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선 아 리 랑
다섯 동서들의 여행
한 집안의 다섯 며느리들이 우애 있게 지내는 것은 부모형제들로서 더이상 좋은
일이 없을 것이다, 형제들이야 같은 핏줄이라서 어쩔 수 없지만 남남으로 만나서
동서라는 연을 맺어 잘사는 일은 결코 쉬운일은 아니다, 각자의 모난 모서리를 스스로
인내하며 조금씩 다듬지 않으면 둥글고 부드러운 모양이 될 수가 없다,
나의 동서들을 흙시루 안에서 키맞추어 잘 자라는 콩나물이라 부르고 싶다, 집안이라
는 까만 보자기를 뒤집어쓴 채 옹기종기 자라 밥상 위에 오르기까지의 과정이 우리네
삶과 다를 바 없는 동세(同世)라는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십 여년 전에 시아버님 칠순 잔치를 치르고 나서 며느리에게 수고했다 고
금일봉을 주셨다, 허투루 써버리기에는 아까운 어른들의 정성이라 동서들과 여행을
다녀오기로 허락 받아 남해안과 지리산의 노고단, 향일암등 한려 수도를 휘감고
3일만에 돌아왔다, 첫나들이에서는 모두 들떠 계획이고 뭐고 없이 가정을 잠시 떠나는
홀가분한 마음 하나로 얼렁 뚱당 다녀온 후 서로를 이해하는데 큰 밑거름이 되었다,
5년 뒤에 다시 가자고 약속한 5년이 두번이나 흐른 십 년 만에 두 번재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그사이 아버님도 타게하시고 집집이 아이들도 그만그만 하도록 여유부릴 시간이
없엇다, 임신한 몸으로 다닌 그때 막내 동서의 아이가 지금은 초등학생이 되었다,
아이들을 한창 돌봐야 할 때이지만 집집이 사정을 다 봐주면 아무 계획도 실천할 수
없다, 무리인 줄 알지만 눈 질끈감고 강행군으로 서해안으로 바향을 잡았다,
강산이 한번 바뀌도록 다섯 동서들이 시간을 맞추어 엄두 내기란 여간 힘드는 일이
아니엇다, 서해안의 일몰을 향해 진해에 사는 네 째와 창원에서 합류했다,
겨울 안개비가 한 폭의 산수화 인양 가물가물하고 우중충한 날씨였지만 우리의 마음은
새의 깃털처럼 아주 가뿐했다, 잠시 떠난다는 것은 돌아오기 위한 출발이지만 여행의
여유는 우리를 더 풍성하게 해줄 것이라는 확신에 신명이 배로 증가했다,
비가 부슬부슬 오는 날이다, 차보다 마음이 더 빨리 달려 서해안 간척지를 지나
안면도 가는 길목에 무학대사 의 전설이 남아 있는 간월도의 간월암 처마밑에서 비맞은
생쥐꼴로 해후했다, 다섯 동서들은 빗물을 이슬 털듯 키득거리며 웃었다, 비구름 뒤에
가려진 일몰을 상상하며 얼굴 위로 찬연히 지고 있는 낙조가 우리를 붉게 물들렸다,
흐릿한 서해인데 비가 와서 더 뻔물된 바다도 그리 아름다울 수가없다, 자판기
커피가 최고급 카페에서 마시는 것과도 비교 안 되는그 맛과 향 추적거리는 겨울비를
맞고도 을씨는스럽지 않은 것은 머무르다가 떠남의 여유에 충만하기 때문이다,
동서들의 환한 표정은 지난 삶의 찌꺼기를 다 태워 버린 하얀 연기 처럼 편안했다,
두터운 몸짓이 어찌나 가벼운지 누가 뱃살 두꺼운 아줌마 부대라 하겠는가,물빠진 갯벌
에서 조가비들의 생존처럼 네 명의 아우들을 어디 내놓아도 자리매김 하는데는 한치의
부족함이 없이 으젓하리 라는 확신이 섰다.
들떠서 느슨해진 마음에 오색 옷을 입히며 우리의 목적지 안면도 꽃지 해수욕장에
도착했다, 아담한 펜션 주인이 동서들끼리 여행하는 게 부럽다고 동이감 홍시를 한
대접 맛보인다, 남들에게 부러움의 대상이 된다는 것은 우리가 진실로 즐겁지 않으면
어려운 일이다,
숙소 마당에 주차하다가 주운 두툼한 지갑을 고스란히 주인찾아 주어 삼겹살 한
접시에 소주 다섯 잔 걸죽하게 보상받고 별미 굴밥에다 서해안의 쫄깃한 회 맛도 일품
칠흑 같은 밤바다를 자정 넘는 시간에 일탈하는 것도 재미였고 인적이 드문 겨울 밤
바다를 보겠다고 여인 다섯 명이 외출을 한 것도 어찌 보면 신나는 자유다.
