸우는 방식과 장비가 특이해서 현대인들에게 가장 유명한 검투사 유형이 있다. 바로 그물과 삼지창으로 싸우는 레타리우스 검투사다. 레타리우스는 오늘날 넷맨 (Net Man)이라고도 불리는데, 이 넷맨의 기원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아마도 노예로 끌려온 어부 출신의 검투사가 그 특기와 경험을 살려 싸웠던 것이 시초가 아닐까 싶다. 로마시대의 벽화나 조각을 보면 넷맨들이 적에게 패배하는 상황을 묘사한 그림이 많다. 옆의 그림에서도 넷맨이 삼지창도 놓친데다 장단지까지 베어 핀치에 몰린 것을 묘사하고 있는데, 피가 솟구치는데다 무기로는 단검밖에 없어 거의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는 절박한 상태다.
그러나 실제로는 넷맨의 승률은 상당히 높았다고 한다. 영화‘스파르타쿠스’에서도 주인공이 동료인 넷맨에게 시합에서 지는 장면이 연출되는데, 이처럼 넷맨들이 잘 싸우자 시합의 공평을 추구하기 위해 이들에게는 투구와 정강이 받이의 사용을 금지했다.
그런데 넷맨들은 로마의 격투팬들에게 상당수 미움을 받았다는 기록이 있다. 아마도 승률이 높은데다 그물을 이용해 안전위주의 시합을 펼치는데 원인이 있는 것 같다. 자신이 좋아하는 검투사가 출전해서 검 한번 제대로 부딪혀 보지도 못하고 그물에 묶여 작살이나 삼지창에 찔려 죽어 버린다면, 보는 입장에선 페어 플레이가 아니라는 느낌을 받을 만도 하다. 벽화에서 이들의 패배가 자주 묘사된 것은 아마도 이런 넷맨에 대한 로마인의 미움이 표출된 것이 아닌가 싶다.
오늘날 검투사라 하면 무조건 생사를 걸고 싸우는 것으로 아는데, 9승 2패의 전적기록이 남아있을 정도로 검투사가 모두 목숨을 걸고 싸운 것은 아니었다. 그만큼 몸값이 비싼탓에 그리고 필요이상으로 잔인해지는 것을 로마시민들이 꺼려한 탓에 승패가 결정되면, 형식적으로 승자가 패자의 목에 칼을 넣는 시늉을 했고 패자는 승자의 허벅지를 붙잡아 패배를 대신한다. 로마인들은 각고의 단련끝에 생사의 분기점에서 예술적인 움직임을 보여주는 검투사의 기술을 즐긴 것이지 무조건 피가 낭자한 잔인함을 사랑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늘날에도 마찬가지지만 선수들 수준이 높을수록 시합은 잔인함과는 거리가 멀다. 아마도 콜로세움에서의 검투시합은 프라이드나 프로 복싱의 일류 선수들이 겨루는 움직임을 보여줬으리라 상상해 본다.
[사진] 승부가 정해졌는데도 흥분해서 날뛰는 선수를 심판이 말리고 있다. 이종격투 시합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이다.
그러나 무기를 들고 싸우는 검투사 시합인 탓에, 검투사들은 언제나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관객을 즐겁게 해줘야 한다는 부담감을 짊어진 채 시합을 해야만 했다. 이기는 것도 문제지만 지는 것도 멋지게 질 줄 알아야 한다. 아무리 강한 검투사라도 매번 이긴다고 상대를 죽이거나 치명적인 부상을 입힌다면, 동료 검투사들의 시기를 받아 언젠가‘탭 아웃(항복 제스쳐)’할 틈도 없이 칼에 찔려 죽게 될 수도 있다. 따라서 이기는 것도 지는 것도 최대한 멋지고 인상적으로 타이밍을 맞춰 해야만 한다.
만약 예전의‘프라이드 FC’의 모 시합처럼 짜고 하는 것 같은 시합을 했다가는 황제와 관중에게 분노를 사서 곧장 엄지 손가락을 내리며‘이우굴라(목을 쳐라)’라는 함성을 듣게 될 것이다. 혹은 너무 일찍 탭 아웃의 표시인 왼손 검지손가락을 들어 올렸다가는 역시‘이우굴라’의 함성이 울려 퍼질지 모른다. 이처럼‘이우굴라’의 명령에 의해 사망한 검투사의 시신은 카론(그리스 신화의 저승사자)나 머큐리(신들의 사자)의 복장을 코스튬한 경기장 수행원들에 의해 실려 나갔다.
로마의 노예 검투사는 일반적으로 3년에서 5년간 싸우면 자유인이 될 수 있었는데, 재능이 없다면 삼년이 아니라 데뷔전 삼분만에 목이 잘린 시체가 될 수도 있었다. 이처럼 수준이 미달한 선수나 실력 차이가 너무 심한 경우를 대비해, 혹은 흥행을 위해 프로모터들은 세심히 시합 매치를 조정해야 했다. 앞에서 말했듯이 제대로 된 검투사 한명을 양성시키는데 드는 돈은 상당하기 때문에 경제적인 측면도 고려해야만 했다. 그래서 검투사 한쪽이 지거나 죽는 경우가 낮은 동물과의 사투가 대안으로 떠올랐다. 베나티오라 불리는 동물과의 사투는 매우 인기를 끌어서, 검투사들의 사망률은 낮아지는 대신 동물들의 씨가 마를 지경이었고 지방관과 사냥꾼은 동물을 마련하느라 피가 마를 지경이었다고 전해진다.
[사진] 베타티오 경기와 태그매치를 묘사한 벽화
실제로도 북아프리카 누비아에서는 당시 로마 검투경기로 인해 코끼리가 멸종되었고, 어떤 곳에선 하마, 현재의 터키지역에선 사자가 멸종되었다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예를 들어 트라야누스 황제의 다키아 원정 개선 축하행사때는 검투경기에서 동물 9000~1만 마리 가량의 사자, 코끼리, 사슴, 곰, 개, 낙타, 표범, 악어, 멧돼지등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대부분의 동물들이 검투사에게 도살당했다고 하니 그 규모를 짐작해 볼 수 있다.
다음은 로마의 검투사 시합 3편.‘콜로세움과 검투경기의 팬’으로 이어집니다.
글/사진. 민운준 aumas@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