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평] 이동희-하우하필
세상을 읽는 또 하나의 방법으로 서정에 젖어드는 수가 있다. 다음 작품은 비에 젖은 여름 날씨에서도, 시정신의 건조법으로 그 젖은 세상을 가능성의 그림으로 읽으려 한다.
비가 내릴 듯 말 듯
그대는 찌푸린 하늘 한 번 쳐다보고
이내 침묵으로 흙 가까이 낮게 엎드린다
오늘도 열매가 여물 듯 말 듯
한 웅큼 햇살이 그대 가슴을 핥아야
의미 있는 이별을 준비하겠지만
어찌된 일이냐 그대여
속살까지 적시는 우기雨期의 언어는 무섭다
마른 하늘이 울고
다시 숨 가쁘게 훔쳐내는 그대의 눈물
알토란 둥근 잎으로 그냥 가려보는
치유될 수 없는 우리들 아픔이지만
비가 내릴 듯, 열매가 여물 듯
저리도 울어쌌는 매미들
그대가 낮게 엎드린 이쯤에서
사랑이 되지 못한 젖은 화음으로
오늘 일기예보 또한 예사롭지 않다.
-김송배「하우하필夏雨下筆」 (계간『한국시학』2024.여름호)
이 작품을 보면서 먼저 “칠년 가뭄에 비 오지 않는 날 없고, 칠년 장마에 해 뜨지 않는 날 없다”는 속담이 떠올랐다. 날씨라는 게 그렇게 변화무쌍하다. 긴 장마 중에도 드물게 햇살이 비치기도 하고, 타는 듯이 지속되는 긴 가뭄 중에도 어쩌다 비 같지도 않은 보슬비가 비치는 때가 없지 않다. 자연의 변화무쌍함을 우리나라 속담이 잘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하우하필夏雨下筆’이라고 했다. 이 표제에 모든 것, 시적 자아가 드러내고자 하는 시적 정서를 함축한 것으로 보인다. ‘하우’는 여름비이거나, 여름철에 내리는 비이거나, 여름은 비가 오는 계절임을 함축한다. ‘하필’은 붓을 대어 글을 쓴다거나, 붓을 들어 시나 문장을 짓는다는 뜻일 터, 그러니까 이 두 단어를 하나로 묶어서 사자성어로 완성해 냈다.
‘하우하필’에서 문사다움의 기개와 시인다움의 결기를 느낀다. 왜 그렇지 않겠는가? 항우장사라도 삼복더위에는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싫을 만큼 무력해 지는 때가 바로 장마철이다. 아무리 정신력 빳빳한 선비요 시인이라 할지라도 계절의 횡포를 이겨내기는 쉽지 않다. 그럴 때 김송배 시인은 붓을 들어 글을 쓴다는 것이다. 대단한 결기요 기개가 아니겠는가!
그렇게 해서 계절의 횡포를 걱정하고, 인간이 어쩔 수 없이 자연 환경에 적응할 수밖에 없는 존재임을 자각한다. 그런 중에도 애면글면하는 정서로 세상을 읽으려 한다. 그 핵심은 바로 “~ 듯 ~ 듯”에 담겨 있다. 거대한 자연의 순환 앞에서, 빈틈없이 맞물려 돌아가는 자연의 운행[天行健-『易經』하늘의 운행은 조금도 빈틈없음] 앞에서 사람이 겨우 할 수 있는 일이란 게 ‘추측하는 일’뿐임을 철저히 자각한다. 그래서 이 안타까운 정서적 반응이 되풀이하여 드러난다.
“비가 내릴 듯 말 듯”하는 게 여름철 날씨다. 먹구름이 몰려온다고 항상 비가 오지도 않고, 멀쩡하게 해가 비치는데도 느닷없이 소나기를 퍼붓는 게 여름 하늘이다. 인간의 소견으로 그 비가 “올 듯 말 듯”하지만, 그게 바로 하늘[자연]이 건강하게[건전하게] 운행되고 있다는 증거일 뿐이다. 그럼에도 시적 자아는 안타까운 것이다. 그래서 서정적 자아는 침묵으로 낮게 엎드린다. 그래서 명심보감은 일찍이 하늘[자연]에 순응하라고 가르치지 않았던가. 자연 앞에 순응하는 자 흥[順天者興]하고, 거역하는 자는 망[逆天者亡]한다고. 시적 자아는 그것을 알기 때문에 낮게 엎드린다.
그래도 안타까운 정서는 쉽게 물러나지 않는다. 그래서 “오늘도 열매가 여물 듯 말 듯”하다고 걱정한다. 여름 한 철의 한 줄기 햇볕은 생명의 양식이다. 하우가 계속되면 생육하여 결실해야 할 과수果樹에는 치명적이다. 여름비로 인해 열매가 여물듯 말듯 하는 게 어찌 과일나무뿐이겠는가? 여름선비도 마찬가지다. 모처럼 심기일전하여 붓을 들긴 들었으나, 몰려오는 습기와 찌는 듯한 무더위는 붓을 무디게만 한다. 그래서 ‘열매가 여물듯 말듯’하다고 걱정한다. 그래서 “속살까지 적시는 우기의 언어는 무섭다”고 하지 않는가. 우기의 언어는 말할 것도 없이 환경의 지배를 받을 수밖에 없는 과수나 시인묵객 모두에게 적용된다. 그래서 ‘우기의 언어’는 바로 생육해야 할 과일나무나 글을 생산해야 할 선비시인 모두 무섭다.
여름시인은 서정적 염려와 근심을 “비가 내릴 듯, 열매가 여물 듯”이라고 아우른다. 비가 오는 것은 여름이 할 일이라면, 열매를 여물게 하는 것은 나무가 할 일이다. 그런 동질감을 매미 울음으로 대신한다. 비록 “오늘 일기예보 또한 예사롭지 않다”할지라도, 나무는 안간힘을 다해 열매를 여물게 하고, 시인묵객은 붓을 들어 세상을 읽어야 한다. 그게 바로 ‘하우하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세상을 읽는 독법이기도 하다. (계간시원 2024.가을호)