네 명 아우들 앞에서 무엇이 겁나라 했지만 사실 쫄리는 마음을 보일 수 없어 앞장서
바닷 바람을 비집고 행하니 나선다.
해안을 따라 길게 펼쳐진 밤바다의 파도는 하얀 레이스를 펄럭이며 우리를 향해
춤추듯 달려왔다, 가슴이 물보라로 촉촉이 젖는 집 떠난 여인네들의 텅 빈속에 깔깔
대는 웃음이 절로 넘쳐는 여유 가득한 밤, 촐랑거리며 끝없이 달려나오는 파도가 꼭
우리 마음 같다.
우리들의 원을 물은 알고 있을까, 삶이란 결국 물음에 서 물음으로 운수(雲水)처럼
흐르다가 또 그리 사라지고 마는 물질인데 이렇게 허허로운 게 바로 삶인, 다정한 할미
할비 바위는 어둠을 덮고 코 골이 하는데 우리의 다섯 여자들은 낮밤을 분간 못하도록
흥청댔다.
여행이란 스스로 볼 힘을 길러야 진정한 여행의 여행의 의미를 갖는다 고 했다,
좋은 동행자를 만나는 것은 여행의 큰 행운이다.
정작 낮선곳에 도달하면 두려움과 호기심이 발동하여 행동에 더 겸어한 자세로 자신을
여미게 되는 사실도 떠나와서 비로서 느끼게 된다.
안면도를 떠나 다음날은 일엽 스님이 계셨던 수덕사(환희대)를 돌아 일주문을
나서니 오래된 초가가 남루하게 자리잡고있다, 이응로 화백이 동백림사건에 연루되어
수감되었을 때도 옥바라지한 본부인이 주인이었던 수덕여관 여인의 인내가 어디까지
인지 몰라도 내면의 고통을 잊으려 수절하며 운영해 온 여관이었다면 그 세월은 기도
하는 마음으로 살았지싶네, 지금은 허물어져 인걸은 간데 없지만 예사로이 보여지지
않는 것도 어쩌면 같은 여인네로서 사랑에 갈증 내는 깊은 애증 때문이 아니겠는가,
여관을 거쳐간 사람들이 얼마나 되었는지는 몰라도 즐비한 방이며 대갓집 못지않은
너른 부억까지 꼼꼼이 들여다본다, 빛 바랜 자게 농이 아린 세월을 말해준다,
낡은 빈방을 지키고 있는 먼지 뽀오한 쪽마루에 다섯 동서들이 나란히 앉는다,
지나가는 바람처럼 사계절이 쉬는 남루한 집의 낡은 마루에서 바위에 새겨 놓은 고암의
문자추상화를 바라본다, 세월의 무상함을 함께 본다.
수덕사를 떠나 당도한 서산 삼존마애불은 떠내기 우릴보고 싱긋이 웃으셨다,
개심사의 지장전에도 살아생전 한번만 둘러봐도 극락왕생 한다 고 어른께서 일러주심
에 전부 삼배하고 나온 엉큼한 흑심도 어쩌면 마음의 단합인지도 모름다,
돌계단에 퍼질고 앉아 얼어붙은 감홍시 떨어지라고 입벌리고 서성거리던 펑퍼짐한
고집들, 소문에 입맛 살려준다는 한식집에 가서 접시마다 게걸스럽게 바닥을 보이는
다섯 여자들 선물 가계에서 시어머님 것 고른다 하니 가계 주인이 덤으로 인심 펴 주는
흐뭇함,
아직은 살림에 눈코 뜰 새 없는 처지인 동서들이 함께 떠난다는 것도 동서간의 단합
이전에 시동생들에게 번거러움을 끼칠 수밖에 없다, 형제들이야 한 핏줄을 나누었다지
만 안사람들은 한집안의 며느리라는 이름 하나만 같을 뿐이다, 우리의 속정이 이 년만
에 다져진 것은 결코 아니다,
여행이라는 명분을 달고 나선 우리들에게 가을 들판은 풍요와 기대감을 증가시켜
주었다, 겨울 안개비가 푸근하고 여유로운 것은 즐거운 마음 탓이다,
가정을 벗어난 아낙들 뒤에 남편이라는 든든한 기둥들에게 고마움을 느끼면서
2박3일의 마지막 밤을 온천에서 유하게 되었다,
먹고 마시고 눈요기하는 마지막날 밤은 각자의 남편들이 챙겨 준 별미에 누워서 침
뱃기지만 남편 자랑하는 자유 토론 시간을 가졌다, 잘 감긴 실꾸리에서 실이 풀리듯
줄줄 엮어 내는 입심 또한 가관이었다, 칭찬에서 원망으로 오르락내리락 급등락하더니
누구랄 것도 없이 뜨거운 눈물 한소끔 퍼내고 그러다 또 웃고, 접시가 수 십개는 깨
졌지 싶다, 빨간 포도주를 자랑삼아 스윽 내놓는 막내
"형수님들하고 기분 좋게 묵어라카데에,"
"저러니 부창부수라하제"
"이구~내는 몬산다카이, 최고급 마른안주는 안보이나?"
동서들의 큰아주버니인 남편이 전화 찬스를 잡는다,
"제수씨들 시집와서 여태껏 힘들고 섭섭한 것 모두다 훨훨 다 털어버리 고 재미나게
놀다 오이소,"
여행은 인생의 즐거운 예술이라 누군가 말했다, 생활이 인생에 산문이라면 여행은
시라고 했듯이 여행은 말 한마디 생각 한줄기가 삶의 훈기로 엮어지고 윤기 있는
흔적을 남긴다,
우리 5동세(同世)는 큰 가마솥에서 구수하게 잘 익어 가는 오곡밥이다,
밀물 썰물이 없다면 바다도 의미 없듯이 독수리5형제라고 부르는 남편들이 주춧돌
되어준 것에 감사한다, 산전수전 겪는 동안 가정 가정마다 더 질기고 고운 오색실이
되길 바라면서 오색뜸(cafe.daum.net/dhtorEma)이라는 이름으로 사이버 카페도
운영하게 되었다,
이어서 동서들의 글을 올린다.
꽃지사랑 (둘째 김덕선)
서산 대호(大湖)에 걸린 달은 자취를 감추고
독수리 여행제 꿍덕방아 꽃지포(浦)에 머물렀네
님들 노닐던 곳 어느 사이 할미 할비 변하고
설흔 사랑 끔찍한 사랑 세월 지나고서
주름지니 꽃지사랑이라 하더이다
다섯 며느리들의 겨울 여행 (네째 신월계)
한 해를 마무리하는 12 월 초순 그동안 벼루던 여행 날짜가 잡혔다,
청명한 초겨울의 싸아한 공기에 마음이 먼저 들뜬다, 각자의 삶 속에서 일상의
먼지들을 훌훌 털어 버리고 재충전의 계기로 삼을 수 있는 여행,
그렇지만 그게 그리 쉬운 일인가, 전국 각처에 흩어져 살고 있는 동서들이 가정을
잠시 떠나서 2박3일의 일정으로 온전히 여행 할 수 있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평소 무뚝뚝한 성격의 남편도 집안 걱정은 말고 즐거운 여행이 되길 바라며
슬쩍 여비를 챙겨주는 자상함도 보인다, 여고생 딸아인 문자로 ,
" 모처럼 놀러 가는데 비가 비가 오면
우짜노~ 안개도 끼이는데 조심히 다녀오이소~???"
출발 당일 잿빛 하늘이 낮게 깔려 금방이라도 빗줄기가 뿌려질 것같다,
아침 일찍 창워 남산동에서 부산 사는 큰 형님과 접선해 남해고속도로 접어드니
빗줄기가 굵어진다, 안개비까지 보태서 운전하기에는 악조건이지만 그 나름의 운치는
있다, 큰 형님과 속내를 드러내며 얘기하는 것도 큰 행복이다,
번갈아 운전하며 5시간 반 동안의 여정이 지루한 즈음 최종 목적지인 안면도 간월암
입구에 도착했다, 먼저와 기다리고 있던 수원의 덕선형님과 서울의 영심형님 안양의
막내 우경이와 만나니 흡사 이산 가족 상봉이다,
처음 접해 본 서해안이 시야에 가득 들어온다, 다섯 여인의 등장에 시샘이라도
하는 듯 비바람에 파도는 성난 물결을 이룬다, 일몰이 멋있기로 유명한 곳이라 잔뜩
기대 했지만 세상사 그렇듯 좋은 날 궂은 날이있지 않은가,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부지런히 사진들 찍기에 바쁘다, 가까운 펜션에다 숙소를
정했다, 후덕한 인상의 주인 내외에게 우리는 한집안의 친동서 들인데 모처럼 여행을
왔노라 했더니 아저씨께서 느릿한 충청도 사투리로
"그리여 드문 일이구먼 참 좋아 보이네 그려"
하시더니 부인께 홍시감을 좀 갖다 주라고 성화시다,"으이구..
저 양반은 그저 여자들만 보면 좋아서 저런다나까,,?"
가볍게 눈을 홀기시더니 커다란 홍시감 5개를 접시에 담아 내 오신다, 먹성 좋은
여자들이 횡재 만난 듯한 호들갑스러움으로 말랑하게 잘 익은 것을 형님 먼저 아우
먼저 권하기도 하며 까르르 터트리는 웃음속에 행복이 뭍어난다,
다섯 일당(?)들의 첫날밤이다,4~50 대의 여인 다섯명이 수학여행온 소녀들 마냥
분잡햇다,매실주와 소주 잔들이 오간다,서해 바다의 회도 한접시 있고,각자가 준비해
온 안주를 보태니 분위기가 제법 그럴사하게 익어간다,막내는 남편이 형수님들과 함께
마시라며 귀한 포도주를 한 병 주더라고 은근히 자랑이다,
그리고 언제나 화목한 가정들을 이루라고 염려하시는 큰 아주버님의 세심한 배려와
큰 버팀목 되심에 두고두고 감사한 맘을 갖는다,
우린 이날 밤 남편들은 감히 독수리 5형제라고 명령했다,하여 남편 자랑에 때론
살면서 섭섭한 일들을 엉킨 실타래 풀듯 풀어놓으니 서로들 공감한다,
이런 흉허물없는 얘기에 형님들의 충고 또한 삶의 지헤를 안겨 주신다, 더 가졌다 덜
가졌다 한탄도 없이 도타운정 나눌 수 있는 형 아우가 있어 큰 보물 하나 숨겨둔
맘 마냥 든든함을 느껴 본다, 창밖은 여전히 세찬 바람이 불고, 우린 훈훈한 얘기꽃을
피우며 밤 깊은 줄 모르고 귀한 시간들을 다독여 추억하나 건지기에 여념이 없다,
둘째날의 수덕사와 온천에서 여독을 풀고, 마지막 날의 개심사와 서산 마애삼존불상
을 관람하며 이 추운 칼 바람 속에서도 변함 없이 천년을 훌쩍 넘긴 온화함으로 우릴
반겨주는 불상의 미소는 저리도 아름다운데 번뇌 욕망들을 감추고 덕지덕지 치장한 내
모습이 되려 부끄럼 되어 다가온다, 때론 삶의 무거운 추가 내 어깨에 무임승차 할지
라도 결코 좌절하지 않으리라 다짐하며 좋은 추억 함께 한 형 아우님 감사합니다.
배추서리 (다섯째 신우경)
둘째 아이 가지고 조심스러웠던 첫 번째 여행과 달리 이번 여행은 편안해진(?)형님
들이랑 설레고 즐겁고 기대에 넘치다가 밤12시에 꽃지 해수욕장 밤바다를 산책하러
갔다, 10년 만에 떠나온 여행의 첫날 ,자정을 넘긴 시각에 서해안의 찬바람에 오들
거리며 바닷가로 가는 길목에다 뽑고 남은 엉성한 배추밭을 발견한 순간 "반찬하자!"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우루루달려가 딱 바라진 배추를 후다닥 뽑기 시작했다,
넷째 형님은 망본다고 두리번거리고, 다른 형님들은 어찌나 행동이 빠른지 두려움
1%, 재미 99%, 겨울 밤 시린 손으로 형님들이랑 순식간에 열넷 포기뽑아 들고
주위를 휘 한번 둘러보며 아닌 척 양손에 배추를 들고 태연히 걸어가는 형님들과 웃고
또 웃고 배를 잡고 웃었다,
아! 다음날 아침, 겨울 이삭 배추를 데쳐서 쌈 싸 먹고 찍어 먹던 그맛, 달짝
덜큰한 배추쌈이 또 먹고 싶습니다,
우린 완전히 서리한 배추로 아침 배를 채웠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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